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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A7%84%EC%9D%B8%ED%8E%98%EB%A6%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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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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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인페리의 정식명칭은 진인해운 유한공사로 2002년 인천-진황도간 카페리 운영선사로 지정되어, 한중합작을 통해 태어난 선사이다. 주 2회 정기적으로 인천과 친황다오(진황도)를 오간다. 사업 한중 Car-ferry 사업은 제3국 투자를 배제한 한중 양국간의 공동출자를 통해 합작회사를 설립하여 각 항로에 대한 운항을 시작하였으며, 공동이익배분 및 공동선복교환 등 선복 투입에 대한 정책적인 조정 및 관리를 통하여 시장이 형성되었다. 이에 진인페리는 한국측 흥아해운주식회사와 중국측 진황도 항무집단간의 합작투자로 지분구성이 이루어졌으며, 2004년 4월 첫 운항을 하게 되었으며, 주 2항차 스케줄로 양국간을 운항하고 있다. 외부 링크 진인해운 공식 홈페이지 대한민국의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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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A%B0%EC%A3%BC%20%EC%88%9C%EC%B0%B0%EC%A0%95%20X%ED%98%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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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순찰정 X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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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 순찰정 X호》(원제: Festung Sonnensystem)는 에리히 돌레찰의 과학 소설로, 우주에서 실종된 동료들을 찾으러 간 우주 비행사들의 모험 이야기이다. 아이디어 회관에서 《태양계 요새》라는 제목으로 나왔다. 오스트리아의 과학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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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D%8E%9C%EB%A1%9C%EC%A6%88%20%EC%82%BC%EA%B0%81%ED%9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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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로즈 삼각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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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로즈 삼각형( 또는 )는 불가능한 물체의 일종이다. 1934년 스웨덴의 화가 오스카르 레우테르스베르드가 처음 쓰기 시작했고, 1950년대에 영국의 수학자 로저 펜로즈가 그와는 독자적으로 고안하여, 널리 알렸다. 그 후에도 펜로즈 삼각형은 마우리츠 코르넬리스 에셔의 판화에서 쓰이기 시작하여,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불가능한 물체에 영향을 주었다. 이 삼각형은 단면이 사각형인 입체인 것처럼 보이지만, 2차원 그림으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삼각형의 각 변을 이루는 평행한 면들은 각 꼭짓점에 이르면, 서로 다른 위치에서 본 직각의 모서리이기 때문이다. 각 변을 이루는 막대는 모두 서로 직각을 이루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각형을 만든다. 이 방법을 일반화 시켜서 펜로즈 다각형으로 확대할 수 있다. 하지만 펜로즈 사각형은 그 시각적 효과가 삼각형만큼 충격적이진 않다. 펜로즈 삼각형처럼 보이는 입체를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이 때에 각 변은 꼬이거나, 끊어져야 한다. 같이 보기 로저 펜로즈 착시 외부 링크 착시 위상수학 기하학 불가능한 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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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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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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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백이십오)는 124보다 크고 126보다 작은 자연수이다. 수학 합성수로, 그 약수는 1, 5, 25, 125이다. (루트125는 5루트5이다.) 5번째 세제곱수이다. 과학 기타 대한민국에서 밀수사범 신고 전화번호이다. 날짜: 1월 25일, 12월 5일 연도: 125년, 기원전 125년 각주 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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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A3%BD%EB%B6%80%EC%9D%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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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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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부인(竹夫人, bamboo wife)은 대나무를 속이 비도록 엮어서 사람의 몸과 비슷한 크기로 만든 도구이다. 잘 마른 대를 쪼개어 엮어 만든 거으로, 길이는 대략 넉자 반, 지름은 한아름 정도이다. 만들 때 끈이나 못을 사용하지 않았는데 이는 안고 잘 때 몸을 찌르는 것이 있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죽부인에서 죽은 대나무를 뜻하고 부인은 신랑의 부인을 뜻한다. 과거 대한민국 이외에 중국, 일본에서도 사용하였고,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에서도 사용하였으나, 현대에 와서 선풍기 등 냉방기구의 발달로 잘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에서 일하던 네덜란드인 무역업자로부터 처음 유럽에 알려졌기 때문에 영어권 지역에서는 "Dutch wife"라고도 부른다. 죽부인은 대나무 줄기를 직접 손으로 휘어 만든다. 같이 보기 대나무 베개 가구 대나무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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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8B%A4%EB%A7%88%20%EC%A7%80%EC%97%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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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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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마 지역() 또는 다마 지방()은 도쿄도에서 특별구(옛 도쿄시)와 도서 지역(이즈·오가사와라 제도)을 제외한 지역을 말한다. 도쿄도의 26개 시와 니시타마군에 해당한다. 산타마()라고도 한다. 역사 율령 체제 하에 다마 지역은 무사시국의 일부로서 수도는 후추였다. 에도 시대에 이 지역에 고슈 가도가 개통되었다. 가나가와현의 일부였으나 1893년 도쿄부 관할이 되었다. 다마 지역은 예전에 세 개의 군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니시타마군(西多摩郡)은 현재의 아키루노시, 훗사시, 하무라시, 오메시와 현재의 니시타마 군에 속하는 4개의 정과 촌이 포함되었다. 자치체들은 정이나 촌에서 점차 시로 승격되었고 이들은 더이상 니시타마군에 속하지 않게 되었다. 미나미타마군(南多摩郡)은 현재의 하치오지시, 히노시, 이나기시, 마치다시에 이르는 지역을 차지하고 있었다. 1971년에 이나기정이 마지막으로 시가 되면서 미나미타마군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기타타마군(北多摩郡)은 현재의 아키시마시, 조후시, 후추시, 히가시쿠루메시, 히가시무라야마시, 히가시야마토시, 기요세시, 고다이라시, 고가네이시, 고쿠분지시, 고마에시, 구니타치시, 미타카시, 무사시무라야마시, 무사시노시, 니시토쿄시, 다치카와시, 현재의 세타가야구의 일부로 이루어져 있었다. 1936년에는 일부 지역이 세타가야구로 편입되었다. 1970년에 무사시무라야마정이 시가 되면서 기타타마군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다마 지역의 지자체 시 다마 지역에는 26개의 도시가 있다. 고가네이시() 고다이라시() 고마에시() 고쿠분지시() 구니타치시() 기요세시() 니시토쿄시() 다마시() 다치카와시() 마치다시() 무사시노시() 무사시무라야마시() 미타카시() 아키루노시() 아키시마시() 오메시() 이나기시() 조후시() 하무라시() 하치오지시() 후추시() 훗사시() 히가시무라야마시() 히가시야마토시() 히가시쿠루메시() 히노시() 도쿄도청은 도쿄 중심의 도시 기능을 분산시키기 위한 계획의 일환으로 하치오지시, 다치카와시, 마치다시, 오메시, 다마시(신시가지)는 다마 지역의 지역 중심지로 지정하였다. 군, 정, 촌 도쿄도의 극서부에는 니시타마군이 자리하고 있다. 이 지역의 대부분은 산지로 도시화에 적합하지 않다. 도쿄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구모토리산(2017m)를 비롯해 다카수산(1737m), 오다케산(1266m), 미타케산(929m)이 이곳에 있다. 야마나시현 주변의 다마강에 위치한 도쿄도에서 가장 큰 호수인 오쿠타마호가 있다. 니시타마군() 오쿠타마정(), 히노데정(), 미즈호정(), 히노하라촌() 같이 보기 미나미칸토 광역관동권 다마 지역 (도쿄도) 다마 뉴타운 도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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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A%B1%B4%EB%A5%AD%EC%A0%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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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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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 정보 |이름 = 건륭제 |그림 = Portrait of the Qianlong Emperor in Court Dress.jpg |본명 = 아이신 교로 훙리 |재위 = 1735년 10월 18일 ~ 1796년 2월 9일 |즉위식 = 옹정 13년 9월 3일(1735년 10월 18일) |황후 = 효현순황후계황후효의순황후 |부황 = 옹정제 |모후 = 효성헌황후 |출생일 = 강희 50년 8월 13일(1711년 9월 25일) |출생지 = 청나라 북경 옹친왕부 |사망일 = 가경 4년 1월 3일(1799년 2월 7일) |사망지 = 청나라 북경 자금성 양심전 |매장지 = 유릉(裕陵) |묘호 = 고종(高宗) |시호 = 법천융운지성선각체원입극수문분무흠명효자신성순황제(法天隆運至誠先覺體元立極敷文奮武欽明孝慈神聖純皇帝) |이전 황제 = 옹정제 |다음 황제 = 가경제 |별명 = 십전노인(十全老人) |목록 = 제5대 대청 황제 몽골 대칸 |원래 이름 = 乾隆帝}}건륭제(乾隆帝, 1711년 9월 25일(음력 8월 13일) ~ 1799년 2월 7일(음력 1월 3일))는 청나라의 제5대 황제(재위 1735년 ~ 1796년)이다. 성과 휘는 아이신 교로 훙리(, ), 묘호는 고종(高宗, ), 시호는 법천융운지성선각체원입극부문분무흠명효자신성순황제(法天隆運至誠先覺體元立極敷文奮武欽明孝慈神聖純皇帝), 짧은 시호로는 순황제(純皇帝, )이며, 연호는 건륭(乾隆, , )이다. 강희제의 손자인 옹정제의 넷째 아들이며, 옹정제의 후궁 출신인 효성헌황후 뇨후루씨(孝聖憲皇后 鈕祜祿氏)의 소생이다. 어릴 때부터 제왕이 지녀야 할 자질이 보여 할아버지 강희제와 아버지 옹정제에게 인정을 받았다. 1735년(옹정 13년), 옹정제가 급사하자 저위비건법에 따라 황위에 올라 먼저 만주족과 한족 대신들의 갈등을 조정하며 내치를 다진 후 대규모 정복 사업과 문화 사업을 펼쳤다. 문화 사업으로는 옹정제 때 마카오로 추방된 로마가톨릭교회 산하 예수회 선교사들을 다시 불러들여 북경에 서양식 건물을 짓도록 허락한 것과 특히 예수회 수도사인 주세페 카스틸리오네에게 서양식 궁전인 원명원을 개·보수를 감독하게 한 것이 있다. 그 자신 역시 문화와 예술에 관심이 많아 시와 서화를 즐겼고 각지의 시인과 화가들을 독려하였다. 특히 10년의 세월을 들여 고금의 도서를 수집하여 중국 역사상 최대의 대편찬 사업인 《사고전서》를 편찬함으로써 고서적들을 많이 발굴케 하였으나 문자의 옥도 단행하여 청나라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책들은 모두 금서로 만들었다. 한족들의 반란을 잔인하게 진압하고 명나라 출신 한족 여성들을 기녀로 삼는 기녀방을 운영하고 만주족의 한족 정복과 지배를 확고히 만들었다. 그러나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면서 시대착오적인 정책을 내놓고 여기에 사치, 반란, 서방과의 부실한 외교, 그리고 희대의 탐관오리로 평가받는 뇨후루 허션을 20여 년간 총애하여 말년엔 매관매직과 부정부패가 빈번히 일어나고 국고가 비어 결국 청 제국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 1796년(건륭 60년) 말, 자신은 감히 할아버지인 강희제의 재위 기간을 넘을 수 없다며 재위 60년째에 태상황제로 물러났지만, 막후에서 정책 최고 결정권을 행사하여 여전히 실권을 쥐고 있었다. 재위기간 60년에 태상황제로서 실권을 장악한 4년까지 합치면 건륭제는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실권을 장악한 황제였다. 스스로 십전노인(十全老人, 열 번의 원정을 모두 승리로 이끈 노인)이라 칭하고 그렇게 불리기를 좋아하였으며, 중국 최후의 태평성세인 강건성세(康乾盛世)의 마지막을 장식한 황제이다. 중국의 역대 황제 중 가장 장수한 황제이며 중국 최후의 태상황제로 그의 생모와 신분, 즉 한족의 피가 흐르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어서 중국의 역대 황제 중 가장 민간의 전설이 많은 황제이기도 하다. 생애 초기 생애 1711년(강희 50년) 9월 25일, 자금성 인근 옹친왕부에서 당시 시첩이던 뉴호록씨와 옹친왕의 다섯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홍력의 어머니 뉴호록씨는 만주족이었지만 출신이 미천하여 어린 나이에 궁에 들어가 수녀(秀女)가 된 뒤 옹친왕부에 배속되어, 윤진의 후궁인 측복진(側福晉) 이씨의 시녀로 있었다. 어머니의 미천한 신분에 의하여 그다지 부각되지 않던 홍력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천자문과 사서오경을 꿰뚫어 암송하고 시를 잘 지어 1720년(강희 59년) 겨울에 할아버지인 강희제가 특별히 궁정에서 기르기 시작하였다. 황손인 홍력은 황자들만 교육받을 수 있던 상서방(上書房)에서 공부하였는데 이곳에선 홍력 이외에도 자질이 남다른 여러 황손들과 홍력과 동갑인 숙부 윤희(胤禧)도 같이 공부하고 있었다. 당시 강희제에게는 20명의 황자와 100명 안팎의 손자가 있었는데 강희제는 손자들의 상당수를 알지도, 심지어는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 많은 황손들 중 궁정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특별히 뽑힌 홍력이 문재에도 탁월하였고 사냥에서는 어린 나이에 곰을 두려워하지 않고 화살로 힘들이지 않고 잡자 이를 매우 기특하게 여긴 강희제는 어릴 때의 자신을 닮았다며 홍력에게 기본적인 제왕학을 가르치기 시작하였고 특별히 자금성을 지키는 금군 무관에게 명해 홍력에게 무예를 전수해줄 것을 명하였다. 어떤 때에는 노구의 강희제가 직접 홍력의 무술을 보고 가르치고 같이 수련하였다. 궁정에서 살면서 할아버지의 총애를 받았으나, 한편으로는 자주 자신이 살던 옹친왕부로가 부왕인 옹친왕 윤진과 적모인 적복진 오라나랍씨, 그리고 어머니에게 문안드렸고 이러한 성실한 모습을 본 강희제가 더욱더 총애하였다. 1722년(강희 61년) 12월, 홍력의 조부이자 청나라의 제4대 황제인 강희제가 노환으로 붕어하자, 당시 정국을 면밀히 관찰하던 홍력의 아버지 옹친왕 윤진이 군사들과 대신들을 이용하여 황위에 오르니 이가 옹정제이다. 강희제는 임종 직전, 윤진을 불러서 미래의 황제는 홍력이니 황위를 반드시 홍력에게 물려주라 명하였다고 전해진다.Mote, Frederick W. Imperial China 900 - 1800, 1999년, 915쪽 그에 따라 황위에 오른 옹정제는 미리 황태자로서 홍력의 이름을 써서 그 함을 건청궁의 정대광명(正大光明) 편액 뒤에 올려놓았다. 강희제와 같이 홍력의 재주를 귀히 여기던 옹정제는 상서방에 계속 보내어 공부를 시키게 하였고 홍력을 지도하였다. 이듬해인 1723년(옹정 원년) 옹정제는 13살의 홍력에게 자기 대신 선황제인 강희제의 제사를 지내게 하였는데 세간에서는 이미 옹정제가 홍력을 후계자로 눈여겨보았다는 소문이 돌았다. 홍력이 나이가 들수록 학식 또한 깊어지자 옹정제는 홍력의 제왕학을 손수 가르치고 홍력이 정치를 배우는 데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이를 바로 잡아주었다. 홍력은 오전에는 서화에 몰두하였고 정오에서 유시(酉時, 오후 6시)까지 정무에 매달리며 한편으로는 쉬운 국정을 처리하면서 정치를 배워갔다. 그러나 옹정제의 셋째 아들이자 홍력의 이복형인 패륵 홍시(弘時)는 이러한 움직임에 불만을 품고 옹정제와 척을 지고 있던 숙부이자 강희제의 8남 염친왕 윤사(廉親王 胤禩)와 손을 잡았다. 윤사가 노골적으로 부추기자 홍시는 홍력을 모함하였으나, 옹정제는 오히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홍력을 몰아붙이는 홍시를 의심하였다. 1725년(옹정 3년), 홍시가 홍력을 암살하려던 일이 발생하자 진노한 옹정제는 홍시를 윤사의 아들로 입적시켜버렸고 1727년(옹정 5년)에는 윤사 일당이 역모를 꾀하려 한다는 이유로 모두 잡아들여 하옥시키고 아들인 홍시마저도 잡아들인 후, 황실 대동보에서 그의 이름을 제명하였다. 이 때 잡힌 윤사, 윤당은 곧 옥에서 독살당하고 홍시 역시 얼마 안 가 감옥 안에서 사망하였다. 같은 해에, 홍력은 부찰씨를 아내로 맞아들였고 더 이상 홍력에 맞서 황위를 노리는 경쟁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홍시가 죽고 난 후, 홍력이 당시 옹정제의 아들들 중 가장 연장자였기에, 대다수 대신들은 이변이 없는 한, 홍력이 황위를 승계할 것이라 믿었다. 1733년(옹정 11년), 홍력은 화석친왕(和碩親王) 직을 제수받고 보친왕(寶親王)이라 불렸고 이 때부터 정치의 전면에 나서면서 군기처에서 지내며 아직 완전히 섬멸되지 않은 몽골의 준가르 부족에 관한 일을 도맡았다. 또한 태묘, 사직 대제나 공자와 관우의 제사 등 황제가 주관해야 할 국가의 중요 대사를 옹정제를 대신하여 주관하였다. 1734년(옹정 12년), 옹정제가 연로해져 정사를 돌볼 수 없을 때에는 홍력이 나서서 섭정으로서 국사를 처리하였다. 즉위와 개혁 1735년(옹정 13년) 10월, 옹정제의 몸이 나빠지자 보친왕 홍력은 이복동생 화친왕 홍주(和親王 弘晝)와 함께 옹정제를 간병하였다. 그러나 동년인 1735년(옹정 13년) 10월 8일, 홍력의 아버지이자 당대 청나라 황제인 옹정제는 급격히 병세가 악화되어 58세를 일기로 북경의 원명원에서 과로로 의한 피로 누적으로 붕어하였다. 대학사 장정옥과 악이태(鄂爾泰), 그리고 홍력의 숙부인 장친왕 윤록(莊親王 允祿), 과친왕 윤례(果親王 允禮) 등이 고명대신이 되어 옹정제의 유조를 건청궁 정대광명 편액에서 꺼낸 뒤 유조를 읽었다. 유조에는 제4황자 홍력을 황태자로 책봉하여 황제로 즉위시키라는 내용이었다. 이 유조에 따라, 홍력은 황태자로서 책봉의례를 받은 후, 곧 황위에 오르니 이때 그의 나이 25세였으며 이가 제5대 황제인 고종 건륭순황제(高宗 乾隆純皇帝)이다. 연호를 ‘건륭’(乾隆)이라 정하였는데 여기서 ‘건’(乾)은 하늘, ‘융’(隆)은 높음과 영광이라는 뜻이니, 건륭이란 하늘의 영광이라는 뜻이다. 과거 조부인 강희제나 부황인 옹정제의 즉위 과정이 순탄치 않았던 데에 비하여 이미 황자 시절에 경쟁자가 없어진 건륭제의 즉위 과정은 매우 빠르고 안정적으로 진행되었다. 즉위하자 건륭제는 먼저 아버지 옹정제가 연금하거나 귀양보낸 자신의 숙부들을 사면하였다. 특히 강희제의 14남이자 옹정제가 황위에 오르기 전 경쟁자로 불리던 순군왕 윤제(恂郡王 允禵)는 건륭제의 배려로 풀려날 수 있었다. 그 후 건륭제는 아버지가 재위기간 내내 추진하던 종친들을 정치 일면에서 배제시키는 정책에 박차를 가했다. 강희제나 옹정제 때만 하더라도, 대부분의 황자들과 일부 세력있는 방계 황족들은 군이나 육부를 통솔하였으나 그 당시의 골육상쟁을 잘 알고 있던 건륭제는 황족들을 대부분 군과 육부, 군기처에서 배제시켰고 그의 아우들마저도 정치적 발언을 규제하여 공사를 구별하였다. 혈기왕성한 청년의 건륭제는 인시(寅時, 새벽 4시)에 일어나 조회에서 대신들이 올린 각지에서의 보고를 받고 이를 수결하였다. 그러나 1736년(건륭 원년) 당시 조정에서는 두 개의 파가 있었는데 한 파는 영시위내대신 겸 군기대신 악이태로 군부의 신망을 얻고 있었고, 다른 파는 군기대신 장정옥으로 한족 출신의 대신들 중 가장 연장자로 당시 명나라의 정사인 《명사》를 쓰고 있었다. 이들 두 대신은 강희제와 옹정제 때부터 조정에서 활약하던 실력자들이어서 기세가 모두 등등하였다. 건륭제는 악이태와 장정옥 모두 고령이라 머지않아 세상을 뜰 것이라 예상하여 방치해둔 채 서로를 견제하게 만들어 서로의 세력을 약화시켰고 그 사이에 자신을 따를 신료들을 조금씩 만들어 나갔다. 하지만 건륭제는 이들 둘의 정치적 역량과 실력을 잘 알고 있었기에 이들이 죽을 때까지 내치지는 않았다. 건륭제는 곧 보갑제(保甲制)와 이갑제(里甲制)라는 제도를 뜯어고쳤는데 보갑제는 100 가구를 모아서 갑(甲), 그리고 그 10개의 갑을 모아 보(保)로 나누어 같은 공동체에서 사는 사람끼리 서로 질서와 치안의 책임을 지게 하는 제도였고 이갑제는 보와 갑에서 세금을 인구에 따라 모아서 재정을 충당하는 제도였다. 본래 북송의 왕안석이 신법으로 쓰려다가 수포로 돌아간 이후 명나라를 거쳐 청나라 이후 순치제 치세의 섭정왕이었던 도르곤의 명령으로 다시 시작하였고 강희제와 옹정제를 거치면서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보·갑의 장들은 자신이 맡은 구역의 백성들의 호적을 조사하고 그 기록을 관아에 바쳤고 수상한 촌민들을 감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지방 관리들이 인구와 세수를 일부러 줄여서 보고하고 뒤로는 세금을 무겁게 매겨 막대한 사익을 취하자, 1740년(건륭 5년), 건륭제는 정확한 인구조사를 위해 각지의 보·갑장에게 가구당 세는 사람의 수를 군역을 지는 장정이 아닌, 집안의 여자들까지 모두 다 계산하였는데 계산한 백성들의 수는 나이, 성별과 이름을 패에다 적어 각자의 집 문 앞에 걸어놓았다. 패를 대문에 걸어놓으면 보나 갑의 장(長)들이 가구를 돌아다니면서 기록을 하고 그 기록을 모두 지방의 순무부, 또는 총독부에 보냈고 이들은 또 자신의 관할 인구 기록을 모두 추려서 북경의 군기처와 호부로 보냈다. 이러한 정책으로 건륭제는 청나라의 총인구수를 보다 정확히 알게 되었고 지방 관리들이 인구와 세수를 일부러 줄여서 보고하여 사익을 취하려 한 경우를 차단하여 또한 이를 방치하거나 세금을 빼돌린 총독이나 순무에게도 중징계를 내려 특히 이 중 그 행태가 심한 자는 참형에 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건륭제의 강력한 정책은 청대 후기까지 지속되었으나 사실상 부정부패가 시작되는 건륭제의 치세 후기까지만 지속되었다. 십전무공 보갑제와 이갑제의 덕으로 어느정도 내치를 다져서 그 성과를 본 건륭제는 국고의 은자가 풍족하고 인구도 크게 늘어나 농작도 잘되어 백성들의 호응을 받았다. 나라가 부유해지자 건륭제는 자신의 위엄을 더욱 떨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켰다. 이러한 마음에는 건륭제가 평생 존경한 할아버지 강희제에 대한 동경심도 포함되어 있었다. 1747년(건륭 12년), 대금천(大金川)을 시작으로 1755년(건륭 20년), 1757년(건륭 22년) 두번에 걸쳐 강희제 이후 세력이 미미해졌으나 여전히 몽골 고원을 호령하던 중가르를 완전히 복속시켰고 1769년(건륭 33년)에는 버마, 1776년(건륭 41년)에는 대금천과 소금천(小金川), 뒤이어 1788년(건륭 53년) 대만, 1789년(건륭 54년) 베트남, 1791년(건륭 56년), 1792년(건륭 57년) 두 차례에 걸쳐 네팔을 원정함으로써 자신의 권위와 청나라의 국위를 선양하였다. 그러나 그 자신은 몽골의 군사를 직접 지휘해 격파한 조부와는 달리 전선 근처를 순시하며 병사들을 독려하였다. 이때 당시 청나라의 군사 상당수는 개국 때 혁혁한 공을 세운 팔기군이 아닌 강희제 때 신설된 한족 출신의 군대 녹영(綠營)의 군사들로서 남송의 명장 악비의 후손인 사천총독 악종기(岳鍾琪)와 만주족 출신의 장수 아계(阿桂)가 주지휘관으로 활약하였다. 그 중 가장 성과가 있었던 원정은 바로 두 번에 걸친 준가르 원정과 대·소 금천 원정이었다. 준가르 원정으로 청나라는 외몽골을 얻었고, 이 기세를 몰아 위구르족을 공격해서 그들을 복속시킴으로써 크나큰 영토를 얻게 되었다. 건륭제는 새로 얻은 영토를 새롭게 번성하라는 뜻의 신강(新疆)으로 명명하였다. 또한 티베트 일대에도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대·소 금천 원정에서도 소수의 병력으로 공격하여 성과를 보았으나, 금천의 영토는 몽골에 비하여 턱없이 작았고, 군비도 예상에 비해 너무 많이 지출되었다. 또한 금천 일대에는 1747년(건륭 12년) 금천의 일부 영토를 점령하였음에도 현지 주민들의 반란도 빈번히 일어났다. 주민들은 암도 지구의 티베트인들의 지원을 얻어서 항쟁을 계속하였고, 건륭제는 꼭 29년 후에 유럽의 선교사들이 제작한 최신형 대포로 대금천과 소금천을 초토화시킨 다음에야 강제로 주민들의 항복을 받아내어 조공품을 얻은 뒤 완전히 통치할 수 있었다. 이로써 건륭제는 청나라의 영토를 약 460만 km2 늘려 중국 역사상 원나라 이후 가장 큰 영토를 가진 제국의 통치자가 되었다. 버마에서는 콘바웅 왕조가 다스리고 있었으나 청나라와는 불편한 관계에 있었다. 청군이 쳐들어오자 버마도 역시 군사를 내보내 대응하게 하였으나, 시암의 국왕 딱신이 군사를 내보내 버마와 싸워서 버마군을 대파하였다. 이 덕분에 청나라는 어부지리격으로 버마를 손쉽게 평정하고 버마를 조공국으로 삼았다. 그 후 대만에 천지회(天地會)라는 종교적 색채를 가진 단체가 반란을 주도하여, 청나라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군사를 일으켜 대만의 여러 도시를 점령하다. 천지회의 일부는 악명 높은 갱 조직인 삼합회(三合會)로 발전한다. 이들은 반청복명을 기치로 거사를 일으켰으나, 건륭제는 빠른 대처로 천지회 반란군은 궤멸시키고 그 지도자들을 잡아 처형하였다. 1786년(건륭 51년) 발생한 대만 토호 임상문의 난은 삼합회라고도 부르는 천지회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다. 이때 건륭제는 만주족 군사가 아니라 한족 군사의 도움을 받는다. 임상문의 난은 만주 팔기가 아니라 채대기, 손사의가 지휘하는 한족 녹영의 군대의 힘을 빌려 2년 만에 진압한다. 대만을 진압하고 그 다음해인 1789년(건륭 54년) 베트남에서는 후 레 왕조 말기에 접어들었으나 떠이선 왕조가 잠시 들어서면서 후 레 왕조를 멸망시켰다. 후 레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레 민제는 광서성으로 도망쳐 청나라로 망명하여 건륭제에게 도움을 요청하였다. 건륭제는 그의 요청을 수락하여 양광총독 손사의가 이끄는 대군을 보내 탕롱를 공략한 다음 다시 민제를 복위시켰으나, 그는 이미 건륭제에게 조공을 맹세하고 실권을 청나라에 넘겨 허수아비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분개한 떠이선 왕조의 응우옌후에는 1789년(건륭 54년) 기습적으로 탕롱을 공격하여 손사의의 청군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다. 놀란 레 민제는 다시 청나라로 망명하고 응우옌후에는 황제로 즉위한 후 청나라의 승인을 받아 조공국이 되었다. 네팔을 점령할 때는 이미 네팔의 구르카 부족이 쳐들어와 1788년(건륭 53년) 티베트 남부를 점령하고 라사를 향해 진격해오고 있었다. 티베트 주재 청군은 판첸 라마 텐페이 니마를 납치하여 다른 곳에서 요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한편 건륭제는 사천성에 주재하던 군사들에게 티베트 남부에 있는 구르카 군사들을 몰아내라 명령하였으나 이미 구르카 부족은 퇴각한 상태였다. 그러나 1791년(건륭 56년) 겨울, 구르카는 다시 티베트로 진격해 들어왔다. 이에 맞서 건륭제는 팔기군과 녹영의 군사들을 파병하고 그 사령관에 자신의 처조카인 복강안(福康安)을 임명하여 구르카군을 몰아내도록 하였다. 복강안의 군대는 청해성으로 진격해 티베트 분지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날씨가 춥고 고지 분대라서 눈이 녹지 않아 날이 풀릴 때까지 기다리다가 봄이 되어 다시 진격한 후 1792년(건륭 57년) 여름에 구르카군을 섬멸하고 그들을 히말라야 산맥의 카트만두 계곡으로까지 압박하였다. 1793년(건륭 58년) 복강안은 구르카족의 항복을 만주식으로 받고 철군하여 북경으로 돌아갔다. 건륭제는 자신이 이긴 모든 10번의 원정을 십전무공(十全武功)이라 하고 이를 기념해 책을 썼는데 그 책이 《십전무공기》로 청군의 강력한 군사력과 자신의 군사적 지도력을 스스로 칭찬한 저서였다. 또한 자신을 십전노인(十全老人)이라 스스로 칭하였고 자금성 안의 무영전(武英殿)에 청군이 원정에서 얻은 화려한 진상품이나 조공품 등을 전시해 놓았다. 강남 순행 조부 강희제와 같이 건륭제는 여러 곳을 순행하는 것을 좋아하였다. 순행은 황제가 백성들에게 부와 위엄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좋은 행동이었다. 건륭제는 개인적인 여가를 보낼 때나 중대한 정책을 결정할 때 심신을 달래러 주로 떠났는데 1751년(건륭 16년), 1757년(건륭 22년), 1762년(건륭 27년), 1765년(건륭 30년), 1780년(건륭 45년), 1784년(건륭 49년) 등 대대적인 강남 순행, 즉 남순(南巡)을 모두 여섯 번 단행하였다. 건륭제는 순행할 때 황자와 공주, 대신, 환관, 시녀, 요리사, 호위병 등 3000명을 대동하였는데 여기에다가 건축가, 화가, 시인 등까지 데리고 가 그들과 더불어 강남의 절경을 논하였다. 그동안 북경에서는 장성한 황자나 여러 명의 군기대신이 남아서 국사를 처리하였다. 건륭제의 순행의 주요 동선은 남경, 양주, 항주, 그리고 소주였다. 이 네 도시에서 건륭제는 대운하나 다른 명승고적을 돌아다니며 담론을 즐겼고 저녁에는 호화로운 행궁에서 지역 유지들과 관리들이 주최하는 호화로운 만찬을 즐겼다. 그리고 매일 거르지 않고 사치스럽고 호화로운 만찬을 벌려 자신이 가져온 내탕금이나 상인들과 지역 관리들이 바친 돈까지 모두 떨어지자 지역 관리들과 상인들의 하수인들이 자원하여 백성들로부터 돈을 뜯어내어 충당을 하였고 몇 개의 행궁을 짓는 데에도 백성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큰 원성을 샀다. 조부인 강희제가 순행 때 가져간 내탕금만으로 모든 걸 충당하고 북경으로 돌아올 때도 다 쓰이지 않았던 것과 상반된다. 실제로 건륭제는 순행 때 강희제가 쓰던 비용의 평균 열 배 이상을 써서 국고의 돈을 지나치게 낭비하였다. 남순 이외에 사천성, 청해성 인근을 돌아보는 서순(西巡)을 4번 하였고 산동성, 호북성 인근을 도는 동순(東巡)도 5번이나 진행하며 각지의 교류를 트게 하였다. 건륭제는 자신을 수행하는 시인, 화가 등을 불러 황실에서만 마시는 좋은 차를 대접하며 시 한 수를 읊거나 써 줄것을 권유하였다. 특히 자신이 데려온 시인과 강남에서 살던 시인들과도 문예 대결을 펼치게 하는 등 문예 활동을 활발히 벌이고 자신의 탁월한 예술적 안목으로 예술가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또한 강남의 골동품을 모으는 것을 좋아하여 환관들로 하여금 특정한 골동품을 수소문하여 어떤 값을 치르더라도 사서 가져오라 할 만큼 수집욕이 매우 컸다. 그러나 순행을 하면서 그는 가정적으로 큰 일을 두 번 겪었다. 1748년(건륭 13년) 건륭제는 자신의 정실 부인인 효현순황후 부찰씨와 더불어 동순을 나가 제남을 거쳐 공자의 고향 곡부까지 내려가 공림을 참배하였으나 효현순황후는 배 위에서 연회를 즐기는 도중에 강물에 빠져 북경으로 급히 가다가 덕주에서 오한에 걸려 사망하였다. 그녀를 매우 사랑하고 아꼈던 건륭제는 크게 상심하여 순행을 떠나는 것을 몇 년간 중지하였고 동순을 갈 때에도 덕주를 경유하지 않고 우회하여 갔다. 그 후 건륭제는 한황귀비 나랍씨를 황후로 새로 맞아들였으나 1765년(건륭 30년) 네 번째 남순 때, 연회 후 함부로 머리를 자르고 여승이 되려 하였다는 이유로 건륭제의 노여움을 사서 강제로 북경으로 보내졌다. 그 후 오랍나랍씨는 황후로서의 권위를 박탈당한 채 유폐되어 1768년(건륭 33년)에 사망하였고 황후가 아닌 귀비로서의 장례로 지내지고 황후로서의 시호도 받지 못하는 등 건륭제로부터 홀대를 받았다. 문화·예술 발전 건륭제는 시를 짓는 것을 좋아하여 주로 정무를 본 오전과는 달리, 오후와 저녁에는 시를 지으며 낙으로 삼아 평생 4만 수가 넘는 시를 지었다. 그러나 그 중 상당수는 어법이 틀리고 질도 낮아 잘 지어진 시는 아니었다. 간행된 시문집으로는 《낙선당전집》, 《청고종어제시집》 등이 있다. 그러나 서예에는 실력이 뛰어나 자금성 안의 여러 편액들을 썼으며 대신들의 생일 때에는 자신이 손수 쓴 글귀를 선물해주기도 하였다. 또한 그리기를 좋아하여 여러 그림을 남겼는데 자신이 좋아하던 후원과 정자를 주로 그렸다. 건륭제는 순행에서도 그러하였듯이 황궁인 자금성에 예술가들을 초대하여 차를 대접하며 그들의 학식과 예술성에 감탄하였다. 건륭제는 청나라 각지의 궁전, 행궁, 도로, 운하, 성벽, 사원 등을 새로 짓거나 증축하는 데에도 힘썼다. 건륭제는 본래 자신이 태어난 잠저인 옹친왕부였으나 옹정제 때 라마교 사원과 행궁으로 개축된 옹화궁을 대폭 증축하였고 명나라 때 지어진 자금성이 너무 인위적이고 낡아서 자신의 쉼터가 될 만한 곳, 즉 큰 연못과 나무 등이 많은 거대한 후원 공사를 시작하였다. 그는 최고의 장인, 석공, 목공 등을 불러 후원을 만들었는데 그때 처음 만들어진 후원이 북경 서북쪽에 있는 청의원(淸漪園)으로 훗날 이화원으로 개명되었다. 다른 한 후원은 바로 원명원으로 본래 아버지 옹정제가 가지고 있던 작은 후원을 대폭 증축하고 옆에는 그 부속 후원인 장춘원(長春園), 기춘원(綺春園)을 새로 지였다. 건륭제는 원명원을 서양과 동양이 만나는 궁전이 되길 원하여 조부 때부터 궁정에서 일하던 예수회 선교사 중 최연장자 주세페 카스틸리오네(중국 이름 랑세녕(郞世寧))와 프랑스에서 온 천문학자 미셀 베누아에게 원명원의 개·보수를 명하였다. 카스틸리오네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바로크 양식과 로코코 양식을 본따 지었는데 지붕은 중국식, 건물 외벽은 서양식으로 지어 혼합 양식을 따 지었고 안에는 유럽 왕실에서 쓰는 진귀한 물건을 가져다놓아 전시하는 등 매우 화려하였다. 북경 밖으로는 강희제 때 지어져 승덕 땅에 있던 피서산장을 1743년(건륭 8년)에 대대적으로 정비하기 시작하여 49년 후인 1792년(건륭 57년)에야 완성을 하였다. 건륭제는 이미 전임 황제들인 강희제, 옹정제와 같이 궁정의 선교사들을 우대하며 그들에게 부분적인 선교 활동을 허락하였다. 하지만 건륭제 자신은 조부와 부황과 같이 가톨릭교회의 가르침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고 선교사들의 예술적, 과학적 지식만을 이용하려고 하였다. 건륭제의 증조부인 순치제부터 이미 아담 샬 폰 벨을 시초로 건륭제 때에도 이그나츠 쾨글러, 안토 고가이슬 등의 예수회 선교사들이 천문대인 흠천감을 이끌며 중국의 천문학과 지리학에 도움을 주었다. 1769년(건륭 34년) 이들의 도움으로 완성된 《건륭황여전람도》(乾隆皇與全覽圖)는 서양식으로 그린 지도로 청나라의 강역을 세밀히 그려냈다. 프랑스 선교사인 조제프마리 아미오는 여러 개의 황실 정원을 프랑스식으로 꾸며주고 《손자병법》과 같은 중국의 유명한 고서적이나 건륭제가 지은 시 등을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기도 하였다. 칙령 반포와 문자의 옥 한편으로 건륭제는 1770년(건륭 35년), 중국에 있는 모든 고서적들을 수집할 것을 칙령으로 반포하였다. 이에 따라 건륭제는 학자들에게 모든 고서적들의 이름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고서적들을 사서오경과 같은 고전인 ‘경’(經), 역사서인 ‘사’(史), 제자백가를 포함한 철학서인 ‘자’(子), 그리고 문집인 ‘집’(集) 등 모두 네 분류로 나누었다. 모은 서적을 모두 학술 기관인 한림원과 황실 도서관인 문연각(文淵閣)에 비치한 후 조사하여 분류하고 일람에 적어놓는 작업만도 2년이 넘게 걸렸다. 건륭제와 군기처는 이러한 사업이 세금도 적게 들고 국가의 문화적 위치를 한층 발전시킬 것이라 여겨 전폭적으로 지원하였다. 1773년(건륭 38년), 이렇게 모인 3,503 부에 79,337 권 33,054 책의 서적을 한데 모아 3,800여 명의 학자들이 필사를 하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사고전서》(四庫全書)이며 이 《사고전서》에 실린 서적들을 분류해 놓은 일람을 《사고전서총목제요》라고 한다. 《사고전서》는 9년 뒤인 1782년(건륭 47년)에 가서야 완성이 되었다. 건륭제는 《사고전서》의 양이 매우 방대하였기 때문에 편찬 작업 중 새로 요약본을 편찬할 것을 명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사고전서회요》(四庫全書薈要)로 이 역시 12,000 여권에 달한다. 《사고전서》는 자금성의 문연각, 심양의 문소각(文溯閣), 열하의 문진각(文津閣), 원명원의 문원각(文源閣) 등 4곳에서 보관하였을 뿐만 아니라 양주, 진강, 항주 등으로 보내 한림원의 원로 학사가 책임을 지고 관리하도록 하였다. 이때 만들어진 《사고전서》는 명나라 영락제 때 만들어져 당시까지만 해도 중국 역사상 최대의 편찬사업인 《영락대전》의 3배를 훌쩍 뛰어넘는 양이었으며 강남에 보존된 3부는 남방의 학자들이 언제든 열람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 밖에도 건륭제는 《대청일통지》, 《황조문헌통고》, 《대청회전》 등 방대한 도서를 많이 편찬하게 하였다. 건륭제의 치세에도 문자의 옥은 계속되었다. 건륭제는 《사고전서》를 편찬하기 시작한 1773년(건륭 38년)부터 모든 책들을 2년간 24번 조사하여 청나라의 정책과 그 뿌리에 정통성을 제기하는 서적은 모두 불온서적으로 지정하고 불태워버렸다. 소각된 책들은 모두 538 종에 13,860 부에 달하는 상당한 양이었다. 이 책들은 대부분 명나라 말엽에 쓰인 것으로 선황인 태조 누르하치의 근본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북방 민족은 한족을 다스릴 권리가 없다’, ‘명나라 만이 중원을 다스릴 유일한 정통 황조이다’라는 등 청나라의 중국 지배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비난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건륭제는 이러한 행위를 대역죄로 처리하여 책을 쓴 저자와 그의 가족들을 변방으로 유배보내거나 노예로 삼았고 노골적으로 공격한 경우에는 주동자는 능지형에 처하고 그 삼족이나 구족을 멸하는 등 엄정하게 다스렸다. 이에 건륭제는 한족에게도 만주어를 가르치기 위해 《청문감》(淸文鑑)이라는 책을 지어 보급하였다. 문자의 옥의 대표적 사건으로 당시 시인인 호중조(胡中藻)가 ‘일파심장논탁청’(一把心腸論濁淸, 나의 마음으로 청탁을 논하고 싶다)이라는 문구에서 ‘탁청’(濁淸)이 바로 탁한 청나라라는 뜻으로 해석하여 참형에 처해지기도 하였다. 경제와 부의 완성 건륭 시대 초기부터 선대인 강희제·옹정제의 강력한 내치와 더불어 새로운 작물과 농작 방식이 도입됨에 따라 농업 수확률이 대폭 상승함에 따라 상업이 번창해져 경기가 활성화되었다. 특히 신대륙에서 전래되어 유럽 선교사들이 가져온 작물들이 서서히 재배되기 시작하였는데 그 중 고구마는 어느 땅에서나 잘 자라서 백성들의 기근을 면하게 해주어 이때 들여온 작물 중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밖으로는 무역을 늘렸는데 면, 칠기, 도자기, 비단 등이 주요 특산품으로 세계에 수출되었고 이에 따라 재정은 물론 백성들의 삶의 질도 크게 상승하였다. 차의 생산량도 크게 많아져 영국에 수출하는 차의 생산률이 건륭제 즉위 80년 후인 1815년(가경 20년)에는 50배까지 증가하였고 유럽 선교사와 상인들은 고가인 칠기 가구나 질 좋은 종이, 서적에 큰 관심을 가져 구입한 후 본국에다 다시 팔았다. 건륭제는 이러한 무역 정책을 크게 장려하여 유럽 상인들로부터 은이 많이 들어와 1760년(건륭 25년) 총 85,000 kg의 은이 국고에 있었으나 20년 후인 1780년(건륭 45년)에는 450,000 kg의 은이 국고에 들어와 있었다. 이러한 부와 새로운 농작 방식을 바탕으로 인구도 크게 늘어났는데 1722년(강희 61년) 1억 5천만 명이었던 인구가 68년 뒤인 1790년(건륭 55년)에는 3억 명을 넘어서 배가 되었다. 18세기로 들어서면서 백성들이 문화·예술을 즐기기 시작하면서 여가 시간은 많아지고 각지가 부유해져 인구가 급속도로 상승할 수 있었다. 그러나 건륭제 시대 이후 가경제 시대에 접어들면서 경기는 악화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인구는 폭증하면서 경제적 부양력이 인구 상승률보다 현저히 떨어지게 되어, 이에 불만을 가지게 된 일부 백성들을 중심으로 반청(反淸) 세력이 싹트기도 하였다. 부정과 부패 건륭제가 청년, 중년 때에는 부황 옹정제처럼 주필(朱筆)을 하여 관리들을 항상 감찰하는 등 기강을 엄정히 하여 관리들의 횡령이나 탈세같은 일이 거의 일어나지 않았고 일어나더라도 그 금액은 적었다. 그러나 건륭제가 나이가 들면서 중앙과 북경 주변의 정무만 처리하고 주필을 쓰는데 소홀해졌으며 각 성의 탄원이나 정책은 각 성의 총독, 순무가 재량껏 처리하게 내버려 두는 등 느슨하게 대하였다. 이에 따라 건륭제의 감시망에서 벗어난 지방 관리들이 백성들과 상인들을 상대로 착복과 횡령, 탈세를 자주 하였고 그 연관된 금액도 매 건당 수십만 냥을 웃돌았다. 건륭제의 치세 동안 황하에서 7건의 홍수 범람 사태가 발생하여 건륭제가 구호 자금을 보내주었으나 중간에서 관리들이 모두 횡령한 바람에 치수 공사가 진척을 이루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 이후로는 점점 심해져 중앙에서 처리해줄 강력하고 청렴한 고위 관리들이 나타나지 않아 지방의 말단관리부터 재상급인 수석군기대신(首席軍機大臣)까지 연관되어서 집단 뇌물수수 사건까지 발생하는 등 심각해졌다. 건륭제 치세 중기 때부터 군기대신 우민중은 청렴과는 거리가 멀고 스스로 막대한 사익을 취하며 대신들 사이에서도 뇌물이 오가기 시작하였다. 이에 하급 관리들 역시 서로 뇌물수수를 눈감아주고 과거시험에서도 일정한 돈을 지불한 대가로 그 응시자에게 합격시켜 주는 등 그 비리가 계속되면서 감숙성에서 청 제국 최대의 뇌물수수 사건인 감숙모진안(甘肅冒賑案)이 발생하였다. 1774년(건륭 39년) 당시 감숙성은 가난한 지역으로 매년 북경의 군기처나 호부로부터 구호 자금을 받아서 사무를 처리하였다. 그리고 감숙 순무인 왕단망(王亶望)이 매년 그러하듯 건륭제에게 도움을 요청하여 구호 자금을 얻었으나 돈은 정작 구호에 쓰이지 않고 왕단망의 창고로 넘어갔다. 그러나 왕단망은 이러한 사실을 숨기고 구호 내역을 조작하여 건륭제에게 올렸고 이러한 사실을 모르는 건륭제는 왕단망을 절강성 순무로 바꿨으나 후임자에 이르러 뇌물수수 사건이 밝혀졌는데 1774년(건륭 39년)에서 1781년(건륭 46년)까지 7년 동안 왕단망 개인이 착복한 돈은 2백만 냥이 넘었고 감숙성의 전체 관리가 축적한 돈은 1500만 냥이나 되었다. 순무가 자신을 속였다는 것을 안 건륭제는 대노하여 왕단망을 비롯한 2만 냥 이상을 빼돌린 감숙성의 관리들은 모조리 사형에 처하는 등 강수를 두었다. 그 이후 건륭제는 군기처에게 각 성의 총독·순무가 제대로 보고를 올리는지 그 작년의 것과 대조하라 지시하였으나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하지는 않았기에 흐지부지되었다. 그리고 건륭제는 자신의 재위 후반기 내내 큰 영향력을 행사한 뇨후루 허션에게 절대적 신임을 보냈다. 화신은 금군의 삼등시위로 시작하여 27세인 1776년(건륭 41년) 호부시랑이 된 이후로 계속 호부를 장악하며 국고를 책임졌고 왕단망의 뇌물수수사건을 철저히 밝혀내어 그 돈을 국고로 환수하는데 일조하였다. 이에 힘입어 1780년(건륭 45년)에는 불과 31세에 호부의 수장인 호부상서가 되면서 각지의 총독·순무에게 일정한 돈을 지불하면 대역죄를 제외한 모든 죄를 사면하는 방식으로 돈을 모아 자신의 창고에다가 쌓아두었으나 호부상서의 직분을 게을리하지는 않아 국고가 비었을 시에는 자신의 창고를 열어 국고에다가 돈을 보내어 메꾸었다. 한편으로는 황제에게 바쳐지는 1등급 진상품을 빼돌려 자신의 집에 보내고 건륭제에게는 2등급을 대신 바쳤다. 허션은 백성들의 세금을 대폭 올리고 관리들에게 자주 뒷돈을 받아서 반대파 대신들에게는 중상모략을 일삼는 부정부패의 원상이었으나 중국어, 만주어, 몽골어, 티베트어등 4개 국어에 능통하여 건륭제가 내리는 국서를 직접 번역하여 보내는 등 업무처리능력이 뛰어나 수상급인 영시위내대신, 수석군기대신과 여러 문관과 무관의 관직을 겸직하며 크나큰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강희제와 옹정제 내내 크게 위축되어 온 신권을 다시 강화하였다. 또한 화신의 장남인 풍신은덕이 건륭제가 65세에 얻은 가장 총애하던 막내딸인 고륜화효공주와 혼인함으로써 황실의 인척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다. 이와 더불어 건륭제 자신도 재위 초반기에 옹정제의 기풍을 이어받아 관리들을 잘 단속한 것과 달리, 말년에는 재산의 축적에 크게 집착하여 자신의 생일 때에 황금 불상 1만 개를 받았다. 부정부패가 계속되자 반청 세력이 계속 나타났는데 1774년(건륭 39년) 왕륜(王倫)이라는 자가 관리들의 부정부패, 무거운 세금 등으로 사람들을 규합하고 이미 쇠망한 백련교를 다시 일으켰으나 건륭제의 대처로 손쉽게 진압되었다. 그러나 백련교를 비롯한 다른 반청 세력들도 은밀히 세력을 규합하는 등 건륭제 말년까지 계속 지방에서 산발적인 분쟁이 일어났다. 유럽과의 관계와 사절단 건륭제는 부분적으로나마 예수회 선교사들의 선교를 허락하였고 선교사들은 이에 따라 교세를 확장시키고 가톨릭으로 개종한 신자들에겐 조상의 제사 등 본래의 관습을 어느 정도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러나 1742년(건륭 7년) 교황 베네딕토 14세는 〈각 경우에 따라서〉(Ex quo Singulari)라는 칙서를 내려 가톨릭으로 개종한 신자들이 풍습을 유지할 수 있던 관행을 금지시키고 1744년(건륭 9년) 다시 또다른 칙서 〈옴니움 솔리키투디눔〉(Omnium solicitudinum)를 내려 이를 재확인하였다. 교황의 칙령이 내린 후로는 가톨릭 신자의 수가 늘어나지 않았고 예수회 선교사들도 제대로 선교 활동을 펴지 못하였다. 그 후 중국 내의 가톨릭 교세는 조정의 탄압과 유학자들의 공격으로 청나라 멸망 때까지 크게 성장하지 못하였다. 한편으로 유럽 상인들은 1750년대에 이미 광동성에 들어와 거주하며 중국식 길드인 공행(公行)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여서 청나라의 관세도 덜 지불하였고 현지 상인들과의 신뢰도를 쌓았다. 하지만 이러한 과정에서 청나라 상인들도 유럽인들에게 뒷돈을 받는 등 부정한 행위를 하였다. 특히 청나라에 관심을 가지던 영국은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위해 1759년(건륭 24년) 영국 동인도 회사는 직원을 북경으로 보내 개항을 요구하였고 건륭제는 이를 허락하였으나 갑자기 이를 거절하고 대외 무역 규제를 대폭 강화하였다. 또한 영국인들이 주로 활동하고 있던 주산(舟山)과 하문(아모이)의 항을 폐항하고 개항을 광주항만 허락하였다.(1757년) 추가로 건륭제는 유럽 상인들은 반드시 공행과만 매매를 하도록 규정하고(1757년) 그 시기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로 엄격하게 설정하였다. 이에 유럽 국가, 그 중 영국은 무역을 늘려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하고자 여러 번 특사를 파견하여 건륭제에게 진귀한 선물을 주어 이를 타개하려 하였고 또 공사를 상주시켜 청나라의 동정을 항시 살펴보려고 하였다. 1788년(건륭 53년) 영국은 전권 대사로 카스카트(Cathcart)를 파견하였으나 카스카트가 청나라로 가는 도중 병사하여 뱃머리를 돌려야 했다. 1792년(건륭 57년) 9월 26일, 영국 정부는 다시 특별 사절단을 편성, 건륭제의 82번째 생일을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특사로 조지 매카트니 백작을, 부사로 조지 스턴튼(George Staunton)을 명하여 파견하였다. 하지만 본래 매카트니는 청나라뿐만 아니라 일본까지 가서 쇼군을 만나 일본이 청나라에게 주로 수출하는 상품인 차를 직접 거래할 수 있도록 요청을 하려 하였다. 사절단은 대서양, 인도양을 거쳐 1793년(건륭 58년) 5월에 오문(마카오)에 도착하고 이를 알리는 서신을 건륭제에게 보내 알현의 허락을 받고 다시 출발하여 그 해 7월에 북경의 항구인 천진에 닻을 내렸다. 당시 건륭제는 막 완공된 여름 별장인 열하 피서산장으로 가서 지내고 있었다. 그렇기에 천진으로 온 다음 북경에서 여독을 풀고 다시 만리장성을 넘어 1793년(건륭 58년) 8월에야 피서산장에 도착해 건륭제를 알현하였다. 건륭제는 화신에게 사절단을 대접하는데 소홀하지 않도록 명을 내렸으나 도중 접견의 예의문제로 난항을 빚게 되었다. 본래 외국의 사신은 황제를 접견할 때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 즉 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 를 땅에 조아리는 예를 취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매카트니는 자신은 청나라의 속국의 신하가 아니라며 단호히 거절하였고 결국 합의 끝에 건륭제 뒤에 영국 국왕의 초상화를 걸어놓고 한쪽 무릎만을 굽히며 영국식 예만 취하도록 하였다. 건륭제는 탄신 만찬에서 매카트니가 가져온 조지 3세의 친서를 건네 받았는데 거기에는 무역을 늘리고 공사를 상주시키고 싶다는 요구가 들어 있었다. 거기에다 영국에게 주산 근처의 작은 섬을 할양해 영국인들이 사용하게 해달라는 내용도 쓰여있자 건륭제는 이를 거부하고 영국 사절단의 일체의 행동을 금하였다. 건륭제는 그 다음 달인 9월에 영국 사절단의 귀국을 강제 조처하였다. 2년 뒤인 1795년(건륭 60년) 초에는 네덜란드와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를 대표하는 전권 특사 이삭 티칭(Issac Titsingh)이 건륭제의 재위 60년을 축하하기 위한 사절로 왔다. 광주를 거쳐 북경으로 와서 원명원에서 건륭제를 접견하였는데 노골적으로 청나라의 땅의 할양을 요구한 영국과는 달리 네덜란드 사절단은 그러한 행동을 보이지 않았으며 영국 사절단이 거부하던 삼궤구고두를 바로 올려 건륭제의 호감을 샀다. 건륭제는 네덜란드 사절단을 영국 사절단보다 더 우대하였고 그에 대한 선물도 더 많이 챙겨주어 보내주었다. 퇴위와 반란 1795년(건륭 60년) 말 건륭제는 스스로 황위를 물러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즉위할 때 한 약속이기도 하였는데 1735년(옹정 13년) 당시 즉위할 때 쓴 칙서에서는 즉위 60년 째에 황위에서 물러나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본래 건륭제는 즉위할 때 첫 번째 부인 효현순황후 소생의 차남 영련(永璉)을 후계자로 염두에 두었으나 영련이 1738년(건륭 3년)에 죽은 이후로는 건저(建儲)를 오랫동안 보류하였다. 그 후 건륭제는 한족 출신 후궁인 영의황귀비를 사랑하여 그 아들인 15남 영염(永琰)을 1773년(건륭 38년) 은밀히 후계자로 세우고 영염의 이름이 담긴 함을 건청궁 정대광명 편액 뒤에 넣어놓았다. 1789년(건륭 54년) 건륭제는 영염을 가친왕(嘉親王)에 봉한 뒤 정무와 군무를 처리하도록 하였고, 1795년(건륭 60년) 9월 4일 편액에 넣어놓은 유조를 꺼내어 영염을 황태자로 봉하였다. 그리고 1795년(건륭 60년) 음력 12월 30일, 즉 양력으로는 1796년 2월 9일 건륭제는 황위에서 내려왔고 그 다음 날인 1796년 음력 1월 1일(양력 1796년 2월 10일)에 자금성 태화전에서 열린 양위식에서 전위조서를 내리고 황위를 황태자 영염에게 넘겨주니, 이가 가경제이다. 조서에서도 언급했듯 건륭제는 태상황제로 물러남에도 여전히 군국대사를 처리하는 등 막강한 위세를 자랑하였다. 비록 가경제 역시 친정을 할 수 있었으나 중요한 일은 반드시 태상황제에게 물어보고 실행하였다. 이렇게 건륭제는 중국 역사상 태상황제 중 유일하게 금상(今上) 황제보다 더 많은 실권과 책임을 가졌다. 덕분에 가경제가 증오하던 탐관 화신은 건륭제의 비호로 조정에서도 아직 쫓겨나지 않고 자리를 지켰다. 5일 뒤인 1796년(가경 원년) 정월 6일, 건륭제는 가경제, 친왕·군왕, 그리고 조정의 전·현직 원로대신들을 모두 불러 조부 강희제가 열던 천수연(千叟宴)을 열며 대신들에게 만수무강의 축원을 받았다. 건륭제가 물러나고 가경제가 즉위하자 다시 백련교가 활개를 쳐서 백련교도의 난이 발발하였다. 이미 20년 전 한번 일어났으나 건륭제의 빠른 대처와 내분으로 금방 진압되었기에 교도들은 백련교에 나오는 미륵불이 영생을 허락할 것이다라는 교리와 계속 늘어나는 인구와 반비례되는 경기, 그리고 부정부패의 영향으로 일반 백성들에게는 무거웠던 세금 등을 내세워 교도들간의 유대를 강화하였다. 이때 이들을 이끈 총대장은 제림이었으나 제림은 1796년(가경 원년) 정월 역모 사실이 탄로나 능지처참당하고 그의 아내로 스물의 젊은 여인 왕총아(王聰兒)가 뒤를 이었다. 왕총아의 백련군은 호북성, 사천성 등에서 궐기하여 청군을 상대로 섬서성까지 진군하며 지구전을 펴는 등 오랜 기간 끌었으나 건륭제가 수석군기대신 화신을 호북성 녹영을 이끄는 대장군으로 파견하였고 청나라에 호의적인 호족들을 중심으로 민병대인 향용이 녹영과 협공을 하여 백련군을 대파하였다. 수세에 몰린 왕총아는 1798년(가경 3년) 전투 도중 절벽에서 뛰어내려 자진하였으나 백련교도들은 끊임없이 반란을 일으켰고 6년 뒤인 1804년(가경 9년)에야 전멸하였다. 노황제의 최후 건륭제는 이미 80이 넘은 노구였으나 여전히 정무를 처리하고 조회에도 자주 참가하는 등 왕성히 활동하였다. 그러나 태상황제가 된 후로 점점 기력이 쇠약해져 갔고, 여러 번 피접을 갔으나 큰 차도가 있지는 않았다. 1799년(가경 4년) 2월 7일, 음력으로는 1월 4일에 60년간 재위하고 4년간 태상황제로서 황제보다 더 많은 실권을 장악하였던 건륭제는 노환으로 89세를 일기로 자금성 양심전(養心殿)에서 붕어하였다. 건륭제의 붕어를 가장 슬퍼한 것은 바로 건륭제의 비호로 20년 넘게 조정을 장악하던 화신이었다. 건륭제가 죽고 난 다음 비로소 최고권력자가 된 금상황제 가경제는 화신을 장의도감으로 명하여 국상을 처리하게 하였으나, 파직하고 곧 권력을 농단하고 부정축재하였다는 등의 20개의 죄목을 발표하고 건륭제 붕어 보름 뒤인 2월 22일에 화신에게 자진 명령을 내렸다. 화신은 비단으로 목을 매고 자살하였고 화신이 평생 모아놓은 재산은 모두 내탕금으로 환수되었다. 이때 처분된 화신의 재산은 모두 9억 냥이 넘어서 12년의 국가 총예산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었다. 건륭제의 묘호로는 오랫동안 재위하여 전성기를 지켜 성조와 세종의 뜻을 계승하였다 하여 ‘고종(高宗)’, 시호로는 ‘법천융운지성선각체원입극수문분무흠명효자신성순황제’(法天隆運至誠先覺體元立極敷文奮武欽明孝慈神聖純皇帝)으로 정하였는데 여기서 ‘융운’(隆運)과 ‘입극’(立極)은 국운을 높게 일으켜 세웠다는 뜻이며 나라를 평온히 다스렸다 하여 ‘순’(純) 자의 시호를 붙였다. 가경제는 아버지의 국상을 성대히 치러주고 1799년(가경 4년) 9월에 청동릉 안에 매장하니 능호는 유릉(裕陵)이다. 통치 철학과 사상 건륭제는 생애 전반에 걸쳐서 조부인 강희제를 존경하였다. 강희제의 정책인 자생인정 정책을 확장시키거나 치수에도 노력하는 등 조부의 뜻을 이어받으려 노력하였고 자신의 서재에는 강희제의 어진을 걸어놓고 본보기로 삼았다. 할아버지를 의식하여 재위 60년 만에 내려온 것 역시 건륭제가 강희제를 매우 존경한 대목 중 하나이다. 또한 건륭제는 일생에 걸쳐서 풍류와 독서를 좋아하였다. 그 스스로도 여행을 매우 좋아하여 순행을 자주 다니면서 문인, 예술가들과 담론을 하였다. 건륭제는 문화·예술 분야로는 상당한 지식을 지녔고 서첩, 도자기, 칠기, 그림 등 모든 예술품에 관심을 가지며 예술가들을 크게 독려하였다. 건륭제는 오전에 격무로 쉴틈이 없었으나 오후에는 정무는 일체 보지 않고 독서, 서화 등의 여가 활동에 치중하여 자신의 예술성과 지식을 동시에 늘렸고 정무에 시달리던 머리를 식혀주는 시간이기도 하였다. 건륭제는 음식에도 큰 관심을 가졌는데 중국음식의 집대성이라 불리는 만한전석(滿漢全席)이 완성된 때가 바로 건륭제의 치세 때였으며 차를 애호하여 용정차를 자주 마셨다. 그는 용정의 찻잎을 끓인 약수에 우유를 넣어 마셨으며 자주 대신들을 불러서 차를 대접하기도 하였다. 또 건륭제는 가족을 매우 중히 여겨 자신의 모후인 효성헌황후에게 효도를 다 하였는데, 매일 거르지 않고 3번 어머니가 거처하는 자녕궁에 가서 문후드렸고, 여러 순행에도 효성헌황후를 모시고 가는 등 어머니를 크게 봉양하였다. 효성헌황후는 1777년(건륭 42년) 86세로 사망할 때까지 내명부를 오랫동안 통솔하며 아들과 며느리, 손자들, 대신들에게까지 큰 존중을 받았으나 정치에는 일절 간섭하지 않았다. 또한 건륭제의 황자들은 선대인 강희제의 황자들이나 옹정제의 황자들과는 달리 황위를 놓고 세력다툼을 벌이지 않아, 가경제가 황태자가 되고 황제에 즉위할 때까지 별다른 항의를 하지 않고 가경제의 등극을 받아들였다. 건륭제는 미복을 하고 잠행하는 것을 좋아하였는데 민간의 소문에도 귀를 기울이거나 대신들의 집을 불시에 방문하여 대신들이 눈여겨보는 인재들을 발굴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하여 건륭제는 대신들이 평소 어떻게 지내는지 또 황제가 불시에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관찰하려 하였다. 건륭제는 세 명의 대신을 가까이 두며 자문을 구하였는데 그들이 바로 유용(劉墉), 기윤(紀昀), 그리고 화신이었다. 유용과 기윤은 건륭제 치세 초·중기에 활약을 하며 조정에 검소한 바람을 불어넣어 주었으나, 후기에 화신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유용과 기윤은 모두 자청하여 지방의 한직으로 내려가 화신을 견제할 사람이 없어졌다. 위의 예를 볼 수 있듯 화신은 축재를 많이 하는 탐관이었으나 부정부패를 한다 하여도 국고의 돈을 비우게 하지 않았으며, 그 능력을 높이 사던 건륭제는 화신의 뒤에서 하는 일은 상관없이 조정의 영수로까지 성장하는데 힘이 되어주는 등 사람을 쓸 때 그 이력에 대해서 편견을 가지지 않았다. 평가 사후의 영향과 업적 건륭제가 죽은 후 청나라는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 아들인 가경제는 건륭제와 화신이 죽은 후 부정부패를 일소하려 노력하였으나 여전히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횡행하였고 그에 따라 청나라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빈번히 일어났다. 1804년(가경 9년) 백련교도의 난은 진정되었으나 1813년(가경 18년) 백련교의 일파인 천교(天敎)도들이 난을 일으켰고, 천리교도들이 황궁인 자금성에까지 난입하는 계유지변이 일어나는 등 내란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이러한 내란을 진압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 군비를 2억 냥 이상 지출하는 등 청나라의 재정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었다. 당시 내란, 재정 악화보다도 더 큰 문제는 외란으로 건륭제 때부터 시작된 청나라와 영국의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는 후대에서도 지속되었다. 건륭제의 손자인 도광제 때에 영국 상인들은 건륭제가 정한 상업 정책을 무시하고 아편을 유통시켰으나 청나라 정부가 이를 금하고 아편을 폐기하자 함대를 이끌고 청나라로 쳐들어가 남경 조약을 맺고 향항(홍콩)을 가져가는 등 청나라는 계속 열강의 간섭을 받게 되었다. 외란과 더불어 민란의 불씨는 점점 커져서 1851년(함풍 원년) 청나라를 더욱 쇠약하게 만든 태평천국의 난이 발발하여 13년간이나 청나라 조정을 괴롭혔다. 당시 건륭제가 지나치게 원정을 한 이후로 쇠락해진 팔기군은 태평천국군을 진압하는데 공이 없었고 이러한 군대 세력의 약화는 지방에서 조직된 민병대 향용이 큰 세력을 얻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하여 향용이 결정적으로 태평천국군을 멸망시키고 태조 때부터 혁혁한 공을 세운 팔기군은 신식 무기의 등장과 향용의 대두로 더욱 쇠락해져 갔다. 또한 건륭제는 할아버지 강희제와 같이 한족의 문화를 흡수하는데 적극적이어서 그 문화를 발전시켰으나 만주족은 동화된 탓인지 자신들의 고유 문화를 잃기 시작하였다. 건륭제 이후 만주어를 사용하는 인구 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청나라 멸망 때까지 계속 하락세를 보였다. 한편으로는 건륭제 사후 많은 전설이 생겼는데 그 중 건륭제의 생모에 관한 설과 향비와의 사랑이야기가 많이 회자되는 전설이다. 정사인 《청사고》〈고종순황제실록〉에서 기록된 건륭제의 모친은 옹정제의 후궁 출신인 효성헌황후라고 나와 있다. 그러나 전설에 따르면 건륭제는 옹정제와 효성헌황후의 아들이 아닌 강남 출신 한족 문인의 아들이며 옹정제가 본래 얻은 아이는 아들이 아닌 딸이었는데 마침 같은 날, 같은 시에 한족 문인의 아들이 태어나 서로 자신의 자식을 맞바꾸었고 이때 맞바뀐 옹정제의 아들이 된 남자 아이가 건륭제라는 것이다. 또한 건륭제가 남순을 떠난 목적은 바로 생모를 만나기 위한 목적이라고 하나, 대부분의 남순 때 효성헌황후가 건륭제를 따라 동행하였기 때문에 사실성이 떨어진다. 향비에 대한 전설은 본래 실존하던 위구르족 출신의 건륭제의 비 출신인 용비(容妃)가 모델로 실제로 오랫동안 살다가 자연사한 용비와 달리, 전설 속의 향비는 건륭제의 끊임없는 구애를 받으나 동침을 거부하고 절개를 지켰다. 건륭제가 사냥을 간 사이 황태후인 효성헌황후가 향비를 불러 자진을 권유하자 향비는 이에 자진하고 그녀가 죽은 뒤 그녀의 몸에선 아름다운 향기가 나왔다는 전설이다. 이 두 전설은 건륭제가 강남 순행, 그리고 십전무공 중 하나인 위구르 원정에 끼친 영향에서 비롯된 전설로 당시 민간에서의 건륭제의 인기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비판 건륭제 자신은 초, 중기 40년간 조부 강희제와 부황 옹정제의 정책을 계승하고 개혁을 단행하며 문화를 부흥시켰으나 후기 20년 동안에는 화신을 지나치게 편애하고 자신의 딸을 화신의 아들에게 시집보내면서 화신의 세력을 너무 방관하였다. 또한 건륭제의 비호로 화신은 자신의 집에 엄청난 양의 돈을 저장하는 등 화신의 전횡을 방치하여 화신을 비롯한 여러 관리들의 부정부패를 내버려두는 실책을 범하였다. 즉위 당시 나쁜 정치 상황과 국고의 돈마저도 넉넉지 않던 강희제, 옹정제와는 달리 건륭제 때에는 국고의 돈이 풍족하였기에 불필요한 사치가 잦았다. 건륭제 역시 연회, 후원 건설 등에 막대한 비용을 쓰고 재위 기간 내내 원정을 단행하는 등 국고의 돈을 크게 낭비하여 청나라의 재정 상황은 악화되어갔다. 특히 자신의 정통성과 세를 과시하기 위해 여러 번의 전국 순행으로 다시 많은 돈을 낭비하기도 하였다. 또한 부황 옹정제가 전국의 관리들에게 잡은 엄격한 기풍을 이어가지 않고 그들에게 유화책을 씀으로서 관리들의 일체 행동에 대한 감시가 소홀해졌는데 이로 인해 부정부패가 만연해지고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기강이 크게 훼손되었다. 그리고 건륭제는 베트남, 네팔 등 정복한 영토에는 무단 통치를 단행하여 현지인들에게 분란의 싹을 틔웠으며 실제로 건륭제가 죽은 뒤, 베트남과 버마는 독립하였다. 건륭제의 또다른 실책으로는 외국에 대한 시각이었는데 영국의 특사 조지 매카트니는 동등한 입장에서 통상을 요구하였으나 건륭제는 영국이 먼 나라에서 조공을 하러 온 것이다 생각하며 영국 사절단이 올 때 전국에 “영국 오랑캐들이 항복하였다”라는 방문을 보냈다. 건륭제는 영국 사절들에게 시종일관 거만한 태도를 보이며 “천자의 나라에는 부족한 것이 없다”라는 말을 하여 영국 사절단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현대의 영향과 평가 현대 이전만 해도 건륭제는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던 풍류군주라고 평가했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건륭제를 기점으로 청나라가 쇠퇴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주로 들며 건륭제에 대해 호의적인 평가를 잘 내리지 않는 편이다. 특히 그의 오만함과 과도한 사치, 낭비를 비판하였고 이러한 재화 유출은 훗날 청나라가 열강을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여서 멸망 때까지 강건성세의 번영은 다시 오지 않았다. 건륭제를 유명하게 만든 민간의 설화는 후대에 들어서도 드라마·영화화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 만든 드라마 시리즈 《황제의 딸》은 건륭 시대를 다룬 작품으로 건륭제가 황자 시절 강남에서 만난 여인과 하룻밤을 지낸 후 떠나자, 수십 년 뒤 그 딸이 나타나 아버지를 찾으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그 밖에도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에선 이러한 야사 외에도 건륭제 후반의 이야기, 즉 건륭제와 화신을 다루는 내용의 드라마도 많이 나오는 등 건륭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바라본 작품이 많이 나오게 되었다. 책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 있는데 《강희대제》, 《옹정황제》를 쓴 작가 얼웨허(二月河)는 그 완결판인 《건륭황제》를 써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다시 한번 큰 히트를 쳤다. 이 소설을 토대로 2002년 중국중앙방송이 다시 《건륭왕조》(乾隆王朝)라는 드라마를 만들어 건륭제와 화신의 관계를 다루었으나 전작인 《강희왕조》, 《옹정왕조》보다 다소 부진하였다. 한편 야사를 토대로 쓴 책으로는 중국의 무협 작가 김용이 쓴 《서검은구록》(書劍恩仇錄)이 있다. 여기서 건륭제는 강남에서 태어난 한족 출신으로 풍류를 좋아하는 황제로 나왔으며 여러 번 드라마로도 제작되어서 인기를 누렸다. 가족 건륭제는 3명의 황후와 5명의 황귀비, 5명의 귀비 등을 두었고 슬하에 17남 10녀를 두었다. 조부모와 부모 조부: 성조 강희인황제(聖祖 康熙仁皇帝) 현엽(玄燁) 조모: 효공인황후 오아씨(孝恭仁皇后 烏雅氏) 부친: 세종 옹정헌황제(世宗 雍正憲皇帝) 윤진(胤禛) 모친''': 효성헌황후 뉴호록씨(孝聖憲皇后 鈕祜祿氏) 황후 후궁 황귀비 귀비 측비 서비 황자 황녀 기년과 연호 같이 보기 건륭(乾隆, 1736년 ~ 1795년) - 건륭제의 연호. 강희제 옹정제 가경제 청나라 화신 중국 의례 논쟁 중국의 기독교 강건성세 주세페 카스틸리오네 외팔묘 《사고전서》 《황제의 딸》 《흠정만주원류고(欽定滿洲源流考)》 각주 참고 자료 《청사고》(淸史稿) - 〈고종순황제실록〉(高宗純皇帝實錄) 《청사고》(淸史稿) - 〈인종예황제실록〉(仁宗睿皇帝實錄) 周遠廉, 《乾隆皇帝大傳》 조나선 D. 스펜스, 《현대 중국을 찾아서 1》, 이산출판사, 김희교 옮김, 1999년 . 미야지마 히로시,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 (일국사를 넘어선 동아시아 읽기)》, 역사비평사, 김현영 옮김, 2003년, . 둥예쥔, 《평천하 (건륭 원전)》, 시아출판사, 송하진 옮김, 2004년, . 김희영, 《이야기 중국사 3》, 청아출판사, 2006년, . 정진홍, 《인문의 숲에서 경영을 만나다》, 21세기북스, 2007년 . 시앙쓰, 남경사범대학 중한문화연구센터, 《건륭황제의 인생 경영》, 세종서적, 2007년, . 외부 링크 1711년 출생 1799년 사망 청나라의 황제 청나라의 유학자 홍력 옹정제의 황자 청나라의 시인 중국의 태상황제 집단학살 가해자 김용의 소설 등장인물 18세기 중국 사람 강희제 18세기 중국의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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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C%A0%ED%86%A0%ED%94%BC%EC%9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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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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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utopia)는 영국의 사상가 토머스 모어가 1516년에 만들어낸 말로, 처음에 라틴어로 쓰인 그의 저작 《유토피아》에서 유래되었다. 그리스어의 ou(없다), topos(장소)를 조합한 말로서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으로 의도적으로 지명으로 쓰고 있다. 즉, 유토피아는 '현실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사회'를 일컫는 말이다. 이상향(理想鄕,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반댓말로는 디스토피아가 있다 작품 속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의 저서 《유토피아》에서 묘사되는 상상의 섬의 이름이 바로 '유토피아'이다. 이 섬에는 10만 명의 사람들이 살고 있다. 주민들은 가족 단위로 편성되는데, 50가구가 모여서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시포그란트'를 선출한다. 이 시포그란트들이 모여 '평의회'를 이루고 네 후보 가운데 하나를 '왕'으로 선출한다. 일단 임금으로 선출되면 평생 자리를 지킬 수 있지만, 만일 전제 군주가 되면 퇴위를 당할 수도 있다. 전쟁에 대비하여 이 섬나라는 '자폴렛'이라는 용병을 두고 있다. 그 병사들은 전투 중에 적들과 함께 죽게 되어있기 때문에 군사 독재는 생겨나지 않는다. 유토피아 섬에는 화폐가 없다. 주민들은 각자 시장에 가서 자기가 필요로 하는 만큼 물건을 가져다 쓰면 된다. 집들은 모두 똑같고 문에는 자물쇠가 없다. 주민들은 누구나 타성에 젖지 않도록 10년마다 이사를 하도록 되어 있다. 누구나 일을 하기 때문에 하루 노동 시간을 여섯 시간으로 줄일 수 있다. 무료 시장에 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누구에게나 2년 농사를 지을 의무가 있다. 간통을 하거나 섬에서 탈출하려고 기도한 자는 자유인의 권리를 잃고 '노예'가 된다. 그렇게 되면 그는 일을 훨씬 더 많이 해야 하고 같은 시민이었던 옛 동료들에게 복종하여야 한다. 유토피아에서는 하루에 총 6시간 일을 한다. 먼저 3시간 일을 하고 식당에서 점심밥을 먹은 다음, 다시 3시간 일을 한다. 일을 한 다음에는 문화센터에 가서 자신에게 맞는 맞춤 강좌를 듣는다. 유토피아 문학 목록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 1516년) 태양의 나라 (톰마소 캄파넬라, 1602년) 새로운 아틀란티스 (프랜시스 베이컨, 1627년) 같이 보기 이상향 별천지 무릉도원 낙원 요순시대 사회 문학 1516년 책 가공의 나라 작품에서 유래한 단어 16세기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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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NSV%20%EC%A4%91%EA%B8%B0%EA%B4%80%EC%B4%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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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SV 중기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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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틴-소콜로프-볼코프 중기관총(, )은 12.7mm 탄약을 사용하는 소련제 중기관총으로 설계자인 G.I. 니키틴(G.I. Nikitin), J.S. 소콜로프(J.S. Sokolov)와 V.I. 볼코프(V.I. Volkov)에서 이름을 따왔다. 이 기관총은 DShK 중기관총을 대체할 목적으로 개발되었다. 러시아군은 코르트 중기관총으로 바꾸는 중이며, NSV 중기관총은 더 이상 러시아에서 생산되고 있지 않고 불가리아, 인도,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등에서 생산되었다. 코르트 중기관총은 NSV 중기관총을 경량화하고, 작동방식을 노리쇠를 수평으로 움직이는 틸팅브리치 방식에서 회전노리쇠로 바꾸고, 소염기와 개머리판을 개량한 모델이며, NSV의 좌측에 있는 링크 트레이를 제거했다. NSVT(tank)는 주로 주력 전차(Main Battle Tank)같은 차량 탑재용으로 사용된 버전이다. 유고슬라비아에서 M87이란 이름으로 면허 생산된 NSVT는 유고슬라비아군 뿐만 아니라 지역 내 다른 무장 세력도 사용했다. 외부 링크 NSV 12.7 at guns.ru 12.7 mm 기관총 중기관총 소련의 기관총 러시아의 기관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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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D%B8%EB%94%94%EC%B9%B4%20%EC%8B%9C%EB%A6%AC%EC%A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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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카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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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카 시리즈()는 IndyCar가 주최하는 모터스포츠 시리즈이다. 역대 우승자 1996년 - 버즈 컬킨스 / 스콧 샤프 (무승부) 1997년 - 토니 스튜어트 1998년 - 케니 브래크 1999년 - 그렉 레이 2000년 - 버디 레이지어 2001년 - 샘 호니시 주니어 2002년 - 샘 호니시 주니어 2003년 - 스콧 딕슨 2004년 - 토니 카난 2005년 - 댄 웰던 2006년 - 샘 호니시 주니어 2007년 - 다리오 프랜치티 2008년 - 스콧 딕슨 2009년 - 다리오 프랜치티 2010년 - 다리오 프랜치티 2011년 - 다리오 프랜치티 2012년 - 라이언 헌터레이 2013년 - 스콧 딕슨 2021년 - 알렉스 팔로우 포뮬러 자동차 경주 시리즈 원메이커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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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B0%95%EA%B8%B0%EC%84%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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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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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석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 박기석(朴箕錫, 1869 ~ ?)은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며 중추원 참의도 지냈다. 박기석(朴基錫, 1928 ~ )은 육군 소장 출신으로 육군 공병학교장, 건설부 장관, 대한주택공사 사장, 국가보훈처장, 한국도로공사 사장, 삼성건설 사장, 삼성물산 건설부문 회장 등을 역임했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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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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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1010%EB%8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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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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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 북송(北宋) 대중상부(大中祥符) 3년 요(遼) 통화(統和) 28년 일본(日本) 간코() 7년 리 왕조(李朝) 투언티엔(順天) 원년 기년 북송(北宋) 진종(眞宗) 13년 요(遼) 성종(聖宗) 29년 고려(高麗) 현종(顯宗) 원년 리 왕조(李朝) 태조(太祖) 원년 사건 거란 2차 침입 베트남에 리 왕조가 설립됨. (혹자는 1009년이라고도 함) 바이킹 탐험가 소르핀 카를세프니가 북아메리카에 개척지를 건설하려고 함. (샤나메 - 왕의 책) 맘스부리가의 아일머, 자신이 개발한 글라이더를 이용, 비행하려고 함. 페르시아인 시인인 피르다우시가 샤나메 (왕의 책)을 집필함. 코르도바의 우마아드조 칼리프 히샴 2세가 슐레이만의 대를 잇다. 탄생 비잔티움 제국 황제 미하일 4세(1041년 사망) 사보이아 백작 오도네(1060년 사망) 사망 고려 무신 강조(康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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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B3%80%ED%98%B8%EC%82%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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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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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辯護士, )의 사전적인 의미로는 국가로부터 독점적 지위를 가지는 법률에 규정된 자격을 가지고 소송 당사자나 관계인의 의뢰 또는 법원의 결정에 따라 피고나 원고를 변론하며 그 밖의 법률에 관한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한다. 넓은 의미로는 자격 여부가 없어도 변호인이라고도 한다. 업무로 살펴보면 당사자의 선임 또는 관청의 지정에 의하여 소송에서 소송행위뿐만이 아니라 기타 일반 법률 사무를 행한다. 보통 Jurist는 자격증 유무와 상관 없이 법학자, 법률가 등으로 번역되지만 법학교수 또는 법학박사 등의 법학연구자를 주로 가리키고, attorney at law, attorney는 변호사 자격증 소지자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lawyer라고 하면 법과대학을 졸업하거나 로스쿨을 졸업한 법률가를 일컫는다. 변호사자격증 유무와는 무관하다. 즉, lawyer이지만 attorney가 아닐 수 있으며, attorney이지만 법학자가 아닐 경우에는 jurist가 아닐 수 있다. 민사소송이나 행정소송의 경우에는 사건 의뢰자의 소송대리인이 되고, 형사소송에서는 피의자 및 피고인의 변호인이 될 수 있다. 헌법소원 사건은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지 않으면 부적법하다고 하여 헌법재판소가 직권으로 국선대리인을 선임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각하한다. 각국별 변호사 제도 대한민국 현재는 대한민국에서 변호사가 되려면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한 뒤 변호사시험에 합격하여야 한다. 2009년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출범 이후 연간 1500명 이상의 변호사가 배출됨에 따라, 그동안 부족한 변호사 수를 보완하기 위하여 세분화된 법률 관련 사무를 담당하던 세무사, 법무사, 노무사, 변리사 등 법조유사직역과의 통합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법학교수에게 변호사자격을 부여하는 것에 대한 논의도 있다. 변호사법에 의해 대한민국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변호사만이 소송 대리를 할 수 있다. 일부에서 로스쿨 제도를 '사다리 걷어 차기'라고 하면서 과거 시험과 같은 사법시험 부활을 주장하기도 한다. 조선, 개화기 조선시대에는 변호사에 해당하는 외지부가 존재하였다. 외지부라 불리는 자들은 항상 관아 근처에 있다가 원고나 피고를 몰래 사주합니다. 또 이들은 스스로 송사를 대신하며 시시비비를 어지럽게 만들어 관리를 현혹하고 판결을 어렵게 합니다. 해당 관부에 명하시어 조사해 처벌하소서!” ―성종 3년 12월 1일, 성종실록 무뢰배가 송정(訟庭)에 와 오래 버티고 있으면서 혹은 품을 받고 대신 송사(訟事)를 하기도 하고 혹은 사람을 부추겨 송사를 일으키게 하여 글재주를 부려 법을 우롱하며 옳고 그름을 뒤바꾸고 어지럽게 하니, 시속(時俗)에서 이들을 외지부(外知部)라 한다. 쟁송(爭訟)이 빈번해지는 것이 실로 이 무리 때문이니 마땅히 엄하게 징계하여 간교하고 거짓된 짓을 못하게 하라. 無賴之徒長立訟庭, 或取雇代訟, 或導人起訟, 舞文弄法, 變亂是非, 俗號外知部。 爭訟之煩, 實由此輩, 所宜痛懲, 以絶奸僞。- 성종실록 9년 8월 15일(갑진) 조선시대에 거래·소송을 문서를 작성하여 행하였는데 그 문서의 형식이 상당히 복잡하여 나라에서는 소송당사자가 관사(官司) 주변에서 타인의 소송을 교사(巧詐) 또는 유도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자를 고용하여 대리소송하는 일을 허용하였다. 이것을 대송(代訟)이라 부르는 고용대송(雇傭代訟)이라 하였는데 1478년(조선 성종 9) 8월부터 이 제도를 금지하였다가 1903년 5월에 편찬, 공포된 ≪형법대전 刑法大全≫에 의해 그 금지가 완화되어 사실대로 소송을 교도하거나 소장(訴狀)을 작성하는 것을 직업으로 하는 자가 생기게 되었다. 이것이 변호사제도 형성의 계기가 되었다. 1905년 11월 8일에 법률 제5호로 <변호사법>이, 같은 달 17일에 법부령 제3호로 <변호사시험규칙>을 공포하게 되어 비로소 우리 나라에 ‘변호사’라는 명칭이 소개되고, 민사당사자나 형사피고인의 위임에 의하여 통상재판소에서 대인(代人)의 행위와 변호권을 가지고 변호사제도가 확립되었다. 이때 법무령 제4호 <변호사등록규칙>에 의하여 1906년 홍재기(洪在祺)·이면우(李冕宇)·정명섭(鄭明燮) 3인이 각각 1·2·3호의 인가증을 수여받아 등록함으로써 최초의 변호사가 되었다.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발행하는 변호사 추이나 자격시험 연혁, 제도 현황, 소득 실태 등을 담은 ‘한국 변호사백서’에 따르면 1906년 6월 30일 홍재기(1873~1950)씨가 처음으로 변호사가 되는 등 조선인 변호사 3명이 개업한 이래 1912년 처음으로 100명을 돌파했다는 기록이 있다. 기존 대한민국의 법조양성제도는 학부차원에서의 법과대학(4년), 사법시험, 사법연수원(2년), 판. 검사 또는 변호사 진출의 체제로 되어 있었는데, 미국식 법학전문대학원체제의 도입의 일환으로 대한민국에서도 로스쿨 제도 도입을 추진하여 2009년 25개 로스쿨을 개원하였다. 법과대학이 존치된 대학과 로스쿨이 도입된 대학이 혼재해 있다. 변호사의 결격사유 변호사법 제5조에 따르면 다음의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 변호사가 될 수 없다.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그 집행이 끝나거나 그 집행을 받지 아니하기로 확정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금고 이상의 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그 유예기간이 지난 후 2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유예를 받고 그 유예기간 중에 있는 자 탄핵이나 징계처분에 의하여 파면되거나 이 법에 따라 재명된 후 5년이 지나지 아니하거나 징계처분에 의하여 해임된 후 3년이 지나지 아니한 자 금치산자 또는 한정치산자 파산선고를 받고 복권되지 아니한 자 이 법에 따라 영구제명된 자 변호사의 직무 변호사는 소송에 관한 행위 및 행정처분의 청구에 관한 대리행위와 일반 법률 사무를 한다. 법학전문대학원을 졸업하고 변호사시험에 합격하거나, 사법시험에 합격하여 사법연수원을 수료하면(2017년까지만 실시) 변호사 자격이 부여됨과 동시에 법률에 따라 변리사 자격을 자동적으로 취득하게 된다. 다만, 변리사로서의 업무를 하기 위해서는 변리사회에 등록을 하여야 한다. 공인노무사나 법무사의 경우 이러한 자격을 자동으로 부여하지는 않으나, 변호사의 직무 범위에는 노무사나 법무사가 하는 일이 당연히 포함되기 때문에, 노무사나 법무사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변호사가 따로이 그 자격을 취득할 필요가 없다. 한편, 2017년 12월 8일 세무사법 개정으로 '변호사의 세무사자격 자동취득' 규정이 폐지됨에 따라 변호사는 더이상 세무사의 자격이 없다. 소송에 관한 행위 민사 형사재판, 행정소송 등 각종 재판에서 대리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직무 행정처분의 청구에 관한 대리행위: 행정관청에 각종 인가 허가 등의 신청행위를 하거나 그 처분에 불복하여 행정심판을 청구할 수 있는 직무 일반 법률 사무 법률상의 권리, 의무에 관하여 다툼 또는 의문이 있거나 새로운 권리의무관계의 발생에 관한 사건 일반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 법률자문행위, 채무변제독촉행위, 채무취심업무, 서류의 작성 및 제출대행업무, 상가의 분양 및 임대에 관하여 분쟁이 발생한 이해관계인들 사이에 화해, 합의서, 분양계약서의 작성 및 등기사무 등을 처리한 것이 있다. 중재인으로서 직무를 행하는 것, 온라인 법률사무 등이 여기에 해당하며 다만 사실행위인 부동산 중개행위는 위법률사무에 해당하지 않는다. 영국 고등학교 졸업 후 3년 과정의 법과대학에 입학하여 공부하게 되며, 졸업 후에는 법정변호사(Barrister)와 사무변호사(Solicitor)를 선택할 수 있다. 법정변호사는 사건의뢰인과 직접 교섭할 수 없고 보수청구권이 없는 대신 주요 법원에서의 변론권을 독점하고 있다. 사무변호사는 업무영역에 제한이 없고 세금·행정, 특허, 재산의 관리, 부동산이전업무 등의 모든 법률사무를 담당한다. 영국의 사무변호사(Solicitor)는 1심 지방법원의 소송대리권(법정 변론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연수등 자격요건을 갖추었을시 법정변호사(Barrister)로 등록및 활동할 수 있게됨에 따라, 사실상 영국의 법조직역은 통합화가 되었다. 120px 프랑스 프랑스도 법정변호사와 사무변호사로 법조직역이 이원화되어 있었으나, 법조일원화 정책에 의해 법조직역이 일원화로 통합되었다. 프랑스의 법조인 양성루트는 다양하다. 1.국립사법관학교 졸업을 통한 사법관 임용 2.변호사연수원 수료 및 변호사시험 합격을 통한 변호사자격 취득 3.법학교수와 같은 법학전문직 경력자에 한하여 이루어지는 신청에 의한 변호사 자동자격부여제도 및 사법관 파견제도에 의한 사법관 임용 독일 고등학교 졸업 후 학부체제인 법과대학에서 7학기 이상 수학하면 국가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생기며, 1차시험에 합격하면 Referendar로서 2년여의 실무수습을 받고 이후 2차시험에 응시하고 합격하면 변호사가 된다(Volljurist). 독일의 변호사는 자격인가 및 소속인가를 얻어야 비로소 개업할 수 있는데, 자격인가는 개업을 희망하는 주의 법무부에서 행하고, 이후 특정법원에 의한 소속인가를 받으면 인가받은 고등법원관내에서 활동할 수 있게 된다. 캐나다 캐나다도 법정변호사와 사무변호사인 독립 법무사가 존재한다. 일본 일본에는 법과대학이 존재한다. 또한 로스쿨제도가 2004년 도입되었지만, 여전히 로스쿨에 진학하지 않고도 예비시험을 치러 법조인이 될 수 있다. 예비시험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로스쿨 또한 2년제 법학기수자 코스와 3년제 법학미수자 코스가 있으며, 법과대학을 졸업하였으나 예비시험에 통과하지 못한 경우 2녀제 법학기수자 코스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다. 비법학사 출신이거나 법학사 출신이라도 법학기수자 코스 시험에 불합격할 경우 법학미수가 코스를 통해 3년제 로스쿨에 진학한다. 법정변호사(Barrister)와 사무변호사(Solicitor)가 있다. 사무변호사는 다룰 수 있는 법률 업무에 제한이 있다. 일본에서는 법정변호사만 변호사로 부르며, 사무변호사는 사법서사라 한다. 일본의 사무변호사인 사법서사는 민사소송에 있어 법정 구두변론을 위한 소송대리권이 있다. 미국 미국에는 로스쿨을 나와서 변호사 자격시험(Bar exam)을 쳐서 합격하면 법정변호사(Barrister)가 되어 변호사 협회(Bar Association)의 회원이 된다. Solicitor 제도는 없다. 변호사 업무의 다양화에 따라 사실상 법정 출석없이 법률사무 중심의 사무변호사 업무가 미국 변호사의 주 업무이고 대다수를 차지한다. 법학사 학위를 가진 경우 1년짜리 LLM 과정을 통해 미국 변호사시험 응시기회를 얻을 수 있다. 영국, 캐나다, 호주 등 영미법계 법학부를 졸업한 사람들에게는 1년짜리 LLM 과정 없이도 미국 변호사시험 응시 기회를 준다.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대한민국, 스페인, 러시아, 중국, 대만, 일본 등 대륙법계 법학사 학위를 가진 경우 1년짜리 LLM 과정 후 미국 변호사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기타 국가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에는 법과대학과 로스쿨이 공존한다.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lawyer라고 말하면, barrister와 solicitor를 모두 포함하는 뜻이다. 즉, 법정변호사와 사무변호사가 나뉘어 있다. 홍콩에서는 배리스터를 大律師, 솔리시터를 律師라고 부른다. 법과대학과 로스쿨은 같은 수업을 듣고 졸업한다. 따로 변호사시험은 없다. 직무영역 소송대리 변호사의 다른 업무는 사무변호사도 모두 처리할 수 있지만, 소송대리만큼은 반드시 법정변호사여야만 한다. 소송대리는 법정의 판사 앞에 나아가 구두로 의뢰인을 변호하는 행위를 말한다. 서류로 된 소명, 진술 등은 사무변호사도 처리할 수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사무변호사가 처리할 수 있는 직무영역을 더욱 좁게 설정해서, 소송대리 이외에도 반드시 법정변호사만이 처리할 수 있는 업무영역이 있다. 행정청문회대리 각종 행정위원회, 행정청문회 등에 본인 대신 변호사가 대리하여 변호나 기타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법률자문 변호사의 2대 직무는 소송대리와 법률자문(legal advice)이다. 그러나 소송대리는 국내법원이 변호사 자격증을 요구하기 때문에, 시장봉쇄가 완벽하게 가능하지만, 법률자문은 시장봉쇄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구조이다. 즉, 미국 로펌이 한국 기업에 대해 한국의 법률에 대해 법률자문을 하고 돈을 받을 수 있고, 법무부는 변호사법 위반으로 처벌한 적이 없다. 물론 다른 나라 정부들도 마찬가지다. 변호사법에 의하면 한국 변호사가 아니면 한국법에 대한 유료 법률자문을 일체 할 수 없고, 하면 형사처벌이 되지만, 실무는 그렇지 않다. 한국은행 2009년 법률서비스 무역수지 통계에 따르면, 한국 로펌이 외국 기업에게서 벌어들인 법률서비스 수입은 5억 4000만 달러(5천 억 원), 외국 로펌이 한국 기업에게서 벌어들인 법률서비스 수입은 10억 1,180만 달러(1조원)이다. 여기서 법률서비스라는 것은 법률자문인 것이, 소송대리는 해당국 법원이 차단하기 때문에, 현지로펌과 파트너십 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한,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외국 로펌이 한국 기업에 한국법의 법률자문을 하면, 변호사법 위반으로 형사처벌된다. 그러나, 그런 사례는 전혀 없으며, 또한, 국내 로펌이 외국 기업에 외국법의 법률자문을 해서 해당국 정부로부터 변호사법 위반으로 형사처벌된 사례도 없다. 즉, 법률자문 시장은, 전세계적으로, 사실상 완전히 시장이 개방되어 있다. 한국 기업들이 중동에 진출할 때, 법률자문을 위해 찾는 곳은 영미로펌이다. 물론, 중동국가와 영국, 미국이 법률 서비스 분야에 대한 FTA를 체결한 적도 없다. 그러나, 영미로펌은 모두 중동국가에 지사를 세우고, "모든 법률"에 대한 총체적인 법률자문을 기업에 해주고 있다. 위법하지 않다. 지적재산권 보호 많은 국가에서, 특허권, 상표권, 실용신안권과 기타 형태의 지적재산권은, 관련법의 최대한의 보호를 받기 위해 반드시 정부에 공식적으로 등록해야만 한다. 이러한 업무는, 변호사, 라이센스가 발급된 비변호사(변리사), 법률서기 등이 담당한다. 협상 몇몇 국가에서는 계약 협상과 계약서 작성은 법률자문(legal advice)과 비슷하게 간주되어, 변호사 자격증이 필요하다. 다른 국가들에서는 법학도(jurist) 또는 공증인(notary)도 계약 협상이나 계약서 작성을 할 수 있다. 이러한 계약 협상과 계약서 작성은, 동산, 부동산의 임대, 매매 계약을 모두 포함하며, 기타 서비스 계약이나 사업상 거래, 정부간 거래 등도 모두 포괄한다. 부동산 양도 부동산 양도(Conveyancing)는 부동산의 소유권, 임차권, 저당권 등을 이전하기 위해 필요한 서류를 작성하는 것을 말한다. 일부 국가에서는 모든 부동산 거래는 반드시 변호사에 의해서만 수행되어야 한다. 역사적으로, 영국 사무변호사(solicitor)의 수입은 대부분 부동산 양도 수수료였다. 지금은 아니다. 1978년 연구에서는, 호주 뉴사우스웨일스주 사무변호사와 고객간의 계약의 80%가 부동산 양도건이었다. 다른 나라들에서는, 변호사가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고, 은행, 부동산회사, 부동산중개인이 변호사를 대신해 부동산 양도와 관련된 서류업무들을 처리할 수 있다. 일부 국가에선 부동산 거래는 민사공증인(civil law notary)에 의해서 처리된다. 영국 잉글랜드 웨일스에서는 부동산중개사 라이센스라는 특별한 법률 직업 클래스가 있어서, 이들도 변호사와 마찬가지로 부동산 양도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인구비례 변호사가 많다는 이스라엘은 부동산 거래를 할 때 반드시 변호사가 작성한 계약서를 통하는 것이 보통이다. 유언장 작성 형사기소와 피고인변호 관련 판례 형사소송법상 지위 피고인의 보호자의 지위와 공익적 지위가 충돌하는 경우에는 변호인은 피고인의 보호자라는 지위를 기본으로 하고 공익적 지위는 그 한계로서 소극적 의미를 갖는다. 헌법상 권리인 진술거부권이 있음을 알려 주고 그 행사를 권고하는 것을 가리켜 변호사로서의 진실의무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변호사시험합격자의 6개월간 사건수임제한 사건 "로스쿨 별로 실무수습기관의 확보 상황에 관한 편차가 크므로 적절한 실무수습의 기회가 부여되지 못할 수 있는 것이 현실이고, 변호사들의 취업구조와 교육과 수급 구조 등이 함께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로스쿨의 내실화라는 원칙적인 방향의 설정만으로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에 대한 실무수습의 필요성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헌재는 "변호사 의무연수기간을 정한 것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실력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사회적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장치라고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헌재는 "변호사법 규정이 추구하는 공익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의 실무능력 향상을 통한 법조인 양성, 국민의 편익 증진 도모인 반면, 제한되는 사적인 이익은 로스쿨 출신 변호사들이 6개월간 사건을 수임하지 못하거나 법무법인에서 담당변호사로 지정되지 못해 소득이나 실무경력의 기회가 제한될 수 있다는 점에 불과해 이 규정에 의해 추구하는 공익이 제한되는 사적인 이익에 비해 중대하다고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변호사의 수임사건 건수 및 수임액 보고 사건 변호사가 전년도에 처리한 수임사건 건수 및 수임액을 소속 지방변호사회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변호사법 관련규정은 합헌이라는 헌재결정이 나왔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권모씨 등 변호사 3명이 “수임사건수 및 수임액을 소속 변회에 의무보고하도록 한 변호사법 제28조는 영업의 자유 및 사생활의 자유 등을 침해해 위헌”이라며 낸 헌법소원(2007헌마667)에서 최근 재판관 5대 4의 의견으로 합헌결정했다. = 재판부는 “지방변호사회가 소속 변호사들의 사건수임 등에 대해 감독하도록 함으로써 변호사에 의한 탈세우려를 줄이고, 조세행정 전반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공고히 하는 데 주요한 입법취지가 있다”며 “이는 헌법 제37조2항이 정하는 공공복리를 위한 것으로서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우리사회는 변호사들에게 법률가로서의 능력뿐만 아니라 공공성을 지닌 법률전문가로서 가져야 할 사회적 책임성과 직업적 윤리성 또한 강하게 요청하고 있다”며 “따라서 변호사들에게 보고의무가 부과되고 불이행시 다른 유사 전문직보다 다소 무거운 벌칙이 부과되더라도 이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고 이를 자의적인 차별로서 평등권을 침해하였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는 “변호사법 제5조2호 규정은 변호사업무의 높은 공공성 및 윤리성과 국민의 신뢰의 중요성에 비춰 집행유예기간보다 더 강화된 결격기간을 정한 것”이라며 “또 형사적 제재의 원인이 된 범죄의 가벌성 등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대응해 변호사의 공공성 및 신뢰성 회복에 필요한 기간 역시 차등적으로 정한 것으로 선고유예의 경우와 달리 집행유예기간이 경과한 경우에 추가로 2년을 더 결격기간으로 정했더라도 입법재량의 범위를 넘어섰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로펌 및 적정 변호사 숫자에 대한 이슈 국내에서는 매년 1800명에 달하는 변호사가 양성되지만 이 중 대형로펌으로 취직해 활발히 활동하는 인원은 극히 일부에 달한다. 중견 변호사 밑에서 일하거나 작은 사무실에 취직해 일하다 해고당한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로스쿨을 졸업한 후 취직하는 인원도 전체의 40%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밑의 자료를 참고하길 바람) 변호사와 전문자격사간의 경쟁 변호사 업계에서는 향후 5년 이내에 3만명에 도달하는 변호사들이 배출될 것을 예상하는데, 일감은 한달에 두건이상을 수임하기도 어려운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변호사단체인 대한변호사협회의 회장 선거에서 이것에 대한 해결책에 대한 유사한 직무 영역과의 전쟁이 공약으로 제시 되었다. 같이 보기 마피아 변호사 법무사 세무사 대한변호사협회 법조윤리 변호사들 : 문화방송의 변호사 관련 드라마 파트너 : 한국방송공사의 변호사 관련 드라마 각주 참고 문헌 헌법재판소 판례 2013.10.24. 2012헌마480 헌법재판소 판례 2009.10.29. 2007헌마667 변호사의 사회적 책임 강조… 평등권 침해 안된다 2009-11-11 법률신문 [변호사시험 합격후 6개월간 사건수임금지 '합헌' 법률신문 2013-11-03] 외부 링크 대한변호사협회 홈페이지 형사전문변호사 홈페이지 이혼전문변호사 홈페이지 법조윤리 형사소송법 법률가 법 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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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C%9A%B8%EC%98%88%EC%88%A0%EB%8C%80%ED%95%99%EA%B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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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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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예술대학교(서울藝術大學校, )는 대한민국 경기도 안산시와 서울특별시 중구에 위치한 사립 전문대학이다. 연혁 1962년 9월, 연극인 유치진에 의하여 설립된 재단법인 한국연극연구소(현 학교법인 동랑예술원) 산하에 부설 한국연극아카데미가 서울예술대학교의 모태이다. 서울특별시 중구, 현 남산캠퍼스 일대에서 개교하였다. 1964년 4월 4일, 법인 조직을 학교법인으로 전환하고, 서울연극학교로 개편되었다. 1973년 12월, 서울예술전문학교로 개편하였다. 1978년 12월, 전문대학으로 개편되어 서울예술전문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다. 1989년 9월, 남산캠퍼스 확충을 위해 일대 부지를 일부 매입했다. 1998년 6월, 서울예술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한다. 이어 2001년 3월, 현 안산캠퍼스를 개교하고, 대학본부를 이동한다. 2012년 5월 1일, 서울예술대학교로 교명을 변경한다. 2022년에 창학 60주년을 맞았으며, 유태균 총장이 취임해 있다. 한편, 2018년 대한민국 교육부로부터 대학기본역량진단 결과 재정지원제한대학에 선정된 바 있다. 그러나 2020년 실시된 2차 평가에서 조치가 해제된 바 있다. 교육편제 서울예술대학교는 전문대학 과정으로, 전문학사 학위를 수여하는 학부 과정만 편제되어 있다. 2023년 현재 공연학부, 영상학부, 음악학부, 문예학부, 디자인학부, 커뮤니케이션학부 등 6개 학부 아래 15개 전공을 두고 있다. 다만, 일부 과정에 대하여 학사 학위를 수여할 수 있는 전공심화 과정을 두고 있다. 캠퍼스 풍경 서울예술대학교는 경기도와 서울특별시 소재 사립 전문대학으로, 안산시와 중구에 캠퍼스를 각각 두고 있다. 안산캠퍼스 서울예술대학교 안산캠퍼스는 대학본부 캠퍼스로, 모든 학부 교육 과정이 이루어진다. 고잔동에 교사가 위치하며, 2001년, 서울예술대학 시절 남산캠퍼스에서 부지 및 강의 건물의 협소함을 해결하고, 학생 복지, 강의 효율을 높이기 위하여 이동한 교사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캠퍼스 내 약 11개 건축물이 위치하며, 캠퍼스 동편 예술대학로를 통해 접근이 가능하다. 남산캠퍼스 서울예술대학교 남산캠퍼스는 부속 캠퍼스로, 학사 학위 전공심화 교육 과정이 이루어진다. 이 외에 문화예술 전시·체험 공간으로서 역할이 강하다. 예장동에 교사가 위치하며, 캠퍼스 내 약 5개 건축물이 위치한다. 캠퍼스 서부 소파로를 통해 접근이 가능하며, 소파로 남단으로 숭의여자대학교가 인근에 있다. 학교 동문 각주 외부 링크 서울예술대학교 경기도의 전문대학 안산시의 학교 1962년 설립 단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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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D%85%8C%EC%8A%A4%ED%8A%B8%20%EB%93%9C%EB%9D%BC%EC%9D%B4%EB%B8%8C%20%EC%96%B8%EB%A6%AC%EB%AF%B8%ED%8B%B0%EB%93%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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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드라이브 언리미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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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트 드라이브 언리미티드》(Test Drive Unlimited)는 1980년대 후반부터 발매한 레이싱 게임인 테스트 드라이브 시리즈 중 하나로 2006년 9월 XBOX 360, PS2, PSP, PC버전으로 출시되었다. 간단히 TDU로 불리기도 한다. 게임의 배경은 하와이 군도의 섬 중 하나인 오하우섬을 배경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차들을 제공하면서 자유로운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는 게임이다. 사운드 트랙 "9 Volter" - Colour of Fire "And I’m Hip" -Sgt Rock "Angels Go Bald: Too" - Howie B "Another Excuse" - Soulwax “A Gritty Nitty” - Pazant Brothers "Back Again" - Boy Kill Boy “Big Bird” - Eddie Floyd “Black Powder” - Motor “Carbon Kid” - Alpinestars “Cissy Popcorn” - Preston Love “Compute” - Soulwax “Comin’ Down” - The View “Feels Closer” - Layo & Bushwacka! feat. Mino Cinelu “Finally Free” - Clearlake “Fix The Cracks” - Humanzi “Funk #49” - James Gang “Funky Chicken” - Preston Love “Handshakes” - Metric “He's Gonna Step On You Again” - “Step On” “Here We Go” – Broken Dolls “Hired Goons” - Evil 9 “I Live For” - Johnny Panic “(I’m A) Road Runner” – Jr Walker & The All Stars “No One Knows (UNKLE remix)” – Queens Of The Stone Age “PWSteal.Ldpinch.D” - AFX “Restless” - The Cobras “Sling Shot” - Lefties Soul Connection “Silver Buddha” - The Domes of Silence “(Them) Changes” - Buddy Miles “Time2Move On” - Malarky “You're Wasting My Time (PT1)” - Billy Garner 평가 각주 외부 링크 2006년 비디오 게임 아타리 게임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게임 오픈 월드 게임 플레이스테이션 2 게임 플레이스테이션 포터블 게임 오스트레일리아의 비디오 게임 프랑스의 비디오 게임 하와이주를 배경으로 한 비디오 게임 윈도우 게임 엑스박스 360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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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D%95%9C%EA%B5%AD%EA%B7%BC%C2%B7%ED%98%84%EB%8C%80%EC%82%AC%20%28%EA%B5%90%EA%B3%BC%EB%AA%A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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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 (교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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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근·현대사는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선택 과목에 7차 교육과정으로 시행되었던 한국사 교과목이다. 2002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부터 2010년에 고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까지 적용되는 한국사 교과목이다. 이 교과목은 일반적으로 1863년 대원군 집권부터 대한제국, 일제강점기, 광복과 대한민국 정부 수립 및 그 이후 현대까지를 주로 다루고 있다. 2005학년도부터 2013학년도까지 대학수학능력시험 사회탐구 영역의 11개 선택과목 중 하나이기도 하였다. 2009 개정 교육과정이 도입된 2011년 이후에는 한국사와 통합되어, 한국근·현대사는 사라지게 된다. 편향성 논란 뉴라이트 세력을 대표하는 교과서 포럼은 2008년 들어 금성출판사에서 출판한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등에 대한 좌편향되었다고 주장하나, 한국사 학계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2004년에 국사편찬위원회와 역사학자들이 편향성이 없다고 결론을 내린적이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8년에 다시 검토를 의뢰하였으나, 국사편찬위원회는 두루뭉술한 교과서 제작 가이드라인만 제시하고, 확실하게 편향성을 지녔다는 보고서를 내놓지 않았다. 교과 내용 같이 보기 한국의 역사 한국사 (교과목)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과목 각주 읽을 거리 논쟁하는 대한민국사62 한국 근현대사 대한민국의 고등학교 교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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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82%98%EB%B9%84%20%ED%9A%A8%EA%B3%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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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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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효과( - 效果, )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처럼 미세한 변화, 작은 차이, 사소한 사건이 추후 예상하지 못한 엄청난 결과나 파장으로 이어지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혼돈 이론(카오스 이론)에서 초기값의 미세한 차이에 의해 결과가 완전히 달라지는 현상을 뜻한다. 과학 이론이지만 사회현상을 설명하는 광범위한 용어로 사용된다. 무시해도 될 만큼 작은 차이나 미약하고 사소한 행위로 시작되었으나 연쇄적이고 점진적으로 조금씩 큰 파장을 일으키면서 결국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큰 변화를 초래하는 경우에 이 용어를 사용한다. 아주 사소한 것도 후에 큰 사건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것과 초기치의 미묘한 차이가 증폭되어 엉뚱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하므로 장기예측은 그만큼 어렵다는 두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오늘날과 같은 세계화 시대에서는 ‘나비효과’가 더욱 강한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해있고 특히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있는 지구촌 한구석의 미세한 변화가 순식간에 확산되기 때문이다. 나비 효과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등장한 것은 1952년 브래드버리가 쓴 소설 《천둥소리》이고,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72년 기상학자 로렌즈가 미국 과학부흥협회에서 한 강연 제목으로 사용한후 부터다. 로렌즈는 1961년 컴퓨터로 기상을 모의 실험하던 중 초기 조건의 값의 미세한 차이가 엄청나게 증폭되어 판이한 결과가 나타난 것을 발견하였고 그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서 나비효과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개요 나비 효과라는 표현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1952년 미스터리 작가인 브래드버리(Ray D. Bradbury)이고, 그가 시간여행에 관한 단편소설 《천둥소리(A Sound of Thunder)》에서 처음으로 이 용어를 사용했다. 이후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가 1972년에 미국 과학부흥협회에서 실시한 강연의 제목인 '예측가능성-브라질에서의 한 나비의 날갯짓이 텍사스에 돌풍을 일으킬 수도 있는가(Does the Flap of a Butterfly's Wings in Brazil Set Off a Tornado in Texas?)'로 인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는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혼돈 이론에서는 초기 조건의 민감한 의존성에 따른 미래결과의 예측불가능성을 의미한다. 때문에 이는 시공간을 가로질러 어떤 하나의 원인이 다른 결과를 초래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역사 1898년에 자크 하다마르는 부정적인 곡률 공간에서 궤도의 일반적인 차이를 지적했다. 피에르 듀헴은 가능한 파급 효과를 1908년에 이야기하였다. 한 나비가 곧 엄청난 라이플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사식은 1952년 출판된 레이 브래드버리의 “A Sound of Thunder”에서 나왔다. 이 책은 시간 여행의 관한 책이었다. 1961년 미국의 기상학자인 에드워드 로렌츠가 컴퓨터로 기상 모의실험을 하던 중, 수치 0.506127을 입력해야 했는데 소숫점 넷째자리부터 생략하여 0.506만 입력하였다. 그런데 미세한 차이가 엄청나게 증폭돼 판이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컴퓨터화면에 나타난 기상계는 한없이 복잡한 궤도가 일정한 범위에 머무르면서도 서로 교차되거나 반복됨이 없이 나비의 날개모양을 끝없이 그려내고 있었다. 이를 통해 초기 조건이 0.001에도 못 미치는 아주 미미한 차이가 엄청난 변화나 결과로 이어질수 있음을 발견했다. 나비의 날개가 궁극적으로 가속 또는 다른 위치 에 있는 토네이도를 지연시키거나 경로를 변경할 수 있다. 나비는 직접적으로 토네이도를 발생시키거나 파워를 조절할 수는 없다. 날개의플랩은 초기 조건의 일부이고, 조건의 한 부분은 토네이도로 이끌고 다른 한 조건은 이끌지 않는다.날개의 펄럭임은 초기의 현상에서의 작은 변화를 대표한다, 그러면서 꼬리를 물고 더 큰 스케일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다 도미노 이론. 날개를 펄럭이지 않아도 궤도 시스템은 크게 다를 수 있다. 나비의 펄럭임이 없는 상황에서도 토네이도를 이끌어 내는 것이 가능하다. 나비효과는 예견 가능성이 아주 낮다, 왜냐하면 초기의 상황인 날씨 상황같은것을 정확하게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문제는 앙상블 날씨예측의 발전에 동기를 부여했다. 이론과 수학적 정의 재발과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한 의존성과의 초기 조건으로 시스템의 대략적인 반환이 모두 함께 혼동 모션의 두 가지 주요 성분이다. 두 요소는 컴플렉스 시스템의 결과이다. 예를 들어 날씨는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예견이 힘들어진다, 왜냐하면 (예견하는데 시간은 일주일이 걸린다) 시작하는 대기의 상황을 완벽하게 예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이내믹한 시스템은 초기 조건의 아주 민감히 의존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정의는 위상이 있지만, 본질적으로 운율은 없다. 예시 나비 효과는 날씨 같은 과학 현상에 그치지 않고 사회, 경제 등에서도 사용된다.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이 미국 중서부의 조그만 은행 파산에서 비롯됐다거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캘리포니아의 조그만 금융기관의 파산에서 야기되었다. 2011년 8월,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드 & 푸어스는 재정적자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으로 한국, 독일 등 전 세계 주요국 주식시장에 일제히 빨간불이 들어왔고, 경제성장률도 급락했다. 또한 유럽연합의 재정 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증폭되어 스페인 등의 신용등급도 줄줄이 낮춰졌다. 그리스는 국가부도라는 최악의 사태까지 맞았다. 나비 효과에 따라서, 기상 예측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차가 크게 나타나고, 따라서 장기적인 기상 예보는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나비효과는 일기 예보에서 가장 익숙한 용어다. 표준 기상 예측 모델에서 쉽게 입증될 수 있다. 초기 조건에 민감한 의존성에 대한 잠재력이 강한 분야에서 원자와 이방성 케플러의 문제를 포함하여 고전과 양자 물리학에서 연구되고 있다. 어떤 작가들은 초기 조건에 대한 심한 의존성은 순수한 원자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초기 조건에 대한 민감한 의존성은 클래식한 모션에서 발견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나비효과가 원자 시스템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의견을 제시했다. 단 이것은 아직 이론일 뿐이다. 각주 같이 보기 도미노 이론 혼돈 이론 (카오스 이론) 복잡계 깨진 유리창 이론 사고 삼각형 (하인리히 법칙) 외부 링크 The meaning of the butterfly: Why pop culture loves the 'butterfly effect,' and gets it totally wrong, Peter Dizikes, Boston Globe, June 8, 2008 From butterfly wings to single e-mail (Cornell University) New England Complex Systems Institute - Concepts: Butterfly Effect The Chaos Hypertextbook. An introductory primer on chaos and fractals ChaosBook.org. Advanced graduate textbook on chaos (no fractals) 혼돈 이론 결정론 제어이론 물리 현상 곤충에 대한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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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M1A1%20%28%EB%8F%99%EC%9D%8C%EC%9D%B4%EC%9D%9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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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A1 (동음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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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1A1, M1-A1, M-1A1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M1A1 - M1 에이브럼스 주력 전차의 개량형 중에 하나. M1A2가 최종 개량형이다. M1A1 바주카 - 제2차 세계 대전 초기에 개발된 바주카의 초기형. M1A1 톰프슨 기관단총 - 군용으로 개량된 톰프슨 기관단총의 파생형. M1A1 카빈 - 접이식 개머리판을 채택한 M1A1 카빈의 파생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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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D%99%8D%EC%88%98%ED%9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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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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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洪秀煥, 1950년 5월 26일~)은 프로복싱 세계챔피언을 지낸 대한민국의 전직 복싱 선수이다. 4전5기 챔피언의 신화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그는 서울특별시 출생으로 한때 1955년에서 이듬해 1956년까지 경기도 시흥군 과천면(지금의 경기도 과천시)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고 그의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종교는 개신교이다. 프로 통산 전적은 41승(14KO)5패4무. 가족 관계 아버지:홍경섭(1915년~1964년) 어머니:황농선(1921년~1994년) 아내: 옥희(玉姬, 1953년~, 본명 김광숙(金光淑), 가수, 작사가, 기업가.) 자녀: 슬하 2남 2녀(장녀와 장남은 이전 교제녀의 소생, 차녀와 차남은 배우자 옥희의 소생.) 남동생: 홍수철(洪秀哲, 1957년 1월 17일~, 가수, 작사가, 작곡가, 개신교 목사 겸 대학 교수, 기업가.) 학력 서울 중앙중학교 졸업 서울 중앙고등학교 졸업 인천체육전문대학 체육학과 전문학사 경력 1950년 서울 출생 1969년 5월 10일 김상일과 프로복싱 데뷔전(4R 무승부) 1971년 9월 14일 한국 밴텀급 챔피언 1972년 6월 4일 동양태평양복싱연맹(OPBF) 밴텀급 챔피언 1974년 7월 3일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 웨스트릿지 테니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아놀드 테일러를 15회 판정으로 누르고 챔피언 등극. 당시 전화로 어머니에게 외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말이 유행어가 됨 1974년 12월 28일 서울특별시에서 열린 1차 방어전에서 페르난도 카바넬라에 판정승 1975년 3월 14일 미국에서 열린 2차 방어전에서 알폰소 자모라에 4회 KO패 1976년 10월 16일 경기도 인천에서 열린 WBA 밴텀급 타이틀전에서 알폰소 자모라에 도전했지만 12회 TKO패 1977년 11월 27일(현지시각 11월 26일 밤) 파나마에서 열린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페더급(슈퍼밴텀급) 초대 타이틀 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3회 KO로 누르고 챔피언이 됨. 홍수환은 당시 2회 4번 다운된 뒤 3회 KO승해 `4전5기' 신화의 주인공이 됨 1978년 2월 1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1차 방어전에서 가사하라 유우에 15회 판정승 1978년 5월 7일 서울특별시에서 열린 2차 방어전에서 리카르도 카르도나에 12회 TKO패 1980년 12월 19일 염동균과 마지막 경기(10R 무승부) 1981년 미국으로 이민, 마약 밀매 사건과 연루되어 체포되기도 함. 이후에 다시 귀국 2008년 한국권투인협회 회장 2012년 1월 한국권투위원회 위원장 2021년 10월 ~ 2021년 11월 국민의힘 홍준표 제20대 대통령 선거 예비후보 jp희망캠프 문화체육특별위원장 프로그램 출연 2005년 7월 5일 KBS 1TV 《新 TV는 사랑을 싣고》 10회 출연 2007년 KBS 제1라디오 《박인규의 집중 인터뷰》 2010년 2월 17일 YTN 《뉴스N이슈 - 이슈앤피플》 2016년 2월 8일 MBN 《고수의 비법 황금알》 2019년 7월 23일 KBS 1TV 《아침마당 - 화요초대석》 8418회 영화 출연 2002년 《남자 태어나다》 자문 2003년 《최후의 만찬》 - 장독대 역 라디오 2005년 5월 2일 ~ 2006년 4월 23일 KBS 해피FM 《라디오 챔피언》 이승연 아나운서와 함께 진행 2005년 9월 16일 ~ 2005년 9월 19일 : KBS 제2라디오 《KBS 해피FM 추석 교통 특별생방송 - 가는 길은 편안하게 오는 길은 안전하게》 이승연 아나운서와 함께 진행 2006년 1월 27일 ~ 2006년 1월 30일 : KBS 제2라디오 《KBS 해피FM 설 교통 특별생방송 - 고향길 즐겁게》 이승연 아나운서와 함께 진행 같이 보기 박종팔 장정구 유명우 외부 링크 네이버 캐스트 : 오늘의 인물 - 홍수환 1950년 출생 살아있는 사람 대한민국의 남자 권투 선수 대한민국의 남자 영화 배우 대한민국의 영화 평론가 대한민국의 음악 평론가 대한민국의 스포츠 평론가 미국에 거주한 대한민국인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21세기 대한민국 사람 대한민국의 기업인 대한민국의 최고경영자 WBA 챔피언 서울특별시 출신 중앙중학교 (서울) 동문 영락고등학교 동문 인천전문대학 동문 남양 홍씨 대한민국의 개신교도 서울특별시 출신 스포츠인 슈퍼밴텀급 권투 세계 챔피언 밴텀급 권투 세계 챔피언 슈퍼밴텀급 권투 선수 밴텀급 권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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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FC%20%EC%95%88%EC%96%91%20%EC%8B%9C%ED%8B%B0%EC%A6%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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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안양 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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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C 안양 시티즌은 안양시의 축구단으로, 2004년 2월 29일 발족하였다. 2005년 코니그린컵 참가와 IS배 써부웨이컵 우승 팀이기도 하다. 소개 FC 안양 시티즌은 안양시의 프로축구단이었던 안양 LG 치타스가 연고지를 서울로 옮긴 이후, 안양 지역의 축구를 재건하고 한국 축구 사상 최초로 자생적인 프로 축구단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지난 2004년 2월 29일 발족되었다. 발족 이후 안양 축구의 재건을 위해 여러 노력을 병행하여 온 결과 그해 7월에는 스스로 구단을 창단하기에 이르렀고, 또한 2005년 코니그린컵 참가와 IS(일간스포츠) 써브웨이컵 우승으로 성공적인 시즌을 치렀다. 더욱 좋은 경기력과 나아진 팬서비스에 임할 것이며, 앞으로도 팬, 시민들과 함께 자생적시민구단으로 창단되기까지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구단 연혁 2004년 2월 29일: FC 안양 시티즌 발족 2004년 3월: FC 안양 시티즌 발족기념 총회, 손호진 제1대 대표 선임 2004년 4월: FC 안양 창단후원회 가맹 2004년 5월 ~ 10월: 안양 시민 프로축구단 창단 홍보활동 2004년 7월: 석수조기회와 창단 첫 경기 2004년 9월: FC 안양 창단후원회 탈회 2005년 1월: 제1회 SFC컵 출전 2005년 3월: 손호진 제2대 대표 유임, 5팀제 도입 2005년 3월: 대한축구협회 K-3 클럽 등록 2005년 4월: FC 안양 시티즌 웹사이트 공식 개장 2005년 6월: 2004 KFA 코니그린컵 참가 2005년 8월: 2004-05 IS배 써브웨이컵 결선토너먼트 우승 2006년 4월: 총감독 이태홍 임명 2006년 4월: 2006 KFA 코니그린컵 참가 2006년 10월 ~ 2007년 2월: 제1회 아리수리그 참가 2007년 5월: 2007 KFA 코니그린컵 참가 2008년 4월: 제2회 아리수리그 참가 2009년 4월: 안산시장배 참가 2009년 4월: 제1회 FC 안양 시티즌배 축구클럽대회 개최 3위 2010년 2월: 제1회 인천플러스리그 3위 2010년 10월: 제2회 FC 안양 시티즌배 축구클럽대회 개최 2010년 11월: 제4회 데스팟대회 준 우승 2011년 2월: 제2회 플러그리그 참가 2011년 5월: 광명구로클럽리그 참가 3위 2012년 2월: 서울아리수리그 참가 2012년 5월~: 안양시민축구클럽 협동조합 준비중! 2013년 2월~11월: 제1회 S.K.I. 축구클럽리그 참가 2014년 2월~11월: 제2회 S.K.I. 축구클럽리그 참가 2015년 2월~10월: 제3회 S.K.I. 축구클럽리그 참가, 토요 리그-2 준우승, 일요 리그-2 우승 유니폼 주 유니폼: 상의 청색, 하의 군청색, 부 유니폼: 상의 백색, 하의 군청색 앰블럼 좌측의 노랑, 우측의 연청색은 안양의 색을 상징하며, 가운데의 독수리는 안양시의 새임. 안양시민들이 주체가 되어 클럽을 결성한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시민들이 자주 볼 수 있는 구성물로 제작. 창단년도인 2004년을 새겼음. 스텝 Club Staff 직 책 이 름 ----------------- 대 표 손호진 총무팀장 전력강화팀장 기획팀장 지원팀장 Coaching Staff 직 책 이 름 ----------------- 감독 코 치 같이 보기 안양 LG 치타스 외부 링크 FC 안양 시티즌 다음 공식 카페 FC 안양 시티즌 네이버 공식 카페 시티즌 2004년 설립된 축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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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B0%A9%EB%8F%85%EB%A9%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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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독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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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독면(防毒面) 또는 개스 마스크()는 독가스, 세균, 방사성 물질 등 유독 물질의 흡수를 막기 위해 얼굴에 쓰는 장비이다. 특수 필터가 있는 정화통에서 공기를 여과, 정화하여 방독면 속으로 깨끗한 공기만 들어간다. 초기의 방독면은 전쟁을 위해 만들어지지 않았다. 1799년 독일 박물학자인 알렉산더 폰 훔볼트는 1912년 지하 광산의 개발로 인해 많은 노동자들이 공기 중의 연기 및 독소 흡입을 막기 위해 개발했고 그 모양은 두 개의 호스가 두건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그러나 독가스 공격을 막기에는 부족했다. 군수용 방독면은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군이 영국군의 독가스 공격을 막기 위하여 처음 생겨났다. 캐나다 출신의 의사 클루니 맥퍼슨가 최초의 가스 마스크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독일군의 방독면이 보급되기 전에는 상황이 매우 열악했기 때문에 암모니아에 가스를 흡수하는 성질을 이용하여 암모니아 성분이 있는 오줌을 걸레에 흡수시켜 사용하기도 했다. 최근의 방독면들은 모두 매우 발전된 형태의 필터를 쓴다. 현대의 방독면들은 막아야할 입자에 따라 방사능용, 농약용, 유기가스용, 화생방용, 화재용 등으로 필터가 나뉜다. 방독면의 역사 고대 그리스에서 스펀지를 방독면의 용도로 사용하였다. 흑사병이 유행할 당시 조류의 모양과 유사한 모양의 얼굴 가리개를 만들어 부리 부분에는 병의 전염을 막는다고 알려져있던 허브를 가득 채워 넣었다. 1799년, 독일의 알렉산더 폰 훔볼트라는 광산 엔지니어가 원시적인 형태의 방독면을 개발하였다. 1823년, 존과 찰스 딘은 소방관을 연기로부터 보호할 수 있는 마스크를 개발하였다. 1871년, 존 틴달은 숯, 석회, 글리세린을 적신 탈지면 필터를 달아 연기와 유독가스를 제거할 수 있는 새로운 마스크를 개발하였다. 1915년 4월 22일, 제1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군이 최초로 화학무기를 사용하며 전쟁 중 방독면의 필요성이 부각되었다. 방독면의 종류 군수용 방독면 대한민국 국군은 SG생활안전에서 만든 K-1 방독면을 1983년부터 사용하고 있었으나 2014년 9월 29일, 방위산업청에서 (주)한컴라이프케어에서 개발한 K-5 방독면이 전투용으로 적합하다는 발표를 하였다. 그에 따라 2015년부터 양산을 시작하여 K-1 방독면을 대체하고 있다. K-5 방독면은 산업용 독성 화학물질까지 방호 가능하다. 휴대주머니, 방수주머니, 보호두건, 수통마개, 흐림방지키트로 구성된다. 그물망 형태의 머리끈 뭉치를 적용해 두부 압박감 최소화 및 착용감을 향상시켰고 안면부 단안식 렌즈는 넓은 시야 범위를 제공한다. 또 안면부의 이중쿠션은 착용감을 증대시켰다. 통신단자 부착으로 부수물자(통신장치) 사용시 전차 및 항공용으로 사용 가능하다. 음료취수관은 방독면 안면부에 기본으로 장착되어 있다. 친환경적인 활성탄을 사용하고 2종의 정화통이 구비되어있다. 각각의 정화통은 군사용 화생작용제 방호용과 산업용 독성 화학물질 방호용이다. 구매는 방위산업청의 승인을 취득한 이후에 가능하다. 민간용 방독면 용도에 따라 화재용, 화생방용, 산업용으로 나뉜다. 11번가등 온라인 쇼핑몰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 화생방 훈련 군에서는 화생방 공격에 대한 방어훈련으로 방독면 사용훈련을 기본군사훈련 및 예비군훈련에서 정기적으로 실시한다. 방독면을 쓴 상태로 화생방에 들어가서 가스가 새지는 않는지와 정화통을 교체하는 훈련을 한다. 구성 부품 방독면의 구성 부품은 다음과 같다. 안면부: 고무와 플라스틱으로 이루어져있다. 정화통: 안면부에 연결되어 있고, 정화통 안에는 흡수제, 여과지, 필터가 들어있다. 군수용은 광범위한 작용제로부터 신체를 보호해야 하기 때문에 활성탄을 흡수제로 사용한다. 휴대주머니 이미지 같이 보기 방진 마스크 각주 군용 개인장비 이란의 발명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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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A%B3%84%EB%9F%89%20%EB%B6%80%ED%98%B8%EC%8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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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 부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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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량 부호수(計量符號數, )는 미분기하학에서 쓰이는 용어로, 계량 텐서의 양수 및 음수 고윳값들의 개수(중복도를 고려함)를 말한다. 보다 일반적으로 비퇴화 대칭 쌍선형 형식(이차 형식으로 볼 수 있음)에 대해 정의될 수 있다. 계량 부호수는 계량 텐서에 대응되는 실계수 대칭행렬을 대각화한 뒤, 대각항들의 계수들 중에 양수인 것들과 음수인 것들의 개수를 센 것이다. 예를 들어 고윳값들이 -1, 2, 3, 6일 경우, 이를 양수가 셋, 음수가 하나라는 뜻에서 (3,1)로 쓰기도 하고, 더 구체적으로 (-,+,+,+)로 표기하기도 한다. 계량 부호수는 양수 고윳값의 개수 p와 음수 고윳값의 개수 q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만약 q=0이면, 부호수를 양의 정부호(陽-定符號, )라고 한다. 만약 p=0이면, 부호수를 음의 정부호(陰-定符號, )라고 한다. 둘 다 0이 아니면 이 부호수가 부정부호(不定符號, )라고 한다. 리만 계량은 양의 정부호 (p,0)인 계량이며, 로렌츠 계량은 부정부호 (p,1) 또는 (1,q) 부호수를 갖는 계량이다. 특이행렬의 경우 0을 고윳값으로 가질 수 있으므로 이를 포함해 로도 쓴다. 성질 스펙트럼 정리 스펙트럼 정리에 따라, 실계수 n차 대칭행렬은 언제나 대각화 가능하며, 중복도를 고려하면 정확히 n개의 고윳값을 갖는다. 같이 보기 부호 양수 및 음수 미분기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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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82%A8%EB%B6%80%EC%88%9C%ED%99%98%EB%A1%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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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순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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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순환로(南部循環路)는 서울특별시 강서구 공항동 김포공항입구 교차로에서 강남구 수서동 수서 나들목을 잇는 서울특별시의 주요 간선도로이다. 이 간선도로는 도로안내 노선번호로 92번이 부여되어 있고, 기점인 김포국제공항 입구사거리에서 개화동로과 연결되며 종점인 수서 나들목에서 양재대로와 연결된다. 이 도로의 총 길이는 36.3km이며, 왕복 6~10차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역사 1977년 8월 16일 : 영등포구 독산동 ~ 신월동 구간에 통행료 징수 개시 1978년 6월 30일 : 명일동 ~ 방화동 (서울댐 남단) 46km 구간을 남부순환도로로 지정 1984년 11월 16일 : 남부순환로로 개칭 및 기점과 종점을 각각 대치동 (영동대로)와 공항입구 4거리로 변경하여 29.4km로 노선 단축 1993년 7월 3일 : 구로구 독산동 ~ 양천구 신월동 구간 통행료 징수 종료 1986년 9월 15일 : 시흥 나들목 ~ 오류 나들목 5.4 km 구간을 자동차 전용도로로 지정 2006년 3월 2일 : 시흥 나들목 ~ 구로 나들목 2.2 km 구간을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해제 2009년 7월 10일 : 수서 나들목 ~ 둔촌사거리 4.8 km 구간이 양재대로로 편입되면서 종점이 수서 나들목으로 변경됨 2010년 3월 15일 : 2개 이상 시·도에 걸쳐 있는 도로로 남부순환로를 고시 2014년 6월 19일 : 구로 나들목 ~ 오류 나들목 3.2 km 구간을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해제 2021년 11월 18일: 광복교 ~ 사성교(옛 안양교) 6차로 확장 완료 주요 경유지 서울특별시 강서구 - 양천구 - 구로구 경기도 광명시 서울특별시 구로구 - 금천구 - 관악구 - 동작구 - 서초구 - 강남구 노선 통행료 남부순환로의 금천구 독산동 ~ 강서구 신월동 구간은 1977년 8월 16일부터 1993년 7월 3일까지 통행료를 징수했다. 본래 통행료는 1997년 12월 31일까지 징수할 계획이었다. 다음은 통행료 부과 당시 요금표이다. 주요 건물 및 시설 송정중학교 (서울특별시 강서구 남부순환로 121) 강서운전면허시험장 (서울특별시 강서구 남부순환로 171) 서부여성발전센터 (서울특별시 강서구 남부순환로 371) 양서중학교 (서울특별시 양천구 남부순환로 380) 신월119안전센터 (서울특별시 양천구 남부순환로 448) 국도산업 (서울특별시 양천구 남부순환로 594) 가리봉파출소 (서울특별시 구로구 남부순환로 1275) 서울가산동우체국 (서울특별시 금천구 남부순환로 1288) 서울가산초등학교 (서울특별시 금천구 남부순환로 1304-11) 원음방송 (서울특별시 금천구 남부순환로 1350) 서울창업비즈니스도서관 (2025년 1월 예정)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435) 관악가족행복센터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491) 서울관악우체국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643) 서울행운동우체국 (서울특별시 관악구 남부순환로 1841) 서울특별시 교육연수원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248) 아리랑 TV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351) 국립국악원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364) 한국예술종합학교 서초동캠퍼스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374) 예술의 전당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406) 외교센터빌딩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58) 서초구청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584) 양재1동주민센터 (서울특별시 서초구 남부순환로 2610) 아성다이소 (서울특별시 강남구 남부순환로 2748) 숙명여자고등학교·숙명여자중학교 (서울특별시 강남구 남부순환로 2807) 대치지구대 (서울특별시 강남구 남부순환로 2907) 서울대곡초등학교 (서울특별시 강남구 남부순환로 3022)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 (서울특별시 강남구 남부순환로 3104) 사진 각주 외부 링크 (서울 강서구) (서울 양천구) (서울 구로구) (경기도 광명시) (서울 금천구) (서울 관악구) (서울 동작구) (서울 서초구) (서울 강남구) 서울특별시의 도로 서울 강서구의 교통 서울 양천구의 교통 서울 구로구의 교통 서울 금천구의 교통 서울 관악구의 교통 서울 동작구의 교통 서울 서초구의 교통 서울 강남구의 교통 광명시의 교통 광명시의 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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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코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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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 코고로()는 아오야마 고쇼의 만화 《명탐정 코난》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인물 모리 란의 아버지이며, 전직 형사이고 형사일을 그만둔 이후에는 "모리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는 사립탐정일을 하고 있다. 연재 초기에는 "어설픈 탐정(ヘボ探偵)"으로 설정되어 코믹한 이미지였으나 진행이 거듭되면 될수록 경험이 많은 어른으로서의 좋은 점들을 보이기도 한다. 나이는 38(한국 나이로는 39~40)세이다. 아내는 키사키 에리이며 동급생은 여배우인 우조 루리()와 쿠도 유키코이다. 신이치(남도일)와 란(유미란)이 다니고 있는 테이탄 고교 출신이며, 대학교는 베이카 대학교를 나왔다. 상당한 애주가이며, 극중에서는 술에 많이 취하는 장면이 많이 그려져 있다. 또한 골초이기도 하며, 극중에서 담배를 피우는 장면이 많이 나올 때도 있다. 특별한 의뢰가 없을 때는 대체로 사무소에서 텔레비전을 보거나 경마 중계 라디오 방송을 들으면서 시간을 보낸다. 취미는 경마나 경륜등 사행성 게임을 즐기거나 마작을 하는 것이며, 예쁜 여자라면 아주 좋아한다. 아이돌 스타인 오키노 요코의 열렬한 팬으로 그녀가 나오는 CD와 드라마를 꼬박 챙긴다. 성격이 급해서 여러 번 코난을 때리고, 의뢰인에게 고함을 치기도 한다. 그래서 아내인 에리에게서 "매사에 꾸물거리고, 불결하고 여자를 밝히고 술고래인 최악의 남자(グズで不潔で女たらしで飲んだくれでいーかげんな男)"라고 평가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사건에서 용의자를 틀린 추리로 추적하여 이로 인하여 용의자가 자살했을 때 탐정 사무소의 간판을 내리는 등 책임을 지려는 장면도 있기 때문에 책임감이 강한 면도 있다. 유명한의 스승으로는 왕년에 유명한 명탐정 시오타 헤이하치로(한국판 김수택, 1기 50화 비운의 여배우 참조)가 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고소 공포증이 있어서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헬기 등을 탈 때 겁을 먹는다 정작 원작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모습이 몇 번 있었다. 원작 설정과 애니메이션 설정 충돌인 듯하다. 쿠도 신이치는 란의 소꿉친구로 어렸을 때부터 잘 알고 있었지만, 신이치가 고교생 명탐정으로서 활약하고 있을 때 자신의 탐정 활동이 가려졌기 때문에, 란과의 교제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그러나 란이 신이치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을 깨닫고 있는 것 같다. 탐정 사무소일 코난(남도일)이 나비넥타이 음성 변조기로 모리 탐정의 목소리를 흉내내며,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시작하면서 잠자는 코고로(眠りの小五郎)라는 별명의 명탐정으로 전국적으로 알려진다. 처음에 등장했을 때는 의뢰가 전혀 없고 면도를 하지 않은 얼굴로 의자에 앉아서 술에 취해서 TV를 보는 장면이었다. 무명 시절에는 "나는 명탐정 모리 코고로다!" 라고 말해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심지어 일반인은 모리 코고로를 아케치 코고로(明智小五郎)나 일본의 우주 비행사인 모리 마모루(毛利衛)로 착각했다. 자신의 추리가 맞다는걸 확신할 때 입을 있는 대로 크게 벌리고(가끔씩 혀가 튀어 나옴) 눈은 살짝 위로 치켜뜬 표정으로 나~~ 하하하하하하하 하고 이상하게 웃는다. 다만 그런 식으로 웃으면서 끝난 추리는 100% 헛다리다. 기본적으로 추리력은 별로 우수하지 않다.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엉터리 추리로 범인이 아닌 사람에게 범인으로 단정짓는 일이 많다. 또한 범인이 남긴 흔적을 잘못 이해하고, 주위에 부자연스러운 점이 지적되어도 단순하고 우연히 일어났다고 정리해버린다. 밀실 사건이 되면 모리 (유명한)는 대체로 자살로 결단하고 빨리 수사를 종결지으려 한다. 그러나 가끔 코난이 마취총을 쏘지 않고 힌트를 제공하는 간접적인 도움을 받아서 혼자서 사건을 해결하기도 한다. 더욱이 모리 코고로 자신의 인생 경험으로 코난이 잘못 추리한 부분을 정확하게 추리한 적도 있다. 그 외에도 별거 중인 아내 키사키 에리가 잃어버린 귀걸이를 찾다가 왔었음을 잠깐 동안의 관찰에서 추리해 내 찾아낸 사례 등을 보면 탐정으로서의 능력 자체는 나쁘지 않은 편이나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탐정일을 하기 이전에는 경시청 수사 1과 강행범계에 근무하고 있었다. 형사 시절에는 사격실력에 있어서는 경찰청 전체에서 1, 2등을 다투는 명사수였다. 그러나 그 때도 화재사고를 방화라고 하는 등의 엉터리 추리로 인해 수사에 혼란을 빚기도 했다. 그렇지만, 관할 경찰서의 형사에서 본청 수사 1과에 영전했던 점과 가끔 확실한 추리를 한 것을 감안하면 일반 형사보다는 우수하다고 여겨진다. 형사 경험으로 수사 기법의 기본은 알고 있어서, 대부분의 사망 원인이나 사망 추적 시간은 맞출 수 있다. 실제 명탐정 코난 단행본 60권에서 시체를 보고 독살당했음을 알아낸다. 또한 휴대 전화 도청 문제를 설명한 적도 있다. 명탐정으로서 유명해져서 수입이 증가했지만 아직도 자가용이 없고 항상 렌터카를 빌린다. 보통 이 렌터카는 사건에 휘말려서 펑크나 폭발 심지어는 홍수에 떠내려간 적도 있어서 렌터카 수리비와 변상비가 많이 나간다. 극장판 5기 천국으로의 카운트다운에서 이벤트 상품으로 받은 머스탱 컨버터블을 왜 이용하고 있지 않은 지는 원작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되는 극장판의 내용이라 그런 지, 물에 젖어 쓸 수 없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아마도 전자의 경우가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물론 후자의 경우도 생각할 수는 있다. 비용이 엄청나겠지만 (외제차는 수리비가 엄청나다. 심지어 도장 살짝 긁힌건데도 수리비는 안드로메다로 가는 수준. 그래서 지방에 사는 사람이 차를 몰고 외제차가 많은 서울 혹은 도쿄에 갈땐 극도로 조심해야 된다고 한다.) 그래도 서비스 센터에서 물에 젖어 교체 해야되는 부품들만 갈면 끝이기 때문에 설득력은 없으며 전자의 경우가 설득력이 있다. (극장판 마지막에 잘 말리면 쓸 수 있을지도 몰라 라고 하는 대사는 나옴) 그가 (코난과 함께) 가는 곳이면 항상 무슨 사건이 일어나서 메구레 경부에게 '역귀()', '죽음의 신()'이란 말을 자주 듣는다. 세이칸 터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에서는 홋카이도 경찰서의 형사에게 "가는 곳 마다 사건이 일어나는 저주받은 탐정()"소리를 들었다. 극장판에서는 시한장치의 마천루와 14번째 표적에서만 잠자는 코고로의 모습을 보여주었고, 잘못된 추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다만, 수평선상의 음모에서는 조금 벗어났긴 했지만, 평상시의 그의 모습에서 상상할 수 없는 명추리를 보인 적은 있다. 건전한 판단력 코난 등 어린이가 수사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상식적인 감성의 소유자이다. 그래서 코난이 끼어들면 혹이 날 정도로 알밤을 먹이며 자기 딸의 참견도 달갑지 않을 때가 있고, 사건을 제일 먼저 목격한 코난을 메구레 경부의 허락없이 마음대로 되돌려보낸 적도 있다. 또한, 극장판에서 코난이 폭탄 사건에 말려 들어가 부상당했을 때는 어린이인 코난의 생명을 위협한 범인에 대해서 "잡히기만 해 봐라. 내가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라며 격렬한 분노를 나타낸 일, 단행본에서 코난이 총상으로 입원한 날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아가사 박사의 말을 듣고는 "예? 코난이 단순히 총알에 스친 것이 아니었어요?"라며 걱정하고 "란에게 고맙다고 하거라. 수혈과 간호를 했어. 코난, 건강해야 한다." -189화 목숨을 건 부활 편- 라며 코난이 건강을 찾자 안심한 일 등을 볼 때에 평상시에는 몰인정하게 취급하고 있는 코난에 대해서 상냥함을 내비치고 있기도 한다. 돈에 많이 약해서 코난을 다시 보살필 때 싫어하는 눈치였지만 코난 엄마 쿠도 유키코가 변장한 인물인 에도가와 후미오가 양육비 1000만 엔을 주자 순조롭게 승낙한다. 또한 의뢰비가 많아지면 갑자기 태도를 바꿔서 의뢰를 흔쾌히 맡는다. 하지만 극장판인 《탐정들의 진혼가》에서는 돈에 대해 상당히 냉정한 태도를 보인다. 또한 더럽게 돈을 버는 것에 대해서는 싫어하고 있어서 돈을 위해서 범죄를 저지른 지인에게 "그렇게까지 돈이 탐나나?(そこまでして金が欲しいのか)"라고 경멸한 적도 있다. 빗나간 동체 시력을 가지고 있어서 빨리 타이핑을 했던 키보드의 자판을 정확하게 읽어내 코난이나 헤이지를 놀라게 한 적도 있다. 다만 타이핑을 했던 키보드의 자판을 읽을 때 엉뚱한 방향의 암호로 가정하여 생사람을 잡을 뻔하였으나 코난이 마취총으로 잠재워 올바른 추리로 살인 사건의 범인을 찾을 수 있었다. 아내와의 별거 에리와는 학생 때 결혼하여 신혼 때는 생활이 어려웠고 수입을 위해서 가정교사 아르바이트를 한 것으로 그려지고 있다. 에리와는 어떤 이유로 인하여 10년 전부터 별거에 들어갔으며, 가끔 만나도 서로 싸우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많이 진전된 상태. 학창시절 에리가 신이치의 모친인 쿠도 유키코와 미인대회에서 맞대결을 펼칠 때, 동률인 상황에서 모리 코고로 자신이 표를 내지 않아 대회는 무승부로 종결되었다. 그러나 그 일과 관련된 코난의 질문을 듣자 코고로는 당시 에리에게 투표를 했다고 고백했다. 더구나 에리가 잃어버린 반지를 은밀하게 찾아주거나 에리가 좋아하는 야구 선수의 사인볼을 건내주려고 하거나 아내의 생일선물로 5만 엔짜리 목걸이를 주는 것을 보면 서로 싸우면서도 내심 에리를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다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도 있지만, 에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 말을 MD에 녹음한다. 에리에게 한 프로포즈 멘트는 "너를 좋아해! 이 지구상의 누구보다...()"이다. 특기 딸인 란이 가라테를 잘하는데 비해 코고로는 사격 외에도 유도를 매우 잘하였으며 대학에 다녔을 때는 유도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유도부에서 제일 잘했다고 떠벌리고 있으며, 극중에서는 범인을 잡을 때에 그 기술 중 일부를 보이기도 한다. 특히 결정적인 상황에서 유도나 스모의 기술 중 하나는 자신보다 몸집이 큰 남성조차 시원스럽게 휙 던질 수 있을 정도로 14번째 표적 등에서 범인을 잡을 때 결정적인 수단이 되기도 한다. 아내에게도 유도나 씨름 기술의 일부를 가르치기도 했다. 하지만, 무대공포증이 있는지 중요한 시합이 되면 상태가 이상해져서 공식적인 시합에서 이긴 적은 없는 것 같다. 호칭 모리 코고로 탐정의 호칭으로는 "모리 탐정님", "모리 아저씨", "모리 씨", "모리 군" 등이 있다. 코난, 겐타, 아유미, 카즈하는 그를 "모리 아저씨(毛利のおっちゃん), "아저씨(おじさん)"라고 부른다. 딸인 란은 "아버지(お父さん)", 에리는 "당신(あなた)", 메구레 경부나 아가사 박사는 "모리 군()"이라고 부른다. 다만 가끔씩 메구레 경부는 그에게 '역귀(疫病神)', '죽음의 신(死神)'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훗카이토에서도 비슷한 애칭으로 불렸다. 다른 경찰관들은 그에게 "모리 씨(毛利さん)"이라고 부르며, 메구레 경부 이외의 전 상사(上司)들은 "모리(毛利)"라고 부르고, 요코미조 쥬고는 "연기나는 코고로(煙の小五郎)"라고 부른다.(한국판에서는 연기나는 코고로를 점잖은 명탐정으로 번역했다 한국판에선 잠자는 코고로가 잠자는 명탐정으로 번역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쿠도 유키코는 "코고로 군()", 미츠히코는 "모리 탐정()", "아저씨()", 헤이지는 "아저씨(おっちゃん, オッサン)"라고 부른다.. 소노코는 "아저씨(おじさま, おじさん)", 아이는 "모리 탐정()"이라고 부른다. 덧붙여 신이치는 탐정으로서 코고로를 언급할 때 "모리 탐정(毛利探偵)"라고 하지만 평소에는 "아저씨(おっちゃん)"이라고 부른다. 기타 정보 잠자는 코고로라는 별명 때문인지 수면제 광고 의뢰가 종종 들어온다. 원작에서는 그런 의뢰가 들어오면 바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반면에 탐정들의 진혼가에서는 1000만엔의 개런티가 제시되었기 때문에 "꼭 하겠습니다.()"라며 좋아했다. 이름은 모리스 르블랑과 아케치 고고로(明智小五郎)에서 파생되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주위로부터 칭찬을 받거나 자신만만한 추리를 선보이면 본 궤도에 올라 입을 크게 벌리고 거만한 자세와 표정을짓고 혀를 내밀며 "나하하하()"라며 크게 웃는 장면을 연출한다. 다만 그러한 추리는 대개 빗나가는 경우가 많다. 한번은 검은 조직의 표적이 된 적이 있으며, FBI에 의해 저지되었다. 아내와의 관계는 원만하지 않으나 최근에는 표면상으로 무뚝뚝하지만 내심 친밀한 관계로 돌아오기를 희망하고 있다. (애니 200화, 372화, 474화, 590화, 609화 등등의 에피소드를 통해 밝혀졌다.) 성우진 및 드라마 배역 일본어판은 카미야 아키라가 548화까지 더빙을 맡았으며 553화부터 고야마 리키야가 더빙을 맡고 있다. 한국어 더빙판의 경우 1기와 2기에서는 장정진이 맡았으며 3기부터 현재까지 이정구가 담당하고 있다. 영어 더빙판은 R 브루스 엘리엇(R Bruce Elliott)가 맡았다. 드라마 스페셜에서는 진나이 다카노리(陣内孝則)가 배역을 맡았다. 성우 교체 일본어판의 경우 첫화부터 548화까지 13년간 모리 코고로의 목소리를 담당하던 카미야 아키라가 도중 제작사 간 불화와 계약 문제로 인하여 하차였다. 이에 따라 코야마 리키야가 후임으로 결정되어 553화부터 더빙에 투입되었다. 리키야는 《명탐정 코난》에서 용의자 역으로 목소리 출현 한 바 있으며 500화에는 에단 혼도 역으로 목소리 출현 한 적도 있다. 한국어 더빙판의 경우 1기와 2기에서 목소리를 맡은 장정진이 2004년 10월 11일에 사고로 사망하였으며, 이후에 스폐셜에서 잠깐 박지훈이 맡았지만, 이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성우 협회에서 제명 당하면서 3기부터 이정구가 맡았다 각 언어판별 이름 한국어 더빙판에서는 유명한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해외판에서는 리처드 무어(Richard Moore)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각주 명탐정 코난의 등장인물 가공의 일본 사람 가공의 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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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A7%88%EB%A5%B4%EC%BD%94%EB%A5%B4%EA%B8%B0%EC%8A%A4%20%EC%98%A4%ED%97%A4%ED%81%AC%ED%8A%B8%20%EC%B9%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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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르기스 오헤크트 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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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르기스 오헤크트 칸(Махагүргис Үхэгт хаан, 馬兒古兒吉思烏珂克圖汗, 1446년 / 1448년 ~ 1465년)은 몽골 북원의 대칸(재위:1454년 ~ 1465년)으로 타이손 칸의 정실 소생 막내아들이다. 휘는 보르지긴 마르코르기스( ᠮᠠᠬᠠᠬᠦᠷᠬᠢᠰ Махагүргис) 혹은 마르가르(麻兒可兒), 몽골어식 존호는 오헤크트 칸(ᠥᠭᠡᠭᠲᠦ ᠬᠠᠭᠠᠨ 烏珂克圖汗)이다. 몽골의 역사서 《초원제국(草原帝國)》에 의하면 그의 이름은 기독교의 성인 이름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성 마르코, 마가의 이름을 몽골어화 한 것이라 한다. 마르코르기스가 성 게오르기오스의 이름을 시리아어화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명나라에서는 그를 소왕자(小王子)라 불렀다. 벨구테이의 후손 모하라이 등에 의해 추대되었으며, 재위기간 중 정치적 실권은 없었다. 1460년부터 명나라를 소규모로 공격했고, 1462년 우량카이를 정벌했다. 1465년 옹니구트부 모리하이와 카라친부 보라이의 전쟁 중 휘말려 피살당했다. 생애 생애 초반 마르코르기스는 1446년 혹은 1448년 출생이며 정확한 생일은 기록에 전하지 않는다. 타이손 칸과 오이라트부 출신 세첸 카툰(에센 타이시의 누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 경우 압단이 그의 친형제가 된다. 타이순 칸의 다른 후비 사무르 카툰이 마르코르기스의 생모라는 설이 있다. 일설에는 다른 후비 소생으로, 에센의 오이라트 4부의 공격을 받고 죽은 여자가 그의 생모라는 설도 있다. 에센 타이시가 타이손 칸의 일족을 살해할 때, 그는 수레 밑에 숨어서 겨우 목숨을 구했다 한다. 에센 타이시와 오이라트 4부가 항가이(Хангай)와 자브항(Завхан)을 공격할 때 타이손 칸의 카툰 중 1명을 살해했다. 이때문에 그의 몽골어식 존호가 오헤크트, 죽음의 칸이라는 존호가 붙었다 한다. 이름은 마르코르기스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르네 그로세트(René Grousset)가 쓴 몽골의 역사서 《초원제국(草原帝國)》에 의하면 그의 이름은 기독교의 성인 이름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성 마르코, 마가의 이름을 몽골어화 한 것이라 한다. 마르코르기스가 성 게오르기오스의 이름을 시리아어화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몽골 북원의 대칸 1454년 에센 칸이 살해당하자 벨구테이의 후손인 모리하이를 비롯한 몽골 귀족들의 도움으로 즉위했으며, 어린 나이라 하여 명나라에서는 소왕자라고 불렀다.그러나 실권은 모든 권력은 하르친의 볼라이 타이시에게 있었다. 일설에는 이미 죽은 톡토아부카 타이순 칸의 아내 사무르 카툰이 어린 아들을 몽골 카간으로 옹립하고, 카간으로 선포했으며 죽은 남편의 지지자들에 의존하여 그를 대신하여 오이라트를 정벌했다 한다. 몽골어식 존호 오헤크트는 죽음, 살해되었다는 뜻이다. 즉위 직후 몽골 부족장들의 도움을 얻어 오이라트인들을 몽골 서부로 몰아냈다. 즉위 직후 그는 모리하이, 카라친부의 파라이(Булай)를 태사로 임명했다. 그는 실권은 없고 몽골 부족장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했고, 몽골 귀족들은 수시로 전쟁을 하였다. 카라친의 볼라이 타이시와 투메드의 도골란 타이지는 수시로 분쟁했다. 1460년 볼라이 타이시는 그를 대신하여 1460년부터 1462년까지 명나라의 변경을 계속 공략, 중국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성과는 없었으나 1462년 볼라이는 명나라 천순제에게 평화 조약을 체결하도록 강요했다. 이후 몽골 귀족들은 자주 분쟁을 벌이다가 1465년 그는 몽골 귀족들의 분쟁에 휩쓸려 몽골진 아이막에서 옹니구트부의 모하라이(또는 볼라이) 혹은 곽랑 타이지(郭朗台吉)에 의해 살해되었다. 투메드7부의 수령이자 카치운의 후손 도골란 혹은 돌란(Доголон, 몽골어로 절름발이라는 뜻) 태사 등도 마르코르기스 칸 암살에 가담한다. 일설에는 그를 암살한 인물은 카치운의 후손 도골란 혹은 돌란 태사라는 설도 있다. 모하라이가 파라이를 공격하여 혼란스러운 틈을 타 암살되었다는 설도 있다. 사후 결혼과 자녀 여부는 기록에 전하지 않는다. 이후 북원의 대칸은 옹니구트부의 모하라이 혹은 투메드의 도골론이 그의 이복 형 멀런 칸을 추대하였다. 1475년 만돌 칸은 마르코르기스 오헤크트 칸의 원수를 갚겠다고 선언, 출병하여 투메드부의 돌란 타이지를 사살하고 투메드부를 점령했다. 기년 1448년 출생 1455년 사망 북원의 대칸 보르지긴 쿠데타로 축출된 지도자 작전 중 사망한 군주 칭기즈 칸의 후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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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84%9D%ED%9B%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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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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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훈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이석훈(李石薰, 1908년 ~ ?)은 한국의 소설가 겸 극작가이다. 이석훈(1972년 ~ )은 대한민국의 영화감독이다. 이석훈(1984년 2월 21일 ~ )은 대한민국의 가수이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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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A%B9%80%ED%95%98%EA%B8%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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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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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기(1958년 ~ )은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생애 경남 울산에서 출생하였고, 1978년 부산대 철학과 입학했으며, 재학 중 1980년 5월 계엄법 위반으로 구속, 강제징집되었다. 부림 사건으로 재구속되어 10년을 언도받고 복역 중 1988년 가석방으로 출소하였다. 1988년 옥중시·편지 모음 를 간행하였으며, 1989년 《창작과 비평》 가을호에 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하여, 〈노란 불꽃〉,〈해미〉등을 발표하였다. 작품집 《완전한 만남》으로 제1회 임수경 통일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1992년 제10회 신동엽창작기금을 수상하여 1993년 을 출간하였다. 작품 소설집 《완전한 만남》, 창작과비평사, 1991 《은행나무 사랑》, 실천문학사, 1996 《복사꽃 그자리》, 문학동네, 2002 소설 《항로 없는 비행(상)》, 창작과비평사, 1993 《항로 없는 비행(하)》, 창작과비평사, 1993 《천년의 빛 1 ~ 3》, 고도, 2001 《식민지 소년》, 청년사, 2007 기타 《늦깎이》, 친구, 1991 《마침내 철책 끝에 서다》, 문학동네, 1995 《부마민주항쟁 (역사 다시읽기 4)》,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004 《미인들의 동굴》, 경상일보 연재, 2006-2009 《하기C칼럼》, 기호일보 연재, 2011-2012 대한민국의 소설가 1958년 출생 살아있는 사람 울산광역시 출신 부산대학교 동문 신동엽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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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B5%9C%EC%A3%BC%EC%9D%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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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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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주일(崔主日, 1906년 4월 20일 전북 김제 ~ 1963년 11월 17일)은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 1952년 제2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다. 약력 군산영명중학교 수료 대동청년단 김제군 단장 대한청년단 김제군 단장 독립촉성국민회 김제군 지부장 1948년 5월 10일 : 제헌 국회의원(전북 김제을) 낙선 참고 자료 1906년 출생 1963년 사망 20세기 사망 군산중앙초등학교 동문 한국독립당의 당원 대동청년단 대한청년단 김제시 출신 전라북도의 국회의원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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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I%20Have%20a%20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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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a 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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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Have a Dream(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마틴 루서 킹 주니어가 1963년 8월 28일,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직업과 자유를 위한 워싱턴 행진에서 행했던 연설에 붙은 별칭이다. 이 연설은 흑인과 백인의 평등과 공존에 대한 요구였다. 킹의 연설은 링컨 기념관 앞에 설치된 연단에서 이루어졌다. 이 연설은 에이브러햄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존 F. 케네디의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와 함께 미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연설로 손꼽힌다. 양식 이 연설은 웅변술의 정수로서 널리 추앙받는데, 주로 대중들을 선동하는 미국 침례교의 설교 양식과 닮아있다. 연설의 호소 방식은 구약성서, 미합중국 독립선언서, 미합중국 헌법등 상징적이면서도 널리 알려진 소재 즉,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소재를 이용한다는 점에서 특징을 찾을 수 있다. 킹 목사는 인유라는 수사학적 기법으로서 중요한 구문들을 인용했다. 연설 도입부에서 킹은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을 인유한 "5 score years ago"(100년 전)를 사용했으며 두 번째 문단에서는 시편 30장 5절(야훼의 진노는 잠시뿐이고 그 어지심은 영원하시니, 저녁에 눈물 흘려도 아침이면 기쁘리라.)을 인유하였다. 또한 노예 해방 선언문에서 "It came as a joyous daybreak to end the long night of captivity."(이는 오랜 속박의 밤을 끝내는 행복의 새벽으로 다가왔습니다)를, 이사야 40장 4절(모든 골짜기를 메우고, 산과 언덕을 깎아내려라. 절벽은 평지를 만들고, 비탈진 산골길은 넓혀라.)에서 "I have a dream that every valley shall be exalted..."(내겐 오랜 고난이 기쁨이 될 것이라는 꿈이 있습니다)를 인유하기도 했다. 또한 "I have a dream"(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Now is the time..."(이제 그 때입니다)이란 말의 대구(對句)를 통하여 강조의 어조를 남기기도 하였다. 주요 인용 "우리가 이 수도에 온 이유는 어떤 면에선 우리가 지급 받지 못한 수표를 바꾸기 위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건국 당시 사회 인사들은 독립선언서라는 위대한 문서에 서명할 때 모든 미국인에게 돌아갈 혜택에 대한 약속에 서명했습니다. 이 약속의 수표는 모든 사람에게, 백인 뿐만 아니라 흑인에게도, 양도 불가능한 권리인 행복 추구권과 자유권을 보장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미국은 우리가 받은 약속 어음에 대해, 적어도 색깔이 문제되는 사람에게는 채무 불이행인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이러한 신성한 어음을 인수하지 않는 대신 미국은 흑인에게 '잔고 부족'이라고 찍혀 있는 부도 수표를 돌려주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깨어나서, '우리는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창조되었다는 자명한 이념을 신봉한다'는 미국의 신조안에 깃든 참 뜻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그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네 명의 내 자식들이, 피부 색이 아닌 그들의 품성에 의해 평가받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자유의 종이 울리게 합시다. 이 자유의 종 소리가 모든 마을, 모든 촌락, 모든 주, 모든 도시에서 울리게 된다면, 우리는 주님의 자녀로서 흑인이건 백인이건, 유대인이건 아니건, 개신교이건 가톨릭이건 간에 모두가, 손에 손을 잡고 옛 흑인 영가를 함께 부르는 날을 향해 나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나 자유 얻었네! 너 자유 얻었네! 전능하신 은혜로 우리 자유 얻었네!" 유산 이 연설이 있었던 워싱턴 대행진 이후, 존 F. 케네디 행정부에는 시민권 개정 입법안을 의회에 제출하라는 압력이 더욱 강해졌다. 케네디가 암살 당한 다음 해, 그를 계승한 린든 존슨 대통령 때 1964년 시민권 개정안이 통과되었으며, 1965년에는 투표권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원문 외부 링크 음성 합성된 연설 내용과 원문: DAISY파일로 다운로드 가능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 (원고 일부의 국역본). - 주한미국대사관 웹페이지 | 교육 및 문화 | 인포피디아USA | 미국의 역사와 민주주의 1963년 미국 마틴 루터 킹 주니어 아프리카계 미국인 민권운동의 역사 연설 영어 어구 1963년 8월 1963년 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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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1%B9%EC%9C%84%EC%95%88%EC%8B%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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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위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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쑹위안시(, 송원시)는 지린성 중서부에 위치하는 지급시이다. 북쪽으로 쑹화강과 눈강의 합류지점을 경계로 헤이룽장성 다칭시와 접한다. 역사 쑹위안의 역사는 신석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기념비와 옛 흔적은 쑹위안의 오랜 역사와 찬란한 문화를 말해준다. 이곳은 2000년 전에 부여의 땅이었고,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청나라의 땅이었다. 20세기 초에 혁명의 선구자인 쑨원은 쑹화강과 넌강이 만나는 곳에 교통축을 건설하자고 제안하였고 쑹위안 시가 세워짐으로써 실현되었다. 1992년 중국 정부 당국은 쑹위안을 지급시로 승격하였다. 2007년 2008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이 지나는 도시로 선정되었고 지린에서의 첫 번째 기착지가 되었다. 이때 국내외 300개의 미디어 회사들이 보도를 위해 도시로 몰려들었다. 지리 쑹위안은 둥베이 지방의 정중앙이자 지린 성의 중서부에 있고 헤이룽장성과 내몽골 자치구의 교차점에 위치해있다. 7600km2의 경작 가능한 땅이 있고 해마다 지린 성 전체 생산량의 4분의 1인 600만 톤의 식량을 생산한다. 5개의 철도와 지방 도로를 포함한 6개의 국도가 도시를 통과한다. 창춘이나 하얼빈 공항까지 가는데 1시간 반 밖에 걸리지 않는다. 쑹위안의 중심으로 반지름 200km의 원을 그리면 3100만의 인구가 포함되고 쑹위안은 둥베이의 중요한 교통축이자 상업 중심지가 된다. 머지않아 쑹위안은 둥베이의 지역 중심지가 될 것이다. 행정 구역 1개 구, 1개 현급시, 2개 현, 1개 자치현을 관할한다. 시할구 닝장 구(宁江区) 현급시 푸위 시(扶余市) 현 첸안 현(乾安县) 창링 현(长岭县) 자치현 첸궈얼뤄쓰 몽골족 자치현(前郭尔罗斯蒙古族自治县) 3개의 성급 개발구역이 있다: 쑹위안 경제기술개발구역, 쑹위안 농업신기술개발구역, 차간호 관광개발구역 경제 쑹위안은 쑹넌 평원에 위치한 유전 도시로 중국에서 6번째로 큰 지린 유전에 위치해있다. 세계에서 유명한 옥수수 지대에 놓여있어 석유와 함께 상업적 농업이 도시의 기반을 이룬다. 2006년 도시의 세입은 474억 위안이었고 45억 위안의 이익을 내서 전체적인 경제 성취도 측면에서 성에서 3위를 차지하였다. 2007년 총 세입은 600억 위안, 이익은 65억 위안일 것으로 예상된다. 2006년 쑹위안은 다국적 기업을 위한 투자 잠재력을 지닌 중국 도시들 중에서 상위 20위 안에 들었다. (19위를 차지하였다.) 쑹위안은 식품, 육류, 생선과 석유 생산으로 유명하다. 땅 위의 자원인 식량, 물, 초지, 전기, 관광 자원이 풍부하고 땅 속의 자원인 석유와 가스도 상당하다. 기후 각주 지린성의 지급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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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CSI%3A%20%EB%89%B4%EC%9A%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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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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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I: 뉴욕》()은 2004년 9월 22일에 시작해 2013년 2월 22일에 종영된 미국의 과학수사 드라마이다. 본작 CSI 과학수사대로부터의 2번째 스핀오프 작품으로, CSI 마이애미에서 호레이쇼 케인이 마이애미에서 뉴욕으로 살인 사건의 수사를 위해 방문한 에피소드에서부터 탄생하였다. CSI뉴욕은 다른 두 CSI 작품들보다 참혹하다. 시즌 1 동안 파란색을 키 컬러로 사용했으나, CBS 사장 레스 문베스의 요구에 따라 드라마가 덜 차갑게 보이도록 시즌 2부터 파란 색을 키 컬러로 사용하지 않았다. 2005년 11월 7일의 CSI 마이애미 (시즌 4 제7화)와 11월 9일의 CSI 뉴욕 (시즌 2 제7화)에서는 크로스오버가 기획돼, 추락한 비행기와 도주한 연속살인범을 둘러싼 쌍방의 캐스트가 함께 연기했다. 그리고 2009년 11월 9일 CSI 마이애미 (시즌 8 제7화)와 11월 11일 CSI 뉴욕 (시즌 6 제7화), 11월 13일 CSI: 과학수사대 (혹은 라스베이거스) (시즌 10 제7화)에서는 최초로 트리플 크로스오버가 기획되었다. 주제가는 다른 CSI 작품과 같이 더 후의 노래가 사용되었다. 이 작품에는 〈Teenage Wasteland〉로 잘못 알려져 있는 〈Baba O'Riley〉를 주제가로 사용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뉴욕을 무대로 한 NBC의 범죄 드라마 로 앤 오더와 같은 시간대에 방송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는 OCN에서 방영하였고, 2007년 9월 15일부터 2009년 11월 8일까지 MBC에서 시즌 4까지 한국어 더빙 버전을 방영 하였다. 2012년 시즌 9를 마지막으로 종영을 하였다. 제작 제리 브룩하이머 (Jerome Bruckheimer) 등장인물 게리 시니스 (Gary Sinise) - 맥 테일러(Mac Taylor), CSI Level 3 (반장) 전문분야는 전문자료 수집 / 분석이며 시카고 출신의 해병대 출신으로 9.11 테러로 아내를 잃었다. 이로 인하여 전쟁의 상흔을 늘 안고 사는 인물이다. 일 이외는 말을 않고 불면증을 앓고 있다. 다소 까칠하나 마음은 따뜻한 일 중독자이다. 언론재벌의 비리에 맞서는 소신있는 수사관이며, 침착하고 논리적인 심문으로 진실을 밝혀낸다. 실례로 맥은 나치독일 시절에 유대인들을 도망하게 해 준다고 속이고 나서 보물을 가로챈뒤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에 넘기던 죄를 지은 과거를 나치부역자에 대한 처벌을 면하려고 유대인 행세를 함으로써 숨겨온 히틀러 유겐트 출신 할아버지를 심문하는데, 유대인 단체의 도움으로 수집한 유대인 학살관련 사료에 근거한 추리로써 진실을 밝혀낸다. 물론 할아버지는 기소되었고, 아들은 아버지의 사악한 과거를 알고 용서하지 않았다. 유대인 학살에서 겨우 살아남은 유대인에게 음식을 제공하여 삶의 희망과 믿음을 갖게 한 부친의 영향과 9.11 테러로 아내를 잃은 경험으로 사람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다. 실례로 맥 반장은 위 사건의 할아버지 때문에 친척을 잃은 유대인 할머니를 찾아가 나치부역자 출신 할아버지가 가로챈 다이아몬드 브로치를 돌려주며 고통을 같이 나눈다. 멜리나 카나카레데스 (Melina Kanakaredes) - 스텔라 보나세라(Stella Bonasara) (시즌 1 ~ 시즌 6), CSI Level 3 전문분야는 총기류이며 그리스에서 이민했다. 마이애미의 켈리가 호레시오 반장을 협사, 보좌하는 부반장이면 이곳 뉴욕에서는 스텔라가 맥 반장을 협사, 보좌하는 부반장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하지만 시즌 6 마지막에서 스텔라 보나세라는 뉴올리언스 과학 수사대의 반장직을 맡게 되면서 뉴욕을 떠나게 된다. 후임으로 조 댄빌이 합류하게 된다. 클레어 폴라니 (Claire Forlani) - 페이튼 드리스콜(Dr. Peyton Driscoll) (시즌 3 ~ 시즌4, 시즌 6) CSI ME (검시관) 시즌 3부터 합류하여 시즌 3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활동했던 검시관으로 맥 반장의 마음을 사로잡은 사랑스런 여인이며 시즌 4에서 하차한 뒤, 시즌 6의 에피소드 22에서 객원 멤버로 참여하게 된다. 셀라 워드 (Sela Ward) - 조 댄빌(Jo Danville) (시즌 7 ~ 9), CSI Level 3 전직 FBI (미국 연방수사국)요원 출신. 스텔라 후임으로서 FBI 출신으로 FBI에서 배운 여러 기술을 이용하여 수사를 돕는다. FBI요원 출신이라 수수께끼에 둘러싸인 인물이기도 하다. 첫 출근날 린지의 훈장 수여식으로 인해 빈 사무실에 출근하다 시신을 발견하고 다음 날부터 수사관으로서의 일을 시작한다. 모든 사건 관계자는 과학적 증거물이 다른 것을 알려줄 때까지는 무혐의 상태여야 한다는 게 그녀의 수사 철학이다.(이른 바 무죄추정의 원칙.) 카마인 지오비나조 (Carmine Giovinazzo) - 대니 매서(Danny Messer), CSI Level 3 전문분야는 범죄 재구성이며 린지 매서 (린지 먼로)의 남편이다. 예전에 음악 사업을 한 적이 있고 야구 선수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던 플랙 형사와 매우 친하며 결혼 전에는 린지 먼로가 몬타나 주에서 온 것을 기념하여 '몬타나'라는 애칭을 지어주며 친분을 쌓는다. 바네사 펄리토 (Vanessa Ferlito) - 에이든 번(Aiden Burn) (시즌 1 ~ 시즌 2), CSI Level 3 전문분야는 골격이며 시즌 2 초반에 조사하던 사건 증거물 훼손이 발각되어 연구소에서 퇴직하였다. 이후 살인 사건의 피해자로 나타나 사건 현장에 단서를 남겨 범인 검거에 일조하게 된다. 안나 벨크냅 (Anna Belknap) - 린지 몬로(Lindsay Monroe) 혹은 린지 매서(Lindsay Messer) (시즌 2 ~), CSI Level 2 시즌 2에서 에이든 번의 퇴직으로 인해 에이든의 후임으로 과학수사대에 합류했으며 시즌 5에서 대니와 결혼하여 딸을 출산하였고 현재는 대니의 아내로 시즌 6 마지막회에서 대니를 인질로 잡았던 케이지가 투신 자살하였지만 케이지가 다시 살아서 대니의 집으로 침입하여 딸을 인질로 붙잡고 있는 케이지를 현장에서 사살하여 인질을 구한 공으로 무공훈장을 받는다. 로버트 조이 (Robert Joy) - 시드 해머백(Sid hammerback) (시즌 2 ~ 9), 검시관 시즌 2에서 쉘던 호크스의 이직으로 인해 새로 등장하게 된 검시관으로 前 검시관인 쉘던 호크스와 유사한 습관의 소유자임에도 불구하고 사건에 대한 통찰력으로 동료 수사관들을 돕고 있으며 진심으로 통료들을 아껴주는 면모의 소유자이다. 에이제이 버클리 (A. J. Buckley) - 아담 로스(Adam Ross) (시즌 2 ~ 9), 컴퓨터와 관련된 사이버 전문 수사관. 전문 분야는 디지털 기기 및 기술을 활용한 증거 분석이며 애리조나주 피닉스 출신 수사관으로 유년기에 괴로운 경험을 겪어서 그런지 강박 장애를 가지고 있다. 베스 올 (Bess Wohl) - 켄달 노박(Kendall Novak) (시즌 4), 보조 수사관. 시즌 4에서 애덤 로스와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수사를 돕는 보조 수사관. 힐 하퍼 (Hill Harper) - 쉘던 호크스(Sheldon Hawkes), CSI Level 2, 前검시관, 전문분야 : 법의학 대학을 18세에 졸업하고 6년 만에 의사 면허를 딴 수재로 수 년 간 응급실에서 지낸 바 있으며 두 환자를 의학적 관점을 조월해서 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보낸 기억 때문에 수술실을 떠나 검시소에서 일하게 된다. 이후 검시관에서 수사관으로 이직하게 된다. 에디 케이힐 (Eddie Cahill) - 돈 플랙(Don Flack), 뉴욕 경찰청 형사 뉴욕 경찰청 형사로 한때는 연인사이였던 여형사 '제스 엔젤' 형사의 죽음이 자신에게 있다고 판단하여 죄책감에 시달리다 맥 반장의 조언을 통해 현장에 복귀하게 된다. 맥 반장의 기지로 말미암아 사지에서 살아 돌아온 적이 있다. 엠마누엘 보기어 (Emmanuelle Vaugier) - 제스 앤젤 혹은 제시카 엔젤(Jess Angel or Jessica Angel), 뉴욕경찰청 형사 (시즌 3 ~ 시즌 5) 던 플랙 형사와 연인 사이였던 여자 형사이다. 시즌 5 마지막편에서 법원 앞 카페에서 법원에 출두할 증인과 함께 있었지만 이때 카페에 난입한 테러리스트와 총격전을 벌이다가 테러리스트의 총격에 맞아서 병원으로 후송되었으나 끝내 순직하였다. CSI:NY season 방송일(미국기준) CSI:NY season 1 2004/9/22 CSI:NY season 2 2005/9/28 CSI:NY season 3 2006/9/20 CSI:NY season 4 2007/9/26 CSI:NY season 5 2008/9/24 CSI:NY season 6 2009/9/23 CSI:NY season 7 2010/9/24 CSI:NY season 8 2011/9/23 CSI:NY season 9 2012/9/28 에피소드 목록 시즌6 한국판 방송 문화방송 CSI 뉴욕 CSI 뉴욕 시즌 1 : 2007년 9월 15일 - 2007년 12월 8일 CSI 뉴욕 시즌 2 : 2007년 12월 15일 - 2008년 3월 22일 CSI 뉴욕 시즌 3 : 2008년 10월 5일 - 2008년 12월 28일 CSI 뉴욕 시즌 4 : 2009년 6월 7일 - 2009년 11월 8일 CSI:NY 한국어판 성우진 이정구 (Mac Taylor 맥 테일러 役) 윤소라 (Stella Bonasera 스텔라 보나세라 役) 안지환 (Danny Messer 대니 메서 役) 최수진 (Lindsay Monroe 린지 먼로 役) 김태훈 (Sid Hammerback 시드 해머백 役) 이상범 (Sheldon Hawkes 셸던 헉스 役) 최원형 (Don Flack 던 플랙 役) 김서영 (Jess Angel 제스 앤젤役) 기경옥 (Peyton Driscoll 페이튼 드리스콜 役) 양지운 (Horatio Caine 호레이쇼 케인役) - 시즌2에서 마이애미와 크로스에피에 출연 CSI 관련 시리즈 CSI 과학수사대 CSI 마이애미 CSI: 사이버 같이 보기 뉴욕경찰 24시 (NYPD Blue) (1990년대 ~ 2000년대 TV 드라마 시리즈) 외부 링크 공식 웹사이트 2004년 드라마 텔레비전 프로그램 파생작 미국의 텔레비전 드라마 CBS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뉴욕을 배경으로 한 텔레비전 프로그램 CBS 텔레비전 스튜디오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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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A%B8%B0%20%EA%B8%B0%EC%A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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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기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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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 기전(-棋戰)은 장기 대회로 특히 프로 장기 기사들이 상금을 걸고 승자를 가리는 대회를 뜻한다. 1957년에 국수 수위전을 최초 시작으로 각종 기전들이 개최되었다. 단판일 경우, 대부분 점수제 방식으로 대국이 진행된다. 주로 국내에만 기전이 있었으나, 2009년 10월을 시작으로 최초로 국제 장기 기전이 개최되었다. 주로 한국장기협회(현재는 대한장기협회)에서 주관하였다. 국제 기전 세계인 장기 대회 한국의 기전 목록 명인전 (1990년~) 국수전 (新) (1996년~1999년, 2006년) KBS 장기왕전 (2000년~) 총재배 장기 최강자전 (2006년~) 한게임 장기 챔피언스리그 (2007년~) 한게임 장기 프로리그 (2007년, 2010년) 한게임 장기 그랑프리 (2010년) 2010 명인장기 전국 토너먼트 (2010년~2011년) 이체배 왕위전 (2008년~) 장기 기성전 (2005년, 2011년) 임금님매트배 장기 천하전 (2006년) 대한홍삼배 엠게임 프로리그 (2003년) 천석배 (1986년~1998년) 프로 10걸전 (1997년~1999년) 전주시장배 프로부 (2004년~2006년, 2008년~) 진안홍삼배 프로부 (2008년~) KBS 신춘 장기 최고수전(1983년~1990년) KBS 장기 고수전 (1992년~1993년) 제주도지사배 프로부 (2003년~2005년) 햇터배 한국장기 프로리그 (2004년) 대한일보사배 국수전 (1968년~1969년) 한국장기 최고수전 (2004년) 주간경향배 패왕전 (1987년~1991년) 국수 수위전 (1957년) 경향신문사배 대장군전 (1970년~1973년) 기사회장배 (1986년~?) 진로배 (1970년) 이사장배 (1985년~1995년) 지부 대항전 (1994년~1998년) 한중 교류전 (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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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7%90%EC%9D%B4%ED%8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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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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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큐(永久, えいきゅう)는 일본의 연호(元号) 중 하나이다. 전후 : 덴에이(天永) 이후 - 겐에이(元永) 이전. 시기 : 1113년 ~ 1117년 천황 : 도바 천황 개원(改元) 덴에이 4년 7월 13일(율리우스력 1113년 8월 25일), 천재지변・괴이한 일・역병・전란 등을 이유로 개원. 에이큐 6년 4월 3일(율리우스력 1118년 4월 25일), 겐에이로 개원된다. 출전 상세한 출전은 불명이지만, 『시경』의 「来帰自鎬、我行永久」 혹은 『채옹의(蔡邕議)』의 「其設不戦之計、守禦之固者、皆社稷之臣、永久之策」에서 따왔다고 여겨진다. 시키부다유(式部大輔, 시키부쇼의 실질적 장관) 스가와라 노 아리요시가 간진(勘申, 조정에서 의식 등 여러 일에 대해 선례・전고・길흉・일시 등을 조사해 진언하는 일)을 맡았다. 에이큐 시기에 일어난 일 이 절은 집필중입니다. 가필, 정정해 주실 협력자를 구하고 있습니다. (← 일본 위키의 메시지) 서력과의 대조표 같이 보기 일본의 연호 일람 일본의 연호 헤이안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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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D%9D%AC%EC%A7%84%20%281983%EB%85%8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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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진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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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진(1983년 5월 9일 ~ )은 대한민국의 배우 겸 모델이다. 생애 장희진은 인천에서 태어났으며, 2003년 패션 잡지 《에꼴》의 모델로 연예계에 입문하였다. 이듬해인 2004년에 《논스톱 5》에 본인 역으로 출연(엑스트라 출연)하며 배우로 데뷔하였다. 학력 간석여자중학교 석정여자고등학교 졸업 경희사이버대학교 호텔경영학과 건국대학교 예술학부 출연 작품 드라마 2004년 MBC 일일 시트콤 《논스톱 5》 ... 희진 역 2004년 ~ 2005년 SBS 특별기획 드라마 《토지》 ... 양현 역 2005년 SBS 드라마스페셜 《건빵선생과 별사탕》 ... 오은별 역 2005년 MBC 베스트극장 《어느 멋진 날》 ... 순영 역 2008년 KBS2 드라마시티 《실연 복수 전문가 Miss 조》 ... 조선주 역 2008년 ~ 2009년 MBC 드라마넷 토요 미니시리즈 《서울무림전》 ... 소청비 역 2009년 MBC 일일시트콤 《태희 혜교 지현이》 ... 장희진 역 2009년 KBS2 납량특집 월화 미니시리즈 《전설의 고향 (계집종)》 ... 수진 역 2011년 KBS1 TV문학관 《TV문학관 사랑방손님과 어머니》 ... 선화 역 2011년 MBN 주말 미니시리즈 《왓츠업》 ... 은채영 역 2011년 ~ 2012년 KBS2 월화 미니시리즈 《스파이 명월》 ... 주인아 역 2012년 KBS2 월화 미니시리즈 《빅》 ... 이세영 역 2012년 KBS2 주말연속극 《내딸 서영이》 ... 정선우 역 2013년 ~ 2014년 SBS 주말 특별기획 드라마 《세 번 결혼하는 여자》 ... 이다미 역 2014년 KBS2 드라마 스페셜 《KBS 드라마 스페셜 - 세 여자 가출소동》 ... 여진 역 2015년 MBC 수목 특별기획 드라마 《밤을 걷는 선비》 ... 수향 역 2015년 SBS 드라마스페셜 《마을 - 아치아라의 비밀》 ... 김혜진 역 2016년 JTBC 금토 미니시리즈 《마녀보감》 ... 중전 심씨 / 대비 심씨 (인순왕후 심씨) 역 2016년 KBS2 수목 미니시리즈 《공항 가는 길》 ... 김혜원 역 2017년 tvN 월화 미니시리즈 《내성적인 보스》 ... 서연정 역 2017년 MBC 주말연속극 《당신은 너무합니다》 ... 정해당 / 유쥐나 역 2018년 KBS2 드라마스페셜 《KBS 드라마 스페셜 - 이토록 오랜 이별》 ... 정이나 역 2019년 TV조선 주말 미니시리즈 《바벨》 ... 한정원 역 2020년 tvN 수목 미니시리즈 《악의 꽃》 ... 도해수 역 2021년 ~ 2022년 MBC 금토 미니시리즈 《옷소매 붉은 끝동》 ... 중전 김씨 역 2023년 tvN 주말 미니시리즈 《판도라: 조작된 낙원》 ... 고해수 역 영화 예능, 기타 음악 광고 수상 및 후보 각주 내용주 참조주 외부 링크 1983년 출생 안동 장씨 살아있는 사람 인천광역시 출신 배우 석정여자고등학교 (인천) 동문 경희사이버대학교 동문 건국대학교 동문 대한민국의 여자 텔레비전 배우 대한민국의 여자 영화 배우 대한민국의 로마 가톨릭교도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21세기 대한민국 사람 MBC 연기대상 여자 우수연기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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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D%98%B8%EB%A5%98%EC%82%AC%20%EC%A7%80%EC%97%AD%EC%9D%98%20%EB%B6%88%EA%B5%90%EA%B8%B0%EB%85%90%EB%AC%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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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류사 지역의 불교기념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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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류사 지역의 불교기념물()는 1993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나라현 이코마군 이카루가정에 있는 호류지(法隆寺) 및 호키지(法起寺)의 불교 건축물을 말한다. 개요 호류지를 비롯 나라 현 지역의 불교 건축물은 쇼토쿠 태자(聖徳太子)와 인연이 깊다. 중국 육조 시대의 건축양식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특히 호류지의 사이인가란(西院伽藍)은 건립연도에 관해 여러 설이 존재하지만, 세계 최고(最古)의 목조건물로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등록 경위 호류지를 비롯한 일련의 사원들은 메이지 시대 초기에 불교에 대한 탄압으로 위축되었지만, 후에 정책은 뒤집어졌고, 호류지 금당과 오층탑을 비롯 여러 건물이 1897년 사찰보호법제정으로 국가로부터 보호받았다. 태평양 전쟁후 이들 건물은 1950년 제정된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국보 및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시간이 흘러 1993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등록 기준 호류지 지역의 불교건조물의 등록 요건은 등록기준 1항, 2항, 4항, 6항에 해당된다. (1) 독특한 예술적 혹은 미적인 업적, 즉 창조적인 재능의 걸작품을 대표 할 것. (2) 일정한 시간에 걸쳐 혹은 세계의 한 문화권내에서 건축, 기념물조각, 정원 및 조경디자인, 관련예 술 또는 인간정주 등의 결과로서 일어난 발전사항들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 (4) 가장 특징적인 사례의 건축양식으로서 중요한 문화적, 사회적, 예술적, 과학적, 기술적 혹은 산업의 발전을 대표하는 양식. (6) 역사적 중요성이나 함축성이 현저한 사상이나 신념, 사진이나 인물과 가장 중요한 연관이 있는 것. 같이 보기 일본의 세계유산 아시아의 세계유산 나라현의 건축물 나라현의 관광지 일본의 세계유산 호류지 이카루가정 이카루가정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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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C%A4%EC%84%9D%ED%98%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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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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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호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윤석호(尹錫祜, 1865 ~ ?)는 대한제국과 일제 강점기의 관료이다. 윤석호(1939 ~ )는 대한민국의 시인이다. 윤석호(1957 ~ )는 대한민국의 드라마 연출자이다. 윤석호(2001 ~ )는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이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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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8%81%EC%9D%BC%20%EB%8F%99%EB%A7%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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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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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일 동맹(, )은 1902년 1월 30일 러시아 제국의 남하에 대비하여 이해를 함께하던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영국)과 일본 제국 양국이 체결한 군사 동맹이다. 1902년 1월 30일 영국 런던에 있는 랜즈다운 후작 저택(Lansdowne House)에서 헨리 페티피츠모리스 영국 외무장관과 하야시 다다스 영국 주재 일본 공사가 조인하면서 제1차 영일 동맹이 형성되었다. 1905년 8월 12일을 기해 개정·조인된 조약에 따라 제2차 영일 동맹이 형성되었으며 다시 1911년 7월 13일을 기해 개정·조인된 조약에 따라 제3차 영일 동맹이 형성되었다. 조약 내용 6개 조로 구성된 영일 동맹 협약에는 일본은 중국과 조선, 영국은 중국에서의 이익을 서로 인정하였다. 또한, 한쪽이 다른 나라와 교전할 때에는 동맹국은 엄정중립을 지키며, 한쪽이 2개국 이상과 교전할 때에는 동맹국이 협동 전투에 임한다(방수 동맹)는 등의 내용을 체결하였다. 이 동맹은 기한이 5년으로 양국의 제국주의 정책을 상호 지원·보완하는 내용으로 성립되었기 때문에 러·일전쟁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독일 문제로 영국과 우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던 프랑스까지 일본의 일이라면 중립을 지키게 되었다. 청일 전쟁에서 일본의 승리 후 랴오둥반도 할양 문제를 놓고 프랑스, 러시아, 독일이 청나라의 편을 들어 일본에 무력시위까지 감행했던 것(이른바 삼국간섭)을 참작하면 엄청난 반전이었다. 1905년 8월 12일 양국은 협약을 개정하였는데, 일본의 조선 보호권을 확인하고, 동맹 적용 범위를 인도까지 확대하였다. 또한, 동맹국이 한쪽의 다른 1국과 전쟁을 하는 경우도 동맹국이 참전하기로 하였다(공수 동맹). 2차 조약 조인 후 제2차 한일협약이 같은 해 11월 17일에 체결된 것에 주목해야 한다. 기한은 10년 동안이었으나, 1911년 7월 13일 다시 개정되어 다시 10년 동안 연장하였으며, 미국은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였다. 일본은 미국과 이미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보장받고 있었다. 또 국제 상황의 변화로 대러시아 동맹에서 대독일 동맹으로 전환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이 일어났을 때 일본은 이 조약을 구실로 영국과 함께 연합국 진영에 참전하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인 1921년 워싱턴 회의에서 일본, 미국, 영국, 프랑스 4개국이 체결한 조약이 성립되면서 폐기되었으며 1923년 8월 17일 영일 동맹은 공식 폐기되었다. 참고 자료 Anglo-Japanese Alliance - London School of Economics STICERD Discussion paper (2002) Studies in the Anglo-Japanese Alliance (1902-23) - LSE STICERD Discussion paper (2003) 일본 제국의 조약 영국의 조약 조선의 대외 관계 1902년 영국 1902년 일본 영국-일본 관계 20세기 군사 동맹 러일 전쟁 1902년 체결된 조약 1902년 발효된 조약 그레이트 게임 1902년 1월 가토 다카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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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5%84%ED%82%A4%EB%B0%94%EA%B3%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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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바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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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하바라계(), 또는 아키바계()는 도쿄도 지요다구 아키하바라에 모이는 사람들 가운데, 이른바 오타쿠 중에서도 아키하바라를 중심으로 유행하는 일본의 애니메이션이나 만화, 코스프레, 동인지, 게임, 피규어 등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나 그들에게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경향, 아키하바라를 상징하는 문화 등을 가리킨다. 개요 아키하바라계는 8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가며, 도쿄의 아키하바라 인근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애니메이션, 만화, 메이드, 아이돌, 게임"에 큰 관심을 갖는 오타쿠를 지칭한다. 아키하바라 도쿄도 지요다구의 아키하바라는 첨단 기술 상가로 잘 알려져 있다. 일본의 비디오 게임 산업, 애니메이션과 만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아키바계 사람들은 지역의 전자상가를 후원할 뿐 아니라, 아키하바라에 점포를 열기도 한다. 이러한 점포들 중 많은 수가 코스프레 상점이며, 그들은 이것이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의 규칙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점포들은 넓은 범위의 상품들과 서비스를 제공한다. 몇몇은 모형 무기류를 판매하기도 하며, 중고 서점이나, 독특한 식품을 제공하기도 한다. 각주 같이 보기 오타쿠 전차남 시부야계 아키하바라 하위문화 오타쿠 일본의 패션 헤이세이 시대의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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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A7%8C%EB%8B%A4%EB%A6%B0%20%EC%98%A4%EB%A6%AC%EC%97%94%ED%83%88%20%ED%98%B8%ED%85%94%20%ED%99%8D%EC%BD%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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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홍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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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홍콩()은 홍콩의 5성급 호텔이다. 만다린 오리엔탈 그룹이 지은 최초이자 대표적인 호텔이다. 1963년 더 만다린이라는 이름으로 홍콩섬의 금융 무역 중심지인 콘노트가 5번지에서 개업하였다. 역사 개요 비록 이 호텔은 초창기 홍콩과 마카오 시민들에게 사치스러운 성격과 정체성을 가진 호텔로 알려져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개업 이후로 많은 상을 받은 우수한 호텔로 빠르게 자리잡아갔다. 오랜 동안, 이 호텔은 아시아 최고의 호텔로 꼽혀 왔고, 많은 외교관이나 연예인들이 우선적으로 선택하여 머무는 호텔이었다. 케이트 모스, 케빈 코스트너, 톰 크루즈, 브루나이 국왕, 다이애나 왕세자빈, 미국 역대 대통령이었던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조지 H. W. 부시 등이 이 호텔에 머물렀다. 업계의 중역이나 부유층이 곧잘 머물렀다. 장국영 2003년 4월 1일, 홍콩의 가수, 영화 배우 장궈룽(장국영)이 이 호텔에서 투신 자살하였다. 2003년 4월 1일 장궈룽은 호텔 24층에서 투신하였다. 그는 우울증에 시달려온 것으로 조사되었다. 금색의 강조점이 들어간 이탈리아제 흑색 대리석 외관을 갖추고 있다. 호텔 내부, 특히 로비에서는, 동양적인 장식 등을 볼 수 있다. 2005-2006 건물 개보수 2006년 9월 28일 9개월 간의 건물 개보수가 끝나 재개장하였다. 502 개의 손님방과 슈트를 갖추고 있다. 9개의 레스토랑과 바를 포함 이발소, 미용실, 수영장, 연회실, 상하이식 전신 스파 등을 구비하였다. 레스토랑 & 바 엠 바() 호텔 꼭대기에 있는 바이다. "만 와"에서 중국 타파를 가져와 판다. 샴페인과 마티니도 판다. 만다린 그릴 & 바 홍콩에서 유명한 스테이크 하우스이다. 원래 이름은 "더 새들 & 서로인"이었다. 건물 개보 수 후, 해물 요리를 파는 “크루타신 바”가 추가 됐다. 피에르 2006년 10월 개업한 콘셉트 레스토랑이다. 미쉘린 가이드에서 별점 3개를 받은 주방장 피에르 가그나이르가 운영하고 있다. "봉’스"(1997-2005), 전통 프랑스 레스토랑 "피에로"(1979-1997)가 있던 자리이다. 만 와 유서가 깊은 중국 요리 레스토랑이다. 1968년에 새 주방장 오오이 순 록이 "버튼 서퍼클럽"이 있던 자리에 개업하였다. 클리퍼 라운지 연예인과 사회 저명 인사들에게 하이 티로 유명한 라운지이다. 으로 알려져 있다. 카페 코셋 만다린 케이크 가게 옆에 있는 카페이다. 오픈 키친이다. 옛 이름은 "더 카페"이다. 더 치너리 바 1963년 젠틀멘’스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개장하였고, 1990년 때까지 남녀 모두에게 매장을 열지는 않았다. 콜로니얼 풍 요리와 위스키를 판다. 크럭 룸 치너리 바 뒤편에 있다. 크럭 샴페인을 마실 수 있고, 호텔 대표 주방장이 만든 저녁을 판다. 만다린 케이크 가게 직접 만든 쵸콜릿, 케이크, 빵을 핫 쵸코와 커피를 곁들여 판다. 캡틴’스 바 점심 때는 간단한 점심 식사를 팔고 저녁에는 칵테일을 판다. 토니 데사르 트리오가 연주하는 라이브 음악을 제공한다. (월-토 저녁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랜드마크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2005년 만다린 오리엔탈 그룹은 홍콩에서 두 번째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을 한 블록 떨어진 곳에 개장하였다. 이름은 랜드마크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이다. 이 호텔은 일종의 부티크 호텔이며, 랜드마크 (홍콩) 쇼핑몰에 붙어 있다. 각주 Hong Kong Reopens Its Doors Mandarin Oriental Dining in Hong Kong 외부 링크 만다린 오리엔탈 홍콩 1963년 설립 중완 홍콩의 호텔 홍콩의 마천루 1963년 완공된 건축물 중사이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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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A%B3%A0%EC%9A%B4%EC%A0%90%EB%B0%95%EC%9D%B4%ED%91%B8%EB%A5%B8%EB%B6%80%EC%A0%84%EB%82%98%EB%B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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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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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점박이푸른부전나비(scarce large blue, 학명: Phengaris teleius)는 부전나비과의 나비이다. 이름과는 달리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 오스트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체코, 프랑스, 조지아, 독일, 헝가리, 이탈리아, 일본, 카자흐스탄, 몽골, 네덜란드, 폴란드, 루마니아, 러시아, 북부 세르비아, 스페인, 스위스, 우크라이나, 구북구에서 동쪽으로 일본에 이르는 여러 지역에 분포한다. 이 종은 1779년 Johann Andreas Benignus Bergsträsser에 의해 처음 기재되었다. 아종 6개의 아종이 있다. P. t. teleius 중앙 유럽, 캅카스, 북부 시베리아 P. t. chosensis (Matsumura, 1927) 남부 우수리강 P. t. euphemia (Staudinger, 1887) 아무르주, 우수리강 P. t. obscurata (Staudinger, 1892) 자바이칼 P. t. sinalcon Murayama, 1992 northern 중화인민공화국 P. t. splendens (Kozhantshikov, 1924) 알타이산맥, 사얀산맥 각주 부전나비과 한국의 곤충 유럽의 곤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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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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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M.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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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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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e(무브)는 프로듀서인 t-kimura가 주축한 일본의 2인조 혼성 그룹으로 애니메이션 《이니셜 D》의 주제가로 유명하다. 소속사는 avex tune이다. 2008년 12월에 t-kimura가 프로듀서로만 남기로 하고 탈퇴해 현재는 2인조로 활동 중이다. 약력 1997년 - 10월 1일에 『ROCK IT DOWN』으로 데뷔, avex의 레이블인 avex tune에 소속됨. 1998년 1월 7일에 2번째 싱글 『around the world』가 발매, 이 앨범으로 m.o.v.e는 이니셜 D의 주제가를 장기간 맡게 된다. 타이완의 타이베이시에서 열린 TAIPEI J-DANCE FESTIVAL을 통해 첫 해외 공연을 가짐.(3만명의 관중 앞에서 공연) 2001년 - 1월 11일에 출시된 싱글 『Gamble Rumble』이 오리콘 주간 차트에 처음으로 톱 10 진입 2003년 - 미국 댈러스에서 열린 Anime FESTS!2003에 출연 2005년 미국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생긴 상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룹명을 기존의 move에서 현재의 m.o.v.e로 수정하면서 9월부터 연속으로 싱글 앨범을 발매, 미국의 iTunes Store에 악곡 판매가 시작된다. 9월에 발매된 싱글 『FREAKY PLANET』이 미국 소니가 제공하는 국제적 음악 리믹스 컨테스트인 Acid Planet에 일본 아티스트의 곡으로서는 처음 발탁된다. 2006년 1월 25일에 4개월 연속으로 발매한 싱글 앨범이 모두 들어간 8번째 앨범 『GRID』를 발매, 이 이후 약 1년 반동안 신곡이 공개되지 않았다. 4월부터 테레비 도쿄에서 방송되는 프로그램인 격주!GT의 엔딩곡으로 「Good Day Good Time」이 2007년 3월까지 사용되었으며 같은 해 5월부터는 「Systematic Fantasy」가 엔딩곡으로 2008년 3월까지 쓰였다. 2007년 독일 카셀에서 열린 Connichi 2007에 참가, 4월에는 미국 시애틀에서 열린 Sakura Con 2007에 단독으로 출연해 3천 명을 동원했다. 8월 22일에 발매된 28번째 싱글 『SPEED MASTER』를 통해 8-BALL과 합작, 다른 아티스트와 합작한 것은 현재까지 이 앨범이 유일함. 7월 7일에는 일본 현지에서는 처음으로 참가하는 애니메이션 이벤트인 Animelo Summer Live 2007 Generation-A에 참가(일본 부도칸)해 Systematic Fantasy와 Gamble Rumble을 열창. 10월에 데뷔 10주년을 맞이해 10월 3일에 기념앨범인 『10th Anniversary MEGA BEST(CD+DVD인 한정판과 CD만 있는 통상판)』과『10th Anniversary GIGA BEST(DVD)』을 같은 날에 출시했다. 2008년 1월 26일에 나고야, 1월 27일에 오사카시, 2월 3일에 도쿄 시부야에 있는 Club Quattro에서 『m.o.v.e 10 YEARS ANNIVERSARY MEGALOPOLIS TOUR 2008』을 가짐. 특히 이 가운데 도쿄 공연은 『LIVE CD at SHIBUYA CULB QUATTRO』로 출시 5월 11일에 Wonder Goo 모리야점 내부에 있는 Goost에서 스페셜 라이브를 진행, 오후 3시와 오후 5시 공연으로 이뤄져 LIVE CD at SHIBUYA CULB QUATTRO(CD)』와『LIVE DVD at SHIBUYA CULB QUATTRO(DVD)』를 Wonder Goo에서 구입한 구입자를 대상으로 추첨해 150조 300명이 초대되었다. 6월 7일과 6월 8일 도쿄 오다이바에서 열리는 D1 GRAND PRIX TOKYO DRIFT in ODAIBA에서 라이브를 가지면서 신곡인 DIVE INTO STREAM을 처음으로 공개 8월 30일 Animelo Summer Live 2008 Challenge에 참가. 12월 2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리더인 t-kimura의 탈퇴 발표. avex와의 계약은 이미 2008년 4월에 만료되어 있으며 아티스트 및 예능 활동을 종료해, 프로듀서의 위치에 전념한다는 것. 단, m.o.v.e의 프로듀서로서의 활동은 계속해 악곡 제작은 실시한다고 말한다. 2009년 1월 21일에 9번째 앨범인 『Humanizer』를 출시 4월 4일에 SHIBUYA-AX에서 『LIVE TRANSFORM 2009』를 진행, t-kimura가 아티스트로서 정식 무대에서 활동하는 마지막 공연이 되었다. 관객은 『Humanizer』에 동봉된 용지에 적힌 시리얼 번호를 공식 홈페이지의 특설 페이지에 입력해 응모하는 형식으로 추첨 대상이 되었고 당선자에게는 메일로 당선 결과가 보내져 무료 초대가 되었다. 또한 탈락해도 일련번호를 입력하는 방식으로 당일 니코니코 동영상에서 행해지고 있던 라이브 장면을 볼 수 있었다. 8월 19일 첫 번째 커버링 앨범인 『anim.o.v.e 01』이 발매, 앨범 내에는 신곡도 있으며 대부분의 곡들이 모모이 하루코, 미키 신이치로, 알리 프로젝트의 타카라노 아리카 등의 피쳐링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같이 나온 CD+DVD 판에는 4월 4일 SHIBUYA-AX에서 열린 t-kimura의 마지막 라이브인 『LIVE TRANSFORM 2009』도 DVD에 들어갔다. 8월 23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열린 Animelo Summer Live 2009 -RE:BRIDGE-에 참가함으로써 3년 연속 참가에 성공한다. 멤버 메인 motsu (모츠, 본명 : 세가와 모토다카(瀬川素公, せがわ もとたか), 1967년 5월 22일생) 랩, 보컬, 작사 담당 yuri (유리, 본명 : 마스다 유리(益田祐里, ますだ ゆり), 1977년 2월 22일생) 보컬 담당 서포트 t-kimura (본명 : 기무라 다카시(木村貴志, きむら たかし), 1968년 1월 25일 생) 프로듀서, 작사 및 작곡 담당 원년 멤버로 멤버 활동 당시에는 신시사이저, 기타, 피아노, 프로듀스, 작곡, 편곡, 보코타 보컬 담당 ASAKI (아사키) 기타 담당 Charlie K (찰리 케이) 키보드 담당 DJ Key (디제이 케이) DJ,기타 전자사운드 및 작곡담당 결성까지의 과정 Favorite blue로 활약하던 t-kimura가 복면 유닛(실제로 결성 초기의 move가 참가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의하면 FB와의 듀엣 등 세션 기획도 진행되고 있었다고 motsu가 발언했다.)으로 생각해 놓은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 결성. 그중에 오디션 프로그램인 Asayan이 개최했고 거기에 참가한 yuri에 motsu와 t-kimura가 주목, 실제로 그 프로그램은 합격자가 없다는 결과가 나왔지만 악곡에 비상하게 매치한 것을 들어 yuri가 정식적으로 합류했다. 팀명은 「하나의 음악성에 안주하지 않고 항상 무엇인가를 추구한다」는 뜻으로 만들었다. 음악의 특성 보컬인 yuri가 평이한 멜로디로 노래해 간주부분이나 보컬에 랩을 넣는 방식으로 motsu의 랩이 들어간다. 예외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전술한 형태가 많다. 악곡의 장르는 그룹 명에서도 보이듯이 기본적으로는 한 곳에 한정되지 않고 많은 장르에 도전하는 올라운드 타입이지만 사운드의 기초는 전자 악기를 이용한 일렉트로 사운드를 도입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최근에는 지금까지 보기 힘들었던 발라드에도 도전해 『Angel Eyes』는 처음으로 싱글 A면에 발라드를 배치 라이브에서는 개성적인 퍼포먼스를 하는 일이 많아 드럼 대신 일본식 북을 사용하거나 신시사이저 위에 올라가거나 곡 연주 중에 반나체의 남성(츠치야 시게오 등)을 난입시키는 일이 많았다. 곡 장르 모음 유로비트 록 프로그레시브 록 라우드 록 발라드 트랜스 테크노 얼터너티브 록 고딕 메탈 심포닉 메탈 하드코어 테크노 힙합 라틴 음악 보코타 앨범 목록 싱글 ROCK IT DOWN (1997/10/01) AVDT-20009 around the world (1998/01/07) AVDT-20011 over drive (1998/03/18) AVDT-20018 Rage your dream (1998/05/13) AVDT-20028 BREAK IN2 THE NITE (1998/11/11) AVDT-20035 platinum (1999/06/30) AVCT-30005 Blazin' Beat (1999/10/27) AVCT-30009 words of the mind -brandnew journey- (2000/01/19) AVCT-30017 sweet vibration (2000/07/19) AVCT-30018 Gamble Rumble (2001/01/11) AVCT-30034 SUPER SONIC DANCE (2001/06/13) AVCT-30040 FLY ME SO HIGH (2001/08/08) AVCT-30044 come together (2001/12/19) AVCT-30048 Romancing Train (2002/02/06) AVCT-30049 애 FUTURE BREEZE (2002/06/26) AVCT-30054 ¡WAKE YOUR LOVE! (2002/11/20) AVCT-30060 BURNING DANCE (2003/06/25) AVCT-30071 Painless PAIN (2003/09/03) AVCT-30077 Blast My Desire (2004/01/07) AVCT-30081 DOGFIGHT (2004/05/26) GHETTO BLASTER (2004/08/04) AVCT-30089(통상판), AVCT-30088(CD+DVD) How To See You Again/Noizy Tribe (2005/01/13) AVCT-30093(통상판), AVCT-30092/B(CD+DVD) FREAKY PLANET (2005/09/28)(4개월 연속으로 발매되는 싱글 제 1탄) AVCT-30102(CD+DVD), AVCT-30103(통상판) DISCO TIME (2005/10/26)(4개월 연속으로 발매되는 싱글 제 2탄) AVCT-30106/B(CD+DVD), AVCT-30107(통상판) 雷鳴-out of kontrol-(뇌명-out of kontrol) (2005/11/23)(4개월 연속으로 발매되는 싱글 제 3탄) AVCT-30112/B(CD+DVD), AVCT-30113(통상판) Angel Eyes (2005/12/14)(4개월 연속으로 발매되는 싱글 제 4탄) AVCT-30114(CD+DVD), AVCT-30115(통상판) Systematic Fantasy/Good Day Good Time (2007/06/20) AVCT-30123 SPEED MASTER (2007/08/22) ※m.o.v.e feat. 8-BALL(AVCT-30124)、8-BALL feat. m.o.v.e(AVCD-31244) 명의 DIVE INTO STREAM (2008/07/02) AVCT-30129 앨범 오리지널 앨범 electrock (1998/06/24) AVCT-10015 worlds of the mind (2000/01/19) AVCT-10065 Operation Overload 7 (2001/02/15) AVCT-10091 SYNERGY (2002/02/27) AVCT-10108 DECADANCE (2003/09/10) AVCT-10134 Deep Calm (2004/01/28) AVCT-10141 BOULDER (2005/01/26) AVCT-10153 GRID (2006/01/25) CD+DVD판은 AVCT-10156, 통상판은 AVCT-10157 Humanizer (2009/01/21) AVCT-10169 리믹스 앨범 remixers play move (2000/3/23) AVCT-10073 SUPER EUROBEAT presents EURO movement (2000/11/29) AVCD-11986 HYPER TECHNO MIX REVOLUTION I (2001/05/30) AVCT-10099 HYPER TECHNO MIX REVOLUTION II (2001/07/25) HYPER TECHNO MIX REVOLUTION III (2001/10/11) TropicanTrops (2002/08/28) FAST FORWARD〜FUTURE BREAKBEATNIX〜 (2004/05/26) 베스트 앨범 move super tune -BEST SELECTIONS- (2002/12/04) AVCT-10116 REWIND〜singles collection+〜 (2004/03/24) AVCT-10144 10th Anniversary MEGA BEST (2007/10/03) 통상판이 AVCT-10165~6, CD+DVD판이 AVCT-10163-4/B 라이브 CD LIVE CD at SHIBUYA CULB QUATTRO(2008/03/19) AVCT-10167 커버 앨범 anim.o.v.e 01(2009/08/19) AVCT-10170/B 및 AVCT-10171 오디오 DVD move super tune -BEST SELECTIONS- (2002/12/04) AVBT-91015 비디오 DVD overdose pop star (2000/11/1) AVBT-91005 SYNERGY CLIPS (2002/03/13) AVBT-91011 FUTURE BREEZE+various works (2002/06/26) AVBT-91012 ¡WAKE YOUR LOVE! DVD (2002/11/20) AVBT-91013 Painless PAIN DVD (2003/09/03) AVBT-91024 Blast My Desire (2004/01/07) AVBT-91028 DOGFIGHT (2004/05/26) AVBT-91029 10th Anniversary GIGA BEST (2007/10/03) AVBT-91052 라이브 DVD LIVE DVD at SHIBUYA CULB QUATTRO(2008/03/19) AVBT-91054 비디오(VHS) ELECTRIZE (1998/10/07) AVVT-90003 ELECTRIZM (2000/11/01) AVVT-90007 m.o.v.e와 이니셜 D의 관계 애니메이션 이니셜 D의 주제가를 1기부터 4기까지 일부 곡을 제외하고는 일괄적으로 담당하고 있어 본 작품으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공격적인 음악의 비트가 공격적인 드리프트 주행에 잘 먹힌다. 게임 잡지나 인터뷰 등에서 멤버들이 본 작품의 팬인 것을 과거부터 자주 드러냈다. motsu와 t-kimura 이 두명이 서브 컬처에 조예가 깊은 것은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DOGFIGHT」를 시작으로 타이틀이나 가사에 작중의 상황을 강하게 의식한 악곡도 많다. 애착도 매우 깊은 것인지 과거의 곡을 고치거나 Remix 한 것도 많으며 애니메이션 OST에는 싱글의 신곡 또는 Remix 곡을 제공하고 있다. 이니셜 D 1st Stage에서는 주제가 외에도 첫 앨범인 「electrock」의 수록 곡 대부분이 극중에서 삽입곡으로 등장한다. 이니셜 D Fourth Stage Act.20에 게스트로 출연한다.(갤러리의 위치에 있다.) 「FREAKY PLANET」 「DISCO TIME」 「뇌명-out of kontrol-」 「Angel Eyes」로 이어지는 4개월 연속 릴리스 싱글은, 이니셜 D와 한 합작으로 기획되어 4곡의 PV를 조합한 쇼트 무비를 제작, 앨범 「GRID」에 들어있는 DVD에는, 이 작품의 완전판이 수록되고 있다.(통상판이 아니라 CD+DVD판에 CROSSING TRAIL ~ROAD MOVIE COMPLETED~ 라는 이름으로 들어가 있다.) 제1탄 「FREAKY PLANET」은 하루나 산에서 촬영, 극중에서는 AE86도 등장한다. 제3탄의 「뇌명-out of kontrol」은 이니셜 D의 스탭에 의해서 제작, 멤버 3명이 주인공·후지와라 타쿠미와 공동 출연. motsu(드라이버)·t-kimura(조수석)···붉은 RX-7 FD3S (넘버 「시나가와 33 05-111」) yuri···타쿠미가 운전하는 AE86의 조수석 같이 보기 ASAKI RAVEMAN 이니셜 D 에너지 에어포스 D1그랑프리(TEAM m.o.v.e팀이 참가중) Mother Ninja 참고 외부 링크 공식 사이트 J!-ENT에서 영어로 한 데뷔 10주년 기념 인터뷰 ACiD Planet 국내 팬 사이트 (현재는 거의 기능 정지) ] 무브 이니셜 D 유로비트 1997년 결성된 음악 그룹 2013년 해체된 음악 그룹 2인조 음악 그룹 에이벡스 그룹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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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84%A0%EA%B5%90%EC%82%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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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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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宣敎師, missionary)는 기독교에서는 복음을 타국에서 가서 전하는 사역자이다. 넓은 의미로 여러 종교들에 속한 사람이 소속된 종교의 교리를 전파하는 사람을 말한다. 기독교 가톨릭 일본에 최초로 가톨릭을 전한 선교사는 예수회 소속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이다. 1549년에 일본에 도착하여 선교를 한 그는 '동양의 사도'로 불린다. 중국에 최초로 가톨릭을 전한 선교사는 이탈리아 출신 마테오 리치이며 그가 중국에 선교를 시작한 시기는 1583년이다. 한반도에 처음으로 파송되어 입국한 가톨릭 선교사는 중국인 주문모(周文謨)이며, 그는 1794년(정조 18)년 음력 12월 3일에 얼어붙은 두만강을 넘어 입국했으며 1801년 신유박해때 조선에서 순교했다. 개신교 개신교에서의 선교사는 해당 사역지에 파송되어 그 사역지의 해당 거주민을 돕고 최종적으로 개신교를 포교하는 사람을 의미한다. 선교사의 소속 개신교 선교사의 파송경로는 크게 교단에서의 선교사 파송과 선교단체에서의 파송으로 나뉜다. 교단 파송 선교사의 경우에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선교사를 파송하여, 해당 지역에 교회를 세워 해당 지역의 신자들이 늘어나게 하는 것이 큰 목적 중 하나이며, 평신도 선교사도 파송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목회자를 보조하는 것이 원칙이다. 반면 선교단체 파송 선교사의 경우에는 전문 훈련을 받거나 신앙 훈련을 받은 평신도 헌신자들이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들은 평신도 중심의 교회 개척이나 성경 번역, 신자 파송 등의 교단 소속 선교사들이 할 수 없는 분야에서 교단 파송 선교사들과 동일한 정도의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국 개신교의 선교사 현황 한국 개신교의 선교사는 1979년에는 79명에 불과했던 개신교 선교사가 1994년에는 3,272명으로 늘어난 이후, 2005년에는 14,086명, 2010년에는 22,014명으로 급성장하였다. 2010년도 선교사 현황에 의하면 이 중 교단 소속 선교사는 9,825명, 선교단체 소속 선교사는 12,860명으로 선교단체가 우위를 점하고 있으나, 최근 교단 소속 선교사가 증가하고 이중 파송자가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어 향후 선교단체의 우위가 증가할지의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한편 최다 파송교단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감리회 순으로 나타났으며, 선교단체별로는 대학생성경읽기선교회, 국제기아대책기구, 국제대학선교협의회, 인터콥, 예수전도단의 순으로 나타났다. 이슬람 불교 각주 기독교 용어 종교 활동 성직 기독교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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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A6%AC%EB%B9%84%EC%95%84%EC%9D%98%20%EA%B5%AD%EA%B8%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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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의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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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비아의 국기는 1951년부터 1969년까지 리비아 왕국이었을 당시 사용한 국기로, 무아마르 카다피 정부가 몰락하면서 등장한 리비아 자유 정부가 2011년 2월 27일 다시 채택하였다. 현재 리비아 공화국의 국기는 리비아가 영국의 신탁통치(제2차 세계 대전 후)로부터 독립한 이후 채택된 적, 흑, 녹 삼색기에 흰색 초승달과 별이 있는 국기이다. 적색은 이탈리아 파시스트 통치하에 죽은 리비아 사람들의 피를 나타내며, 검은 바탕에 하얀 초승달은 키레나이카의 에미리트의 국기에서 따왔다. 초승달과 별은 이슬람교를 상징하며, 녹색은 독립, 자유와 리비아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시작의 시대를 나타낸다. 1969년 무아마르 카다피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이 기를 폐지하였는데, 원래는 이집트, 시리아와 연합해 이집트의 국기와 비슷한 국기를 사용하였으나 1977년 이집트의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정을 맺은 것에 반발하여 아랍 공화국 연방에서 탈퇴하면서 녹색 단색으로 바꾸었다. 녹색 단색 국기는 2011년까지 사용되었으며, 오직 한가지 색으로 된 국기로서 세계에서 유일하게 존재하였다. 2011년까지 사용된 녹색 단색 국기의 의미는 녹색은 이슬람교를 상징하는 색이므로 리비아가 이슬람 국가란 뜻이었다. 혁명 당시 옛 국기를 가진 이들 사이에서 녹색의 바탕에 빨강과 검정을 덧칠하고 초승달과 별을 그려내기도 하였다. 규격과 색상 리비아의 국기 규격과 색상은 다음과 같다. 그 외의 깃발 역대 리비아의 국기 국기 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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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9D%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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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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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는 다음을 가리킨다. 띠 (식물) - 벼과의 식물 띠 (전례복) - 장백의위에 두르는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례복 띠 (생초) - 십이지에 따른 태어난 해의 동물 이름 끈 테이프라는 뜻의 문화어 같이 보기 밴드(b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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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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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B%85%80%EB%93%A4%EC%9D%98%20%EC%88%98%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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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들의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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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녀들의 수다》는 2006년 11월 26일부터 2010년 5월 3일까지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이다. 진행 방식 프로그램 기본 구성 외국인 여성 16명과 진행자인 남희석, 그리고 남자 패널 다섯 명이 출연하여 방송이 진행되었으며, 2008년 100회 특집부터 남자 패널에서 여자 패널 6명으로 변경되었다. 방송 초기(첫 방송~51회 방송)에는 정해진 주제에 따라 앙케트를 통한 토크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42회 방송(2007년 9월 3일 방송)부터는 릴레이 토크, "줄줄이 말해요"라는 제목 아래 출연자 전원이 주제에 맞춰 빈 칸에 자신의 체험이나 생각을 말하면서 발언에 따른 대화 방법이 도입되었고, 52회 방송(2007년 11월 19일 방송)부터는 처음부터 이 방법에 따라 대화가 진행되었다. 74회 방송(2008년 4월 28일 방송)부터는 "공통분모 토크 - 순위 대 순위"라는 제목 아래 출연자 40명과 서울의 각 대학 어학당 학생 100명이 16명 토크 중 가장 공감하는 패널들의 토크를 선정해 1위부터 10위까지의 순위를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다만 진행 순서는 10위부터 1위까지이다. 137회 방송(2009년 7월 27일 방송)부터는 "글로벌 찬반 논쟁 쇼 - 뜨거운 감자 Yes No"라는 제목 아래 지구촌에 존재하는 다양한 문화 중 대립이 심한 주제로 논쟁을 해보는 쇼다. 미녀들 각자의 앞에 있는 버튼으로 Yes나 No로 입장을 표현하고 그에 뒷받침 할 수 있는 의견을 토로한다. "라이벌 열전! 세계 각국의 자랑거리는?" 코너에서는 자랑거리와 그 자랑거리에 해당하는 라이벌 되는 국가를 주제로 해서 수다를 한다. 138회 방송(2009년 8월 3일 방송)부터는 "미녀詩대"라는 제목 아래 미녀들의 한국어 실력으로 시를 지어본다. 그 외에도 한 회분의 방송을 재치있는 입담을 과시한 외국인 패널 한 명을 선정하기도 한다. 중간중간 쉬어가기 코너로는 60초 발언대, 장기자랑(개인기), 음식문화체험, 문화유물퀴즈 등이 있으며, 이 부분은 비정규적으로 방송했다. 2010년 1월 4일 이후 공동 MC는 엄지인 아나운서다. 토크 주제 앙케트 토크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연말 모습은?〉 〈한국의 출산문화, 이것이 충격이다!〉 〈한국의 모임, 이것이 충격이다!〉 〈한국의 운전문화! 이래서 충격이다!〉 〈한국의 휴대전화, 이것이 놀랍다!〉 릴레이 토크 〈한국에서 돈 아끼려고 '땡땡땡'까지 해봤다〉 〈한국에 살다보니 '땡땡땡' 걱정이 생겼다!〉 〈내가 한국의 대통령이 된다면 '땡땡땡'만은 바꾸겠다〉 〈2007 나의 최고의 순간은 '땡땡땡'이다!〉 공통분모 토크 〈한국과 우리나라 '이것'이 똑같다〉 〈한국이 나를 변화시킨 것은?〉 〈한국에 살면서 새롭게 생긴 고민은?〉 〈한국에 와서 중독된 것〉 글로벌 찬반 논쟁 쇼 - 뜨거운 감자 Yes No 〈개고기 먹어도 된다〉 〈미녀들의 수다 출연자들은 모두 미녀다?〉 〈내 남자의 외도! 한번은 용서 할 수 있다〉 〈한국에서 4살부터 영어를 가르쳐야 한다?〉 〈연인 사이에 비밀은 필요하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방귀를 뀌면 사과해야 한다?!〉 〈성형미인도 미스코리아가 될 수 있다!?〉 〈애완동물은 인간의 친구!?〉 〈친구의 애인이 다른 여자와 데이트 하는 모습을 봤다면, 친구에게 얘기해 줘야 할까?〉 〈연예인 사생활은 보호 받아야 한다?〉 라이벌 열전! 세계 각국의 자랑거리는? 〈마사지 : 태국 vs 중국〉 〈팝의 전설 : 미국 vs 영국〉 〈부정부패가 없는나라 : 핀란드 vs 캐나다〉 〈외국 여자가 부러울 때 VS 한국 여자가 부러울 때〉 미녀詩대 〈한국의 여름〉 둘 중 하나 미녀들의 한국생활 중 문화차이로 갈등에 놓일때는? 프라이드치킨 vs 양념치킨 삼겹살 vs 양념갈비 족발 vs 보쌈 버스 앞자리 vs 버스 뒷자리 구식변기 vs 양변기 엉덩이 춤 vs 시건방 춤 축의금 3만원 vs 5만원 얼굴 vs 몸매 명품백 1개 vs 짝퉁 가방 10개 팝콘 vs 오징어 속옷 세트 vs 속옷 단품 발라드 vs 댄스 라면 먼저 vs 스프 먼저 나쁜 남자 vs 착한 남자 요가 vs 헬스 연상남 vs 연하남 진실게임 vs 야자타임 삼겹살 vs 양념갈비 (다시 태어난다면) 남자 vs 여자 (연애의 순서) 키스 vs "사랑해" 글로벌 퀴즈 특별한 냄새, 냄새가 나는 음식 핀란드에서 보드카 이탈리아에서 고르곤졸라 치즈 일본에서 시소 깻잎 중국에서 샹차이(香菜-멕시코에서 실란드로)(영국, 프랑스,캐나다에서 커리엔더(Coriander)) 동화와 캐릭터 이탈리아에서 〈피노키오〉의 결말 독일에서 그림형제가 쓴 동화 영국에서 〈로빈후드〉, 〈세인트조지와 공주〉 일본에서 도라에몽 캐릭터 핀란드에서 무민 캐릭터 케냐에서 〈사자와 토끼〉 시험 전날 먹는 음식 일본에서 돈가스 콜롬비아에서 생선국 중국에서 소시지 1개와 계란 2개 몽골에서 수타차 알레르기 유발 음식 캐나다에서 땅콩(견과류)와 향수 일본에서 메밀(소바) 국수 독일에서 유제품 태국에서 해산물 운동경기와 응원 미국의 야구찬가 《Take Me Out to the Ball Game》 케냐에서 타악기 멕시코에서 올레 올레 올레~ 로 시작하는 응원가 이탈리아에서 축구 응원가 캐나다에서 아이스하키 응원가 "Let's go...Let's go..." 영국에서 "윔블던 테니스" 콜롬비아 팀전용 응원석과 응원복 독일에서 축구경기날 맥주가 매진 일본에서 마라톤 중계방송, 일본 오사카에서 야구 경기 프랑스에서 "투르 드 프랑스" 자전거 경기 이탈리아에서 "투르 드 이탈리아" 자전거 경기 곁들이는 음식 멕시코에서 과일에 고춧가루(피킨 고추)와 소금과 레몬을 맥주에 고춧가루와 얼음과 소금을 즐겨 뿌려 먹는다. 일본에서 수박에 소금을 뿌려 먹는다. 푸딩에 간장을 뿌려 먹으면 성게의 맛과 비슷하다. 핀란드에서 식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우유를 마신다. 무지방을 선호한다. 캐나다에서 훈제 연어,오믈렛, 소시지, 햄에 메이플 시럽을 발라 먹는다. 대만에서 토마토에 간장소스(간장, 설탕, 생강)을 넣어 먹는다. 태국에서 밥에 과일을 섞어 먹는다.(파인애플 볶은밥) 사위가 술 먹은 다음날 장모는 해장술과 삶은 달걀 튀김을 해주는 전통이 있다. 똠양꿍이라는 수프가 유명하다. 케냐에서 장모가 사위에게 염소고기를 준다.(평소에 쇠고기를 먹고 중요한 날에는 염소고기를 먹는다.) 결혼식 관습 대만에서 신부가 부채를 던진다. 안좋은 습관을 버린다는 의미가 있다. 독일에서 결혼식 전날 파티에서 도자기를 깨뜨린다. 도자기 조각이 행운을 부른다는 의미가 있다. 주로 시청에서 결혼식을 하고 혼인신고를 바로 한다. 피로연 전에 신부의 면사포를 찢어 나눠준다. 면사포 조각을 매단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며 동네를 다닌다. 중국에서 하객들에게 담배를 나눠준다. 복과 재물운을 가져다 준다는 의미가 있다. 이탈리아에서 결혼식 전날 쌀을 던진다. 재물운과 다산을 가져다 준다는 의미가 있다. 결혼 전에 신랑이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면 결혼하지 못한다. 피로연에서 신부의 눈을 가리고 신랑을 찾아내는 놀이를 한다. 영국에서 결혼 전에 신랑이 신부의 웨딩드레스를 입은 모습을 보면 불운이 생긴다는 믿음이 있다. 그래서 결혼 전에 신랑과 신부의 결혼식 전의 웨딩찰영을 하지 않는다.(사진을 찍지 않는다.) 부케를 잡기 위해 신부의 미혼 친구들이 경쟁한다. 부케를 잡으면 6개월 후 결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일본에서 결혼 전에 웨딩드레스를 입으면 노처녀가 된다는 믿음이 있다. 태국에도 있다. 태국에서 아침결혼과 저녁결혼으로 결혼식이 2회로 나뉘어 있다. 아침에는 신부집에서 식을 하고 저녁에는 호텔에서 식을 한다.(서민은 저녁결혼을 학교에서 한다.) 콜롬비아에서 신부의 웨딩드레스 속 스타킹 끈을 신랑의 친구 한 명이 입에 물고 벗기는 관습이 있다. 동물 케냐에 기린 호텔이 있다. 사람과 기린이 함께 호텔을 이용한다. 중국의 상징 동물은 판다로 베이징 올림픽 때 마스코트였다. 일본의 상징 동물은 까마귀로 길조로 행운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태국의 상징 동물은 코끼리로 신성한 동물로 숭배되며 친밀하고 사람의 일을 도와준다. 영국의 상징 동물은 사자로 스포츠 클럽이나 정부의 사자문양이 있다. 독일의 상징 동물은 독수리로 지폐, 공문서에 그림이 있다. 프랑스의 상징 동물은 수닭으로 월드컵 때 수닭인형으로 응원했다. 캐나다의 상징 동물은 비버다. 아기(어린이)의 이름 영국(독일, 몽골, 미국, 이탈리아, 캐나다, 프랑스 포함)에서 아기 이름 사전을 보고 고른다. 독일에서 소설이나 영화에서 나오는 이름으로 아이의 이름을 짓는다. 태국에서 스님이 무료로 작명을 해 준다. 영국, 일본에서 집안에서 부르는 아이의 이름이 별도로 있었다. 미국, 이탈리아에서 부모의 이름을 ~ 2세, ~ 주니어를 붙여 물려준다. 케냐에서 사촌간의 이름이 같은 경우가 많고 행동, 날씨, 길 이름으로 아이의 이름을 짓는다. "화장실 간다"는 말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방법 몽골에서 "말 보러 간다." 라고 한다. 케냐에서 "자연따라 간다.", "큰집 간다.", "침 뱉으러 간다." 라고 한다. 프랑스에서 "케이크 만들러 간다." 라고 한다. 미국에서 "쓰레기 버리러 간다.", "폭탄 투하 하러 간다." 라고 한다. 영국에서 소변을 넘버 원, 대변을 넘버 투 속어로 표현한다. 핀란드에서 "물 뿌리러 간다.", "릴리스 호텔 간다." 라고 한다. 독일에서 "초콜릿 쿠키한테 수영을 가르치러 간다." 라고 한다. 이탈리아에서 "팩스 보내러 간다." 라고 한다. 태국에서 "팩스 보내러 간다."(대변), "이메일(전자 우편) 보내러 간다."(소변) 라고 한다. 화장실 예절 독일에서 사용 후 문을 열어놔야 한다. 닫아 놓으면 사람이 사용 중인 줄 알고 문 앞에서 대기한다. (독일, 영국, 유럽, 남미에서는 노크는 예의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노크 문화가 있다.) 태국에서 양변기 뚜껑을 열어놔야 한다. 닫혀 있으면 물을 안내렸다는 의미다. 일본에서 사용 후 휴지를 삼각형으로 접어 놓아야 한다. 다음에 사용하는 사람이 쉽게 뽑으라는 배려다. (최근에는 위생 문제로 하지 않는다.) 이탈리아, 캐나다에서 대변이 급할 때 식당에서 음료를 한잔 사 먹고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다. 재활용 핀란드, 콜롬비아에서 다른 집이나 가게의 쓰레기통을 뒤져 식품, 의류, 가정용품 등 재사용 가능한 물품을 골라 가져가는 쇼핑이 유행이다. 중국에서 빈 병 수거 자판기가 있고 빈 병을 넣으면 돈이 나온다. 바람둥이를 의미하는 동물 캐나다에서 개, 미국에서 말로 유혹하면 뱀 이탈리아에서 큰 나비 중국에서 나비, 수준 낮은 바람둥이는 토끼, 수준 높은 바람둥이는 공작새 케냐에서 카멜레온 국가별 유명한 관광지 이탈리 로마의 "진실의 입"은 원래 하수구 뚜껑이였다. 벨기에의 "오줌싸개 동상" 중국의 진시황 "병마용" 콜롬비아의 "소금 성당" 결혼 일본의 연예인의 다수가 결혼식을 하지 않고 혼인신고만 하는 사람이 많다. 대만의 연예인의 다수가 결혼식 여부를 알리지 않는다. 중국에서 혼인신고를 먼저하고 결혼식을 한다. 이탈리아에서 성당에서 결혼식 직후 그자리에서 바로 혼인서약을 한다. 관공서에 혼인신고할 필요가 없다. 태국에서 결혼식에 공무원이 출장을 나와 혼인신고를 받는다. 자판기 영국에 날씨 자판기가 있다. 우비, 우산, 선크림을 자동으로 판매하는 기계다. 일본에 곤충, 오뎅, 튀김, 우동, 라면, 쌀, 생계란, 아이스크림, 맥주, 네일아트, 치킨 자판기가 있다. 태국에 쏨땀(매운 샐러드) 자판기가 있다. 프랑스에 꽃다발 자판기가 있다. 우크라이나에 사이다 자판기가 있다. 유리컵에 사이다가 담겨 나오고 사이다를 먹은 사람은 빈 유리컵을 세척기에 넣어야 한다. 독일에 자전거 튜브 자판기가 있다. 혼날때 태국에서 귀엽게 웃는다. 중국에서 고개를 숙이고 불쌍한 척해야 한다. 독일에서 내색하지 않고 강한척 한다. 장례식장에 들고 가는 꽃 프랑스에서 카네이션 미국에서 백합 콜롬비아에서 수선화, 붓꽃, 백합 핀란드에서 카라, 아이비, 카네이션 택시 요금 에티오피아에서 택시기사가 정한다. 케냐에서 택시기사가 정하고 손님과 흥정이 가능하다. 차가 있으면 누구나 택시영업을 할 수 있다. 태국에서 기본요금이 1천원이고 심야 할증요금제가 없어 저렴하다. 한류스타를 쫓는 택시가 별도로 존재한다. 영국에서 기본요금이 5천원이고 요금이 빠르게 증가한다. 독일에서 기본요금이 8천원정도고 요금이 빠르게 증가한다. 10배 정도 비싸서 대중교통(버스, 지하철)을 이용한다. 일본에서 기본요금이 5천 5백원(후쿠오카), 9천원(도쿄)정도고 요금이 빠르게 증가한다. 프랑스에서 기본요금이 4천원 정도다. 응급 전화번호 우크라이나에서 03번이다. 에티오피아에서 99번이다. 범죄신고는 92번이다. 프랑스에서 15번이다. 범죄신고는 17번이다. 화재신고는 18번이다. 일본에서 119번이다. 이탈리아에서 전화번호 안내번호가 892480번이다. 스트레스 해소 중국에 눈물방이 있다. 7천원정도 요금을 부담하면 1시간 동안 마음껏 눈물을 흘릴 수 있다. 눈물방에 고춧가루, 양파, 유리컵, 인형 등이 준비되어 있다. 태국에 "LOVE SICK"이라고 쓰여진 방이 있다. 연인과 이별했을 때 헤어진 사람의 사진을 벽에 붙여놓고 유리컵, 술병을 던질 수 있다. 일본에 길거리에서 돈을 받고 무조건 사과를 하는 직업이 있다. 상황을 설정하고 관계자 대신에 욕을 먹는 사람이다. 집에 있는 특이한 조형물 콜롬비아 집 지붕에는 동상이 있다. 독일 집 지붕에는 수탉모양의 형상이 있다. 빈말 일본에서 "밥 먹고 가라"는 말은 "빨리 집에 가라"는 뜻이다. 방송 시간 패널 패널 섭외 방법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등 각 대학의 한국어 교육기관이나 대학, 외국인 모델 에이전시등에서 섭외하기도 하며, 시청자들이 외국인 여성 패널을 추천 하는 경우도 있으며, 외국인 여성이 자진하여 출연을 희망한다고 제작진에게 밝혀오는 경우도 있다. 모든 패널은 대한민국 정부에 합법적인 외국인 등록이나 대한민국 국적취득을 해야만 출연할 수 있었다. 또한 대한민국 국적을 보유하지 않았을 경우, 텔레비전 방송 출연을 위한 별도의 비자를 발급받은 상태에서 출연했다. 출연 패널 결정 방법 출연 패널 명단 다음은 방송에 출연한 국적별 외국인 패널의 명단이다. 같은 국적일 경우 첫 출연일 순서로 배열되었으며, 지명도나 출연횟수가 다른 패널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패널의 이름은 회색으로 표시되었다. 이름의 굵은 글씨는 방송에서 공식적으로 부르는 통칭이며, 전체 이름이 알려진 경우에는 방송에서 이름을 줄여쓴다 하더라도 전체 이름으로 표기한다. 방송 진행 도중 귀국한 것으로 알려진 패널의 경우는 이름 옆에 "귀국" 문구가 표시된다. 또한 직위는 학생·회사원등이 아닌 종영당시 공직에 종사하는 패널만 수록하였다. 아시아 손요 () 상팡() →만주족 채리나() →조선족 혼혈 장산산() → 출연 후 한국으로 귀화 은동령() 종설() 송상() 정슈앙()→결혼 방샤샤() 앙레() 리빙루() 장샤오샤오()※ 한국인 남성과 결혼 후 출연한 두 번째 패널 허이령() →친할머니가 일본인, 종영 후 중국 문화 대학 한국어학부 교수로 임용 진언문() →귀국 :맥신 쿠(, Maxine koo ga-ga) 장 사오리(한국명: 장은주, ) →재일한국인 3세 사가와 준코() 아키바 리에() →아이돌 시절 예명: 스기모토 히토미() 후지타 사유리() →고바시 메구미의 친구로 알려짐. 아사다 에미() →귀국(졸업) 우메무라 가즈코() →코미디언 출신. 도키와 후사코() 야마다 치히로() 나르망다흐 체웨그메드() →귀국(취업) 투르바트 졸자야() 자르갈사이항 테무울렝() 원(阮) 시 투 흐엉() 하 황 하이옌() →한국으로 귀화 (한국명: 하지은) 부 티 흐엉() →위의 흐엉과 같은 이름 원(阮) 홍 하잉() 응우엔 딘 냣 칸() 소피아 수라야 빈티 리자 압둘(Sophia Suraya Binti Ridza Abdoh, 아랍 문자:سوفيا سوريا بنت ريدز ابوده) →귀국(졸업) 포 케인(Poh Kay Inn) →징 치에 포의 여동생. : 비비안 호(Vivian Ho) →화교, 성은 何(광둥어) 샨텔 탠(Chantelle Tan) 사팃찰라라이 펫라다() 수리야몽콜 차녹난() 와자삿 타차폰() :아만다 카심(Amanda Kasim, ) →신현준의 친조카, 어머니가 한국인 :모니카 사멀(Monica Samal) →귀국(결혼, 2007년 4월 30일에 공식 고별방송이 있었으나 이후 패널로 특별 출연하였음) :푸남 네우파네(Punam Neupane, )→결혼 :디나 레베데바(Dina Lebedeva,키릴 문자:Дина Лебедева, 아랍 문자:دینا لبدوا) 옐레나 트로예글라조바(Yelena Troyeglazova,키릴 문자:Елена Троеглазова, 퇴테 문자:ەلەنا تروەگلازوۋا) →귀국(결혼) 나타샤 코스티나(Natasha Kostina,키릴 문자 :Наташа Костина, 퇴테 문자:) :안나 쉴레포바(Anna Shulepova, 키릴 문자:Анна Шулепова, 아랍 문자:اﻧﻨﺎ ﺷﯘﻟﻪﭘﻮۋا) →"결혼" 자밀라 압둘레바(Djamilya Abdullaeva,키릴 문자:Джамиля Абдуллаева, 아랍 문자:دجەمىليە ئەبدۇللەېۋە) →어머니가 러시아인 구잘 사이다흐마도브나 투르수노바(Guzal Saidahmadovna Tursunova,키릴 문자:Гузель Саидахмедовна Турсунова)→출연 후 한국으로 귀화 :타티아 마나가제(Tatia Managadze,) :슈샨 하콥얀 (Shushan Hakobyan,) → 처음으로 기혼 상태에서 출연한 패널 아첼야 야부즈(Açelya Yavuz) →어머니가 한국인 아슬르 사르이펙(Aslı Sarıipek) →할아버지는 한국 전쟁 참전 군인이었음. :노프 모하마드 알 메플리흐 (Nouf Mohammad Al-Mufleh, 아랍 문자:نوف محمد المفلح) :짜바릿 에즈라(Tzabarit Ezra,)→이스라엘 방위군 부사관 복무 경력자. 최종 복무계급은 상사, 귀국("결혼") 아프리카 :사마르 압델 아지즈(سمر عبد العزيز) :사미라 카드라위(Samira Khadhraoui) :크리스타 캄가 에운(Christa Kamga-Yeun) →어머니가 독일인. :알리다 무싸부(Alida Moussavou) :메자 펜다우 이쉬투(Meaza Pendau Eshetu) → 종영당시 그리스도대학교 경영정보학과 교수 :유프레시아 은딘다(Euphracia Ndinda) :브로닌 마가렛 멀렌(Bronwyn Margaret Mullen) 유럽 :알바 쿠닐 풀켓() → 카탈루냐 지방 출생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 →2007년 12월 1일 결혼., 종영당시 역삼글로벌빌리지센터 소장·가톨릭대학교 법학부 겸임교수 아나이스 크리스틴 줄리엔() →친할머니가 인 이자벨 마카리() →이탈리아계→귀국(결혼) 마리안 파스케(Marie-Anne Pasquet) 알리스 바르텔레미(Alice Barthélemy) 엘리자베스 브래디() →2006년 추석특집에만 출연하였음. 에바 사치코 포피엘() →폴란드계 영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출생,도쿄 출생. 로라 필킹턴() →어머니가 한국인 애나벨 엘렌 앰브로스() → 밴쿠버 출생. 로라 앰브로스() 다니엘라 슐릭() →2006년 추석특집에만 출연하였음 나 리 셰르플링() →어머니가 한국인 릴리안 베렌트() →어머니가 한국인 미르야 말레츠키() 베라 나탈리 홀라이터()→"결혼" 마리연 스트뤼커 (Marie-Yon Strücker) →어머니가 한국인. 미녀들의 수다 패널 중 최연소자. :베르나데트 플라이샨데를() →귀국(취업) :블라디슬라바 마자나(Vladislava Mazana) →귀국("결혼") :아냐 마리아 바시엘라(Anńa Maria Wasiela) :피나 세너(Pınar Şener) →부모가 인. :따루 살미넨(Taru Salminen) →출연 당시 직장(주한 핀란드 대사관)의 출연 허가가 나오지 않음에 따라 출연 중단 되었으나, 110회 방송(2009년 1월 12일 방송)부터 정식 복귀하였음. 라리사(La Risa, 키릴 문자:Ла Риса) →한국으로 귀화 율리야 콜야다(Yuliya Kolyada,키릴 문자:Юлии Коляда) 이다 카르피쉬(Ida Karpysh,키릴 문자:Ида Кaрпыш) 예카테리나 포포바(Ekaterina Popova,키릴 문자:Екатерина Попова) 이나 마슬로바(Inna Maslova,키릴 문자:Инна Маслова) →2008년 4월 12일 결혼 다리아 바스키나(Daria Baskina,키릴 문자:Дарья Баскина) →귀국(결혼) 발레리아 파블로바(Valeria Pavlova, 키릴 문자:Валерия Пáвлова) →방청객으로 첫 출연한 이후 정식 패널이 되었음. 마리아 민키나(Maria Minkina,키릴 문자:Мария Минкина) 엘리자베타 비알로바(Elyzaveta Vialova,키릴 문자:Елізавета Віалова) 마리야 치제프스카(Mariya Chyzhevska,키릴 문자:Марія Чижевська) 이반나 호떼예바(Ivanna Khodyeyeva,키릴 문자:Іванна Ходеева) 아메리카 도미니크 노엘(Dominique Noël) → 퀘벡주 출신, 귀국("학업") 루베이다 던포드(Lu-vada Dunford) 토론토 대학 철학과 교수 다라 맥켄지(Dara McKenzie) 알리샤 위지즈(Alecia Widgiz) 제니퍼 맥캔(Jennifer McCann) 제니스 패트리샤 디영(Janiece Patricia de Jong) 레슬리 벤필드(Leslie Benfield) →미녀들의 수다 출연 패널 중 최연장자. 귀국(개인사정) 클라라 허츨러(Clara Hutzler) 제인 터너(Jane Turner) 윈터 린 레이먼드(Winter Lynn Raymond) 에리카 시웰(Erika Sewell) 비앙카 모블리(Bianca Mobley) →어머니가 한국인, 한국명 허슬기. 마가렛 호건(Margaret Hogan) 제시카 애브리고(Jessica Abrego) →귀국(학업) 빅토리아 아이젠스타인(Victoria Eisenstein) → 방송에서는 비키로 통칭. 소냐 헨슬리(Sonia Hensley) 멜리사 알론소(Melisa Alonzo) →미녀들의 수다 출연 경력이 없으나 공식 홈페이지에는 출연자로 소개되었음. 라우라 크루스(Laura Cruz) 탄티아나 고예스(Tantiana Goyez) →2006년 추석특집에만 출연하였음. 마르가리타 마르티네스 아라우호 레스트레포(Margarita Martinez Araujo Restrepo) →안젤라와 이란성 쌍둥이 자매(언니) 안젤라 마리아 아라우호 레스트레포(Angela Maria Araujo Restrepo) →마르가리타와 이란성 쌍둥이 자매(동생) 나탈리아 산체스(Natalia Sanchez) :디아나 권(Diana Kwon, 한국명:권다희(權多姬)) →아버지가 한국인 :아비가일 아이노암 알데레테 칸시안(Abigail Ahinoam Alderete Cancian) 지젤 루나 아라우주 에 실바(Gisele Luna Araujo E Silva) 프란시니 루이지 다 실바(Francini Louizi da Silva) 오세아니아 커스티 엘리자 레이놀즈(Kirsty Eliza Reynolds) →2008년 2월 23일 결혼·귀국(개인사정) 앨리슨 하이앰(Alison Higham) 캐서린 디워 베일리(Catherine Dewar Baillie) →에서 출생, 에든버러에서 성장. 폴리나 리피나(Paulina Lipina) 헬렌 케이브(Helen Cave) :지니 에버만(Jeannie Aevermann)→ 독일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에게서 출생, 2007년 미스 관광 괌 미남들의 수다 미남들의 수다는 기존의 여성 패널들을 남성 패널로 바꾸어 특집으로 편성한 프로그램이다. 한경() →허저족, 슈퍼주니어 멤버 곽신(郭鑫) 서 마사키(서정수(徐正樹), 일본명:) →재일한국인 3세, 그룹 Tommy Six 멤버 요시무라 켄이치(吉村 健一) :징 치에 포(Jing-Chieh Poh) →화교, 미녀들의 수다 140회 게스트로 출연 :판카즈 아가르왈(Pankaj Agarwal) →2008년 설날 특집에도 출연함. :아미르 에프테카리(Amir Eftekhari) 에네스 카야(Said Enes Kaya) 파티 푸스쿨루(Fatih Puskullu) :예브게니 포코틸로프(Evgeni Pokotilov, 키릴 문자:Eвгени Покотилов) :마누엘 보가르트(Manuel Bogard) :보리스 레너(Boris Lehner) →2008년 설날 특집에도 출연, 어머니가 한국인. :피에르 데포르트(Pierre Deporte) 한국명:황찬빈 :마르코 이엔나(Marco Ienna) :레오 매코믹(Leonard McCormick)-2008년 설날 특집에도 출연. :줄리엔 강(Julien Kang)-2008년 설날 특집에도 출연. →한국계, 이종 격투기 선수 데니스 강의 동생 :스즈키 유키() :장량() :키산 코이라라(Kisan Koirala) :알리 자말리(Ali Jamaly) :알리 하디드(Ali Hadid) 크리스찬 룻레지(Christian Routledge) 템바 립트럿(Themba Liptrot) 매튜 드프레(Matthieu Deprez) 크리스토프 루지(Christophe Luggi) :로널드 루보스코(Ronald Lubosco) :마이클 앤더슨(Michael Anderson) :워렌 키드(Warren Kidd) 140회(2009년 8월 17일) 방송에만 외국인 남성을 패널로 출연해 여름 특집으로 편성한 프로그램이다. :알베르토 루사나 (Alberto Lussana) 아드리안 리(Adrien Lee) →아버지가 한국인, 한국명은 이준. 제시 코르뉘(Jessy Cornu) :벤자민 크루거(Benjamin Krueger) :레날드 카거(Lennard Kager) :나가타 유키(永田 勇気) 155회(2009년 11월 30일) :파스칼 디오르(Pascal Dior) →이효리 U Go Girl 뮤직비디오 출연, 어머니가 한국인. 데빈 와이팅 크리스토퍼(Devin Whiting Christopher) 저스틴 폴 이스라엘슨 (Justin Paul Israelson) : 글립 코제먀낀 : 티보 알방로 빌라드 : 안드류 스탄리 밀라드(Andrew Stanley Millard) → 1박 2일 외국인 친구편 출연, 한국인과 결혼하여 딸을 두고 있음. : 엘탄 페지 타판이잇 관련 논쟁과 비판 방송이 진행되면서, 제작행태와 방송 도중 언급된 발언 등이 비판이나 논쟁의 소재가 되고 있다. 윈터 레이먼드의 의료비 발언 52회 방송(2007년 11월 12일 방송)에서 미국인 패널 윈터 레이먼드는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내가 독감으로 보름간 병원에 입원했는데 병원비가 5만 달러(약 4,500만 원)가 청구되었다"라고 발언하였다. 그 이후 18대 총선 당시 통합민주당 진영은 자신들의 공약집에서 이 발언을 인용하면서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유지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채리나 관련 의혹 논쟁 중국인 출연자 채리나(가수 채리나와는 동명이인)가 조선족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졌을 때 채리나가 조선족인 것을 속이고 출연했는 지가 쟁점이었다. 캐서린 출연 제한 논쟁 거의 매회 출연하던 캐서린이 2009년 4월 3일자 한겨레와의 인터뷰 기사중 한국 사회와 해당 프로그램 제작 행태를 비판한 발언이 나온 이후 5주 이상 녹화에 참석하지 못하자 5월 10일 한겨레의 독자 투고 코너인 《왜냐면》에 캐서린 출연 제한에 관한 의혹의 글이 올라왔다. 이에 대하여 제작진은 "매주 미녀들에게 설문을 보내 회신하는 사람 위주로 출연진 16명을 섭외하는 시스템"이라면서 "캐서린은 2009년 4월 20일 이후로 설문 주제에 답변하지 않아 출연하지 않았다. 앞으로 출연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반론하였다. 여대생 루저 발언 2009년 11월 9일에 방송된 가을 특집 방송 《미녀, 여대생을 만나다》 편에서 패널로 나온 홍익대학교 출신 여대생이 "키 작은 남자가 싫다"고 하면서 "외모가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시대가 된 오늘날 키는 경쟁력이라고 생각한다.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ser, 영어로 "패배자"라는 뜻)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해 논란이 되어 이에 이 발언을 풍자한 누리꾼들의 패러디물이 봇물이 터졌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12월 9일에 미녀들의 수다 제작관계자에게 징계 조치를 하였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해당 회차에서 "키 작은 남자는 루저(loser)"등 신체적 차이를 조롱하고 열등한 대상으로 묘사한 내용과 성별역할에 대한 차별적인 발언 내용을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제 21조(인권침해의 제한) 제3항, 제30조(양성평등) 제2항, 제3항을 위반한하였다고 밝혔다. 자세한 사항은 루저의 난 문서 참조. 법무부 후원 논란 159회(2010년 1월 4일) 방송에서 법무부의 후원이 있었으며 여기에는 이귀남 장관의 발언이 방송되어 논란을 빚었다. 기타 논쟁 100회 특집 방송에서 과거 방송내용중 사회의 반향을 끼친 발언으로 흐엉(베트남)의 "'베트남 신부, 처녀가 아니면 교환 가능'이라는 현수막을 보았다.", 준코(일본)의 "담당 교수에게 '같이 자면 출석처리 해주겠다.'라는 말을 들었다.", 윈터(미국)의 "강도상해를 당했는데 병원에서 치료를 거부하였다.", 메자(에티오피아)의 "취업 면접시 '흑인은 무조건 안된다.'라는 말을 들었다." 등을 선정하여 요약하여 방송하였다. 129회(2009년 6월 1일) 방송에서 '술(주류)에 관련된 이야기'를 자주 말하게 되고 '미녀에 대한 기준이 국가별, 성별에 따라 다르다'는 말을 미녀들(출연 패널)이 직접 직설적으로 거론하였다. 관련 미디어 책 제작진이 공식적으로 발간한 단행본은 다음과 같다. 《미녀들의 수다》() 출연 패널들도 자체적으로 책을 내거나 자국의 책을 번역한 경우도 있다. 손요 《이것이 차이나》- 손요 저 () 《쿵후 소년 장비》- 손요 저, 김지민 그림 () 후지타 사유리 《도키나와 코코로》- 후지타 사유리 저, 신용현·김지영 공역 () 《일본어 리얼토크》- 후지타 사유리 저, 김지영 역 () 베라 홀라이터 《Schlaflos in Seoul: Korea für ein Jahr》(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베라 홀라이터 저, 독일어로 출간되었음. ()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 : 한국에서의 일 년》- 베라 홀라이터 저, 김진아 역. 한국어로 번역되어 출간되었음. () 미르야 말레츠키 미르야 말레츠키가 한국어 서적을 독일어로 번역한 서적은 매우 많고 확인이 되지 않아 위키백과에서 처리하기 어려우므로 여기서는 서술하지 않겠습니다. 《NEW 후다닥 여행 독일어》- 미르야 말레츠키 저, 김미선 감수 ()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 《so Hot! so Cool! 크리스티나처럼》- 크리스티나 콘팔로니에리·윤종환 공저 () 따루 살미넨 따루 살미넨이 번역한 서적에 대한 목록은 따루 살미넨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아키바 리에 《도쿄 레인보우: 리에's 패션 다이어리》- 아키바 리에 저 () - 종영 후 출간 모바일 게임 미녀들의 수다의 인기를 바탕으로 두건의 모바일 게임이 출시되었다. 2007년 10월에는 연애시물레이션의 형태로 〈미녀들의 수다〉가 출시되었고, 2009년에는 미니게임의 모음집 형태로 〈미녀들의 수다 2〉가 출시되었다. 〈미녀들의 수다〉는 제작진의 라이센스를 얻고 제작되었다. 수상 경력 제43회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작품상 예능분야 (2007년) 2007년 KBS연예대상 특별상 (2007년) 미녀들의 수다 종영 이후의 패널들의 알려진 행적 《미녀들의 수다》 출연을 계기로 방송계에 진입하거나, 한국인 남성과 결혼하여 한국에 완전히 정착하거나, 본국이나 제3국으로 이주하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경우, 완전히 새로운 경력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으며, 그러한 행적을 보인 패널을 빼면 대부분의 패널은 방송 이전의 삶으로 돌아갔다. 시청률 2010년(시즌 2) AGB 닐슨 미디어리서치 {| class="wikitable" style="font-size:90%;" !회차!!방송 일자!!전국 시청률(증감치) |- |align=center|1회||2010년 1월 4일||6.8% |- |align=center|2회||2010년 1월 11일||8.6% |- |align=center|3회||2010년 1월 18일||8.3% |- |align=center|4회||2010년 1월 25일||7.0% |- |align=center|5회||2010년 2월 1일||8.2% |- |align=center|6회||2010년 2월 8일||7.7% |- |align=center|7회||2010년 2월 22일||12.9% |- |align=center|8회||2010년 3월 8일||6.2% |- |align=center|9회||2010년 3월 15일||8.0% |- |align=center|10회||2010년 3월 22일||6.7% |- |align=center|11회||2010년 4월 5일||7.3% |- |align=center|12회||2010년 4월 12일||6.4% |- |align=center|13회||2010년 4월 19일||8.1% |- |align=center|14회||2010년 5월 3일||7.0% 같이 보기 관련 항목 다문화가정 방송 프로그램 쾌적한국 미수다 각주와 인용 외부 링크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토크 쇼 한국방송공사의 연예오락 프로그램 2006년에 시작한 대한민국 TV 프로그램 2010년에 종료한 대한민국 TV 프로그램 2000년대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2010년대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프로그램 백상예술대상 TV부문 작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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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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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B0%A9%EB%9E%8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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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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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랍(方臘)은 중국의 사대기서(四大奇書) 중 하나인 《수호전》(水滸傳)에 등장하는 인물로, 북송말에 발발한 민중 반란 '방랍의 난'을 이끈 동명의 지도자를 모델로 한 인물로, 실제와 마찬가지로 강남 지방에서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다. 4대 도적(송강, 전호, 왕경, 방랍) 중의 한 사람이다. 조정에 귀순하여 요나라를 물리친 후, 반란군 하북의 전호, 회서의 왕경을 진압하고 수많은 사선을 뚫고 나온 송강의 양산박군 앞에 수많은 호걸 영웅들을 휘하에 거느리고 가로막은 마지막 최대 강적이다. 생애 본래 흡주 출신의 나무꾼이었으나 계곡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천자의 관과 옷을 두른 것을 보고 이를 자신이 천자자리에 오를 전조라 생각하여 사람들에게 떠들어댔다. 그 당시 강남 지방에서는 휘종황제의 정원 '간악(艮嶽)'을 건조하기 위해 진귀한 나무(珍木)와·기이하게 생긴 돌(奇石)을 탐낸 황제의 뜻을 받은 주면(朱勔)이라는 인물이 저 화석강(花石綱)을 운반하기 위해 가혹하게 착취하였고, 사람들이 고통으로 조정을 크게 원망하고 있었다. 그 거친 민심을 이용하여 방랍은 동지들을 모아 반란을 일으키고 목주 청계현을 본거지로 하여 조정을 본떠 문무백관을 배치하였다. 순식간에 흡주, 목주, 항주, 소주, 상주, 선주, 윤주 8주 및 그 관하인 25현을 점령, 강남(江南) 땅을 제패하고 국호를 '오(吳)'로 정하는 왕조를 열고 스스로를 왕이라 칭했다. 또 일족의 방모, 방천정, 방걸 등을 각각 요직에 앉힌다. 그러나 송강의 양산박군이 조정의 명을 받아 관군으로 진격해 오는데, 전면전에서 휘하 석보(石寶)와 장수들의 활약으로 지금까지의 전투 중 한 사람도 죽지 않았던 양산박 영웅들이 종종 죽기도 했으나 차례차례 판도를 공략당하고 만다. 유능한 인재를 많이 거느린 방랍이었으나 본인은 군주로서 대국적 전략안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없으며 본거지인 목주 방위의 요새인 오룡령에 대한 증원을 석보, 등원각(鄧元覺) 등이 요구했을 때도 자신의 어림군(御林軍)을 주고 아쉬워하거나 가명인 '가인(柯引)'으로 위장하여 접근해 온 양산박의 시진을 믿고 사위로 맞아들이는 등 수많은 실책도 저질렀다. 이윽고 오룡령을 넘은 양산박군이 목주에서 방랍이 비장의 카드로 믿고 있던 요술사 포도을(包道乙), 정표(鄭彪) 등을 무찌르자 마침내 방랍도 직접 조카인 금오상장군 방걸(方傑)과 비도의 명수인 표기상장군 두미(杜微) 등을 이끌고 직접 나서지만 시진과 마찬가지로 거짓 투항한 이준의 내응에 의해 무찔려 방원동(幇源洞)으로 달아난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끝까지 거짓 부마로 따라다니던 가인이 시진으로 정체를 드러내고 아군을 공격하기 시작하자 형세가 불리함을 깨닫고 홀로 심산(深山)으로 도망친다. 그 앞에서 조우한 노지심의 손에 잡혀 동경 개봉부로 보내진 뒤, 반란 주모자의 본보기로 능지형(凌遲刑)을 받고 죽었다. 같이 보기 수호전 방랍의 난 석보 등원각 여천윤 사행방 방만춘 왕인 포도을 정표 방걸 두미 수호전의 등장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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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7%B0%EB%8F%84%EB%B3%84%20%EB%B0%98%EB%8F%84%EC%B2%B4%20%EA%B8%B0%EC%97%85%20%EC%88%9C%EC%9C%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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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반도체 기업 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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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별 반도체 기업 순위는 각 연도별로 반도체 기업을 총매출 규모의 순서로 나열한 것이다. 반도체 기업은 3가지 종류로 구별된다: 통합 소자 제조사 (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s, IDM)라고 불리는 기업들. 이들은 자신들의 칩을 직접 설계, 제조 및 판매한다. 인텔과 삼성전자 등이 있다. 칩을 설계하고 판매하지만 제조는 파운드리 기업에 외주를 하는 엔비디아, 자일링스와 같은 팹리스 제조사. 고객 기업이 디자인하고 판매하는 반도체를 제작하는 TSMC와 UMC 등의 파운드리 기업. 회사의 반도체 매출만 집계되며 회사 내에서도 다른 분야 사업의 매출은 제외된다. 일례로, IBM의 비반도체 사업으로 인한 매출은 제외된다. 가트너 데이터리퀘스트 사는 반도체 기업 순위의 기준이 되는 발표를 하는 가장 긴 역사를 가진 기업이고 독립적인 기업 활동관련 조사를 제공한다. 반도체 판매 시장 점유율의 대체 출처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경우에, 기업의 순위는 칩 시장 재정 보고서의 분석을 기반으로 한다. 칩 종류에 따라 명확한 구분하여 멀티칩 모듈, 파운드리 제조와 칩 라이선스 매출은 보고된 금액이 따로 기록된다. 연도별 반도체 기업의 순위는 모든 기업의 재정보고서가 제출되는 다음년도 3월에 발표된다. (이이타임즈 같은) 다양한 전자 언론 잡지는 반도체 기업 순위를 발표한다. 이 문서는 이런 출판사의 도움으로 작성되었다. 2019년 2014년 2013년 2010년 2007년 파운드리 제외 지역별 2006년 파운드리 제외 파운드리 포함 2005년 파운드리 제외 파운드리 포함 팹리스 2004년 파운드리 제외 2003년 파운드리 제외 팹리스 2002년 파운드리 제외 2001년 파운드리 제외 2000년 파운드리 제외 1999년 1998년 1997년 1996년 1995년 1994년 1993년 1992년 1991년 1990년 1989년 1988년 1987년 각주 기업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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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E%90%EB%8F%99%EC%B0%A8%EA%B3%A0%EB%93%B1%ED%95%99%EA%B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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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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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고등학교()는 다음의 전문계 고등학교 이름으로 쓰인다. 일명 자동차고등학교, 자동차공업고등학교, 자동차정보고등학교 등으로 불린다. 신진자동차고등학교 - 서울 은평구 부산자동차고등학교 - 부산 사하구 경북자동차고등학교 - 경북 경산시 자인면 경남자동차고등학교 - 경남 진주시 인평자동차고등학교 - 인천 부평구 경기자동차과학고등학교 - 경기 시흥시 청송자동차정보고등학교 - 경북 청송군 부남면 줄포자동차공업고등학교 - 전북 부안군 줄포면 서울자동차고등학교 - 서울 용산구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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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B0%B0%EC%A7%80%EA%B8%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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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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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기는 씨름에서 상대를 쓰러뜨리기 위해 거는 기술을 말한다. 상대방을 앞으로 당겨 배 위로 들어올리면서 자기의 몸을 오른쪽으로 약간 돌리며 상대방을 옆으로 체어 넘어뜨리는 기술로 씨름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대표적인 공격 기술이다. 같이 보기 씨름 씨름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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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8F%99%EC%9B%90%EA%B7%B8%EB%A3%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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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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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원그룹(東遠그룹, Dongwon Group)은 대한민국의 재벌 기업으로 동원산업을 모체로 하는 기업집단이다. 본사는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에 있으며 1969년에 설립되었으며 2002년에는 생활산업군 기업집단인 동원엔터프라이즈와 금융업군 기업집단인 한국투자금융지주로 분리되었다. 현 동원그룹 계열사 동원산업 (동원그룹 지주회사) 동원F&B 동원디어푸드 동원시스템즈 동원홈푸드 동원건설산업 동원로엑스 (동원산업 계열에 속하며 동원산업의 물류부문을 통합, 구 동부익스프레스) 동원팜스 BIDC 그밖의 동원그룹 계열사 동원로엑스냉장 동원CNS 동원와인플러스 동원GNC (동원F&B 계열에 속함) 스타키스트 SCASA 동원육영재단 동원리더스아카데미 구 동원그룹 계열사 동원엔터프라이즈 (동원산업에 합병) 동원금융지주 (현 한국투자금융지주) 동원증권 (현 한국투자증권) 동원투자신탁운용 (현 한국투자신탁운용) 동원창업투자 (현 한국투자파트너스) 동원상호저축은행 (현 한국투자저축은행) 동원택배 아주택배 동원데어리푸드 (동원F&B에 합병) 삼조쎌텍 (동원홈푸드에 합병) 동원T&I (현 올래디오) 레스코 테크팩솔루션 (동원시스템즈에 합병, 구 두산포장) 같이 보기 대한민국의 경제 재벌 외부 링크 동원산업 홈페이지 동원그룹 홈페이지 대한민국의 기업 1969년 설립된 기업 대한민국의 기업집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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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91%90%20%EB%B2%88%EC%A7%B8%20%EC%82%AC%EB%9E%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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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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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사랑"()은 김진아가 감독한 대한민국과 미국의 합작 영화이다. 대한민국에서는 2007년 6월 21일에 개봉되었다. 줄거리 성공한 한국계 변호사 앤드류와 아내 소피. 남 보기에 부족함이 없지만 소피와 소피와 앤드류 사이는 날이 갈수록 소원해진다. 소피는 아이를 갖게 되면 모든 것이 예전처럼 돌아갈 거라 생각하고 점점 임신에 집착하게 된다. 앤드류의 정자가 너무 약해 인공 수정을 해도 임신 확률이 희박하다는 절망적인 말을 들은 소피는 병원에서 정자 기증을 거절당한 지하와 마주친다. 지하와 남편이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 소피는 무작정 지하를 따라간다. 소피는 지하에게 한 번에 300달러, 임신하면 3만 달러를 주겠다고 제안한다. 불법 체류자로 항상 쪼들리는 생활을 하던 지하는 소피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출연 배우 하정우 - 지하 역 베라 파미가 - 소피 역 데이비드 맥기니스 - 앤드류 역 이화시 - 앤드류 모 역 제작진 감독 : 김진아 각복 : 김진아 제작 : 이준동, 이창동 촬영 : 매슈 클라크 음악 : 마이클 니먼 편집 : 피트 뷰아드류 미술 : 루시오 세이아스 의상 : 테르 던칸 프로듀서 : 앤드류 피어버그 제작사 : 나우필름, 복스3 필름 배급사 : 프라임 엔터테인먼트 외부 링크 대한민국의 영화 작품 미국의 영화 작품 2007년 영화 로맨스 영화 한국계 미국인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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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B%A6%AC%EB%AA%A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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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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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목(Diptera)은 파리, 모기, 등에 등이 속해 있는 곤충의 한 분류이다. 수십 개의 과에 85,000여 종이 있다. 대한민국에서 발견하여 기록한 전체기록 종은 1,099종이다. 작거나 중간 크기의 곤충으로서, 형태와 습성이 매우 다양하다. 머리부에는 발달된 겹눈이 있으며, 입은 찌르는형·씹는형·핥는형 등이 있고, 다양한 촉각을 갖는다. 특히 앞날개가 발달하여 있으며, 맥은 적으나 나는 힘은 강하다. 뒷날개는 변형되어 평형을 유지하는 기관인 평형곤이 되었다. 날개가 퇴화된 것도 많다. 완전변태를 하며, 유충은 애벌래 형태를 띈다. 파리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바다에서 생활하는 종류도 있다. 모기·깔따구·등에·파리매·똥파리·초파리·집파리·쇠파리·쉬파리·각다귀 등이 이에 포함된다. 하위 분류 모기아목 (Nematocera) 또는 긴뿔파리아목 장각아목/장각류(長角類) 또는 사각아목/사각류(絲角類) 악시미아하목 (Axymyiomorpha) 모기하목 (Culicomorpha) 멧모기하목 (Blephariceromorpha) 털파리하목 (Bibionomorpha) 나방파리하목 (Psychodomorpha) 다리무늬각다귀붙이하목 (Ptychopteromorpha) 각다귀하목 (Tipulomorpha) 등에아목 (Brachycera) 또는 짧은뿔파리아목 또는 단각아목/단각류(短角類) 파리매하목 (Asilomorpha) 집파리하목 (Muscomorpha) 동애등에하목 (Stratiomyomorpha) 등에하목 (Tabanomorpha) 베르밀레오하목 (Vermileonomorpha) 밑들이파리매하목 (Xylophagomorpha) 계통 분류 각주 참고 자료 1758년 기재된 곤충 트라이아스기의 곤충 칼 폰 린네가 명명한 분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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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B4%88%EA%B8%B0%20%EA%B0%9C%EB%B0%9C%EB%B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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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개발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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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개발비(, NRE)는 새로운 제품을 연구, 설계, 검사하는 최초의 비용을 가리킨다. 프로젝트 예산을 책정할때, 초기 개발비는 반드시 새로운 제품의 이익성을 분석하여 고려되어야 한다. 심지어 기업이 프로젝트에 한번 초기 개발비를 지불할지라도 초기 개발비가 상당히 비쌀수 있으며, 제품은 초기 개발비를 회수하기 위해서 상당히 많은 양이 판매되어야 한다. 초기 개발비는 제품의 생산을 유지하는 데 지속적으로 들어가는 생산 비용과 다르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업에서, 프로젝트의 (가능한 모든) 대부분은 초기 개발비를 설명한다. 이런 경우에 초기 개발비는 첫 번째 프로젝트의 비용을 포함할 수도 있다. 만약에 개발 회사가 이런 비용을 회수하지 못하면, 미래 프로젝트에서 추가적인 이익으로 회수할 수 있는 가능성에서 자금 투자가 고려될 것이다. 외부 링크 초기 개발비 공학 제품 수명 주기 관리 공학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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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2001%3A%20%EC%8A%A4%ED%8E%98%EC%9D%B4%EC%8A%A4%20%EC%98%A4%EB%94%94%EC%84%B8%EC%9D%B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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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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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2001: A Space Odyssey)는 1968년 스탠리 큐브릭이 감독한 SF 영화이다. 이 영화의 각본은 스탠리 큐브릭과 아서 C. 클라크가 함께 작업했으며, 영화 개봉 직후 아서 C. 클라크의 동명 소설《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가 나왔다. (소설과 영화는 내용에 조금 차이가 있다.) 이 영화는 인간의 진화와 기술, 인공지능과 우주 생활을 다루고 있다. 주목할 만한 과학적인 사실성을 가지고 있으며 특수 효과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다. 이 영화는 1968년 아카데미 시각 부문을 수상하였다. 1991년 이 영화는 미국 의회도서관에 의해 문화적으로, 역사적으로, 미적으로 중요성을 인정받아 미국 국립영화등기부에 선정, 보존되었다. 개요 플라이스토세 시기의 인류는 아직까지 원숭이의 행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모노리스가 나타나 인류의 진화를 촉진시킨다. 시간이 흘러 1999년, 플로이드 박사는 특이한 자기장을 지닌 물체인 TMA-1을 조사하러 달의 뒷면으로 가게 된다. 그러나 발굴 후 햇빛을 받은 TMA-1은 갑자기 강렬한 전파 신호를 목성으로 내보낸다. 2년 뒤 목성으로 향하는 우주선인 디스커버리 호에는 선장인 데이비드 보먼과 프랭크 풀, 그리고 동면한 과학자 3명과, HAL9000 컴퓨터가 있었다. 어느 날 HAL은 갑자기 우주선 외부의 AE-35 안테나 유닛이 고장이 났다고 알려왔다. 그래서 프랭크 풀이 우주유영을 통해 AE-35유닛을 고치고 들어왔는데, 또 그 유닛이 고장났다고 HAL이 알려왔다. 프랭크 풀과 데이비드 보먼은 HAL이 고장을 일으켰다는 결론을 내리고 HAL을 정지시키려고 비밀리에 모의했고, HAL은 그들의 입모양을 읽고 그 사실을 알게 되어 이를 막고자 프랭크 풀을 우주로 던지게 되었다. 데이브 보먼은 프랭크를 구출하고자 소형 작업선을 타고 우주선 밖으로 나가지만 실패한다. HAL은 데이브 보먼이 우주선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을 막는다. 데이브는 수동으로 에어락을 열고 우주선으로 들어가 HAL의 생각하는 부문의 패널을 하나씩 분리해 버린다. HAL은 데이브에게 그러지 말라고 했지만, 데이브는 계속 패널을 빼 버렸다. HAL은 Daisy Bell을 부르면서 작동을 멈추게 되고, 플로이드 박사의 비디오가 재생된다. 디스커버리호의 임무는 사실 목성의 조사가 아니라 TMA-2의 조사였다. 비밀이 밝혀지자 데이브는 목성의 TMA-2로 간다. TMA-2는 스타게이트였으며 보먼을 어느 호텔방으로 옮기게 된다. 데이브는 우주복을 벗고, 침대에 누운 늙은 할아버지가 되어서 모노리스를 보면서 손을 가리키고 있다. 그 손끝에는 지구를 보고 있는 아이가 있었다. 출연 게리 록우드 (Gary Lockwood) - 프랭크 풀 박사 윌리엄 실베스터 (William Sylvester) - 헤이우드 플로이드 박사 대니얼 릭터 (Daniel Richter ) - 문 왓처 키어 둘리 (Keir Dullea) - 데이브 보먼 레너드 로지터 더글러스 레인 사운드트랙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에서는 여러 클래식 곡이 사용되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강"이라는 왈츠 곡은 우주 정거장과의 랑데뷰 장면과, 달 착륙선의 장면에 삽입되었다. 그리고 오프닝과 엔딩에 쓰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영화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또한 죄르지 리게티의 곡도 이 영화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맨 처음 검은 화면이 지속되는 부분에서 "Atmosphere", Beyond the Infinity 부분에서 "Requiem"이 삽입되는 등 그의 많은 곡들이 삽입되었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그의 음악을 사용하면서 저작권료를 지급하지 않아 작곡가와 마찰이 있었다고 한다. 참고 사항 영화 속에 IBM 상표가 보인다. 영화 속 컴퓨터 이름(HAL)을 놓고 IBM과 관련이 되었다는 이야기가 떠돈 적이 있다. 영화 속과 포스터에 팬암 소유의 Space Clipper 우주선이 나온다. 후속작으로 2010: The Year We Make Contact가 있다. 전작과 감독은 다르지만 원작가는 같다. 같이 보기 모노리스 외부 링크 1968년 영화 영어 영화 작품 미국의 SF 모험 영화 미국의 서사 영화 영국의 SF 모험 영화 영국의 서사 영화 인체냉동보존을 소재로 한 작품 인공지능을 소재로 한 영화 우주비행사를 소재로 한 영화 단편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SF 소설의 영화화 작품 스탠리 큐브릭 제작 영화 스탠리 큐브릭 각본 영화 스탠리 큐브릭 감독 영화 1999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2001년을 배경으로 한 영화 미래를 배경으로 한 영화 목성을 배경으로 한 영화 달을 배경으로 한 영화 애리조나주에서 촬영한 영화 유타주에서 촬영한 영화 하트퍼드셔주에서 촬영한 영화 서리주에서 촬영한 영화 스코틀랜드에서 촬영한 영화 스페인에서 촬영한 영화 셰퍼턴 스튜디오에서 촬영한 영화 아카데미 시각효과상 수상작 메트로-골드윈-메이어 영화 아서 C. 클라크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작품 미국 국립영화등기부 등재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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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A%B5%AC%EC%97%98%ED%94%84%EC%99%80%20%EA%B8%B0%EB%B2%A8%EB%A6%B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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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프와 기벨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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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프와 기벨린()은 중세 유럽(특히 북 이탈리아)에서 각각 교황권과 신성로마황제의 권력을 지지하는 분파를 말한다. 이들은 교황파(구엘프)와 황제파(기벨린)로 나뉘어 12세기에서 13세기 치열하게 싸웠는데 이들의 투쟁의 기원은 11세기부터 시작된 서임권 분쟁에서 기원한다. 역사 기원 구엘프라는 이름은 독일의 귀족 가문중 하나인 벨프의 이탈리아식 표기에서 유래했다. 기벨린이라는 이름은 벨프가문과 대립하던 호엔슈타우펜 가문의 성인 바이블링겐 성(Waiblingen)에서 유래했다. 벨프가와 호엔슈타우펜 가문은 독일 황제 자리를 놓고 12세기 치열하게 다투었던 것으로 유명한데 이들의 투쟁이 이탈리아로 건너와서 변형된것이 바로 기벨린과 구엘프가 되었다. 독일에서의 이 가문 투쟁이 이탈리아로 건너오게 된 것은 바로 프리드리히 바르바롯사의 시절부터이다. 프리드리히는 끈임없이 이탈리아에 대하여 황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노력했고 수차례 이탈리아 원정에 나섰다. 이때 호엔슈타우펜의 프리드리히의 편에 선 이탈리아인들을 기벨린파(이탈리아어:Ghibellini)로 불렀고 이에 대항하는 롬바르디아 동맹등 자유 도시들은 구엘프파(이탈리아어:Guelfi) 로 알려지게 되었다. 롬바르디아 동맹은 1176년 레냐노 전투에서 프리트리히를 격파하여 황제는 명목상의 종주권과 도시의 완전 자치를 허용하게 되었다. 도시간의 반목 바르바롯사 이후 구엘프와 기벨린은 약간 의미가 변하게 되어 구엘프파는 교황을 지지하는 분파로, 기벨린파는 황제를 지지하는 분파로 나뉘게 되었다. 또한 대개 구엘프파는 부유한 신흥 상업적 가문들이 지지하게 되고 이와는 반대로 기벨린파는 전통적인 귀족가문의 지배를 받는 계층이 지지하게 되었다. 따라서 구엘프 도시들은 황제가 교황보다 더 자신들에게 위협적이라고 보았고 기벨린파 도시들은 교황령의 확대가 더 즉각적인 위협이라고 보았다. 보다 작은 도시들은 주변의 큰 도시가 구엘프파가 되면 기벨린파로 되는 경향을 보였다. 13세기에서 14세기에 이들 도시들은 서로 반목하며 전쟁이 자주 일어났다. 호엔슈타우펜 가가 남부 이탈리아에서 그 영향력을 잃게 되자 구엘프와 기벨린의 갈등은 그 양상이 면모했는데 구엘프파는 프랑스의 앙주 가문을 지지하는 세력들로 모아졌는데 시칠리아의 앙주출신 군주를 비롯해 교황, 피렌체, 토스카나 지방의 피렌체 동맹도시들이 들어 있었다. 쇠퇴와 부활 14세기가 지나가면서 기벨린파와 구엘프파의 반목을 그 의미를 잃게 되었다. 신성로마제국황제들은 더이상 이탈리아 문제에 관여하지 않게 되었고 교황도 아비뇽 유수를 거치면서 로마에서 프랑스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이 때부터 구엘프파와 기벨린파는 단지 지역적인 정파를 의미하게 되었고 점차 사라져갔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기벨린과 구엘프는 이탈리아 통일운동과 맞물려 다시 부활한다. 이때 새로운 구엘프파의 대표적인 사람은 빈첸초 조베르티로 그는 1843년 교황을 중심으로 이탈리아 도시국가 연방을 만들려 했다. 이에 대하여 기벨린파는 교황이 오히려 이탈리아 통일의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다. 주요 이탈리아 도시들의 동맹관계 각주 이탈리아 왕국 (신성 로마 제국) 지정학적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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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쓰난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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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쓰난 제도()는 태평양의 류큐 열도에서도 가고시마현에 속하는 섬들을 말한다. 오스미 제도, 도카라 제도, 아마미 제도로 나눌 수 있다. 가고시마현의 섬 난세이 제도 일본의 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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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3%B0%EA%B0%80%EB%A3%A8%20%EB%85%B8%EB%B6%80%EC%9A%94%EC%8B%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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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 노부요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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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가루 노부요시(, 1619년 2월 15일 ~ 1655년 12월 22일)는 히로사키번의 3대 번주이다. 아명은 헤이조(), 초명은 노부요시()이다. 관위는 종5위하, 도사노카미(土佐守)였다. 후나바시 소동 1619년, 히로사키번의 2대 번주 쓰가루 노부히라()와 이시다 시게나리의 동생 다쓰히메 사이에서 맏아들로 태어났다. 고즈케노쿠니의 영지에 있던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1631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뒤를 이어 13세의 나이로 번주가 되어, 노부요시의 유모의 남편인 후나바시 한자에몬()이 측근으로서 권력을 잡게 되었다. 이에 따라 원로 가신들과 대립중이던 신참 가신들이 후나바시 한자에몬의 편에 서게 되었고, 1634년 7월, 노부요시가 쇼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와 함께 교토로 간 동안 원로 가신들이 에도의 번저에서 농성하며 후나바시의 한자에몬 일당의 추방을 요구하였다. 이 사건을 '후나바시 소동()'이라 한다. 번은 원로 가신들을 설득하는 데 실패하였고, 결국 막부가 중재에 나서 양측 대표들을 소환하였다. 2년 후인 1636년, 막부는 겐카료세이바이()의 원칙에 따라 원로 가신들은 나가토노쿠니로, 후나바시 한자에몬 부자는 이요노쿠니로 추방하였다. 비로소 정국이 안정화되면서 노부요시는 번주 권력의 강화에 힘쓰게 되었다. 쇼호 소동 그러나 일부 가신들은 쇼호(正保) 4년인 1647년, 노부요시를 감금하여 강제로 은거시키고, 노부요시의 배다른 동생이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의손자이며 막부의 하타모토인 노부후사()를 새 번주로 옹립할 계획을 세웠다. 이를 '쇼호 소동()이라 부르는데, 계획 단계에서 밀고로 인해 발각되어 관계된 이들이 대거 숙청되었다. 관련하여 배다른 동생들과 매형들도 처벌되었으나, 노부후사의 경우는 관여한 흔적이 뚜렷하지 않고 노부요시의 개인적 호의로 인하여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 사건의 요인에는 여러가지가 있는데, 막부 권력이 강화됨에 따라 기득권을 잃게 된 것을 가신들이 불만스럽게 여긴 점, 이시다 미쓰나리의 딸의 아들인 노부요리보다는 막부 쇼군의 딸의 아들인 노부후사를 내세우는 것이 막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것이라 생각한 점, 노부후사가 막부의 관리로 출세하는 등 능력을 보여준 점, 노부요시가 술주정이나 여자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점 등을 들 수 있다고 한다. 강력한 리더십 이처럼 노부요시는 번주로 즉위한 뒤 후나바시 소동으로 가신들을 억제하게 됨으로써 권력 강화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고, 강력한 리더십으로 번 통치를 밀어붙인 나머지 쇼호 소동과 같은 가신들의 반발을 초래했다. '고집불통 나으리'(じょっぱり殿様)라는 호칭은 그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이런 점에서 혹자는 그를 암군이라고 부르기도 하나, 그가 죽은 뒤 가신 4명이 순사했다고 하며, 통치면에 있어서는 많은 공적을 올렸다. 쓰가루 지역의 신전 개간이나 광산 개발과 같은 경제 발전도 이룩하였다. 그는 1655년, 에도의 번저에서 3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고, 슬하에 25남 26녀라는 엄청난 수의 자식들을 두었다. 그 중 맏아들 노부마사()가 번주직을 이었다. 1619년 출생 1655년 사망 쓰가루씨 히로사키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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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B0%B1%EA%B0%80%EC%8B%A0%ED%9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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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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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신화》는 백상의 작품으로 1998년 3월 18일, 도서출판 뫼에서 출간되었다. 작품 개요 백상의 작품 중 연작인 '백색성검(白色聖劍)'과 '강호성검(江湖聖劍)'를 합쳐 개작한 작품이다. 과거의 영광이 된 백가신화(白家神話). 각 분야에서 최고의 일인자들이 모여 있는 가문에 사람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그런 화려한 겉모습의 이면에는 짧은 수명을 가진 혈통이라는 치명적인 단점도 존재했다. 백년 전에 홀연히 사라졌던 가문의 마지막 자손, 백상인(白象仁). 그가 무도를 익혀내고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을 그린 장편 무협 소설이다. 등장인물 및 세력 주요 등장인물 백상인(白象仁) : 주인공. 무도의 궁극을 추구하는 구도자다. 아버지 이름은 백군령(白君嶺), 어머니 이름은 주소혜(朱昭慧). 집마령주(集魔令主). 금검(金劍), 금화(金花), 백옥소(白玉簫)를 신물(信物)로 삼고 다닌다. 백상인의 부인들 여몽청(呂夢淸) : 공공문주의 딸. 1부까지 백상인의 유일한 연인이었으나, 운명의 장난인지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다. 옥류향(玉流香)_여몽향(呂夢香) : 천하제일의 기녀로 소문한 여인. 여몽청의 쌍둥이 동생. 공공문 총순찰. 천상삼화(天上三花) 제갈청하(諸葛淸霞)_화중비(花中秘) : 천혜만박지체(天慧萬博之體). 제갈박의 손녀. 남궁려려(南宮麗麗)_화중화(花中花) : 천화옥령지체(天花玉靈之體). 남궁벽의 딸. 백리유(百里柔)_화중성(花中聖) : 천음성모지체(天陰聖母之體). 백리현도의 딸. 주벽군(朱碧君)_자하군주(紫霞郡主) : 만절산맥에 걸린 군주. 백상인의 치료로 삶을 되찾는다. 유운봉(柳雲鳳) : 지부대인 유보명(柳補明)의 딸. 손빈아(孫彬兒) : 백상인이 거둬들인 남매 중 누나. 지극순음지체(至極純陰之體). 예지력의 소유자. 요매(妖妹)_요노사 : 마교 요문(妖門)의 후예로 소녀청정대법을 연성하여 소녀와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 백상인을 되살리고 죽음을 맞는다. 백상인의 자식들 백자자(白子慈) : 백리유의 아들. 백자비(白子悲) : 남궁려려의 아들. 백자희(白子喜) : 제갈청하의 아들. 백자사(白子捨) : 여몽향의 딸. 손범(孫凡) : 백상인이 성수장을 짓기 전 거둬들인 남매 중 동생. 백상인의 제자다. 천양신무지체(天陽神武之體)의 소유자. 석장형(石長馨)=신도운형(申屠雲亨) : 안휘성(安徽省)의 대유(大儒) 석송계(石松溪)의 아들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신도유광의 둘째 아들이다. 잠룡회를 차지하기 위한 음모를 꾸미고, 여러 수단을 강구하여 마도천하를 이루려 하지만 백상인에게 저지당한다. 장우(張牛) : 석장형의 부하였다. 그 때문에 괴로워하던 그는 결국 신도운형과 함께 최후를 맞는다. 냉겸(冷謙), 임방(任芳), 강소평(江小坪) : 마도의 후예로 신도운형(석장형)의 하수인들이다.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마교오문의 후예 귀노사(鬼老師), 유노사(幽老師), 요노사(妖老師), 혈노사(血老師), 독노사(毒老師) : 비록 마교의 후예지만, 백상인에 의해 감복되어 그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게 된다. 도마(道魔)_예홍산인(霓虹散人)_화화장(花花莊)의 장주 : 천축에서 온 무도의 수련자로 도검(道劒)을 익혔다. 여몽청의 죽음에 큰 책임이 있다. 지옥마성의 부활 기도에 가장 큰 역할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악마성자(惡魔聖子) : 332살. 무검을 익혔다. 천축의 지배자. 악마교(惡魔敎)의 교주이자 도마의 사부. 도마의 죽음에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가서 중원을 지배한다. 무림의 세력구도 무맹(武盟)과 일곡일궁일방사문육가구파십이패(一谷一宮一幇四門六家九派十二覇). 일곡(一谷) : 소요곡(逍遙谷). 백리한도(百里翰韜)_소요성수(逍遙聖手) : 소요곡주, 대라신단 제조자. (註: 백리현도라 표현한 부분도 있으나 작가의 실수로 생각된다.) 일궁(一宮) : 신녀궁(神女宮), 궁주 광한신모(廣寒神母). 일방(一幇) : 개방(丐幇), 방주 천애궁신(天涯窮神) 왕가달(王家達). 사문(四門) 천산검문(天山劍門), 문주 천산검성(天山劍聖) 종리연. 공공문(空空門), 문주 묘수공공(妙手空空) 여절생. 비봉문(飛鳳門), 문주 봉황선자(鳳凰仙子) 상관연. 만수문(萬獸門), 문주 금사신군(金獅神君) 갈천홍. 육가(六家) 남궁세가(南宮世家), 가주 중원검신(中原劍神) 남궁벽. 제갈세가(諸葛世家), 가주 천지통(天地通) 제갈박. 하북팽가(河北彭家), 가주 묵룡철심(墨龍鐵心) 팽황린. 헌원세가(軒轅世家), 가주 혼원벽력수(混元霹靂手) 헌원백(軒轅伯). 사천당가(四川唐家), 가주 팔비나타(八臂哪咤) 당문량. 악문세가(岳門世家), 가주 섬전일비(閃電一飛) 악탄. 구파(九派) 소림사(少林寺), 장문방장 천심선사(天心禪師). 무당파(武當派), 장문인 운학진인(雲鶴眞人). 아미파(峨嵋派), 장문인 해인사태(海印師太). 화산파(華山派), 장문인 태을검신(太乙劍神). 곤륜파(崑崙派), 장문인 곤륜검성(崑崙劍聖). 공동파(崆峒派), 장문인 묵령자(墨靈子). 점창파(點蒼派), 장문인 사일검군(射日劍君). 청성파(靑城派), 장문인 태허선웅(太虛仙翁). 종남파(終南派), 장문인 종남일수(終南一秀). 십이패(十二覇) : 남육북칠(南六北七)의 십삼개 성(省) 중 열두 곳에 자리 잡은 패자(覇者). 천외삼별부(天外三別府) 이야기의 뿌리가 되는 곳들. 신선별부(神仙別府) : 불성문(不聖門)의 후신. 지옥별부(地獄別府) : 지옥문(地獄門)의 후신. 귀곡별부(鬼谷別府) 무맹(武盟):중원무림맹(中原武林盟) 무맹은 일부일원이전삼대오단오당삼십이지부(一府一院二殿三隊五壇五堂三十二支部)와 일회(一會) 잠룡회(潛龍會)를 더한 구조를 취하고 있다. 조직도 일부(一府) : 맹주부. 남궁벽(南宮璧)_중원검신(中原劍神) : 무맹 맹주. 십이무왕의 공동전인. 천양신무지체. 일원(一院): 봉공원로원(捧供元老院). 십이원로가 있다. 십이원로(十二元老) : 만공성승(滿空聖僧)_소림사 원로, 자허상인(紫虛上人)_무당파 태상장로, 적양자(赤陽子)_공동파 원로, 광한신모_신녀궁주, 금정성니(金頂聖尼)_아미파 원로, 은하노인(銀河老人)_종남파 장로, 매화검옹(梅花劍翁)_화산파 장로, 천금상인(天琴上人)_곤륜파 장로, 주선개(酒仙丐)_개방 태상장로, 백리한도_소요곡주, 동정어은(洞庭漁隱), 만독옹(萬毒翁). 이전(二殿) 만박전(萬博殿) : 맹의 두뇌를 담당하는 부. 제갈박(諸葛博)_천지통(天地通) : 만박전주. 귀곡별부의 진전을 계승했다. 만무전(萬武殿) : 군사훈련부. 단목무광(端木武狂)_광무자(狂武子) : 만무전주. 삼대(三隊) : 무맹의 수호세력 금의위대(金衣衛隊) : 2백 명. 맹주부와 원로원 경비. 곽숭(郭崇)_무적곤왕(無敵棍王) : 금의위대의 대주. 여초량(呂初良)_섬전극(閃電戟) : 금의위대의 부대주. 은의위대(銀衣衛隊) : 5백 명. 내성(內城) 경비. 노극련(魯戟連)_구룡신창(九龍神槍) : 은의위대의 대주 백의위대(白衣衛隊) : 1천 명. 외성(外城) 경비. 나탁(羅卓)_일월태극도(日月太極刀) : 백의위대의 대주. 오단(五壇) : 맹의 주력. 천왕단(天王壇) : 무력집단. 악탄(岳彈)_섬전일비(閃電一飛) : 천왕단의 단주. 금사단(金獅壇) : 짐승취급. 갈천홍(葛千鴻)_금사신군(金獅神君) : 금사단의 단주. 봉황단(鳳凰壇) : 조류취급. 상관연(上官娟)_봉황선자(鳳凰仙子) : 봉황단의 단주. 자하단(紫霞壇) : 독공취급. 강석초(姜碩草)_천독서생(千毒書生) : 자하단의 단주. 만화단(萬花壇) : 암기취급. 당문량(唐文亮)_팔비나타(八臂哪咤) : 만화단의 단주. 오당(五堂) : 맹의 업무 담당. 청룡당(靑龍堂) : 내부업무. 종리연(鍾里淵)_천산검성(天山劍聖) : 청룡당의 당주. 백호당(白虎堂) : 치안업무. 헌원백(軒轅伯)_혼원벽력수(混元霹靂手) : 백호당의 당주. 주작당(朱雀堂) : 연락업무. 구자청(丘子淸)_무영천리(無影千里) : 주작당의 당주. 현무당(玄武堂) : 형벌 및 집행업무. 팽황린(彭煌鱗)_묵룡철심(墨龍鐵心) : 현무당의 당주. 등사당(騰蛇堂) : 정보수집 및 첩보업무. 여절생(呂浙生)_묘수공공(妙手空空) : 등사당의 당주. 삼십이지부(三十二支部) : 중원 전역에 설치된 지부. 잠룡회(潛龍會) 잠룡회 조직도 잠룡회는 맹주부 직속의 단체다. 팔대신룡은 각각 삼대무룡을 거느린다. 그렇기 때문에 무룡은 도합 이십사무룡이 된다. 24무룡은 각각 40명의 잠룡을 거느린다. 따라서, 960명의 잠룡, 24명의 무룡, 8명의 신룡, 2명의 비룡, 부회주, 회주로 구성된다. 다음은 서열 순으로 나열한다. 회주 백리유. 부회주 제갈청하, 남궁려려. 좌우비룡(左右飛龍) : 회주를 보좌 좌비룡:남궁장천, 우비룡:석장형. 팔대신룡(八大神龍) : 행동대장 이광리, 호중산, 동방세기, 종리청우, 사군자화. 삼대무룡(三大武龍)_이십사무룡(二十四武龍) 제일무룡 : 팽무린, 악일비, 당여궁, 냉겸, 장우, 임방, 여몽청 제이무룡 제삼무룡 잠룡(潛龍) : 행동대원 불성십이무왕(不聖十二武王) 잠룡회의 무공사부. 신선별부의 진전을 계승한 사람들. 장왕(掌王) : 장법(掌法), 수법(手法), 지법(指法) 등의 유공(柔功)을 가르친다, 권왕(拳王) : 권법(拳法), 참(斬), 인(印) 등의 강공(剛功)을 가르친다. 영왕(影王) : 보법(步法) 사부. 비왕(飛王) : 신법(身法) 사부. 혼왕(魂王) : 병기무예(兵器武藝) 중 쾌(快)를 가르친다. 패왕(覇王) : 병기무예(兵器武藝) 중 중(重)을 가르친다. 심왕(心王) : 병기무예(兵器武藝) 중 변(變)를 가르친다. 겁왕(劫王) : 암기(暗器) 사부. 환왕(幻王) : 기환술(奇幻術) 사부. 음왕(音王) : 음공(音功) 사부. 독왕(毒王) : 독공(毒功) 사부. 뇌왕(惱王) : 기관토목(機關土木)이나 기문진법(奇門陣法) 등을 가르친다. 잠룡회 수련생 여파(女派) 4백 명 정도의 여자들로 구성된 파벌. 천상삼화가 무리를 이끌고 있다. 천상삼화 제갈청하, 남궁려려, 백리유. 사군자화(四君子花) 옥소하(玉素霞) : 菊花. 단목소하(端木小夏) : 梅花. 상관약빙(上官若氷) : 蘭草. 왕홍석(王紅石) : 竹. 여몽청 예하(芮荷), 능소군(凌昭君), 당설아(唐雪芽), 헌원소홍(軒轅少虹). 명문파(名門派) 4백 명 정도의 명문의 후예들이 결성한 파벌. 남궁장천이 무리를 이끌고 있다. 남궁장천(南宮長天) : 남궁벽의 첫째 아들. 남궁방천(南宮龐天) : 남궁벽의 둘째 아들. 동방세기(東方世祁) : 명문파의 서열 3위. 석장형에게 이용당하고 살해당한다. 종리청우(鍾里靑牛) : 천산검성(天山劍聖) 종리연(鍾里淵)의 독자. 명문파 서열 4위. 나문소(羅聞素) : 나탁의 아들. 팽무린(彭武麟) : 하북팽가(河北彭家) 출신. 악일비(岳一飛) : 악문세가(岳門世家) 출신. 헌원룡(軒轅龍) : 헌원가(軒轅家) 출신. 당여궁(唐如穹) : 사천당문(四川唐門) 출신. 갈룡(葛龍), 곽자우(郭子羽), 곽자기(郭子琦), 구호(丘虎), 노대붕(魯大鵬), 강무영(姜無影). 소수파(少數派) 여파와 명문파에 속하지 않는 2백 명 정도의 사람들이 만든 파벌. 석장형이 무리를 이끌고 있다. 석장형 : 2백 명 정도의 소수파를 이끌고 있으며, 사특한 음모를 꾸민다. 이광리(李廣利), 호중산(胡重山) : 줄곳 백상인을 견제하지만 결국에는 의제가 된다. 사마외도를 극심히 증오하게 된 과거가 있다. 장우 : 석장형의 부하. 성격이 우직하다. 냉겸, 임방, 강소평. : 신도운형(석장형)의 하수인들. 사사건건 백상인을 음해한다. 지옥마성(地獄魔城) 7년 전, 정사대혈전(正邪大血戰)의 결과로 붕괴. 신도유광(申屠幽狂)_지옥마종(地獄魔宗) : 지옥마성(地獄魔城)의 성주. 지옥별부의 진전을 계승했다. 신도운악(申屠雲岳) : 신도유광의 장남. 신도운형 : 신도유광의 차남. 지옥이로(地獄二老) : 지옥천로(地獄天老), 지옥지로(地獄地老). 신도유광의 사부들. 남해쌍흉(南海雙兇), 혈혈삼패(血血三覇), 신강사성(新疆四星). 악마교(惡魔敎) 교주 : 악마성자 교주의 후계자 : 일산인(一散人). 도마였으나 백상인에 의해 죽었다. 오대호법존자(五大護法尊子) 화령존자(火靈尊子) : 화령도검(火靈道劍)을 익혔다. 목령존자(木靈尊子) : 목령도검(木靈道劍)을 익혔다. 수령존자(水靈尊子) : 수령도검(水靈道劍)을 익혔다. 금령존자(金靈尊子) : 금령도검(金靈道劍)을 익혔다. 토령존자(土靈尊子) : 토령도검(土靈道劍)을 익혔다. 십이악령(十二惡靈) : 검령자(劍靈子) 등. 일백사십악령비자(一百四十惡靈秘子) : 각 십이악령에 배속된 12명의 비자(秘子). 기타 인물 및 세력 마교(魔敎) : 천년 전 내분으로 멸망한 단체. 마교구문(魔敎九門) : 마문(魔門), 사문(邪門), 혈문(血門), 독문(毒門), 요문(妖門), 귀문(鬼門), 유령문(幽靈門), 수라문(修羅門), 잔결문(殘缺門). 마교의 내분은 [마문,사문,수라문,잔결문] 과 [혈문, 독문, 요문, 귀문, 유령문] 의 격돌로 이어졌다. 앞의 마교사문은 그 결과로 멸문당했다. 만패불성(萬敗不聖) : 불성문(不聖門)의 창립자. 상승지옥마(常勝地獄魔) : 지옥문(地獄門)의 창립자. 고홍광(古鴻光)_죽림거사(竹林居士) : 백상인을 제갈박에게 소개시켜 준 유림(儒林)의 거목. 태산(泰山) 죽림장(竹林莊)의 장주. 등장 무공 및 기타 장치 무공 및 학문 무공의 경지 광검(光劒) 도검(道劒) : 태극(太極)·양의(兩儀)·삼재(三才)·사상(四象)·육합(六合)·칠성(七星)·팔괘(八卦)·구궁(九宮)·무극도검(無極道劍). 무검(無劒) 성검(聖劒) 내공심법 : 호연신공(浩然神功), 삼양기공(三陽氣功), 적양선단공(赤陽仙丹功), 미천대연신공(彌天大衍神功), 도반삼양공(導反三陽功), 현원전단공(玄元旃檀功), 건곤미허공(乾坤彌虛功), 금단선공(金丹仙功), 천지양극귀원공(天地兩極歸元功)_천지여의신력(天地如意神力),혈영마공(血影魔功), 대반야금강공(大般若金剛功)_금강반야대능력(金剛般若大能力), 태극양의신공(太極兩儀神功). 비급(秘笈) : 역근세수진경(易筋洗髓眞經). 보법(步法) : 금강부동신법(金剛不動身法):금강부동이형(金剛不動移形), 칠성둔형(七星遁形), 취팔선보(醉八仙步), 구전환영보(九轉幻影步), 이형환위(移形換位), 무영공공보(無影空空步), 부신수형(附身隨形), 무아보(無我步). 신법(身法)_경공(輕功) : 제운종(梯雲縱), 연대부운(蓮臺浮雲), 표풍어란보(飄風魚亂步), 무흔환영종(無痕幻影宗), 유운신법(流雲身法), 어기충소(御氣衝霄),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 천리호정(千里戶庭), 축지성촌(縮地成寸), 무아행(無我行). 어풍비행술(御風飛行術), 능공허도(凌空虛渡). 장법(掌法) : 소녀만화장(素女萬花掌), 연운십삼세(連雲十三勢), 대천성장(大天星掌), 천불수(千佛手), 무아수(無我手). 지법(指法) : 탄지신통(彈指神通), 은하적성(銀河摘星), 수라일점혈(修羅一點血), 연기성선(練氣成線) 일선지(一線指). 권법(拳法) : 백보신권(百步神拳), 구벽신권(九劈神拳), 패권(覇拳), 항마금강권(降魔金剛拳), 천왕삼권(天王三拳), 금단신권(金丹神拳). 검법(劒法) : 발검지도(拔劍之道), 쾌검지도(快劍之道), 수검지도(收劍之道), 붕검지도(崩劍之道), 십방십만검변(十方十萬劍變):東西南北[四方]乾坤艮巽[四隅]上下, 무극섬혼(無極閃魂):쾌검, 우주만뢰(宇宙萬雷):붕검, 조화검형(造化劍形):변검, 무아섬(無我閃):쾌검, 무아중(無我重):중검, 무아변(無我變):변검, 태극혜검(太極慧劍). 암기절예(暗器絶藝) : 만천화우(滿天花雨), 탈혼마우(奪魂魔牛), 구환살(九幻殺), 절대혼(絶對魂), 무아혼(無我魂). 기환술(奇幻術) : 소설의 설정상, 천조신광령(天照神光靈)으로 모든 기환술을 해제한다. 미염공(媚艶功): 천라미안(天羅美眼), 청정관음대법(淸淨觀音大法), 무량제세선향(無量濟世仙香). 섭혼대법(攝魂大法) : 옥청광명안(玉淸光明眼), 심인정령대법(心印精靈大法), 신마강령몽환대법(神魔降靈夢幻大法). 강시술(殭屍術) : 만겁윤회마법(萬劫輪廻魔法). 변신술(變身術) : 천지기환술(天地奇幻術), 환상전물법(幻像轉物法), 미리백환공(迷理百幻功). 영매대법(靈媒大法) : 천마환혼대법(天魔還魂大法).역천마환혼복체대법(逆天魔還魂復體大法):원영(元孀)을 이룩한 자는 육신이 훼손당해도 원영으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한다. 금제(禁制) : 십대금마령(十大禁魔靈). 사술(邪術) : 채음보양술(採陰補陽術), 채양보음술(採陽補陰術), 흡공대법(吸功大法). 운신술(運身術) : 환허무령대법(幻虛霧靈大法). 전음술(傳音術) : 공곡회음(空谷廻音), 육합전성(六合傳聲), 심어전의(心語傳意). 투시술(透視術), 섭성술(攝聲術), 외문기공(外門奇功), 주안술(駐顔術). 비급 : 기환전등록(奇幻傳燈錄), 천사비전(天邪秘傳), 전진기환경(全眞奇幻經), 대운광명무보(大雲光明武譜), 영매신서(靈媒神書), 천마기서(天魔奇書), 독심술진해(讀心術眞解), 환혼탈백대법급(還魂奪魄大法笈), 환상전물경(幻像轉物經), 변체환용록(變體幻容錄), 제령항마대법경(制靈降魔大法經). 음공(音功) : 만상조화지곡(萬象造化之曲):회생지곡(回生之曲)-상화지곡(祥和之曲)-만상구멸(萬象具滅), 금단후(金丹吼). 독공(毒功) : 독술(毒術) 및 독공(毒功), 용독(用毒)과 해독법(解毒法) 만겁지존독공(萬劫至尊毒功). 심독(心毒) : 선천지독(先天之毒). 비급 : 천절독전(天絶毒傳). 이술(異術), 이공(異功) : 벽호유장공(壁虎遊牆功):벽을 타고 기어오르는 무공, 금수통령대법(禽獸通靈大法):짐승과 의사소통, 소녀청정대법(少女淸淨大法):처녀성을 유지하면 늙지 않는 대법. 의술(醫術) : 속명보원결(續命補元訣), 광명천화비전(光明天花秘傳). 비급 : 소요귀진(逍遙歸眞). 기문진법(奇門陣法),선천역수(先天易數), 기관토목(機關土木), 귀계(鬼計), 병법(兵法). 기문진법 : 은형귀원진(隱形歸元陣), 대복마팔문곤쇄(大伏魔八門困鎖), 대주천환영(大周天幻影). 비급 :만상귀원록(萬象歸元錄), 태허천기비록(太虛天機秘錄), 헌원비해(軒轅秘解), 귀문천기보록(鬼門天機寶錄), 태극도설(太極道說), 귀곡신서(鬼谷神書). 무기 암기 : 우모침(牛毛針), 비표(飛鏢). 독(毒) : 탈백산공향(奪魄散功香), 벽옥로(碧玉露):산공독. 포승(捕繩) : 박룡삭(縛龍索). 보물 만년한취옥(萬年寒翠玉), 만년묵잠사(萬年墨蠶絲), 만년한옥지환(萬年寒玉指環), 만년온옥(萬年溫玉), 만년강옥(萬年鋼玉), 만년한옥(萬年寒玉), 만년강모(萬年鋼母). 영약(靈藥) 대라신단(大羅神丹), 금천영수(金泉靈水), 만년혈삼(萬年血蔘), 만년성형삼왕(萬年成形蔘王):만년동자삼(萬年童子蔘), 태양내단(太陽內丹), 빙정내단(氷精內丹). 영물(靈物) 만년묵잠(萬年墨蠶):누에, 무극금황정(無極金皇精):우담화의 본체, 우담화(優曇華), 우담화의 정령(精靈), 태양화리(太陽火鯉), 만년금구(萬年金龜):거북이. 영지(靈地) 음양상조지지(陰陽相助之地), 무극지지(無極之地), 영천지지(靈泉之地), 만독정화연(萬毒精華淵). 기타 봉황연(鳳凰涎):술, 단봉용향차(丹鳳龍香茶):차, 용정차(龍井茶):차, 과두문(蝌蚪文):문자, 내미지상(內美之相):관상, 무혈신마맥(無穴神魔脈), 만절산맥(萬絶散脈), 전륜성제상(轉輪聖帝相):관상, 천상사신체(天上四神體):천양신무지체(天陽神武之體)-천혜만박지체(天慧萬博之體)-천화옥령지체(天花玉靈之體)-천음성모지체(天陰聖母之體), 지극순음지체(至極純陰之體), 영규타통(靈竅打通), 육식통령(六識通靈):眼耳鼻舌身意[六識]. 연결권 서지정보 같이 보기 무협 무협 소설 무협 소설 1998년 소설 대한민국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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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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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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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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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오백이십오)는 524보다 크고 526보다 작은 자연수이다. 수학 합성수로, 그 약수는 1, 3, 5, 7, 15, 21, 25, 35, 75, 105, 175, 525이다. 과학 기타 날짜: 5월 25일 연도: 525년 기원전 525년 5e02 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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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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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8C%80%ED%95%9C%EB%AF%BC%EA%B5%AD%20%ED%97%8C%EB%B2%95%20%EC%A0%9C8%EC%9E%A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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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8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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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헌법 제8장 지방자치는 대한민국 헌법에서 지방자치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는 장이다. 구성 제117조 자치권 및 지방자치단체의 종류 제118조 지방자치단체의 조직과 운영 같이 보기 대한민국의 헌법 지방자치 지방자치단체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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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0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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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COM%20%ED%8C%8C%EC%9D%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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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 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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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 확장자 .com은 다양한 컴퓨터 시스템에서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초기에, 이 용어는 "명령 파일"을 대표하는 말이었으며 운영 체제에 내보낼 명령어를 포함하는 텍스트 파일이었다.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서, 디지털 이큅먼트 코퍼레이션 미니컴퓨터 및 메인프레임 컴퓨터 시스템에 실용적으로 쓰이게 되었다. 마이크로컴퓨터의 도입과 더불어, 확장자 .com으로 끝나는 파일의 사용은 점차 바뀌어 갔다. MS-DOS 호환 도스와 8 비트 CP/M에서 COM 파일은 단순히 실행 파일의 종류이다. 이 파일 형식의 이름은 파일 확장자 .com에서 나온 것이며(최상위 도메인 .com과 헷갈리지 말 것) 각 파일에 쓰이는 초기의 확장자였다. 그러나 CP/M과 매우 초기의 MS-DOS 버전을 제외하고는 파일 형식과 파일 확장자 사이의 실제적인 통합은 없었다. 플랫폼 지원 이 포맷은 여전히 현대의 윈도우 기반의 플랫폼의 실행 파일이지만 MS-DOS 가상 구현 체계에서 돌아간다. x64 계열의 운영 체제에서는 이러한 가상 구현 체계가 없으므로 실행되지 않는다. (역자 주: 가상 구현에 대해서는 NTVDM 참조) COM 파일은 또한 도스박스와 같은 도스 에뮬레이터를 사용하여 실행할 수 있다. 이 에뮬레이터는 모든 플랫폼에서 지원한다. "COM"은 "core image"(코어 이미지)의 준말이며, 이러한 .com 파일이 컴퓨터에서 실행할 수 있는 기본 명령어에 대한 코드를 포함했기 때문에 "command"(명령어)로 해석되기도 한다. 이진 포맷 COM 포맷은 가장 단순한 실행 포맷이며, 메타데이터는 없고, 코드와 데이터만 포함하고 있으며 일부 세그먼트의 오프셋 0x0100에서 로드되어 실행된다. 세그멘테이션 모델이 잘 동작하기 때문에 구조 배치가 필요하지 않다. 파일 크기가 파일 시스템의 최대 용량을 지원하는 EXE 파일과는 달리 COM의 최대 지원 용량은 65536바이트(64키비바이트)이다. 실행 우선도 실행 파일로는 EXE, COM, BAT 등이 있다. 이를테면, 한 디렉터리가 COM 파일과 EXE 파일이 확장자만 다르고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 이 경우 COM 파일이 우선하여 실행된다. 외부 링크 John Elliott's article on the extended CP/M-80 3.0 COM file header 도스 기술 실행 파일 포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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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D%8C%EB%A0%A5%201%EC%9B%94%2022%EC%9D%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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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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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력 1월 22일은 음력 1월의 22번째 날이다. 사건 문화 2006년 - 대구 시내버스 준공영제 및 시내버스-도시철도 환승할인제를 시행하였다. 탄생 1904년 - 대한민국의 역사학자 신석호. 1975년 - 대한민국의 배우 이선균. 1977년 - 대한민국의 가수 조성모. 1984년 - 대한민국의 배우 정유미. 1991년 - 대한민국의 가수 윤지성. 1994년 대한민국의 배우 정민아. 대한민국의 가수 수민 (소나무). 1998년 - 미국의 래퍼 버논 (세븐틴). 1999년 - 대한민국의 가수 주학년 (더보이즈). 사망 2009년 - 대한민국의 가톨릭 추기경 김수환. 기념일, 연중행사 같이 보기 음력 360일: 1월 2월 3월 4월 5월 6월 7월 8월 9월 10월 11월 12월 전날:1월 21일 다음날:1월 23일 - 전달:12월 22일 다음달:2월 22일 양력:1월 22일 음력, 윤달 3*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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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D%B4%EC%A2%85%EC%88%9C%20%281908%EB%85%8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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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순 (19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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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순(李鍾純, 1908년 ~ 1989년 4월 14일)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었다. 생애 한문을 수학하고 경성고등예비학원(京城高等豫備學院)을 졸업한 뒤 일본 와세다 대학 법과, 경제학과 교외생으로 졸업하였다. 이후 보통문관고시에 합격하고 면장, 청양군 권농과 과장, 보령군 군수, 홍성군 군수(1946년), 충청남도 도청 이재과(理財課) 과장을 역임하고 제2대, 제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였다. 1967년경에는 농업에 종사하였다. 학력 경성고등예비학원 졸업 일본 와세다 대학교 법학과 졸업 일본 와세다 대학교 대학원 경제학과 경제학 석사 졸업 대한민국 국방대학원 행정학 석사 졸업 약력 1948년 5월 10일 : 제헌 국회의원(충남 홍성) 낙선 참고 자료 한국근현대인물자료 (국사편찬위원회) 1908년 출생 1989년 사망 부여군 출신 대한민국의 정치인 충청남도의 국회의원 서울시립대학교 동문 와세다 대학 동문 국방대학원 동문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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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86%8C%EB%A1%9D%EB%8F%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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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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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Sorokdo, 小鹿島)는 전라남도 고흥군 도양읍에 속하는 섬이다. 섬의 이름은 그 형상이 작은(小) 사슴(鹿)과 같다고 하여 붙여졌다. 고흥 반도 끝의 녹동항에서 배로 5분 거리에 있다. 2009년 3월 3일에는 소록대교가 개통하여 육로로도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역사 한센병 요양원 시작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들이 모여사는 곳이다. 구한말 개신교 선교사들이 1910년 세운 시립나 요양원에서 시작됐다. 1916년에는 주민들의 민원에 따라 조선총독부가 소록도 자혜병원으로 정식으로 개원했다. 일제강점기에는 한센병 환자를 강제 분리·수용하기 위한 수용시설로 사용되면서, 전국의 한센병 환자들이 강제 수용됐다. 소록도 안에는 일제강점기 한센병 환자들의 수용 생활의 실상을 보여주는 소록도 검시실, 감금실과 한센병 자료관, 소록도 갱생원 신사 등 역사적 건물과 표지판 등이 남아 있다. 이곳에는 수녀로서 한센병 환자들을 돌보았던 고흥 소록도 마리안느와 마가렛 사택이 있다. 의료윤리 실종 검시실은 사망한 한센병 환자를 검시하는 해부실로 사용됐다. 현재 건물 안 내부에는 당시 검시대로 사용했던 흰 테이블이 중앙에 놓여 있고 벽쪽으로는 수납장이 세워져 있다. 사망한 환자들은 자신과 가족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곳에 눕힌 채 해부당했고 화장 후 납골당에 유골로 안치됐다. 감금실은 1935년 제정된 조선나예방령 규정에 의해 설치됐다. 요양원 환경 개선 1930년 환자들이 제2대 원장을 지낸 하나이 원장을 위해 세운 창덕비가 있다. 앞면에는 ‘화정원장창덕비’라고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한문으로 된 공적 내용을 새겨두었다. 안내판은 한글과 일문으로 되어있다. 해방 후 자유당 정권에 의해 비석이 폐기될 상황이 되자 환자들이 땅에 묻어두었다가 1961년 5.16 이후 다시 발굴해 중앙공원에 세운 뒤 1988년에 원래 위치에 다시 세웠다. 하나이(花井善吉)원장은 1921년부터 1929년까지 재직하면서 이곳에서 사망했다. 하나이 원장은 기독교인 신자들의 요청으로 조선총독부에 선교 허락을 받아서 신사부로(田中道三郞)목사를 소록도로 초청해 예배 처소를 마련해 주었다. 일본인이면서도 조선 환자들을 가족처럼 아껴주며 헌신적으로 보살핌으로써 소록도의 슈바이처라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요양원 원장의 일탈 4대 원장 스오 마사스에는 환자 처우에 불만을 품은 원생 이춘상(李春相)에게 살해당했다. 당시 환자들은 강제 노동과 일본식 생활 강요, 불임 시술 등의 인권 침해와 불편을 당했다. 해방후 환자 격리 낙후된 환자 처우 1945년 8월 22일, 일제 해방에 따라 환자들이 자치권을 요구하자 병원 직원들이 환자 84명을 살해하고 매장했다. 또 한센병이 유전된다는 잘못된 믿음을 근거로 1990년대 전후까지 단종·낙태 강제 수술이 이어졌다. 소록도 병원은 해방 후에도 한센병 환자의 격리 정책을 고수해 환자 자녀들은 소록도 병원 밖의 학교에서 공부해야 했다. 요양기관 기능의 회복 1990년 후반기부터 한센병에 대한 연구가 진척되고 환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개선되면서 한센병 치료 및 연구, 요양 재생 등을 기본 사업으로 하는 요양시설로 바뀌었다. 일부는 소록도 축구단을 결성해 한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완화했다. 2007년 10월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이듬해인 2008년 10월 시행에 들어갔다. 한센인피해사건진상규명위의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신고는 2009년 3월부터 2013년 4월 말까지 6차례 연장 접수를 실시해 최종적으로 1만38건이 접수됐고, 이 중 6462건(신고당시 사망 1758)이 피해자로 인정을 받았다. 진상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 2011년부터 한센인 539명이 국가를 상대로 강제 단종(斷種)과 낙태에 따른 집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2017년 2월 대법원은 한센인 19명의 국가소송 상고심에서 국가의 상고를 기각하고 낙태 피해자 10명에 4000만원, 단종 피해자 9명에 3000만원의 배상금과 그 이자를 지급하라고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국유지 국립소록도병원 소록도는 전체가 국유지로 국립소록도병원으로 지정돼 있다. 주민 대부분은 국립소록도병원의 직원 및 전염력을 상실한 음성 한센병 환자들이다. 또한 환자의 대부분은 65세를 넘긴 고령자다. 환자들의 주거 구역은 외부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차단되어 있다. 병원 직원 등 환자가 아닌 사람들이 거주하는 관사지대(소록리 1번지)와 환자들이 거주하는 병사지대(소록리 2번지)로 나뉘며 병사지대는 외부인의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삼림과 해변이 잘 보호되어 있어서 정취가 뛰어나며 섬 주변을 둘러볼 수 있게 길이 잘 닦여 있다. 우체국 도양읍 소록지소 등 관공서와 천주교회, 개신교회인 소록도교회, 원불교당 등의 종교 시설, 녹동초등학교 소록도분교 등 교육시설도 있다. 2007년 9월 22일부터 5일간 고흥반도와 소록도를 잇는 1160m의 연륙교 소록대교가 임시개통하여 육상교통로가 열렸다. 2009년 3월 3일에 정식 개통했다. 이곳을 모델로 한 소설로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이 있다. 일제 말기에서 197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백동호의 소설 《보리밭에 달뜨면》은 이춘상 선생이 모델로 등장한다. 같이 보기 국립소록도병원 고흥 소록도 병사성당 - 등록문화재 제659호 고흥 소록도 마리안느와 마가렛 사택 - 등록문화재 제660호 각주 참고자료 월간 GEO, 한센인들의 마음의 고향-소록도 기사. 월간 글마루 2015년 11월호 마루대문-전남 고흥, 만물이 주는 최대의 선물은 깨달음이라 기사. 남해의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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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B9%A8%EB%A1%80%EA%B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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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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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례교(浸禮敎, )는 잉글랜드에서 청교도 신학의 영향을 받아 발생한 개신교의 한 교단이다. 침례교파가 유럽 대륙에서 발생한 재세례파(abanbaptist)에 뿌리를 두고 발생하였다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으나 역사적으로 입증된 주장이 아니다. 침례교는 예수에 대한 믿음을 고백한 후 뱁티즘을 줘야 한다는 신자의 뱁티즘(believer's baptism)과 대상자를 물속에 완전히 잠기게 하는 침수례가 성경적이라고 주장한데에서 '뱁티스트'(baptist)라는 명칭을 갖게 되었다. 'anabaptist'와는 신학사상이 다르고 교단차원에서 서로 교류한 적이 없고, '아나밥티스'도 잉글랜드 뱁티스트들을 자신들의 일파 혹은 방계로 여기지도 않았다. 홀랜드 쪽에 있었던 아나밥티스트 소위, 워터랜드 아나밥티스라고 불리던 이들만이 침례를 주었기에, 잉글랜드 밥티스트와 워터랜드 아나밥티스트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믿고 싶은 이들이 있어서 'anabaptist'를 재침례파라고 번역하기도 하지만 역사적 근거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미국으로 건너간 '재세례파'는 아미쉬파로 정착하였고, 잉글랜드 침례교도들은 아미쉬파 등과는 교류가 전혀 없이 미국 내에 최대 교단으로 성장하였다. 노예해방 문제와 남북전쟁을 계기로 북침례교회와 남침례교회로 분리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개요 침례교는 (영아가 아닌) 신앙인의 침례와 믿음만으로 이뤄지는 구원을 비롯해 성경을 신앙과 실천의 유일한 원칙으로 삼고 있으며, 지역교회(개별교회) 각각의 독립성을 원칙으로 한다는 점에서 장로교파(장로주의) 및 감리교파(감독주의)와 다르다. 즉, 각각의 개별교회는 규모와 조직체계와는 상관이 없이 독립된 완전체이며 어떤 개별교회도 다른 개별교회의 일부가 될 수 없고, 어떤 교회도 다른 교회를 간섭하거나 간섭받아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각 개별교회 내부에서 발생한 문제를 그 교회 밖의 다른 어떤 교회나 총회에서 간섭하여 재판을 하고 판결을 내리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하다. 반면에 외부의 어떤 조직으로부터도 간섭을 받지 않는 독립된 개교회들이 자발적으로 연합하여 협력한다는 점에서 '독립개교회주의'(church individualism)와도 다르다. 을 협력사업을 위해 자발적으로 연합상과 각 개별교회들 상호간의 연합자립적인 지역 교회를 그 특징으로 갖고 있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침례교회는 칼빈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청교도 회중주의자들 중에서 나온 '특수침례교회'가 가장 뿌리가 깊지만, 각 개별교회마다 혹은 연합체마다 자신들의 신학노선을 자유롭게 취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일반적으로 폭넓게 복음주의와 근본주의의 노선을 지향하는 경향이 있다. 직제는 목사와 집사가 있다. 어떤 이들은 1609년 암스테르담에서 영국인 분리주의자 존 스미스를 목사로 한 회중을 최초의 침례교회라고 하지만 미국 남침례교단의 공식 사학자는 그렇게 단정하지를 않고 'path finder'로 지칭한다. 신약성경에 근거한 회중을 세우기 위한 몇몇 조건들을 고민하고 시험한 공로가 있다. 스미스는 영아의 침례나 세례를 거부했고, 신앙에 대한 구체적인 고백이 있는 이들에 대해서만 '뱁티즘'을 주었다. 그러나 어떤 방식으로 뱁티즘을 주어야 하는지, 자신의 뱁티즘이 정당한 효력이 있는지, 있다면 왜 있는지에 대해 깊이 고뇌했다. 존 스미스의 회중은 존 스미스의 죽음으로 소멸되었다. 그러나 잉글랜드의 자유교회운동은 청교도 신학의 칼빈주의를 기초로 하는 특수침례교인(Particular Baptists)들과, 신학적 엄밀성이 떨어지는, 심지어 알미니안주의적 성향을 보이기도 하는 일반침례교인(General Baptists)들이 생겨났다. 특수침레교회와 일반침례교회는 교회론이 상당히 달라 교파적 교류가 없었다. 일반침례교회는 쇠락했고, 겨우 명맥을 유지하다가 최종적으로 특수침례교회에 흡수되었다. 그런 점에서 영국 침례교는 칼빈주의를 기초로 하는 개혁파 혹은 특수침례교(Particular Baptists)적 성향이 두드러졌다고 말하는 것이다. 1639년 로저 윌리엄스는 미국에 최초로 침례교회를 설립하였고, 미국의 자유정신은 침례교회의 자유정신과 유사한 점이 있었고, 침례교회가 성장하는 기초가 되었다. 특히 18세기 중반의 대각성 운동 이후 미국의 침례교회는 감리교회와 더불어 증가하기 시작했다. 2000년을 기준으로 세계의 침례교인 수는 약 1억 5천만 명으로, 특히 미국의 개신교에서 교세가 가장 큰 교파는 세계 최대의 개신교단인 남침례회(Southern Baptist)이다. 침례교회의 직분과 주장 개별 교회의 자치권(회중주의) 침례교의 각 교회는 정책, 조직 형태, 가르침에 있어서 자치권을 갖는다. 침례교회는 각 교회의 독립을 강조하여, 총회와 같은 기관이나 교황과 같은 지도자에 의한 직접 관리를 받지 않는다. 교회 운영, 지도권, 가르침은 각 교회의 평신도에 의해 민주적으로 결정되며, 이에 따라 각 교회의 믿음의 차이가 나타난다. 회중주의의 특징으로서, 많은 협의회와 총회들이 만들어져 있다. 이러한 협회들은 선교를 비롯한 교육 및 자선을 위해 존재하고 있으며, 개별 교회의 운영에 대한 권한은 갖지 않고, 개별교회의 자율성을 존중한다. 따라서 어느 총회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립 침례교회들도 존재한다. 전 신자의 제사장 직분자 전 신자가 제사장 직분자라는 만인제사장설은 모든 기독교인은 성직자들의 도움 없이 하나님과 직접 만날 수 있으며, 성경을 통해 계시된 진리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교리는 "그리스도인은 왕같은 제사장이요, 하나님의 백성이요, 거룩한 민족이며, 우리를 어둠에서 빛으로 이끄신 하나님의 구원을 선언하기 위해서 부름을 받았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베드로전서 2장 9절 내용에 근거하고 있으며, 마르틴 루터에 의한 종교개혁 및 15세기 영국교회의 종교개혁자 존 위클리프에 의해 대중화되었다. 침례교의 모든 신자의 제사장 직분은 그들의 종교의 자유에 대한 믿음을 지지하는 기둥 중 하나이다. 성례전 일반적으로 침례교회에서는 신약성서에 나오는 두 가지 성례전을 행하는데, 이는 침례와 주의 만찬이다. 침례 침례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즉 세상을 구원하신 분으로 고백한 후 물 속에 온몸이 완전히 잠기는 의식으로서,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거듭남의 상징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따라서 침례중생설을 지지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침례교회에서는 구원을 얻은 후 받는 신자의 침례를 회원의 자격으로 삼고 있다. 침례교에서는 유아세례(유아침례)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구원은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고백으로 얻어지는 은혜이므로, 부모가 자식의 구원을 결정할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침례교에서는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를 강조한다. 이는 침례 요한이 사용했던 방식으로서, 침례를 주는 목회자가 침례 받는 사람을 뒤쪽으로 몸을 낮추어 물에 잠기게 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그리스도의 제자로 삼으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명령 즉, 삼위일체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마태복음서 28장 19절-20절이나 다른 신앙고백문을 낭독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러한 의식은 그리스도인이 예수와 함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로마서의 가르침을 적절하게 설명한다. 인정되는 침례의 방식과 주체도 교회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다. 많은 침례교회들은 물에 완전히 잠기는 침례만을 인정하나, 몇몇 교회에서는 장애인이나 노인등, 예외적인 경우에 한하여, 물에 잠기는 것을 대체하기도 한다. 또한 회원을 이명하는 데 있어, 다른 기독교 교파에서 받은 세례(유아세례 제외)를 침례로 인정하는 교회도 있다. 주의 만찬 주의 만찬은 기독교 교파별로 거룩한 교제(Holy Communion),감사의 제사(Eucharist),주의 만찬(Lord's Supper)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침례교회에서는 주의 만찬(Lord's Supper)이라고 부른다. 주의 만찬은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마지막 만찬을 모방한 의식인데, 누가복음서 22장 19절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고난받기 전날의 마지막 만찬에서 "나를 기념하여 이것을 행하라"라고 하였다. 주의 만찬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예수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음료를 함께 먹음으로써 주의 만찬을 행한다. 침례교에서는 빵과 음료가 예수의 몸과 피라는 것을 상징적인 의미로 해석하며, 로마 가톨릭에서 받아들이는 화체설(빵이 실제로 몸으로 변함)과 같은 문자적 해석은 배제한다. 주의 만찬의 집전시에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첫 번째 편지인 고린도전서 11장 23절~25절을 인용한다. 주의 만찬에 사용하는 빵은 누룩(베이킹파우더)를 넣지 않는 네모진 모양의 빵이나, 웨이퍼(얇게 구운 과자) 등을 자주 사용하며, 마지막 만찬에 사용되었으리라 여겨지는 누룩 없는 종류의 빵을 사용한다. 미국의 침례교에서 금주주의에 근거, 주의 만찬에 사용하는 음료는 알콜이 없는 포도 음료를 주로 사용하게 되었으나, 일부 교회에서는 알콜이 있는 포도주를 사용하기도 한다. 보통은 개개인별로 작은 잔에 음료를 담아 나누지만, 회중 전체가 하나의 큰 잔을 사용하기도 한다. 교회에서 자주 사용되는 긴 의자의 뒤에는 주의 만찬에 사용한 잔을 둘 수 있는 둥근 공백이 있기도 하다. 보통 빵과 잔은 목사에게서 집사에게 전달되며, 집사는 다시 빵과 잔을 회중들에게 나누어준다. 일반적으로는 일치의 상징으로서 모든 회중이 동시에 빵을 먹고 잔을 마신다. 때에 따라서는 빵과 잔을 한꺼번에 먹는 경우도 있다. 주의 만찬의 주기는 주단위, 월단위, 분기단위, 연 단위로 이루어질 수 있다. 보통은 예배의 마지막으로 이루어지나 예배 중 어느 때라도 행할 수 있다. 주의 만찬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의 범위는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는 모든 회원이 참여할 수 있도록 열려 있는 방식이 있고, 침례교인이면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있으며, 자기 교회에 등록한 회원만 참여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 직책 일반적으로 침례교에서는 감독과 집사를 성서에 나타난 직분으로 보고 있다. 다른 교파에서 많이 나타나는 장로의 직분은 목사나 집사의 직분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독립적인 직책으로 보지 않는다. 이들 직분이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 한동안 논쟁이 된 적이 있었으나, 2009년 침례교단 총회에서 여성의 감독과 집사 안수가 통과 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그때에 내가 나의 영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주리라" 하신 신약의 요엘 2 : 29를 근거로써 이루어진 것이고, 인간의 오랜 전통 보다도 성경을 최고의 권위로 삼는 정신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결과이다. 감독 목사 침례교 감독의 주요 역할은 예배 때마다 설교를 즉, 성경을 해석함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또한 감독은 병이 든 사람의 집이나 병원을 심방하기도 하며, 아직 믿음의 결정을 내리지 못한 가정을 방문하기도 한다. 성도들의 결혼식과 장례식을 이행하며, 업무 회의에 있어서는 사회자 역할을 맡는다. 어느 정도의 크기가 되는 교회에서는 특정 목적을 담임하는 부교역자를 둔다. 부교역자가 담당하는 부분은 행정, 상담, 사회사업, 교회음악, 청년교육, 어린이교육, 교회경영 등이 있다. 집사 초대교회에서 사도들의 사역이 늘어나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각가지 공정성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들을 다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선택 받은 사람들이 바로 집사들이다. 우리가 잘 아는 스데반도 이때 선택되어 집사로 안수 받게 된다. 이 집사들의 직무는 주로 재정 문제였다. 성도들의 구제문제에서 비롯하여 교회의 각종 사업에 대한 재정 출납을 맡아 총괄하였다. 신약성서 시대의 기원 어떤 견해에서는 침례교의 기원을 신약성서의 침례자 요한과 그리스도로 보기도 한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침례교라 불리지는 않았으나 기독교인들이 회중으로 모여 현재의 침례교의 방식 및 전통을 이어 왔다고 주장한다. 이 견해에 따르면 침례교는 종교개혁 그 이전부터 존재하는 것이며, 따라서 종교개혁과도 관련이 없게 된다. 하지만 일부 근본주의적인 침례교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침례교인은 이 주장을 근거없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 그러한 주장을 하는 침례교신학자들은 거의 없다. 재침례교 기원 재침례교는 1500년대의 종파로서 유아 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성인에 대해 “다시 침례”를 준 집단이다. 이 종파는 신앙고백 이후의 침례와 믿음의 자유 등 침례교와 많은 부분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침례교의 형성에 영향을 주었다. 이들의 영향을 받은 일부 청교도들이 설립한 교회라고 설명한다. 청교도들은 성공회의 주교제와 예복사용에 반대하고, 민주적인 교회정치제도인 장로제를 요구하며 17세기 분리된 칼뱅주의자들을 말하는데, 이들중 일부가 1620년 영국 런던에 침례교회를 세웠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으로의 전래 대한민국의 침례교회는 1889년 캐나다 선교사 맬컴 펜윅(Malcolm C. Fenwick)에 의해 함경남도 원산에 설립된 대한기독교회(1921년 동아기독교회로 교단명 변경)를 모태로 1949년 미국 남침례회와 제휴하면서 본격적인 교파로 발전하였다. 또한 1954년 미국 선교사 아이잭 포스터에 의해 한국성서침례친교회가 선교활동을 시작하였다. 1959년 남침례회 선교사를 중심으로한 교인들과 동아기독교회 출신 토착 교인들 간의 신학적 논쟁으로 인해 대한기독교침례회연맹과 기독교대한침례회연맹으로 분열되기도 했으나, 1968년 두 파벌이 합동하였다. 현재의 명칭은 기독교한국침례회다. 외부 링크 기독교 한국 침례회 침례신학대학교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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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D%98%B8%EC%95%88%20%EB%AF%B8%EB%A1%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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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안 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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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안 미로 이 페라(, 1893년 4월 20일 ~ 1983년 12월 25일) 또는 스페인어 발음의 호안 미로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 출신의 화가, 조각가, 도예가이다. 바르셀로나 근처인 몬토로이크에서 출생하여 바르셀로나 미술 학교를 중퇴하고 1919년 파리로 나와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초기의 작품에는 사물에 대한 정밀한 형태적 감수성과 친밀감이 드는 서정적인 감동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 1923년부터 바실리 칸딘스키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 화풍으로 바뀌었다. 그의 작품은 밝고 가벼운 색채와 소박하며 단순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신선한 정서가 풍긴다. 1928년에는 네덜란드를 여행하였고, 그 해에 미국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1937년 파리 만국 박람회에 출품한 〈추수〉가 유명하다. 1947년 미국으로 건너가 신시내티 호텔 벽화, 하버드 대학 벽화를 그렸다. 1948년 귀국한 후로는 파리와 바르셀로나에서 제작생활을 하였다. 1954년 베네치아 국제전에서 판화 부문 국제상을 받았다. 1983년 12월 25일 성탄절에 9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미로의 작품에는 초현실주의 특유한 어두운 느낌이나 심리묘사는 적고 밝은 소박성이 특질이며 모두를 순수한 상징기호로 바꾸어 가는 매력이 있다. 대표작으로 〈야곡〉 〈곡립의 귀〉 〈해맑은 웃음〉 등이 있다. 2018년 진라면 30주년 한정판으로 호안 미로의 작품을 제품 겉면에 인쇄한 제품이 판매되었다. 참고 문헌 각주 외부 링크 1893년 출생 1983년 사망 카탈루냐의 화가 초현실주의 예술가 바르셀로나 출신 유대계 스페인인 20세기 스페인 사람 20세기 조각가 20세기 화가 다다이즘 추상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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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2010%EB%85%84%20FIFA%20%EC%9B%94%EB%93%9C%EC%BB%B5%20%EC%95%84%EC%8B%9C%EC%95%84%20%EC%A7%80%EC%97%AD%203%EC%B0%A8%20%EC%98%88%EC%84%A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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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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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은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의 아시아 지역 3차 예선이다. 2008년 2월 6일부터 6월 22일까지 20개 팀이 4개 팀씩 5개 조로 나뉘어 홈 앤 어웨이 방식으로 진행되었으며, 각 조의 1, 2위를 기록한 10개 팀은 최종 예선에 진출한다. 참가국 및 시드 배정 조 추첨은 2007년 11월 25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무작위 추첨으로 결정되었다. 3차 예선으로 직행한 5개 팀, 1차 예선에서 올라온 상위 11개 팀, 그리고 2차 예선에서 올라온 4개 팀, 이렇게 20개 팀이 4개의 포트, 5개 팀으로 나뉘어 추첨을 하였다. 1 FIFA는 2007년 10월 30일에 쿠웨이트의 모든 국가대표팀과 클럽팀의 국제 대회 참가를 금지했다. 이는 그해 10월 9일에 있었던 쿠웨이트 축구 협회장 선거에서 정부의 개입이 있었기 때문인데, FIFA에서는 정부의 축구 협회에 대한 개입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에 이 선거 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재선거를 치를 것을 요청했으나 쿠웨이트 측에서 이를 거부함에 따라서 이루어진 제재였다. 그러나 FIFA는 부적절한 절차로 이사진에 오른 쿠웨이트 축구 협회 유력 인사들이 자진 사임하면서 해당 징계를 11월 9일에 모두 철회했다. 해당 징계 철회로 인해 쿠웨이트는 다시 모든 국가대표팀과 클럽팀 국제 대회에 참가가 가능하게 되었다. 경기 결과 1조 2조 3조 4조 싱가포르는 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 경기,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 경기에서 부적격 선수를 출전시킨 사실이 발각되어 해당 경기에서 모두 0 – 3 몰수패(우즈베키스탄과의 원정 경기는 원래 우즈베키스탄의 1:0 승리, 사우디아라비아와의 홈 경기는 원래 사우디아라비아의 2 – 0 승리로 기록되었음)를 당했다. 이로 인해 사우디아라비아와 우즈베키스탄의 순위가 뒤바뀌었으나 두 팀 모두 최종 예선 진출이 확정되었기 때문에 최종 예선 진출 팀이 뒤바뀌는 일은 없었다. 5조 같이 보기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1차 예선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2차 예선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플레이오프 각주 3차 예선 2008년 2월 2008년 3월 2008년 5월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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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88%98%EA%B5%AD%EC%82%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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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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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국사(守國寺)는 서울특별시 은평구 구산동에 있는 절이다. 원래 평범한 절이었으나 1992년 재건축 이후 사찰 전체가 금박으로 씌워진 황금사찰이 되었다. 개요 수국사는 세조대왕의 큰 아들인 의경세자(懿敬世子)가 20세의 나이로 요절하자 덕종으로 추존하고 넋을 위로하고자 1459년(세조 5)에 그의 능 근처에 정인사(正因寺)를 창건하였다. 이후 사찰을 현재의 장소로 옮겨 짓고 수국사(守國寺)로 개명하여 왕실을 안녕과 수복을 축원하는 원찰(願刹)로서의 기능을 수행하였다. 소장 문화재 보물 서울 수국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보물 제1580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서울 수국사 아미타불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2제242호) 서울 수국사 십육나한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3호) 수국사 극락구품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4호) 수국사 감로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5호) 수국사 신중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6호) 수국사 현왕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47호) 각주 외부 링크 서울특별시의 절 대한불교조계종의 절 서울 은평구의 건축물 1459년 설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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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E%A5%EB%A6%AC%EC%9D%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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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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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리인 (, , 1989년 2월 28일 ~ )은 중화인민공화국 쓰촨성 출신의 중국인 여성 가수이다. 대한민국에서 SM 엔터테인먼트 소속으로 활동하였으며, S.M. THE BALLAD의 멤버로도 활동하였다. 생애 장리인은 1989년 2월 28일에 중화인민공화국 쓰촨성 청두시에서 태어났다. 바이올리니스트 부모의 영향으로 음악을 한번 들으면 그대로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음악에 대해 특별한 소질이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그녀가 클래식 뮤지션이 되기 원하셨으나 그녀는 전 세계의 대중 음악에 빠져들어 가수의 꿈을 갖고 있었고, 부모 몰래 대중 음악을 들으며 독학했다. 12세에 10년 동안 배운 바이올린으로 사천 음악학교 부속중학교에 합격했으나,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닌 가수를 꿈꾸고 있었던 장리인은 부모를 설득하여 가수의 길로 들어선다. 대한민국에서의 데뷔 2003년, SM 엔터테인먼트 관계자에 캐스팅돼 한국으로 오게 된 장리인은 다양한 트레이닝을 받아왔으며 3년 후인 2006년, 17세의 나이로 "Timeless"로 데뷔했다. Timeless는 동방신기 시아준수와 같이 부른 듀엣곡으로 뮤직 비디오에는 슈퍼주니어의 한경과 최시원, 같은 소속사의 연기자 이연희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으며, 그녀는 이 곡으로 데뷔 3주 만에 《SBS 인기가요》에서 1위를 하였다. 장리인은 2007년 상반기에 후속곡 Y (Why...)로 활동했고 그녀의 데뷔 과정을 담은 Y (Why)의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도 화제가 되었다. 다큐멘터리 뮤직비디오에서는 데뷔를 앞두고 노래와 춤 연습을 하는 장리인의 모습과 한국어 공부, 앨범 자켓 촬영 현장, 동방신기의 시아준수와 함께 한 데뷔 무대 등이 담겨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에서의 데뷔 장리인은 한국 활동을 마치고 2008년 3월, 장리인은 정규앨범 1집 星愿 (I Will)로 중국에서 데뷔했다. 이날 장리인의 쇼케이스는 슈퍼주니어-M의 조미가 사회를 맡았고 한경도 그녀의 중국 데뷔를 축하했다. 또한 1년 반 후인 2009년 10월, 새 싱글 晴天, 雨天 (Moving On)(맑은 날, 흐린 날)을 내고 활동했다. 맑은 날 흐린 날 뮤직비디오에는 장리인과 슈퍼주니어의 동해가 연인을 연기했으며 이 뮤직비디오는 제주도에서 촬영했다고 했다. 대표곡 〈Timeless〉 (작사 : Kenzie, 작곡 : Bagge, Anders/Poole, Karen/Astrom, Par/Norberg, Henrik/Merner, Oscar) 2006년 9월 8일 데뷔 싱글로 발매한 곡이다. 동방신기의 시아준수와 듀엣으로 불렀으며 이 곡이 인지도가 상승하게 된다. 〈星愿 (I Will)〉(작사 · 작곡 : 유영진) 타이틀곡 ‘星願 (I will)’은 지난 2000년 발매된 S.E.S의 4집 앨범 수록곡을 새롭게 리메이크한 곡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기다리는 내용의 곡으로 현악과 팝기타 등 악기들을 중심으로 편곡을 했다. 〈晴天, 雨天 (Moving On)〉(중국어작사 : Zhou Wei Jie , 작곡 : Roberto Livi, Rudy Perez) 타이틀 곡 ‘晴天, 雨天(Moving On)’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맑은 날과 비 오는 날의 경계에 서있다’는 비유로 아름답게 풀어낸 안타까운 가사의 R&B 곡으로, 감미로운 라틴 발라드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인 편곡이 돋보인다. 그리고 이 뮤비에서는 슈퍼주니어의 동해가 출연해 화제가 되기도 했었다. 발매 음반 싱글 Timeless (2006년 9월 8일) Timeless (feat. XIAH) Y (why...) Timeless (Instrumental) Y (why...) (Instrumental) 2006 Winter Smtown: Snow Dream Snow Dream (2006년 12월 12일) Snow Dream (Smtown) 내가 그대 없이(When We'Ll Be Together) (東方神起(동방신기)) Tic! Toc! (Superjunior(슈퍼주니어)) Dreams Come True (天上智喜(천상지희)) 그것뿐이에요(Just You) (Super Junior-K.R.Y.) White Christmas (강타) Dotch (Boa(보아)) Alone (Trax(트랙스)) Heaven (장리인) Without You (Black Beat(블랙 비트)) 눈의 이야기(Winter Of Memories) (현진) I Love Hoya (추가열) Joyful Da (송광식) 연인이여 OST 연인이여 OST (2007년 4월 16일) 사랑하고 있어 (Main title) - Sunday the Grace 연인이여 (Love Theme) - 장리인 가슴에 남아 - KANGTA Thank You -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너 없이도 - JM A Child's mind - 송광식 연인이여 Title 곁에 있어도 사랑이라 말해줘 Eros 편지지 신부의 눈물 긴 하루가... Fairy Tail 그대 안의 타인 낯선 그리움 미소지으며 웃지만 Eros (Jass Ver.) 연인이여 Title Slow 너 없이도 (Scat Ver.) - 한수지 포옹 사랑해... 연인이여 Title Rhythm 유채꽃 2007 SM Town Summer "여행을 떠나요" 2007 SM Town Summer "여행을 떠나요" (2007년 7월 5일) Prologue for SMTOWN 여행을 떠나요 (전체) 행복 (슈퍼주니어) 이브의 경고 (보아 Feat.신동) 한 여름의 크리스마스 (동방신기) 지난 여름밤의 이야기 (강타) Festival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조개껍질 묶어 (혼성) Under The Sea (혼성) 여행을 떠나요 (Instrumental) Under The Sea (Instrumental) 星愿 (I Will) Intro(初戀) (Feat. Super Junior_한경) 初戀(첫사랑) (First Love) A Flame for you 星愿 (I will) 幸福的左岸(연인이여) (Lovers) 后(후) (After…) 交的爱(한번 엇갈린 사랑) (An Amorous Aong) (Feat.김종현) 相信爱(사랑을 믿어요) 纯真的爱(Perfect Love) (Feat.송병양) One more try(2008 북경올림픽 성공개최기원) Y (why...) Timeless (Feat. Xiah) [Bonus Track] 星愿 (I will) [Bonus Track] 幸福的左岸(연인이여) (Lovers) 晴天, 雨天 (Moving On) 晴天, 雨天 (Moving On) 爱我 (Love Me) (Feat. 헨리 from 슈퍼주니어-M) 晴天, 雨天 (Moving On) (Inst.) 수상 경력 2006년 M.NET KM MUSIC VIDEO FESTIVAL:여자 솔로 부문 신인상 2008년 제5회 경가왕 시상식:신인 유망주상 외부 링크 Biographie Zhang Liyin sur Kpop.Fr 1989년 출생 살아있는 사람 중국의 여자 가수 중국의 여자 모델 중국의 발라드 음악가 청두시 출신 이족 사람 SBS 인기가요 뮤티즌송 수상자 대한민국에 거주한 중국인 20세기 중국 사람 21세기 중국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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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E%90%EB%A3%8C%ED%9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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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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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형(資料型) 또는 데이터 타입()은 컴퓨터 과학과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실수치, 정수, 불린 자료형 따위의 여러 종류의 데이터를 식별하는 분류로서, 더 나아가 해당 자료형에 대한 가능한 값, 해당 자료형에서 수행을 마칠 수 있는 명령들, 데이터의 의미, 해당 자료형의 값을 저장하는 방식을 결정한다. 개요 자료형은 컴퓨터 기억 장치에 저장된 값, 객체의 표현, 해석, 구조를 설명하면서 자료형 체계 안의 데이터의 해석에 사용된다. 여러 종류의 자료형 체계들은 다양한 범위의 자료형 안전을 보증하며, 자료형 정보를 사용하여 데이터에 접근하고 데이터를 이용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의 유효성을 확인한다. 자료형은 "프로그램을 실행하지 않고도 결정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특성"으로 정의할 수 있다. 거의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들은 명시적으로 자료형의 개념을 포함하지만 다른 언어들은 다른 용어를 사용할 수도 있다. 일반적으로 다음을 포함한다. 정수 (integer) 불린 (boolean) 문자 한 개 (character) 부동소수점 (floating-point number), 종종 실수라고도 불림 숫자, 문자로 이루어진 문자열 (string) 자료형은 자료의 한 속성으로써 컴퓨터와 프로그래머에게 어떤 종류의 자료를 다루고 있는지 알려준다. 이는 그 자료가 어떤 값을 가질 수 있는지 또는 그 자료에 어떤 연산을 할 수 있는지를 제한한다. 이를테면, 자바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int" 형은 값 -2,147,483,648에서 2,147,483,647 까지의 32 비트 정수 범위와, 정수를 가지고 수행할 수 있는 더하기, 빼기, 나누기, 곱하기와 같은 연산들을 표현한다. 또 다른 예로 "Colors"는 각각 빨간색, 녹색, 파란색의 양을 표시하는 세 바이트, 색깔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문자열 하나, 그리고 덧셈, 뺄셈(하지만 곱셈은 없음) 등을 포함하는 여러 연산들로 표현된다. 프로그래밍 언어마다 저마다 다른 용어를 사용하지만 거의 모든 프로그래밍 언어는 자료형의 개념을 가지고 있다. 일반 자료형은 프로그래밍 언어에서 정수, 부동소수점 숫자, 문자를 표현하는 것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언어는 이에 대해 더 많은 것들을 지원할 수 있다. 대부분의 프로그래밍 언어들은 또한 프로그래머가 추가적인 자료형을 정의할 수 있도록 한다. (여러 개의 다른 형 요소를 합치고 새로운 자료형의 올바른 연산을 정의하는 식으로) 이를테면, 프로그래머는 "사람이 탄생일과 이름을 포함하고 있다"라고 해석되는 데이터를 지정한 새로운 자료형 "사람"을 만들 수 있다. 참조 관련 문헌 같이 보기 유형 이론 자료형 체계 프로그래밍 언어 개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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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C%9A%B8%201000%EB%85%84%20%ED%83%80%EC%9E%84%EC%BA%A1%EC%8A%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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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000년 타임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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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1000년 타임캡슐은 1994년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으로 만들어진 캡슐로, 1994년 11월 29일에 매설되었다. 높이 1.7m, 직경 1.3m 크기의 특수재질로 만들어졌으며 보신각종 모양을 본떠서 제작했다. 600점의 물품이 담겼으며 개봉 일시는 2394년 11월 29일이다.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34길 28 일대 남산골 한옥마을 안에 위치하며 서울역사박물관에 복각품을 전시하고 있다. 캡슐 보신각종을 본뜬 모양 직경 1.3m, 높이 1.7m, 무게 2.5톤의 크기 FRP 외장 스테인레스 특수강(STS 316L) 유리 섬유 실리카 등으로 구성된 5중 구조 500리터의 용량, 4개의 용기로 구성 진공 처리(1/1000mm HP) 및 아르곤 가스 주입 보전 담긴 물품 기저귀 담배 (88라이트, 글로리, 컴팩트) 팬티스타킹 남녀 수영복 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 2.5) 현미효소 등 건강 식품 신용카드 부동산 매매 계약서 주요 작물 씨앗 피임기구 인공심장 상품권 공무원 급여명세서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 시험지 무선 전화기 화투 각종 복권 우리별 1호, 1994년도 시판 승용차 등의 축소 모형 삐삐, 1994년 당시의 휴대전화 대체 기기 1994년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CD-ROM과 마이크로필름, 영상 기록 버스표, 토큰, 회수권 지하철 승차권 조선일보 남녀 패션제화 휴대폰 샤프및 연필 노트 안경 콘택트렌즈 가정상비약, 영양제 차량번호판 (서울 2두1285, 서울8바7662) 우황청심환 남녀 옷 경찰관, 소방관, 환경미화원, 주차단속원, 육해공군 복장 책 의의 서울 수도 600년을 맞이한 오늘날의 시민생활과 서울의 모습을 대표할 수 있는 600점의 물품을 타임캡슐에 담아 400년 후인 서울 1000년 후손에게 문화유산으로 전하는 사업이다. 매설 및 개봉 매설일시 : 1994년 11월 29일 개봉시기 : 2394년 11월 29일 같이 보기 타임캡슐 목록 갤러리 각주 외부 링크 1994년 대한민국 서울특별시의 역사 서울 중구의 문화 타임캡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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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BD%94%EC%B9%B4%EB%82%98%EB%AC%B4%EA%B3%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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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나무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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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나무과(coca--科, 학명: )는 말피기아목의 과이다. 4개의 속에 약 250여 종이 있다. 가장 잘 알려진 종은 코카나무로, 마약인 코카인의 원료이다. 하위 분류 코카나무속(Erythroxylum P.Browne) Aneulophus Benth. Nectaropetalum Engl. Pinacopodium Exell & Mendonça 계통 분류 각주 식물의 과 1822년 기재된 식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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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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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9D%BC%EC%8A%A4%20%EC%95%8C%ED%95%98%EA%B2%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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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알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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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 알하게(Ras Alhague)는 뱀주인자리에서 가장 밝은 별이다. 바이어 명명법에 의하면 뱀주인자리 알파로 읽는다. 이 별의 겉보기 등급은 +2.08이며, 분광형은 A5이고 지구에서 약 47광년 떨어져 있다. 특징 라스 알하게는 하나의 별로 보이지만 사실 쌍성으로 두 별이 8.62년을 1주기로 서로의 질량중심을 돌고 있다. 라스 알하게는 구성원 둘의 밝기를 합쳐 하늘에서 2.08 광도로 빛난다. 지구로부터 약 48.6 광년 떨어져 있어 비교적 가까운 이웃별로 볼 수 있다. 이 항성계의 물리적 정보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으나 2011년 적응광학 기기로 연구한 결과 두 별의 질량과 궤도요소를 구할 수 있었다. 둘 중 큰 쪽인 라스 알하게 A는 태양보다 2.4배 무겁고 작은 B는 태양질량의 85% 수준이다. 다만 A의 질량은 논문마다 다른데 작게는 태양질량의 1.92~2.1배, 크게는 2.84~4.8배까지 편차가 크다. 짝별 B는 질량을 볼 때 분광형은 K5V ~ K7V 사이로 나오며 이는 B가 주계열 단계를 지나는 오렌지색 난쟁이별이라는 뜻이다. 2012년 4월 19일 두 별은 최근점을 지났으며 이 때 둘 사이 각거리는 50 밀리초각이었다. A의 분광형은 A5 III으로 중심핵에서 수소를 태우는 주계열 단계에서 떠나 거성으로 진화한 상태이다. 밝기는 태양의 25배에 표면온도는 약 8천 켈빈 정도로 우리 눈에 흰 빛을 뿜는 A형 항성으로 보인다. A는 적도 기준으로 1초에 240 킬로미터 속도로 매우 빠르게 회전한다. 이 속도는 항성이 파괴되는 한계속도의 88.5 퍼센트에 이른다. 따라서 A의 적도는 극보다 20 퍼센트 더 부풀어 있어 회전 타원체 모양을 하고 있다. 이처럼 찌그러진 모양새 때문에 A의 양극은 적도보다 약 1840 켈빈 더 뜨겁다. A의 자전축은 지구로부터의 시선방향에 대해 약 87.°7 ± 0°4도 기울어져 있으며 이로부터 우리는 A의 적도를 거의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라스 알하게의 스펙트럼에는 전자 하나를 잃은 칼슘(Ca II)의 흡수선이 비정상적으로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항성 자체 혹은 별주위 먼지원반 때문이 아니라 별과 지구 사이의 성간물질 때문으로 보인다. 이름과 어원 서구권 명칭 라스 알하게는 아랍어 رأس الحواء (라스 알-하와, 땅꾼의 머리)에서 유래했다. 동아시아권에서는 천시원의 후(候, 점쟁이)에 해당되는데, 여러 별이 모여 이루어진 다른 별자리와는 달리 이 별은 후(候)의 유일한 구성원이다. R.H. 앨런은 '후'를 로마자 How로 표기했으며 그 뜻을 '제후'라고 설명했다. 참고 문헌 땅꾼자리 쌍성 A형 거성 K형 주계열성 바이어 천체 플램스티드 천체 159561 6556 086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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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A3%A8%EC%9D%B4%EC%8A%A4%20%EC%A0%84%EC%9E%90%EC%A0%90%EC%8B%9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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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전자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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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스 구조()란 화합물의 결합 구조를 보여주는 도식이다. 원자는 안정된 전자 구조를 이루기 위해 금속은 양이온(양으로 하전된 이온)을 비금속은 음이온(음으로 하전된 이온)을 형성한다. 많은 원소들의 경우에서 이 안정된 원자가 준위는 8개의 전자(2개의 s궤도 함수 전자와 6개의 p궤도 함수 전자)를 지니며 이것은 18족 원소의 원자가 전자 배치와 동일하다. 원자들은 화학적 위치 에너지를 낮추기 위해(또는 더 안정된 상태로 되기 위해) 전자 구조를 재배치한다. 이러한 재배치는 전자를 다른 원자들 사이에서 잃고 얻음으로서 또는 공유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수소 원자는 두 번째 전자를 얻어서 18족 원소 헬륨과 같은 전자 구조를 이룰 수 있다. 나트륨 원자는 네온과 같은 전자 구조를 얻기 위해서 한 개의 전자를 잃을 수 있다. 원자의 최외각 에너지 준위에 있는 원자가 전자들은 화학 결합을 형성하는 전자 활성도의 원인이다. 원자의 루이스 구조는 그 원자의 원자가(최외각) 전자를 나타내 주는 표현 방식이다. 미국의 화학자 길버트 N. 루이스(1875~1946)은 원소에 대한 기호와 전자에 대한 점을 이용하자고 제안하였다. 기호 둘레에 위치한 점의 개수는 원자의 최외각 에너지 준위 안의 S궤도 함수와 P궤도 함수 전자들의 개수와 같다. 쌍을 이룬 점들은 쌍을 이룬 전자들을 나타내고 홑 점은 홑 전자를 나타낸다. 예를 들어 H∙는 수소 원자 1s1의 루이스 기호이고 :B∙는 2s22p1의 원자가 전자들을 가진 붕소 원자의 루이스 기호이다. 붕소의 경우 기호 B는 붕소 핵과 1s2 전자들을 나타낸다. 즉 점들이 오직 2s2 2p1전자들만 나타내기 때문이다. 루이스 방식은 표현의 간결성 때문만 아니라 원자에 관한 대부분의 화학이 최외각 전자 준위에 있는 전자와 직접 관계되고 있기 때문에 자주 사용된다. 같이 보기 분자 구조 원자가껍질 전자쌍 반발 이론 공유 결합 화학 결합 화학식 스핀트로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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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D%8C%8C%EC%9B%8C%ED%80%80%ED%85%80%EB%A7%A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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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퀀텀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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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퀀텀맨》(Power Quantum Man, 원제 : )은 인도의 물리학자 마니 보믹()의 원안을 바탕으로 6개국이 공동 제작한 애니메이션이다. 9차원의 세계에서 신발상자를 통해 3차원의 지구로 날아온 퀀텀맨이 평범한 11살의 지구소년과 힘을 합쳐, 사악한 우주의 악당들을 물리치는 과정을 다루었다. 방송 일시 방송 회차 제작진 감독: 데니스 맥코이, 파멜라 히키 캐럭터 원안: 마니 보믹 기획: KBS 제작: SK C&C, 인디팬더스 저작권: SK C&C, 인디팬더스, 마이크 영프로덕션, 키카, 메소드 필름즈 엠식스, 텔레갤, 유티브이 외부 링크 KBS 파워 퀀텀맨 홈페이지 한국방송공사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2000년대 대한민국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2000년대 미국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독일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프랑스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아일랜드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인도의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2008년 애니메이션 SF 애니메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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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 (야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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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朴正培, 1982년 4월 1일 ~ )는 전 호주 프로야구 리그 질롱 코리아의 투수이자, 현 KBO 리그 두산 베어스의 투수코치이다. 선수 시절 한국 프로야구 시절 두산 베어스 시절 2005년에 입단하였다. 팔꿈치와 어깨 부상으로 인해 2011년에 방출됐다. SK 와이번스 시절 방출 후 당시 감독이었던 이만수의 부름을 받아 2012년에 이적해 불펜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했다. 2017년에 셋업맨을 맡았으나 팀의 불펜 투수들이 전체적으로 부진한 상황에서 마무리를 맡아 61경기에 등판해 16홀드, 7세이브,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분전했다. 2019년에는 10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부진해 시즌 후 방출됐다. 호주 프로야구 시절 2019년에 질롱 코리아에 입단하였다. 2020년 2월 14일에 은퇴했다. 야구선수 은퇴 후 2021년부터 키움 히어로즈의 2군 불펜코치로 활동했다. 별명 그와 생김새가 비슷한 만화 '드래곤볼'에 나오는 캐릭터 중 하나인 '피콜로'라고 불린다. 출신 학교 공주중동초등학교 공주중학교 공주고등학교 한양대학교 통산 기록 각주 1982년 출생 살아있는 사람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공주시 출신 KBO 리그 투수 두산 베어스 선수 SK 와이번스 선수 질롱 코리아 선수 공주중동초등학교 동문 공주중학교 동문 공주고등학교 동문 한양대학교 동문 충주 박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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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네가시마 우주 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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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네가시마 우주 센터(, )는 로켓 발사장이 있는 우주 센터로 일본 가고시마현 다네가 섬에 있는 미나미타네정에 있다. 개요 1969년 10월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의 전신인 우주개발사업단(NASDA)의 설립시에 건설되었다. 기지 면적은 8.64km2이며, 현재 JAXA가 관리하고 있다. 일본의 상업용 인공위성과 로켓등은 모두 이 곳에서 발사된다. 태평양 쪽에 있는 다네가 섬의 남쪽 미나미타네정의 다케사키와 요시노부사키에 둘러싸인 만에 있는 곶 등지에 시설이 흩어져 있으며, 로켓발사대는 3곳이 있다. 또한 우주관측소도 몇 군데에 설치되어 있다. 시설현황 요시노부 발사장: 대형 위성 발사장으로 2개의 발사대(JAXA용어로 사점(射點))와 관련시설로 이루어진다. H-II의 개발에 따라 기존시설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에 새로 지었다. 현재는 H-IIA를 쏘아올리는데 쓰인다. 오자키 발사장: 중형위성 발사장으로 H-I까지의 주력로켓과 J-I로켓의 발사에 쓰였다. GX로켓도 이곳에서 발사할 예정이다. 다케사키 발사장: 소형 로켓 발사장으로 우주실험용 로켓인 TR-IA시리즈의 발사에 주로 쓰였다. 외부 링크 )種子島宇宙センター 다네가시마 우주센터 공식 웹사이트 (en) 가고시마현 우주 센터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 일본의 우주 개발 미나미타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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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C%A4%EC%8B%9C%EC%9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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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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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시영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윤시영(尹始榮)은 일제 강점기의 경찰이다. 윤시영(1954 ~ )은 중앙경찰학교 교장을 지낸 대한민국의 경찰이다. 윤시영(2002 ~ )은 대한민국의 뮤지컬 배우다. 같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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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6%91%EC%88%98%20%28%ED%9B%84%ED%95%9C%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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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 (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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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수(楊脩, 175년 ~ 219년)는 후한 말기의 관료로, 자는 덕조(德祖)이며 홍농군 화음현(華陰縣) 사람이다. 고조부 양진에서 비롯하여 부친 양표에 이르기까지 대대로 삼공을 배출한 명문가문 출신으로, 승상 조조의 미움을 사 주살되었다. 모친은 후장군 원술의 누이이다. 뛰어난 재능 1. 정원의 크기 조조가 부하들에게 정원을 하나 만들라고 명령하였다. 얼마 후 정원이 완성되자 조조가 정원을 구경하러 갔는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정원 문에 活(살 활)자만을 쓴 채 그대로 돌아가 버렸다. 아무도 왜 써놓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그것을 본 양수는 "門(문)에다 活(활)자를 써 놓았으니 이것은 곧, 闊(넓을 활)자. 승상께선 정원이 너무 넓다는 뜻으로 쓴 것이 아니겠소?"라 말하고 정원 크기를 줄여놓았다고 한다. 2. 술병의 일합(一合)자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조조에게 낙(酪)이라는 술을 한 병 선물하였다. 조조는 그것을 한 모금 마시고 병에 일합(一合)이라는 글자를 써 놓고 옆의 신하들에게 돌렸다. 合자를 본 신하들은 의아해하였다. 양수의 자리에 병이 오자 양수는 "합(合)자를 나눠 풀이해보면 일인일구(一人一口), 즉 한 사람당 한 모금이라는 뜻이오."하고는 낙을 한 모금 마셨다. 3. 아들의 재간 조조가 아들 조비와 조식의 재간을 시험해 보려고 두 아들을 밖으로 내보낸 다음 업(鄴)의 궁궐을 지나가라고 시켰다. 그리고 궁궐의 문지기에게는 절대로 아들을 통과시키지 말라고 명하였다. 아들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밖으로 나와 조조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조비는 궁궐을 통과하려다 문지기가 막자 그대로 돌아가버렸다. 그러나 조식이 궁궐을 통과하려고 할 때, 문지기가 막자 "나는 승상의 명령을 받듣고 지나가는데, 어느 놈이 감히 내 앞길을 막는단 말이냐?"라고 말하고 문지기를 베었다. 조조는 조식의 재간이 놀라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였느냐고 묻자, 조식은 "그것은 양수가 가르쳐 주었사옵니다."하고 말했다. 4. 버리기는 아까우나 먹을 것이 없다 조조와 유비가 한중(漢中)을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펼칠 때의 이야기이다. 조조는 유비에게 번번이 패하고 후퇴하여 더 이상 전진이 불가능하였다. 식량도 떨어져 조조는 더욱 초조해졌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저녁을 먹고 있었는데 저녁상에 닭갈비탕이 있었다. 마침 하후돈(夏候惇)이 들어와 보고하기를, "오늘 암호는 무엇으로 하리오?" 이에 조조는 먹고 있던 닭갈비탕을 보면서 "계륵(鷄肋), 계륵이다."라고 할 뿐 아무 말이 없었다. 그러자 하후돈은 밖의 병사들에게 "오늘의 암호는 계륵이로다." 그러자 병사들은 계륵의 뜻을 알 수 없자 수군대었다. 양수가 그때 나섰다. "닭의 갈비는 버리기는 아까우나 먹을 것이 없는 것, 즉 승상께서는 이 한중을 [유비에게 내주기는 아깝지만 이득이 없으니 철수하라]라는 뜻으로 암호를 계륵이라 정한 것이오."라 말했다. 그 말은 적중하여 이튿날 철수 명령이 내려졌다. 양수의 죽음 양수는 앞서 말했듯이 조조의 계륵이라는 암호를 철수 명령으로 해석하였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조가 자신의 속마음이 드러난 것이 몹시 불쾌해 양수를 참하였다고 한다. 정사에서는 조조가 한중에서 돌아와서 몇 달 후에 군기를 누설했다는 이유로 처형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계륵 사건과 관계가 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양수가 왜 죽었는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조조는 재능을 아끼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처음엔 양수를 신임하였다. 훗날, 조조는 자신의 아들 중 조비, 조식을 두고 누구를 후계자로 정할지 고민이었다. 신하들도 조비파, 조식파로 갈라졌다. 양수는 조식파였는데 조식을 후계자로 삼으려고 했다거나, 조식에게 「답교」라는 책을 이용해 정치적인 수를 가르쳐 위의 후계 문제에도 관여할 정도로 조식에게 가세를 했기 때문에 의심을 한 조조가 양수를 죽였다고 한다. 양수가 조식을 후계자로 추대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자, 조조는 양수가 점점 성가시어지기 시작하였고 마침 후한의 충신인 양표 가문을 제거할 때라고 생각되어, 양수가 무슨 일을 일으켰을 때 양수를 제거해야겠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다 계륵 사건이 일어나자 양수를 참하였다. 결론적으로, 조조는 청류파의 일류인 양씨 일가가 당시 잔류하고 있었으므로 그 세를 끊기 위하여 양수를 참한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조식에게 처세술을 가르쳐 주었던 것도 조조의 분을 고양시킨 것으로 보인다. 양수의 어머니는 앞서 말했듯이 원술의 누이이며, 양수는 원술의 외조카가 된다. 그래서 양수가 적이었던 원술의 조카라는 점도 조조가 양수를 참한 이유가 될 수 있다. 가계 같이 보기 양병 양염 양제 양준 양지 양진 양표 각주 175년 출생 219년 사망 조조 휘하의 정치인 원술과 주변 인물 사형된 사람 2세기 중국 사람 3세기 중국 사람 홍농 양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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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82%98%EC%9D%BC%EA%B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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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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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은 아프리카 대륙의 동북부를 흐르는 강이다. 총 길이는 6,650km(6,695km)이며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이집트를 흐르는 나일강은 정기적으로 범람하기 때문에, 범람이 끝난 후 농지를 원래대로 복구하기 위해 고대 이집트 문명에서는 측량과 기하학이 특히 발달했다. 수해를 막기 위해 아스완 댐, 아스완 하이 댐 등이 건설되었다. 이름 ‘나일()’이라는 명칭은 ‘강’이라는 뜻의 고대 셈어 '나할(nahal)'에서 온 것으로 여겨지는데, 이는 역시 히브리어로 '강'을 뜻하는 나할()의 어원이기도 하다. 고대 이집트어로는 나일강을 이테루(iteru)라고 불렀는데, ‘큰 강’이란 뜻이다. 지리 나일강은 빅토리아호와 에티오피아 고원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이집트의 지중해로 유입되는 강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세계에서 가장 긴 강으로 불리기도 하며, 나일은 본류가 여러 개인 몇 안 되는 하천 중의 하나이다. 가장 긴 흐름은 백나일로 빅토리아 호의 북쪽 끝에서 시작하는데 동아프리카 지구대로 떨어지는 머치슨 폭포까지는 빅토리아 나일이라고도 부른다. 강은 앨버트 호를 가로 질러(이 구간은 앨버트 나일이라고 부른다.) 연속되는 협곡을 지나 남수단의 수드 평원의 넓은 습지대로 흘러간다. 하르툼에서 백나일은 청나일과 합류한다. 청나일은 에티오피아 고원의 타나 호에서 발원한다. 하르툼에서 이집트 남부까지 6개의 대형 폭포를 지나고, 이후에는 사막의 급경사면을 따라 좁고 길게 흘러 카이로에 이르러 넓은 삼각주에 도달한다. 이 삼각주 지역과 나일강의 좁고 긴 녹색 띠 지역은 이집트 전체 면적의 3% 밖에 안 되지만 인구의 대부분이 거주하고 농업의 전체를 담당한다. 백나일과 청나일 두 지류 덕분에 나일강의 유량은 안정적으로 흐르면서 비옥한 퇴적물이 공급된다. 백나일은 하르툼 하류를 흐르는 유량의 16%만을 공급하지만 상류가 적도의 열대우림 지대에서 흐르기 때문에 나일강의 수량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게 해준다. 청나일은 84%의 유량을 공급하면서 나일강 유량 변화를 주도한다. 나일강의 주기적인 범람으로 인해 비옥한 미립질의 검은 토양이 하류의 충적지대에 공급되는데 이 범람은 에티오피아 고원의 겨울철 강우와 눈 녹은 물 때문이다. 범람의 시작은 하르툼의 경우 4월이며 북쪽으로 갈수록 조금씩 늦어져서 카이로에서는 10월에 최고조에 달한다. 1970년에 준공된 아스완하이 댐은 수단 국경지역까지 형성된 거대한 인공호수인 나세르 호를 만들었다. 댐 건설로 나일강 하류의 유량 변화는 상당한 정도로 안정되었다. 지도 각주 외부 링크 이집트의 강 수단의 강 남수단의 강 우간다의 강 아프리카의 국제 하천 이집트의 국립공원 히브리어 성경의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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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C%9D%B4%EB%93%9C%20%EB%B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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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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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드 비(Side-B)는 대한민국의 힙합 듀오이다. 1998년 결성되어 클럽 마스터플랜의 공연진 중 대표적인 활동진으로 무대에 올랐고, 현재까지 비정규 앨범까지 포함, 세 장의 앨범을 발매하였다. 멤버 T'ache는 임성훈의 아들이면서 웃찾사 PD인 임형택의 동생이라는 점으로 이목을 끌기도 하였다. 소속사는 슈어샷 레코즈이며, 속한 크루에는 역시 Strike가 있다. 역사 Side-B의 초기 1998년 미국에서 만나 친해진 Niddle과 G.A.S.S.는 의기투합하여 한국에서도 힙합 팀으로써 활동하자는 목표를 세우고 한국에 들어왔다. 둘은 클럽 MP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여기서 활동하기 위해 오디션을 보아 합격하였다. 그러던 중 하드코어 밴드에서 활동하고 있던 T'ache는 밴드의 멤버를 통해 Side-B를 알게 되었고, 이들의 음악을 맘에 들어하며 Side-B의 객원 멤버로써 활동하였다. 그리고 Side-B의 공연이 거듭되면서 T'ache는 점차 Side-B 활동에 치중하게 되었고, 결국 3인조의 라인업이 만들어졌다. 이들은 당시의 철학적이고 어두운 음악 스타일이 언더그라운드에 널리 퍼져있는 데에 비해, 강렬하고 신나는 분위기의 음악을 하였다. 이러한 스타일은 일부로부터는 비판도 받았으나 다수의 매니아를 만들어, Side-B를 Da Crew, 가리온, 주석과 함께 "MP의 4천왕"이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었다. 이러한 지지를 토대로 이들은 1999년 9월, 마스터플랜 공연진 중에서는 처음으로 앨범을 발표하였다. 이 앨범은 1500장 한정판이었으며, 품절된 이후 10만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거래된 적도 있었다. 라인업의 변화 첫 앨범을 발표하고 2000 대한민국 등의 앨범에 참여하는 등 활동을 이어나가던 Side-B는, 2000년 Niddle이 빠지면서 2인조로 탈바꿈하였다. Niddle의 탈퇴 이유는 음악 스타일의 차이였으며, 그는 그룹에서 탈퇴한 후 DJ Tactics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음악 활동을 해나갔다. 2001년 마스터플랜이 레이블로 변모하면서 Side-B는 마스터플랜으로부터 독립, T 엔터테인먼트라는 메이저 레이블과 계약을 맺게 되었다. 그들은 이때부터 앨범 작업을 시작하였으며, 2002년 초 쯤에는 Red-Roc을 세 번째 멤버로 영입하여 3인조 라인업으로 잠시 활동하기도 하였다. 3인조의 Side-B의 모습은 Kross의 2집 등에서 볼 수 있다. Red-Roc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룹에서 탈퇴하였고 Side-B는 다시 2인조로 돌아왔다. 컴백과 현재 Side-B는 G.A.S.S.의 믹스테입을 제외하면, 2002년 HipHop Kharisma 앨범과 크로스 2집에 참여한 것을 마지막으로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아 팬들을 애타게 하였다. 그러던 중 주먹이 운다 OST의 타이틀곡 Just Do It의 뮤직비디오가 발표되면서 Side-B는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05년 1집을 내고 활동했으며, 그 다음 해에는 두 번째 앨범을 발표하였다. 현재 이들은 음반 활동을 끝내고 다음 앨범 작업 및 피쳐링 작업을 하고 있으며, 가장 최근 활동으로는 2007년 2월 발매된 랍티미스트 앨범과 2008년 6월 발매된 DJ Juice 앨범의 참여, 그리고 2011년 7월 "힙합 1세대 콘서트"의 무대에도 선 적이 있었으며 그 다음달에 발매된 데프콘 5집에 수록된 단체곡인 "First Classic"에도 참여한 바 있다. 이들은 "1세대 콘서트"에서 앞으로 활발한 활동을 약속하였으나 아쉽게도 이후에도 그들의 활동은 저조하여, 2011년 12월 자우림과 함께 《나는 가수다》 무대를 꾸민 것을 제외하면 거의 그들의 활동을 찾아볼 수 없었다. 2020년 말에 슈어샷 레코즈라는 레이블을 설립하고 10월 2일에 B CLASSIC이라는 싱글을 발매하며 10년만에 컴백하였다. 대표곡: B-Boy Style, Platonic, 再飛, Just Do It, A-OK, Bom-Ba-Ye 디스코그래피 1999년 9월 In the Place to Be EP 2005년 5월 12일 Back to the Game LP 2006년 9월 4일 Vale-Tudo LP 2020년 10월 2일 B CLASSIC 싱글 멤버 T'ache - (, 1979년 12월 ~ ) G.A.S.S. - (, 1976년 12월 ~ ) 이슈 "시골길"의 판권 관련 이슈 Side-B 2집 수록곡 시골길 은 T'ache의 아버지 임성훈 씨의 동명의 원곡을 샘플링한 곡으로, 타이틀곡은 아니지만 Bom-Ba-Ye와 함께 뮤직비디오가 제작되었다. 하지만 뮤직비디오에 나오는 임성훈의 과거 활동 모습 장면에 대한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아 방송 심의 보류 판정을 받았다. 임성훈의 과거 활동 장면은 지금은 없어진 동양방송의 방송내용으로 지금은 저작권료가 KBS에 귀속되어 있다. 이에 대해 T'ache는 "없어진 방송국이니까 별 문제가 없으리라고 생각했다"라고 밝혔다. 현재는 KBS와 저작권 협상이 좋게 끝나 방송 가능한 상태이다. 개인 활동 T'ache T'ache는 강렬하고 독특한 목소리로 솔로 피쳐링을 많이 맡았으며, 2008년 6월에는 DJ Juice의 앨범 수록곡 발자국에 솔로 피쳐링을 하였다. 또 성우로도 활동하였는데, SBS X맨을 찾아라와 MTV 스팟 광고 등에 그의 목소리가 담겼으며, 2009년 1월에는 온게임넷과 카툰네트워크에서 성우로 활동한 적이 있으며, 가장 최근에의 활동은 걸그룹 나인뮤지스의 음반에 작사가로 참여한 것이다. G.A.S.S. G.A.S.S.는 T'ache만큼 솔로 피쳐링이 많지는 않으나, 가장 최근에 DJ Juice 앨범의 The Wall Destroyer에 솔로 피쳐링을 하였다. 또 메인 파트인 랩 외에 DJing을 맡기도 하여 G-Masta 앨범 등에 스크래칭으로 참여하였으며, 2002년 6월 20일에는 믹스테입 Gasstronomix를 발표하기도 하였다. 이름 T'ache는 앞으로 나아가야 할 그 모든 것들의 ache(아픔, 고통)들을 스스로 take(받아들이다)하겠다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며, 발음은 "테이크"이다. G.A.S.S.는 Graffiti Art & Scratch Sound의 약자이다. DJ로써의 활동 경력 때문에 DJ G.A.S.S.라고도 때로 표기가 되지만, 자신의 메인 파트는 랩이기 때문에 본인은 이런 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각주 외부 링크 1998년 결성된 음악 그룹 대한민국의 힙합 그룹 남성 음악 그룹 2인조 음악 그룹 나주 임씨 살아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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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B%94%ED%95%98%EC%9D%98%20%EB%8F%99%EC%82%AC%EB%AC%B4%EC%86%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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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의 동사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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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하의 동사무소》는 전혜진이 쓴 라이트노벨이다. 제1회 이슈 노벨즈/B愛 노벨즈 공모전 수상작으로, 이슈 노벨즈 중 국내 작가 작품으로 최초 발행되었으며, 일러스트는 이영유가 담당하였다. 2009년 5월 현재 5권까지 나왔으며 출판사의 사정으로 남은 이야기를 작가 개인지 형식으로 인쇄 통신 판매 주문을 받고 있다. 줄거리 청년 실업의 시대, 운 좋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이월하는 게으른 동사무소 사람들과 매일 잠만 자고 책상 위에 프라모델만 올려놓은 오타쿠 동장에게 실망한다. 그러나 사실 이 동사무소는 마물과 귀신을 퇴치하는 행정자치부 소속 기관이었다. 옴니버스 형식으로 한국적인 귀신과 한국적인 소재가 어우러져 있다. 그러나 이슈 노벨즈라는 브랜드에 어울리지 않게 월하와 동장의 로맨스 자체는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목차 1권 80대 1 의 아가씨 쇼크! 우리 동장님이 오타쿠?! 잃어버린 신발을 찾아서 2권 키다리 미스터 김 Fry, Fry, Flying eggs! 개발팀 반다인의 우울 3권 쉿! 그녀의 위장은 4차원 Intermission 몽달귀신은 레어아이템 꽃이 피고 꽃이 지고 4권 푸른레몬 불꽃의 동장님 꼬부랑 고갯길을 도쿄에서 온 손님 5권 TIME OF MY LIFE 강철의 먹부림 설날 이야기 사람이 만든 것, 사람이 잃은 것 6권 2009.5.31 현재 작가분 개인지로 인쇄 통판주문 받는중 구입처 : 한양문고 결혼기념일++ 순교자들의 밤 지금 당신의 목소리가 들려요 그리고 남은 이야기 주요 인물 동장 서울대 수학과 졸업, 기술고시 합격 후 어째서인지 동사무소 동장으로 근무하는 남자. 낮에는 사무실에서 늘 낮잠을 자고 있어 봉사활동 온 학생들에게 마네킹 취급을 받기도 한다. 만화 오타쿠로 말하는 대사 중 만화나 애니메이션 대사에서 인용한 것이 많다. 사실은 귀신잡는 동장으로 행자부 퇴마과 소속이다. 수학공식으로 귀신과 마물을 퇴치하며, 일제시대 무당이었던 증조할머니의 피를 이어받아 영력이 강하다. 낮에 자는 대신 밤에는 마을을 돌며 귀신을 퇴치한다. 월하를 좋아하지만 게으른 태도와 믿음직스러운 구석이라고는 없는 모습 때문에 고백은 쉽지 않다. 선물로 수학책을 사줄 만큼 센스는 없다. 나이차이가 나는, 의사인 형님이 있다. 형수님을 두려워한다. 본문 상에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6권 마지막에 영국으로 유학간다. 이월하 다니던 회사가 월급 안 주고 망하는 바람에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하게 된 88만원 세대의 대표주자. 살던 동네 동사무소에 발령받았지만 한없이 게으른 분위기에 좌절한다. 귀신을 잡는 재능(탤런트)이 있어 동장과 함께 귀신을 잡는 모험에 동참한다. 반다인 행자부 퇴마과 7급 전산직 공무원이나 캐드로 완드(동쪽으로 난 복숭아 가지를 잘라 만든 퇴마도구)만 만들고 있었다는 비극의 주인공. 쌍둥이 오빠가 있다. 추리소설 마니아인 아버지 때문에 S.S. 밴 다인에서 이름을 따 반다인이 된 것에 나름 불만이 있다. 기지국에 포함된 사람_S.A.L_U라는 모듈을 제어하는 능력이 있다. 김독각 행자부 퇴마과 9급 행정직 공무원. 사실은 일제시대 독립투사의 피가 백구두에 묻어 생겨난 도깨비로, 도깨비로는 드물게 동정을 지킨 도깨비로 알려져 있다. 반다인을 흠모하고 있다. 김명화 여사 동장의 증조할머니.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신여성이었으나 신기가 있어 내림굿을 받았다. 독립운동을 돕다가 야나기 시로오 형사에게 쫓겨 도망치던 중 벼랑에서 추락하여 25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종종 동사무소에 나타나 동장과 월하를 놀리고 간다. 이슈 노벨즈 도깨비를 소재로 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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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A%B8%88%ED%98%B8%EC%A4%91%EC%95%99%EC%97%AC%EC%9E%90%EA%B3%A0%EB%93%B1%ED%95%99%EA%B5%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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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중앙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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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중앙여자고등학교(錦湖中央女子高等學校)는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에 위치한 사립 고등학교이다. 학교 연혁 1959년 12월 26일 : 학교법인 죽호학원 설립인가(광주시 서구 양동 60-2), 초대 이사장 박인천 선생 취임 1960년 2월 19일 : 광주중앙여자중·고등학교 설립인가 (중 21학급, 고 9학급) 1960년 3월 2일 : 초대 교장 최태근 선생 취임 (금호 중앙여중·고 교장 겸임) 1960년 3월 24일 : 입학생 120명 모집 1960년 4월 15일 : 개교와 동시에 입학식 거행 (개교기념일) 1973년 3월 5일 : 광주중앙여자중·고등학교 분리 1984년 5월 4일 : 광주광역시 북구 운암동 140번지로 교사 이전 2014년 3월 1일 : 금호중앙여자고등학교로 교명 변경 2019년 1월 31일 : 제57회 졸업 (졸업생 331명, 총 졸업생 26,340명) 2020년 12월 26일 : 제16대 이사장 박종구 선생 취임 2022년 3월 2일 : 제16대 교장 최봉호 선생 취임 학교 동문 참고 자료 외부 링크 광주 북구의 고등학교 일반계 고등학교 광주광역시의 사립 고등학교 대한민국의 여자 고등학교 1960년 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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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1017%EB%8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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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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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 북송(北宋) 천희(天禧) 원년 요(遼) 개태(開泰) 6년 일본(日本) 조와() 6년 / 간닌() 원년 리 왕조(李朝) 투언티엔(順天) 8년 기년 북송(北宋) 진종(眞宗) 20년 요(遼) 성종(聖宗) 36년 고려(高麗) 현종(顯宗) 8년 리 왕조(李朝) 태조(太祖) 8년 사건 탄생 10월 29일 - 신성로마제국의 하인리히 3세, 잘리어 왕가 출신의 신성 로마 제국 황제.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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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A%B5%90%EB%8B%A4%EC%8B%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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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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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다시()는 사이타마현 북부에 있는 시이다. 도네 강(利根川)을 사이에 두고 군마현과 인접하고 있다. 에도 시대부터 버선 산지로서 유명하고, 현재도 일본에서 생산되는 버선의 약 80%가 교다 시에서 생산되고 있다. 2001년에는 제조업 기술자, 건설 기술자를 육성하는 모노쓰쿠리 대학교()가 개설되었다. 역사 1889년 4월 1일 - 기타사이타마 군 나리타 정, 교다 정, 자마 촌이 합병해, 오시 정이 되었다. 1949년 5월 3일 - 오시 정이 시로 승격, 즉시 개칭해 교다 시가 되었다. 2006년 1월 1일 - 기타사이타마 군 미나미카와라 촌이 교다 시에 편입 합병되었다. 교통 철도 동일본 여객철도 다카사키 선 지치부 철도 지치부 선 도로 국도 17호선 국도 125호선 인구 외부 링크 교다 시 공식 홈페이지 사이타마현의 도시 기타사이타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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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HD%2010647%20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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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 10647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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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D 10647 b 또는 에리다누스자리 q1 b는 에리다누스자리 방향으로 57광년 떨어져 있는 항성 HD 10647를 돌고 있는, 외계 행성이다. 이 행성의 질량은 목성형 행성 수준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며, 어머니 항성으로부터의 거리는 1.03 천문단위이다. 어머니 항성을 1회 공전하는 데는 33개월이 걸린다. 같이 보기 페가수스자리 51 b 물병자리 91 b 물고기자리 109 b 에리다누스자리 엡실론 b 참고 문헌 (웹 인쇄본) 외부 링크 외계 행성 에리다누스자리 2003년 발견한 외계 행성 목성형 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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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8D%95%EC%B2%9C%EC%8B%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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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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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천시(德川市)는 평안남도에 속해 있는 시이다. 본래 덕천군이었다가, 1987년에 시로 승격했다. 지리 덕천시는 산지에 위치해 있다. 동쪽은 맹산군과 녕원군, 북쪽은 구장군, 서쪽은 개천시, 남쪽은 북창군에 접해 있다. 역사 구석기사람들이 남긴 승리산 동굴이 있다. 고려 시대에는 요원군(遼原郡)으로 불렸다. 1001년 - 덕주(德州)라고 개칭되어 방어사가 놓여졌다. 1260년 - 몽골의 침입에 의해 덕주 방어사는 안주의 노도로 이전했다. 1371년 - 석주(析州)가 두어졌다. 1413년 - 덕천이라고 개칭되어 덕맹현에 속했다. 1415년 - 덕천군이 놓여졌다. 1952년 12월 - 덕천면·일하면·풍덕면·성양면으로 구성된 덕천군을 재편성하였다(22리). 1986년 6월 - 덕천시로 승격하였다. 김일성의 철수작전 한국 전쟁 당시 1950년 10월 7일에 유엔군이 본격적으로 38도선을 넘자, 이틀 후인 10월 9일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주요 정부 기관, 단체, 부대 등은 모두 평양에서 빠져나갔다. 김일성은 10월 12일이 돼서야 평양에서 덕천으로 도주하여 이곳에서 1주일가량 머물렀다. 같은 해 10월 19일에 대한민국 국군이 평양을 탈환하자, 김일성은 희천을 거쳐 강계와 창성 쪽으로 피신하였다. 행정 구역 승리동(勝利洞), 역전동(驛前洞), 강안동(江岸洞), 덕성동(德性洞), 서문동(西門洞), 창말동(倉~洞), 은덕동(恩德洞), 공원동(公園洞), 흥덕동(興德洞), 신흥동(新興洞), 삼탄동(三灘洞), 장상동(長上洞), 남산동(南山洞), 제남동(濟南洞), 남덕동(南德洞), 청송동(靑松洞), 오산동(鰲山洞), 상신동(上新洞), 상덕동(尙德洞), 형봉동(亨鳳洞), 월봉동(月峯洞), 청신동(靑新洞), 신성리(新城里), 삼흥리(三興里), 운흥리(雲興里), 구장리(九長里), 무창리(武倉里), 안동리(安洞里), 풍곡리(豊谷里), 신풍리(新豊里), 장동리(長洞里), 남양리(南陽里)로 구성되어 있다. (22동 10리) 인물 시인 김조규 같이 보기 승리자동차련합기업소 각주 참고 자료 Dormels, Rainer. North Korea's Cities: Industrial facilities, internal structures and typification. Jimoondang, 2014. 외부 링크 덕천시 - 중앙일보 City profile of Tokchon 평안남도의 도시 1986년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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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AF%B8%EB%82%98%EB%AF%B8%EA%B5%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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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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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미구()는 일본의 여러 도시에 있는 행정구역 이름이다. 미나미구 (교토시) 미나미구 (구마모토시) 미나미구 (나고야시) 미나미구 (니가타시) 미나미구 (사가미하라시) 미나미구 (사카이시) 미나미구 (사이타마시) 미나미구 (삿포로시) 미나미구 (오카야마시) 미나미구 (요코하마시) 미나미구 (하마마쓰시) 미나미구 (히로시마시) 미나미구 (후쿠오카시) 같이 보기 남구 (동음이의) 히가시구·니시구·기타구·나카구·주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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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A6%AC%ED%8A%B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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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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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트의 다른 뜻은 다음과 같다. 리트(LEET, 법학적성시험)는 대한민국의 법학대학원 입학 시험이다. 리트(leet, L33T)는 인터넷 속어의 하나이다. ‘리트()’는 독일어 가곡을 말한다. 리트임인크라이스(Ried im Innkreis)는 오스트리아의 도시이다. 마틴 리트(Martin Ritt, 1914~1990)는 미국의 영화감독·배우·각본가이다. 같이 보기 SV 리트: 1912년 5월 5일에 창단된 오스트리아 리트임인크라이스의 축구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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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8%A4%EB%B9%84%ED%8F%B4%EB%93%9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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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비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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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에서, 오비폴드()는 국소적으로 유한군의 선형작용에 대한 유클리드 공간의 몫공간과 동형인 위상 공간이다. 매끄러운 다양체의 개념의 일반화이며, 다양체와 달리 특정한 형태의 특이점을 가질 수 있다. 정의 n차원의 오비폴드는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하우스도르프 공간 X와 그 열린 덮개 를 생각하자. (는 유한 교집합에 대하여 닫혀 있다고 가정하자.) 각 에 대하여, 연속 함수 를 가정하자. 여기서 는 의 부분집합으로, 유한군 의 선형작용에 대하여 불변하다. 가 의 위상동형사상을 정의한다고 가정하자. 이들을 오비폴드 국소 좌표계라고 부른다. 일련의 오비폴드 국소 좌표계 의 집합은 다음과 같은 조건을 만족하면 오비폴드 좌표근방계()를 이룬다. 면 단사 준동형 사상 가 존재한다. 면 에 대하여 -위상 동형 사상 이 존재한다. (는 의 열린 부분 집합) 다른 모든 추이 사상는 의 꼴이다 (여기서 ). 가 이산군이라고 하고, 이 매끄럽고 충실한 작용 이 주어진 매끄러운 다양체라고 하자. 그렇다면 몫공간 은 자연스럽게 오비폴드 구조를 갖는다. 이런 꼴로 나타낼 수 있는 오비폴드를 축소 오비폴드()라고 한다. 하지만 축소 오비폴드가 아닌 오비폴드도 존재한다. 즉, 오비폴드는 항상 국소적으로 (유클리드 공간의) 군의 작용에 대한 몫공간이지만, 대역적으로 군의 작용에 대한 몫공간이 아닐 수 있다. 끈 이론에서는 보통 모든 오비폴드를 축소 오비폴드로 가정한다. 특히, 유클리드 공간의 몫공간 꼴의 공간을 오비폴드라고 부른다. 위상수학적 성질 오비폴드의 경우, 문헌에는 두 가지의 "오비폴드 오일러 지표"에 대한 정의가 등장하며, 이 둘은 관계없는 개념이다. 이 밖에도, 오비폴드의 호모토피 군 역시 정의할 수 있다. 이들은 오비폴드를 단순히 위상 공간으로 여겨 정의한 오일러 지표 및 호모토피 군과 다르다. 사타케-서스턴 오일러 지표 오비폴드 에 세포 복합체의 구조를 주고, 각 세포 의 내부가 국소적 군 의 작용에 불변이라고 하자. 그렇다면 의 (사타케-서스턴) 오일러 지표는 다음과 같다. 만약 모든 가 자명군이라면, 이는 일반적인 오일러 지표와 같다. 이 정의는 사타케 이치로()와 윌리엄 서스턴이 사용하였다. 오비폴드의 사타케-서스턴 오일러 지표에 대하여 가우스-보네 정리가 성립한다. 끈 오일러 지표와 천-롼 코호몰로지 축소 오비폴드 가, 매끄러운 다양체 위의 어떤 이산군 의 매끄럽고 충실한 작용에 의한 몫공간이라고 하자. 이 경우, 의 (끈 이론) 오일러 지표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 는 의 중심화 부분군이다. 는 부분군 의 작용에 의한 고정점들로 구성된 부분 공간이다. 는 로 생성되는 의 부분군이다. 는 의 켤레류들의 집합이다. 이 정의는 랜스 딕슨(), 제프리 하비(), 캄란 바파, 에드워드 위튼이 끈 이론을 다루기 위하여 도입하였다. 딕슨-하비-바파-위튼 오일러 지표는 천-롼 코호몰로지()와 관계있다. 이는 오비폴드에 대한 양자 코호몰로지이다. 기본군 오비폴드 의 기본군 는 의 범피복 공간 의 피복 변환()들의 군이다. 이 정의는 윌리엄 서스턴이 도입하였다. 예 모든 매끄러운 다양체는 자명하게 (축소) 오비폴드를 이룬다. 또한, 경계다양체 또한 자연스럽게 축소 오비폴드를 이룬다. 경계다양체 이 주어지면, 그 이중 덮개()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자. 즉, 의 두 개의 복사본의 각 경계를 이어붙여 얻는다. 의 이중 덮개는 (경계를 갖지 않는) 다양체이다. 이 경우, 은 다음과 같은 몫공간으로 나타낼 수 있다. 1차원 오비폴드 1차원 연결 콤팩트 오비폴드는 원 과 선분 밖에 없다. 원은 매끄러운 다양체이다. 선분은 경계다양체이자, 원 의 몫공간 으로서, 축소 오비폴드로 나타낼 수 있다. 2차원 오비폴드 2차원에서 가능한 오비폴드 특이점은 O(2)의 유한 부분군에 따라서 분류되며, 다음과 같다. 군의 작용을 나타낼 때, 편의상 평면의 점을 복소수로 표기하였다. 경계선 , . 에 대하여, 차 원뿔형 꼭짓점 , 에 대하여, 각도 의 꼭짓점 , 이 경우, 2차원 오비폴드 의 사타케-서스턴 오일러 지표는 다음과 같다. 여기서 는 의 위상 공간으로서의 오일러 지표이다. 첫 번째 합 는 원뿔형 꼭짓점들에 대한 합이며, 각 는 꼭짓점의 차수이다. 두 번째 합 는 다각형형 꼭짓점들에 대한 합이며, 각 는 꼭짓점의 차수이다. 2차원 연결 콤팩트 오비폴드는 곡면과 마찬가지로 오일러 지표의 부호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세 종류로 분류된다. 오일러 지표가 음수인 2차원 오비폴드는 쌍곡선형 오비폴드()라고 한다. 이들은 쌍곡평면의 테셀레이션에 대응하며, 무한 개가 있다. 오일러 지표가 0인 2차원 오비폴드는 포물선형 오비폴드()라고 한다. 이들은 유클리드 평면의 테셀레이션에 대응한다. 총 17개가 있다. 오일러 지표가 양수인 2차원 오비폴드 가운데, 축소 오비폴드로 나타낼 수 있는 것들은 타원형 오비폴드()라고 한다. 이들은 구의 테셀레이션에 대응한다. 7개의 무한한 족 및 족에 속하지 않는 10개가 있다. 오일러 지표가 양수이며, 축소 오비폴드가 아닌 것들은 나쁜 오비폴드()라고 한다. 4개의 무한한 족들로 분류된다. 쌍곡선형이 아닌 2차원 연결 콤팩트 오비폴드들의 목록은 다음과 같다. (여기서 "오일러 지표"는 사타케-서스턴 오일러 지표를 말한다.) 역사 사타케 이치로()가 automorphic form을 연구하면서 1956년에 ‘V-다양체’()라는 이름으로 정의하였다. 윌리엄 서스턴이 1980년 재발견하였고, ‘오비폴드’()라는 이름을 붙였다. ‘오비폴드’()라는 이름은 (궤도)과 (다양체)를 합친 혼성어이다. 이 이름에 대하여 서스턴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각주 같이 보기 몫공간 2차원 등각 장론 테셀레이션 스택 (수학) 외부 링크 다양체 미분기하학 위상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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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82%AC%EC%9A%A9%EC%9E%90%20%28%EC%BB%B4%ED%93%A8%ED%8C%8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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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 (컴퓨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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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자는 컴퓨터 환경에서는 컴퓨터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 사용자들은 보안, 로그인 기록, 리소스 관리 등의 목적을 위해 인증을 시도해야 한다. 인증을 시도할 때 사용자는 계정 (사용자 계정)과 사용자 이름 (일부 시스템에서는 화면 이름, 핸들, 닉네임, 닉, 별칭이라고도 함, )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대개의 경우 암호가 필요하다. 사용자들은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사용하여 시스템에 접근하고 인증을 처리하면 된다. 사용자들은 또한 시스템을 잘 이해해야 하는 완전한 기술 전문 지식/전문가 없이 시스템을 사용하는 사람들로 널리 쓰인다. 대부분의 해커 관련 환경에서 이는 '실제 사용자'라고 부른다. 최종 사용자도 살펴 볼 것. 컴퓨터 사용자는 정통망법의 이용자와 비슷하지만 뜻은 조금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최종 사용자와 경제의 소비자의 차이에 빗댈 수 있다. 이를테면, 어떤 사람은 컴퓨터 시스템, 컴퓨터 네트워크, 전자 우편 계정을 가진 사용자가 될 수 있다. 아이디 아이디()란 인터넷 사용자가 인터넷에 접속할 때 쓰는 이름을 말한다. 본디 본인인증을 뜻하는 영어 Identification의 약자이나, 점차 인터넷 사용자가 본인인증때문에 입력하는 사용자 이름을 뜻하는 단어로 의미가 넓어져서 현재 대한민국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유저명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인터넷 사용인구가 늘고 온라인이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아이디는 제 2 인격의 상징이 되고 있다. 제약 사항 사용 문자 아이디는 국경이 없는 인터넷에서 쓰이는 이름이기 때문에, 보통 모든 컴퓨터에 기본적으로 딸려 있는 로마자와 숫자를 기본으로 하며, 한글이나 한자같은 지역 문자는 컴퓨터 환경에 따라 쓸 수 없을 수도 있으며, 로마자라도 확장문자같은 기본 로마자가 아닌 문자는 제대로 나타낼 수 없을 수 있다. 개인정보 개인정보를 노출시킬 우려가 있는 것은 아이디로 쓸 수 없도록 인터넷 사이트에서 권장하는 경우가 많으며, 사용자들도 스스로 개인정보 유출을 우려하여 많은 경우에 이를 피한다. 이러한 개인정보는 실명, 주민번호, 생일, 전화번호, 주소지 등이 속한다. 그러나 여러 아이디를 기억해야 하는 부담 때문에 기억하기 쉬운 이러한 개인정보의 일부를 아이디를 만드는 데 이용하는 경우가 있다. 각주 같이 보기 별명 암호 컴퓨터 용어 아이덴티티 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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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7%B4%EC%97%AD%ED%95%99%20%EC%A0%9C1%EB%B2%95%EC%B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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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역학 제1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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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역학 제1법칙()은 보다 일반화된 에너지 보존법칙의 표현이다. 정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어떤 계의 내부 에너지의 증가량은 계에 더해진 열 에너지에서 계가 외부에 해준 일을 뺀 양과 같다." 열의 이동에 따라 계 내부의 에너지가 변하는데 이때 열에너지 또한 변한다. 이 에너지는 계 내부의 원자·분자의 역학적 에너지 등을 일컫는다. 일반적으로, 어떤 체계에 외부로부터 어떤 에너지가 가해지면 그만큼 체계의 에너지가 증가한다. 이와 같이, 물체에 열을 가하면 그 물체의 내부 에너지가 가해진 열 에너지만큼 증가한다. 또한 물체에 역학적인 일이 더해져도 역시 내부 에너지는 더해진 일의 양만큼 증가한다. 따라서 물체에 열과 일이 동시에 가해졌을 때 물체의 내부 에너지는 가해진 열과 일의 양만큼 증가한다. 이것을 열역학의 제1법칙이라고 한다. 이를 공식화 하면 이다. 기호가 의미하는 바는 U는 내부 에너지, Q는 계에 흡수되는 열, W는 계가 한 일이다. 특수한 경우 단열 팽창 또는 단열 압축 과정 단열 팽창 또는 단열 압축 과정은 열역학 제1법칙 △U = Q - W에서 Q = 0인 경우이다. 즉 외부로부터 열의 출입이 없는 경우이다. 그러면 △U = -W가된다. 이는 외부와 열에너지 전달이 일어나지 않는 과정이다. 계(System)가 일을 하면 내부에너지는 그만큼 감소하고, 반대로 계가 외부로부터 일을 받으면 내부에너지는 그만큼 증가한다. 단열벽은 계에 출입하는 열을 완벽하게 막는다. 계와 주위 사이에서 에너지가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납알을 올리거나 내리는것 뿐이다. 피스톤 위에 납알을 올리면 기체가 압축되어 계가 한 일은 음의 값이고 내부에너지는 증가한다. 반면 납알을 내리면 기체가 팽창되어 계가 한 일은 양의 값이고, 내부에너지는 감소한다. 자유 팽창 과정 자유 팽창 과정(순환 과정이라고도 한다)은 계와 주위 사이에 열전달이 없고, 계가 일도 하지 않는 단열과정의 일종이다. 열역학 제1법칙 △U = Q - W에서 Q = W = 0인 경우이다. 그러면 △U = 0이 된다. 자유팽창에서 잠금마개가 열리면 기체는 자유팽창을 하여 양쪽 공간을 모두 채운다. 이 때 두 공간은 단열되어 있으므로 외부와 열전달은 없다. 그리고 기체가 아무 압력도 받지 않고 진공으로 들어가므로 일도 없다. 등적 과정 등적 과정은 열역학 제1법칙 △U= Q - W에서 W = 0인 경우이다. 즉 부피가 일정하다. 계가 열을 흡수하면 계의 내부에너지는 증가하고, 반대로 열을 잃으면 내부에너지가 감소한다. 등온 과정 등온 과정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압력과 부피를 변화시키는 과정으로, 열역학 제1법칙 △U = Q - W에서 △U = 0인 경우이다. 따라서 Q = W가 된다. 등온과정을 따르므로, 즉 온도 변화가 없으므로 내부 에너지가 일정하고, 외부에서 공급되는 열에너지는 모두 일로 변한다. 같이 읽기 에너지 보존 열역학 열역학 제 2법칙 열역학 제 3법칙 열역학 제 0법칙 각주 열역학 물리학 개념 온도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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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A1%9C%EC%BF%A0%EC%A1%B0%EA%B0%80%EC%99%80%EB%9D%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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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쿠조가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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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쿠조가와라()는 교토시내를 흐르는 가모가와 강의 강변에 존재한 처형장이다. 역사 예부터 권력자에 반항한 정치범들이 다수 처형되었다. 호겐의 난에서는 미나모토노 다메요시, 다이라노 다다마사이고, 헤이지의 난에서는 미나모토노 요시히라, 후지와라노 노부요리, 겐페이 전쟁에서는 다이라노 요시무네, 혼노지의 변에서는 사이토 도시미쓰, 세키가하라 전투에 있어서는 이시다 미쓰나리, 고니시 유키나가, 안코쿠지 에케이, 오사카 전투에서는 조소카베 모리치카, 도요토미 구니마쓰 등을 비롯 오사카측 잔당등, 저명한 무장과 정치가가 여기에서 최후를 맞았다. 처형된 후에는 어김없이 그들의 머리는 산조오하시의 중심부에 효수되었다. 덧붙여 다이라노 무네모리, 다이라노 기요무네부자는 오미국에서 처형된 후, 로쿠조가와라에서 머리를 효수했다. 형장 형벌사 히가시야마구 히가시야마구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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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A1%B0%EB%A1%B1%EB%B0%95%EB%B2%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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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박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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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롱박벌은 벌목 구멍벌과의 한 종류이다. 실베짱이를 마취시켜서 애벌레의 먹이로 삼는다. 구멍벌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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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AF%BC%EC%96%B4%20%28%EC%96%B8%EC%96%B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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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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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어()는 중국어의 방언 중 하나이다. 푸젠성, 타이완, 홍콩 뿐만 아니라, 싱가포르를 포함한 동남아시아 등지에서도 사용된다. 중국 대륙에서는 속되게 푸젠말()로도 불린다. 분류 민어는 지역에 따라 5가지 혹은 그 이상으로 나눌 수 있다. 민베이어(민북어)(閩北語) 민둥어(민동어)(閩東語) 민중어(閩中語) 민난어(민남어)(閩南語) 장저우어(장주어)(漳州語) 취안저우어(천주어)(泉州語) 샤먼어(하문어)(廈門語) 타이완어(대만어)(臺灣語) 차오저우어(조주어)(潮州語) 푸셴어(보선어)(莆仙語) 레이충어(뇌경어)(雷瓊語) 레이저우어(뇌주어)(雷州語) 하이난어(해남어)(海南語) 샤오쟝화(소장화)(邵將話) 중국어의 방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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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D%98%EC%B9%9C%EC%9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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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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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 1877년 3월 30일 ~ 1955년 8월 16일)은 조선의 왕족이고 대한제국의 황족 종실이며 고종의 두번째 아들이자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다. 고종 후궁 귀인 장씨(貴人 張氏)의 소생으로 출생한 그의 본관은 전주이고, 휘는 강(堈)이며, 초명은 이평길(李平吉), 호는 춘암(春菴)이다. 일생 1891년 12월 28일 의화공(義和公)에 책봉되었으며, 불과 한 달 후 1892년 1월 28일 의화군(義和君)에 개봉된 그는 1894년에 대사로 일본에 다녀오고, 이듬해 6개국 특파 대사로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를 방문했다. 1897년 대한제국이 창건되면서 의왕에 책봉되었으며, 1899년 미국에 유학하고, 이듬해 의친왕에 봉해졌다. 1905년 귀국하여 육군 부장, 적십자사 총재, 순종 황제 대리청정 등을 지냈다. 한국 병탄 이후 일제에 비타협하고 독립운동가들과 가까이하며, 1919년 대동단의 최익환 등과 연락,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탈출하기 위하여 상복(喪服) 차림으로 변장하고 만저우 안둥 현에까지 갔으나, 일본군에 발각되어 강제 송환되었다. 1919년 11월 상하이 망명을 도모하면서 임시정부에 밀서를 보냈다는 내용이 《독립신문》에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 후 여러 차례 일본으로부터 건너올 것을 계속 강요받았으나 거절하였고, 끝까지 일본을 배척하는 정신을 지켰다. 이후 일제로부터 형식적인 공(公)의 지위가 박탈되었다. 임종 직전 천주교(로마 가톨릭교회)에 귀의하였으며, 세례명은 비오이다. 생애 출생 고종의 둘째 아들로 1877년에 태어났다. 이름은 이강(李堈)이며, 초명은 이평길(李平吉), 뒤에 강으로 개명하였다. 어머니 귀인 장씨는 명성황후의 미움을 사서 궐 밖으로 축출되었지만 청년 시절 의친왕 이강은 적모 명성황후로 인해 궁으로 돌아왔고 총애를 받았다. 귀인 장씨는 의친왕을 낳고 명성황후의 박해를 피해 궁 밖에서 살다가, 1900년 숙원(淑媛)에 추증받고 다시 1906년 귀인(貴人)에 추증되었다. 귀인 장씨는 1887년 10월 14일 사망했으며 1911년에 묘소를 이장했다는 기록이 있다. 유년기에 윤치소, 이종훈, 권동진 등과 필운학당에서 수학하였다. 미국 유학 1891년 12월 28일 의화공(義和公)에 책봉되었으며, 불과 한 달 후 1892년 1월 28일 의화군(義和君)에 개봉되었고, 1893년 12월 6일 김사준의 딸 김수덕(金修德, 아명(兒名)은 김숙(金淑), 1881년 12월 22일 ~ 1964년 1월 14일)을 아내로 맞았다. 1894년 7월 내의원제조 겸 사옹원제조에 임명됐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보빙대사가 되어 일본을 방문하였다. 이듬해 6개국 특파대사(特派大使)로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등을 차례로 방문하려다가 취소하고 중도에 되돌아왔다. 그 뒤 을미년 왕세자 작위 선양 파동 사건에 연루되었다가 일단락된 이후 일본 유학을 하여 일본의 게이오기주쿠 대학교을 거쳐 1899년(광무 3년) 미국으로 건너가 1900년 미국 내 각지를 순행하였다. 1901년 3월 버지니아주 세일럼의 로노크 대학교(Roanoke College)에서 수학하였다. 이때 우사 김규식 등을 만나며 친분 관계를 쌓기도 했다. 1901년 6월 매사추세츠주 노스필드에서 열린 학생대회에 수행원 및 우사 김규식 등과 함께 참석하였다. 로노크 대학교를 마치고 오하이오주 델라웨어의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 및 하와이와 샌프란시스코 등지를 돌아다니며 학업을 계속하였으며 1897년 10월, 의화군에서 의왕에 책봉된 그는 1900년 8월 대한제국 전례가 개편됨에 따라 의왕에서 의친왕에 진책되었다. 1905년,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대한제국 육군 부장이 되었다. 1906년 7월 12일 의친왕 이강은 대한적십자사 총재에 취임하였으며, 대한제국 최고의 훈장인 금척대훈장(金尺大勳章)을 수여받았다. 이후 고종의 후궁으로 귀인이 된 순헌황귀비의 견제를 받았다. 황자 서열로는 순종의 다음 서열이었으나 순헌황귀비의 견제와 일본의 영향 등으로 황태자 자리에 오르지 못하였다. 1907년 부황 고종이 일제의 압력에 의해 강제로 순종에게 양위했다. 이때에도 그는 황태자 책봉의 기회를 박탈되었다. 이복 적형 순종이 즉위한 직후 1907년 7월 27일에서 1907년 8월 7일까지 이복 형 순종황제의 대리청정을 잠시 맡았지만 여전히 황위계승 순위에서 서서히 멀어졌고 1907년 8월 7일을 기하여 태황제 고종은 후사가 없는 순종의 황태자로 영친왕 이은을 결정하였다. 이는 자신의 왕위를 계속 위협했던 이준용과 이강을 견제하려는 순헌황귀비의 의도와 이준용파와 이강파가 득세하면 자신의 실권이 잠식될 것을 우려한 이완용의 정략이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이로써 장기간 해외 망명생활 중에 끊임없이 잠재적 왕위계승자로서 대우와 주목과 견제를 받아왔던 이준용과 이강은 졸지에 순종의 동생이자 황태자의 형이라는 지위로 격하되었다. 국권 피탈 이후 일제강점기 초기 1910년 한일합방 직후 그는 친왕(親王)에서 공(公)으로 강등당하여 이강 공이 된다. 국권 피탈 이후에는 주색에 빠진 폐인행세로 일본의 삼엄한 감시를 피하던 의친왕은 항일 독립 투사들과 비밀리에 끊임없이 접촉, 교신하며 묵묵히 독립 운동을 지원하였다. 1911년 11월에는 33인의 민족지도자들과 함께 11월 독립선언서에 서명하기도 했다. 의친왕은 독립운동가 및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사들과 연락하며 망명 정부가 수립되면 황족으로서의 예우를 버리고 '일개 신민'(臣民)의 자격으로 정부를 받아들이겠다고 하였다. 또한 구 양반이었던 동농 김가진 등이 상하이로 망명, 이들은 임시정부와 의친왕 간의 연락선을 접선, 주선하였다. 그 해 상복을 입고 상하이로 가려다 일본 경찰에 잡혔다. 황실인사를 망명하게 하여 독립운동을 활성화하고자 한 대동단(大同團)의 전협(全協)등과 탈출을 모의하여 대내외적인 화제를 일으켰으나 도중 만주 안동에서 발각되어 강제로 본국에 송환되고 말았다. 이 사건으로 당시 대한제국 황족들에게 허용되었던 한반도 내 여행의 자유를 박탈당하는 보복을 당했다. 의친왕은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망명 실패 이후 1919년 11월 20일자의 독립신문 기사에는 '의친왕의 친서', '의친왕 전하'라는 말과 함께 "의친왕 전하께서 상해로 오시던 길에 안동에서 적에게 잡히셨도다. 전하 일생의 불우에 동정하고 전하의 애국적 용기를 칭송하던 국민은 전하를 적의 손에서 구하지 못함을 슬퍼하고 통분하리로다."라고 쓰여 있다. 그해의 11월 25일자 《독립신문》 2면의 기사에는 의친왕의 상해행 기사로 대부분 할애되었으며 이후 그 뒤에도 상당 지면 할애되었다 한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일본 정부에 보고하여 의친왕에게 형식적으로 부여되었던 이강 공이라는 공족의 작위를 박탈당했으며, 그의 공위는 장남 이건(李鍵公)에게 습공되었다. 1919년 재판에 회부됐으며, 그는 같은 해 대동단 총재명의로 독립선언서를 공포하기도 했다. 이후, 일본으로부터 계속해서 도일 강요를 받았던 그는 끝까지 거절·저항하여 배일 정신을 지켜내었으며 일제에 의해 형식적으로 부여되었던 공족에서 강제로 물러났으며, 감시에 시달려야 했다. 의친왕은 이후 광인과 주색에 빠진 것을 가장하여 일제의 감시의 눈을 피해 살았다. 1940년 창씨개명령이 떨어졌을 때 그는 창씨개명을 거절하였다. 이수길에 의하면, 조선총독부에 의해 강제로 연금된 뒤에는 실의에 빠져 집에서 술을 자주 마셨다고 한다. 광복 이후 1945년 8월 광복 이후, 11월 23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 김구·김규식 등과 면담하였다. 그러나 해방 정국에서 그는 1947년 3월에서 1949년 8월까지 2년 5개월간 한국독립당 최고위원 겸 전임고문 직위를 역임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정치적 의사 표현을 삼갔다. 1948년 8월 15일 정부가 수립되자 황실을 배척하던 대통령 이승만의 정책에 의해 망국의 황자로서 고난의 세월을 보내다가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으로 피난갔다가 1953년 7월 27일 휴전 협정 후 다시 서울로 되돌아왔다. 그 후 사동궁 별궁에서 거주하였다. 그러나 황족으로서의 어떠한 예우도 없는 조건이 붙었다. 1955년 8월 9일 천주교로 개종, 병석에서 장면(張勉) 부통령(세례명 요한)을 대부로 하여 영세하였다. 의친왕의 세례명은 비오이다. 1955년 8월 16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안국동의 별궁에서 영양실조 후유증과 스트레스(화병) 등의 합병증으로 79살의 나이로 타계하였다. 사후 황족들이 일제강점기 당시 망국의 원흉으로 지탄받으면서 재조명의 기회가 없었다. 능은 부황인 고종 황제의 능인 경기도 남양주군 미금읍(현 남양주시 금곡동)의 홍유릉 내에 위치한 의친왕묘(義親王墓)이다. 복권 노력 1975년 생모 김금덕(의친왕 이강의 측실)의 위독 소식을 듣고 귀국한 그의 다섯째 딸 이해경은 30년 넘게 아버지 의친왕의 복권운동을 추진했으나 실패하였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의친왕이 임시정부 요인, 대동단 등과 비밀리에 서신연락을 주고 받은 점 등이 발굴되어 연구진행 중에 있다. 의친왕의 손자인 이원(李源)은 대한제국의 황실 수장이었던 황태손 이구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 의해 황태손 이구의 양자로 입적되어 대한제국의 황실 수장 자리를 계승하였다. 학위 일본 게이오 의숙 미국 로노크 대학교 학사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 학사 상훈 1905년 대한제국 정부 이화금척대훈장(李花金尺大勳章) 1912년 일본제국 천황 욱일금척대훈위대수장 (旭日金尺大勳位大受章) 가계 사친조부 헌의대원왕(獻懿 大院王) 흥선대원군(興宣 大院君) 이하응(李昰應) 사친조모 순목대원비(順穆 大院妃) 여흥부대부인(驪興府 大夫人)여흥 민씨 조부 익황제 조선 문조대왕, 대한 문조 익황제(文祖 翼皇帝), 효명세자, 대리청정 조모 익황후 조선 신정왕후, 대한 신정 익황후(神貞 翼皇后), 조대비풍양 조씨 부황 조선 고종대왕, 대한 고종 태황제(大韓 高宗 皇帝) 광무제(光武皇帝) - 조선 제26대, 대한제국 건국조 모후 조선 명성왕후, 대한 명성 태황후(大韓 明成 皇后)여흥 민씨 대한제국 건국, 광무 원년(光武 元年, 고종 34년, 1897) 10월 12일 형 대한 1황자 완왕 이선(完王 李墡), 완화군(完和君), 조졸(1868년생) 형 대한 2황자 대군 이최(李墔) 조졸(1871년생 ~ 1871년 조졸) 형 대한 순종 효황제(大韓 純宗 皇帝) 융희황제 이척(隆熙皇帝 李坧) - 대한 제2대 황제 형수 대한 순명 효황후(大韓 純明 皇后)여흥 민씨 형수 대한 순정 효황후(大韓 純貞 皇后)해평 윤씨 형 대한 4황자 대군 이표(李墂) 조졸(1875년생 ~ 1876년 조졸) 제 대한 6황자 대군 이부(李坿) 조졸(1878년생 ~ 1879년 조졸) 제 대한 7황자 의민 황태자(大韓 懿愍 皇太子) 영왕 이은(英王 李垠) 제 대한 8황자 이육(李堉) 조졸(1914년생 ~ 1916년 조졸) 제 대한 9황자 이우(李堣) 조졸(1915년생 ~ 1916년 조졸) 자 대한 1황녀 옹주 조졸(1871년생 ~ 1872년 조졸) 자 대한 2황녀 공주 조졸(1873년생 ~ 1873년 조졸) 매 대한 3황녀 옹주 조졸(1879년생 ~ 1879년 조졸) 매 대한 4황녀 덕혜옹주(德惠翁主) 이덕혜(李德惠) 어머니 후궁 귀인 장씨(貴人 張氏)덕수 장씨 (친모) 대한 5황자 의왕 이강(義王 李堈), 친왕 친왕비 연안 김씨(金氏), 김수덕(金修德)연안 김씨, 제1후실 수관당 정씨(修觀堂 鄭氏) 1왕자 대한 황손 이건 - 일본 귀화 제2후실 수인당 김씨(修仁堂 金氏), 김흥인(金興仁) 2왕자 대한 황손 이우 - 운현궁으로 양자 출계 5왕자 대한 황손 이주 - 대궁으로 양자 출계 6왕자 대한 황손 이곤 - 의친왕 가문 차남으로 의친왕 가문 승계 손자 대한 황손 이준 → 의친왕家 종손, 의친왕기념사업회 회장, 제3후실 수현당 정씨(修賢堂 鄭氏), 정운석(鄭雲石) 제4후실 조씨(曺氏), 조병숙(曺秉淑) 제5후실 수덕당 이씨(修德堂 李氏), 이희춘(李喜春) 제6후실 수완당 김씨(修完堂 金氏), 김정완(金貞完) 제7후실 수길당 박씨(修吉堂 朴氏), 박영희(朴英喜) 제8후실 송씨(宋氏) 제9후실 수경당 김씨(修慶堂 金氏), 김창희(金昌熙) 제10후실 김금덕(金今德, 생년 미상 - 1975년) 5왕녀 대한 황손 이해경 - 의친왕비 호적으로 정식 편입 제11후실 함개봉(咸開鳳) 9왕자 대한 황손 이갑 손자 대한 황손 이원 → 황태손 이구(皇太孫 李玖)의 양자로 출계 제12후실 김혜수(金蕙洙) 제13후실 홍정순(洪貞順) 남양 홍씨 10왕자 황손 이석 황손(皇孫)에 관해서는 아래 항목 "황손"을 참조하시오. 자녀 의친왕과 의친왕비 연안 김씨에게서는 슬하의 자녀가 없다. 공식적으로 확인된 친왕 의친왕의 자녀는 12남 9녀이다.일부 측실은 황손을 의친왕에게 맡기고 재혼한 여성들도 있었으며, 의친왕비 김씨는 황손들을 친자녀처럼 양육하였다. 근처에 생모가 양육하는 황손 몇 인을 제외하고는 사동궁(寺洞宮, 현재 종로구 인사동)에 대가족 형태로 거주하였다. 사동궁(寺洞宮)은 의왕의 사저(私邸, 저택)이며 동시에 의왕궁(義王宮), 의왕부(義王府)이다. 손자 이준(李準, 1961년 9월 11일 ~ ) : 의친왕 이강의 6남인 이곤(李錕)의 장남이다. 의친왕의 1남 이건은 일본으로 귀화하고, 2남부터 5남까지 종친들에게 양자를 가게 되어 이곤 황손이 의친왕 가문의 2남으로서 가문을 잇게 되면서 사동궁은 제1대 의친왕 이강, 제2대 이건, 제3대 이곤, 제4대 이준으로 이어진다. 현재 의친왕가의 종손으로 사동궁 사손이며 의친왕기념사업회의 회장을 맡고 있다. 이원(李源, 1962년 9월 23일 ~ ) : 의친왕 이강의 9남인 이갑(李鉀)의 장남이다. 본명은 이상협(李相協)이다. 대한제국의 황실 수장이었던 황태손 이구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에 의해 황태손 이구의 양자로 입적되어 제5대 대한제국의 황실 수장 자리를 계승하였다. 기타 1905년, 의친왕은 워싱턴에 밀사로 찾아온 이승만을 몇 번 만나기도 했는데 당시 버지니아 주 살렘에 있는 로노크 대학에서 공부하다 종종 주미 공사관이 있는 워싱턴에 방문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의친왕을 만나보니 '게으르고 학업에 열의가 없다'는 느낌의 인상을 받았다고 하였다. 의친왕은 사격술과 권총 사격술에 뛰어나 백발백중이었다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화가 나면 울분을 참을 길이 없어 사격과 권총술로 화풀이를 했다고 한다. 천주교 귀의 의친왕은 사망하기 전에 로마 가톨릭교회에 귀의할 것을 약조하였다. 이는 조부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도 수만 명을 사형시킨 것(병인박해)에 대한 참회의 성격도 있었다. 1955년 8월 9일을 기하여 의친왕 이강은 천주교 교우이던 구왕실(舊王室) 서무계장과 부통령을 지낸 장면 등과 연락, 8월 15일경 그들의 영향으로 서울 가회동성당 박우철 신부를 불러다가 비오(Bio)이라는 세례명으로 영세를 받고 8월 16일에 영면했다. 대한제국 의친왕 숭모회 대한제국 의친왕 숭모회(大韓帝國 義親王 崇慕會)는 매년 양력 8월 15일에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홍유릉 내 의친왕묘에서 의친왕의 후손 및 종현, 일반인들이 참관한 가운데 제향을 주관하기 위해 2006년 설립된 단체로 의친왕의 제향을 주관하는 공식 단체이다. 초대 대표회장으로 효령대군 19대손 이재용(李宰容)을 선임하여 매년 제향을 지내오다가 2013년 4월에 공식적으로 의친왕 숭모회는 해체되고, 봉행하던 의친왕 제향은 2013년부터 후손들이 지내다가 2022년 부터 의친왕가의 제4대 사동궁주 이준 황손을 중심으로 의친왕기념사업회가 발족되어 의친왕기념사업회와 의친왕 숭모회가 공동주관으로 의친왕 기신제를 봉행하고 있다. 의친왕기념사업회 의친왕기념사업회(義親王記念事業會)는 대한제국 황실의 후손들과 독립운동가의 자손들, 황실독립운동의 중심 의친왕을 존경하는 국민들이 모여 설립한 단체로, 의친왕의 행장과 독립운동사를 재조명하고,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2022년 설립되었다. 의친왕가 종손 이준 황손이 회장으로, 황실의 가장 큰 어른인 이해경 왕녀가 명예회장으로 활동 중이다. 순종황제와 순정효황후가 설립한 경기여고 경운박물관에서 2022년 10월부터 2023년 1월까지 전 세계에 흩어진 의친왕의 유물을 한데 모으고, 의친왕과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유물을 함께 전시하는 전시를 진행했으며 의친왕 관련 사료와 유물을 수집, 연구하고, 관련 서적을 출판, 간행하는 일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매년 양력 8월 15일 의친왕 기신제를 봉행하는 주관단체이다. 의친왕이 등장한 작품 TV 시리즈 1980년 《의친왕》 (MBC 드라마)(배우: 이정길, 김무생, 전운, 정욱) 1981년 《제1공화국》(MBC 드라마)(배우: 양일민) 1990년 《왕조의 세월》(KBS1 드라마)(배우: 문창길) 2001년 《명성황후》(KBS2 드라마)(배우: 강성민) 참고 자료 관련 서적 《나의 아버지 의친왕》(1997년 6월 1일), 이해경 저, 진. 《조선의 왕실과 외척》(2003.04.27) 박영규 저, 김영사. 《우리 역사의 수수께끼》(2004년 8월 20일), 이덕일 저, 김영사. 《제국의 후예들》(2006-05-25) 정범준 저, 황소자리 《대한제국 황실 비사》(2007-08-06) 곤도 시로스케 지음, 이연숙 옮김, 이마고 펴냄. 《의친왕 전하》(2008년 8월 15일), 이효재 저, 의친왕숭모회. 《의친왕 이강》(2009년 7월 23일), 박종윤 저, 하이비전. 《황제. 1,2,3-제국의 부활》(2009년 12월 15일) 문영 지음, 평민사 펴냄 《의친왕과 황실의 독립운동:기록과 기억》(2022년 10월 14일) 경운박물관/의친왕기념사업회 지음. 각주 같이 보기 고종 순종 명성황후 귀인 장씨 수관당 정씨 덕인당 김씨 로노크 대학교 대동단 성락원 외부 링크 의친왕기념사업회 - 의친왕의 후손들과 황실의 독립운동의 중심, 의친왕을 존경하는 국민들이 모여 의친왕의 행적을 밝히고 역사 바로세우기를 위해 설립한 단체. 의친왕의 다섯째 딸인 이해경 황손이 명예회장을, 의친왕가의 종손이자 사동궁 사손인 이준 황손이 회장을 맡고 있다. 두산대백과사전 - 의친왕 이강(義親王 李堈) 前 한국독립당 최고위원 겸 전임고문 대한황실문화원 : 조선왕실과 대한제국황실 문화를 계승, 발전하기 위해 뜻을 함께하는 사회인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단체 대한제국 의친왕숭모회 : 의친왕 전하의 행장과 독립운동사 재조명 및 의친왕 기신제향을 주관하는 공식 단체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 대한제국 황실 종묘제례 주관 공식 단체. 조선왕실계보, 선원계보(황실 족보) 등 황손 이석씨 "아버지 의친왕 진면모 알려지길…" - 한국일보 기사 우리황실사랑회: 대한제국 황실의 상징적 복원을 주장하는 민간단체로 의친왕제향을 공식화하기 위해서 활동하였고 덕혜옹주 추모제향을 지내고 있으며 황실관련한 여론을 주도하고 있다. "나는 일본 정부의 친왕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 - 오마이뉴스 기사 1877년 출생 1955년 사망 서울특별시 출신 조선의 왕자 대한제국의 친왕 대한제국의 부장 일본의 왕공족 훈1등 욱일동화대수장 수훈자 대훈위 국화대수장 수훈자 한국의 독립운동가 이강 전주 이씨 이강 19세기 한국 사람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게이오기주쿠 대학 동문 로노크 대학교 동문 오하이오 웨슬리언 대학교 동문 이강 이강 병사한 사람 성락원 대한제국 고종의 자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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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9D%B5%EB%AA%A8%EC%B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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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모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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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모초(益母草, )는 꿀풀과에 속하는 두해살이풀이다. 여름, 가을에 싹을 틔워 어느 정도 자라다 겨울을 지내고 이듬해 봄부터 급속히 성장한다. 물이 잘 빠지고 통풍이 잘 되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잘 자란다. 익모초는 어머니에게 이로운 풀이라는 뜻으로 어머니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이로운 풀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 원산이며 일본, 대만, 중국에도 서식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익명(益明), 충위자(茺蔚子) 등이 있다. 생태 밭둑이나 길가의 빈터 등 전국 어디서나 절로 자란다. 키는 50~100 센티미터쯤 되는데 1 미터 넘게 자라는 것도 있다. 줄기는 네모지고 흰색 털이 난다. 뿌리에서 나는 잎은 달걀꼴인데 가장자리에 둔한 톱니가 있거나 결각이 지며 꽃이 필 때는 없어진다. 줄기에서 나는 잎은 마주나며 세 개로 깊게 갈라진다. 갈라진 잎은 또 2~3개로 갈라지며 마지막으로 갈라진 한 잎은 선 모양이다. 7~8월에 자주색 꽃이 줄기 위쪽의 잎겨드랑이에서 핀다. 줄기를 둘러싸며 층층으로 달린다. 열매는 까맣다. 쓰임새 익모초는 체내 염증으로 인한 열을 식히고 어혈을 풀어주어 혈액 순환에 좋은 풀이다. 그래서 여성들의 생리통이나 생리불순에 효과가 있다. 생리불순으로 임신이 잘 안 되는 경우에 효과가 있고, 또 출산을 한 후에는 자궁 수축을 도와주어 약으로 쓴다. 여름 더위병 치료나 식욕 증진에도 효과가 있다. 또, 꽃에 꿀이 많아서 양봉에 도움이 된다. 사진 각주 참고 문헌 고경식·김윤식, 《원색한국식물도감》(아카데미서적, 1988) 풀베개 외부 링크 광대수염아과 초본식물 약용식물 1778년 기재된 식물 중국의 식물상 한국의 식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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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C%84%9C%ED%92%8D%EC%9D%98%20%EA%B4%91%EC%8B%9C%EA%B3%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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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의 광시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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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풍의 광시곡()은 6개의 타이틀로 이어지는 창세기전 시리즈 중 3번째 작품으로 창세기전 외전 1격의 의 작품이다. 대한민국의 게임 개발사인 소프트맥스사에서 제작하고 1998년 3월 발매된 롤플레잉 비디오 게임이다. 발매 발매 당시의 유통사는 전작인 창세기전2를 유통하기도 한 하이콤이었는데, 1998년 하이콤의 부도로 당시로는 기록적인 판매량을 올린 서풍의 광시곡의 판매 대금 회수가 어려워 지게 된다. 이는 후속작인 템페스트를 8개월 만에 완성도가 떨어지는 상태로 무리하게 개발 출시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 이후 창세기전3를 직접 유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소프트맥스의 자회사 디지탈 에이지를 통해 새로운 형태의 패키지로 재발매되었으며, 저가의 쥬얼 버전으로도 유통이 되었다. 일본판에서는 작화가 대폭 교체되었으며 상당량의 대사 및 시스템 설정이 수정, 보완되었다. 또한, 플레이스테이션 2로 발매될 때는 초회한정판 특전으로 서풍의 광시곡 프리미엄 사운드 트랙이 동봉되었다. 일본의 대표적 롤플레잉게임 제작사인 니혼 팔콤에서 게임의 라이선스를 획득하여 일본에서 각각 2000년에 PC, 2001년에 DC, 2004년에 플레이스테이션 2용 게임으로도 각각 선보인 바 있다. 제작진 메인 프로듀서는 현 소프트맥스의 이사인 조영기이고, 작화는 일본인 Mr. Huruno, 음악은 장성운과 황주은등 3명이 외주 형태로 작업했다. 이후 장성운은 소프트맥스에 입사해 후속 창세기전 시리즈와 마그나카르타시리즈 제작에 참여했고, 황주은은 어뮤즈월드에서 이지투디제이 등을 작업했다. 줄거리 창세기전2의 배경사건인 창세전쟁이 종결된 50년 뒤를 다루고 있는 서풍의 광시곡은 전작인 창세기전 1편·2편과 달리 알렉상드르 뒤마의 《몬테크리스토 백작》을 원안으로 하여 게임 스토리의 복선과 반전을 한결 치밀하게 전개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연인과 가장 믿던 친구에게 배반당한 주인공 시라노가 복수를 위해 싸운다는 설정이 주된 내용이다. 게임은 단순한 복수뿐 아니라, 제국과 제국 혁명군과의 관계, 그외 창세기전의 여러 가지 치밀한 설정들이 어우러진 복합적 구조를 지니고 있다. 외부 링크 공식 웹페이지 일본어판 공식 웹페이지 (팔콤) 플레이스테이션 2판 공식 웹페이지 (메르베르스 엔터테인먼트) 1998년 비디오 게임 전략 롤플레잉 게임 윈도우 게임 플레이스테이션 2 게임 드림캐스트 게임 소프트맥스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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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B0%A9%EC%BD%95%20%EC%95%84%EC%8B%9C%EC%95%88%20%EA%B2%8C%EC%9E%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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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아시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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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 아시안 게임, 즉 태국 방콕에서 열린 네 차례의 아시안 게임은 다음과 같다. 1966년 아시안 게임 1970년 아시안 게임 1978년 아시안 게임 1998년 아시안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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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ko.wikipedia.org/wiki/%EB%AA%AC%ED%8A%B8%EB%A6%AC%EC%98%AC%20%EC%97%91%EC%8A%A4%ED%8F%AC%EC%8A%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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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엑스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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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트리올 엑스포스(, )는 1969년에 창단하여 2004년 시즌이 끝난 후 워싱턴으로 연고지를 옮긴 워싱턴 내셔널스의 전신 팀이며 OB 베어스가 해당 구단의 모자를 참고로 하여 삼색 모자를 만들었고 이로 인해 해당 구단과 한때 자매결연-교류 추진이 있었으나 무산됐으며 해당 구단에 앞서 밀워키 브루어스 구단 모자를 토대로 할 뻔 했지만 좌절됐다. 주요 선수 블라디미르 게레로 페드로 마르티네스 영구 결번 #8 게리 카터 #10 러스티 스토브 & 안드레 도슨 #30 팀 레인스 #42 재키 로빈슨 역대 한국인 선수 (엑스포스 시절 등번호, 포지션, 엑스포스 소속이던 시즌) 김선우 - 31번, 투수, 2002년~2004년 1969년 설립된 야구팀 2004년 해체된 야구팀 몬트리올의 스포츠 워싱턴 내셔널스 캐나다의 야구단 1969년 설립된 야구팀 해체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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